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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초창기부터 여태껏 이곳에서 책을 수천권을 샀다. 예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운영이 매끄럽지 못하다. 

이번에 중국책과 함께 여러 권을 주문하였는데 보름이 지나도 책이 오지 않아 어제 확인하였더니 중국책이 재고가 없어서 현지에 주문한 탓에 6월에 온댄다. 4월에 주문했거늘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6월에...... 재고가 없으면 주문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다른 책부터 보내주어야 함이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아닌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주말인 탓에 일단 1대1 상담 글을 남겼다. 

연락해달라고 했는데도 오전에도 소식이 없어서 상담전화를 계속 해도 통화가 되지 않는다. 기껏 오후에 문자 한통 와서 사과 한마디 없이 이제서야 보내준단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오늘날에도 있다니. 

책 파는 서점이 알라딘 하나 밖에 없나요. 다른 좋은 곳이 있다면 추천받습니다. 짐 싸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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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열린 조계사 승려대회에 관해 설왕설래 말들이 많다. 산을 좋아하는 나는 일찍이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십여년전부터 묵은 문화재관람료가 도화선이 되었는데 이때까지 이를 내버려두고 문제를 키운 정부와 또 이제와서 뒤늦게 국민의 공감대 형성없이 주장을 펼치는 불교계가 참 답답한 노릇이다. 이에 관해 몰상식한 의견이 너무나 난무하므로 몇자 적는다. 


저간의 사정을 전혀 모르면서 일단 욕부터 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먼저 보자. 

1. 절에 들어가지 않는데 왜 돈을 내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국가이다. 따라서 사유지를 통과할려면 응당의 대가를 치루는 것이 맞다. 누구나 자기 땅에 함부로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터이고 요즈음엔 야산에서도 말없이 풀 등을 채취하다 걸리면 바로 처벌받는다. 해외려행 많이 가기로 소문난 우리 국민이 외국 어디를 가더라도 거의 다 입장료 내지 배관료 또는 관람료 명목으로 돈을 내봐서 잘 알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국의 유명한 산이 절의 소유지가 많기 때문에 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절땅을 지나가면 돈을 내는 게 맞다고 본다. 

2. 언제부터 절 땅이었나

-산사들은 대부분 늦어도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으니 그때부터 사찰 소유였다고 보면 될 듯 하다. 국립공원은 1960년대부터 생겼으니 긴 말 필요 없다. 

3. 조선시대에 토지는 다 왕의 소유였다. 그러니 ......

-말도 안되는 억지다. 그건 관념적인 이야기이고 간단히 말해 다 임금의 땅이라면 조선시대에 토지문서는 왜 있는가.


각설하고 싸울 필요 없다. 절은 돈 문제로 수행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게 문경 봉암사처럼 사찰 소유지를 다 봉쇄하라. 신도들만 신도증을 제시하고 들어가면 되고 외국인이나 관람을 희망하는 자에 한해서 오후라던지 시간대를 정해서 창덕궁처럼 단체관람을 허용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등산객은 돈내기 싫으면 욕하지 말고 사찰 소유지를 지나가지 말라. 

이 땅에서 나라를 분열시키는 이런 어찌보면 유치한 소모적인 논쟁은 피했으면 좋겠다. 


끝으로, 청와대에서 취임미사를 하던지 외국가서 성당을 들르던지 뭐 그 정도는 이해가능하다. 그러나 교황을 만나는데 '알현'이라는 사대적인 용어는 어불성설이라고 여겨진다. 우리나라는 천주교국가가 아니다. 왜 일국의 대통령이 교황의 수하가 아닐진대 교황을 친견하면 됐지 알현해야 하는가.  

이 사건을 보면서 느낀 점 중의 하나는 아뭏든 국민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국사 교육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참, 엉뚱한 얘기지만 이참에 빨치산 토벌을 위해 만든 천은사에서 성삼재 넘어가는 작전도로. 군사정권에서 포장했는데 다시 뜯어서 자연으로 돌렸으면 좋겠다. 절에서도 이런 대의명분이 있는 좋은 주장을 하면 얼마나 좋은가. 월정사 전나무숲길처럼 뜯어서 자연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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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선의 궁궐을 애호하는 한사람으로서 한 마디 할련다.

몇 해 전이었던가 낙선재 뒤쪽 일대를 개방한다고 해서 특별관람을 신청하여 보았던 기억이 있다. 조선의 멸망을 옆에서 지켜보았으며 625사변 때에도 낙선재에 머물며 고궁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을 순종비이신 황후 윤씨와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의 부인으로 일본 왕족인 왕비 이방자씨가 삶을 마친 곳이 바로 낙선재이다. 그러한 곳을 숙박시설로 이용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1. 그것도 외국인에게만 거금을 받고 한단다. 돈에 환장했나?

 

2. 왕궁에 외국인을 편히 재우기 위해 거금을 들여 내부시설을 고친다는데 문화재는 원형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무엇하러 비싼 돈 들여서 경복궁을 복원하는 등의 역사를 벌이는가. 그냥 지금대로 둘 것이지.....

 

3. 불과 얼마 전에 숭례문을 개방해 놓고서 관리 소홀로 불타는 참사를 겪었다. 만일 낙선재에 혹여 불이라도 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럴리 없다고??? 

