내 영혼의 음악
김정환 지음 / 청년사 / 2001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음악 마니아는 아니다. 그냥 음악에서 인생 공부를 할 것이 많다는 점을 매우 뒤늦게 깨닫고 황급히 이것저것 음악들 들어본 편에 속한다. 왕년에, 특히 대학 다닐 때 학림다방에서 음악에 심취했던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겉멋이었고, '아날로그' 시대의 음질, 혹은 음맛, 혹은 음 분위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경악하겠지만, CD라는 게 나오지 않았으면 취미나마 다시 갖지도 못했을 것이다. 30분도 채 못 되어 음반을 뒤집는 수고를 할 리 없겠기 때문이다."
시인 김정환이 선보인 '내 영혼의 음악'은 음악 안내서라기보다는 자기 고백에 가까운 책이다. 몇 년 전에 나온 '음악이 있는 풍경'(이론과 실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김정환의 내적인 음악 취향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지극히 사적인 감성만을 나열한 것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음악 지식이 잔득 실려 있을뿐더러, 귀감이 될 글귀 또한 가득하다.
명반 150장을 선정해 그 음반과 음악에 관한 글을 나열한 이 책은 시중의 음악잡지에 기고된 글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는 특유의 감수성이라고 해야 할 시적인 문체로 상상력의 나래를 펼친다. 음악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작품을 분석한다. 이를테면 베토벤 피아노 3중주 '대공'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을 보자.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되었지만 이 작품은 프랑스혁명 이래 급격히 부상한 시민계급, 그리고 미래와 대화를 분명하게 겨냥한다. 음악은 귀족 후원자를 잃고 시민계급의 극장 취향에 의지해야 했다. 그리고 진보는 얼핏 천박한 대중성을 동반한다. 대중 취향에 영합할 것인가, 아니면 고급한 예술성을 지키며 고립과 굶주림을 감수할 것인가? 얼핏 긴박한 이 질문에 베토벤은 음악적으로 또 예술·본질적으로 응답한다. 그리고 예술성/대중성의 이분법을 일거에 깨부순다. 그는 귀족들이 직접 연주를 즐겼던 아마추어리즘을 탈피한 고난도의 작곡 연주기법과 심오하고 변증법적인 음악사상을 결합하면서 시민혁명의 시대정신을 일상화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이렇게 한 작품을 내적·외적으로 분석하며 독자들이 공감하길 바란다. 그리고 끝 부분에 이 곡을 연주한 음반과 연주자를 이야기한다. 이 대목도 일반잡지와 책에서 해온 분석과는 다른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예술 산문집을 읽는 것처럼 간결한 문체로 연주를 묘사해놓았다. "스턴, 로즈, 이스토민 세 연주자는 베토벤이 마음의 귀로 들었던 바로 그 연주를 재현한다. 그리고 그, 대화의, 통로가 위대한 침묵의 저변을 이루는 광경도 보여준다. 1악장은 숭고한, 끝없이 숭고한 고통에 단아한, 끝없이 단아한 외모를 부여한다. 공인가? 아니다. 단아함의 육화이다. 공을 더욱 공이게 하고 색을 더욱 색이게 하는."
그러니까 이 책은 백과사전식의 안내서가 아니다. 객관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시인이 풀어놓은 감성은 직접 그 음악을 들으며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 정도로 매력적이다. 시대와 장르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눈물의 유현' '아름다움의 색즉시공과 노년의 공즉시색' 등 시 제목과 같은 이름아래 르네상스·바로크 시대부터 현대까지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오페라 등을 망라해놓았다. 자료 사진과 명화를 풍부하게 수록해 읽기 편하게 편집한 점도 이 책의 특징이다. 추천 음반마다 작곡가, 연주가 등의 정보가 알차며, 책 맨 뒷부분에는 음악용어 해설과 작곡가·연주가 찾아보기를 제공하고 있다.
김정환은 '창작과 비평'에 시 '마포, 강변동네에서'를 발표하며 데뷔했고, 이후 시를 비롯해 소설, 평론, 희곡, 산문, 시나리오 등 다양한 글쓰기를 해온 작가다. 그만큼 그가 세상에 내놓은 책의 양도 대단해 벌써 100여 권에 가깝다. 작가이면서 클래식 애호가인 그는 "음악은 언어의 희망이며 꿈"이라고 믿고 있다. "음악의 선율을 활자 언어로 바꾸어 내는 일"에도 열성적이어서 <클래식은 내 친구> <음악이 있는 풍경> 등의 책을 선보인 바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