 

4. 찬성하는 쪽의 목조로 지어진 전통가옥은 사람이 살아야 된다는 주장에는 한옥에 다년간 살아본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잘런지 모르겠으나 고작 몇 번 그런다고 변하는 건 거의 없을 터이다. 나무는 사람의 손때가 많이 가야 된다. 마루널은 내 생각에 하루에 최소한 세 번은 닦아줘야 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상주하지 않는다면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5. 그리도 궁궐을 아끼신다면 관리인원을 늘리고 소제하는 자원봉사자를 더 자주 모아서 청소를 하고 그도 부족하다면 차라리 조선왕실의 후손을 윤번제로 우선 시험삼아 조선후기의 정궁인 동궐 말고 덕수궁에 살게 해 보라. 그리고서 부작용이 없다면 시행해도 늦지 않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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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적지 않은 돈을 책 구입에 쓰는 나로서는 요즘 저으기 당황하고 있다. 왜냐하면 중고책값의

 

이상현상 때문이다. 도서 정가제가 실시되기 이전에는 책의 유무에 따라 2할에서 3할정도의 보통 싼

 

가격으로 책을 구입했었다. 그런데 정가제가 실시되고나서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

 

중고가가 거의 정가와 비등한 것이다. 처음엔 몇몇만 그러려니 했는데 다시 보니 거의 다 그렇다.

 

중고책 판매자들이 약간 이상해져서 다들 담합을 한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 ^^

 

아뭏든 나라에서 실시한 도서정가제가 나 같은 소시민 평국민에겐 좋지 않은 듯 하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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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4-2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 책이 재고 가 없을때는 정가보가 더비싸게 나오더군요.ㅎㅎㅎ

狂人 2015-04-24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그렇지요. 그런데 절판이 되지 않았는데도 정가대로 파는 건 왜일까요? ^^ 도장도 유래가=유레카인이네요. 멋집니다. ㅎㅎ
 

고궁에 즐겨 가기 시작힌 지가 어언 스무해 남짓 되었다. 처음에는 근정전 회랑에 무턱대고 앉아 근정전 지붕의 곡선 맵시와 인왕산 마루금의 아름다움에 취해 볼려고 마냥 쳐다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한동안 열심히 사진을 찍으면서 새로이 개방된 창덕궁 후원과 낙선재 특별관람, 경복궁 집옥재  등을 보는 재미로 자주 갔다. 일반관람도 비 오는 날이면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좋고 눈이 오거나 아주 추운 날엔 도심 한복판에서 적막을 느낄 수 있어 그 또한 아주 좋았다.  

최근에 우연히 경복궁 경회루를 개방한다는 사실을 알고 두어달 전에 신청해서 관람하였다. 그런데 안내하시는 해설사의 설명이 영 마땅치 않았다. 원래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여러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는 그 분의 영향력을 감안해서 살짝이 지적아닌 지적을 하였다.  

그 분 설명에 의거하자면 경회루는 주역의 원리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는데 딱 보기에도 세 개의 다리하며 세 개의 방 등 그런 요소가 많이 보였다. 하지만 그 분 왈 음양 곧 양의가 4괘가 되고 4괘가 8괘가 된다는 것이었다. 과문한 탓에 4괘를 들어보지 못해서 그분에게 4괘가 아닌 사상인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경회루의 창이 48개인데 왜 48개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 또한 궁금증에 빠졌다. 처음에 시초 수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여러 모로 궁리하였지만 알 길이 없었다.  

책을 미처 찾아보지 못하고 있던 차에 담양 소쇄원에 들렀다가 제월당의 현판 설명을 들은 것이 의문점이 풀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근자에 제월당에서 두번이나 뵈었던 어르신의 설명에 조선 선비들에게 시 48수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경하자마자 뒤져보니 안평대군에게도 48수가 있는데 이는 주역 6효에다 8괘를 곱해서 얻어진 수라는 것이었다.  

80년대에 김성호씨의 <비류백제와 일본의 기원>을 읽으면서 각 종족에 따라 좋아하는 수와 즐겨쓰는 지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 나는 늘 수에 관심이 많았다. 요사이 동양 고전을 다시금 제대로 공부하면서 내 나름대로 정리하며 새삼 크게 재미를 느낀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화두처럼 늘 머릿속에 그 궁금함을 담고 있으면 언제 어느 곳에서건 실마리가 풀리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인생 살면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이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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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4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랫만에 들렀다가 이 글을 읽고 저 또한 궁금하여 검색해 보았더니,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의 글이 눈에 띄네요..기둥이 48개인 이유가 상세하게 나와 있어 옮겨왔습니다...경회루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는데, 한번 가보고 싶네요..좋은 가을입니다. 안녕히...

고종 때의 대신인 정학순(丁學洵)이 지은 <경회루전도(慶會樓全圖)>에서는 경회루 축조의 의미를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이 아니라 유교적 우주질서를 체계화하여 설명하려 하였던 역(易)의 원리에 따라 설명코자 하였다. 이는 임금이 거처하는 궁궐의 건물들이 유교적 이념에 근거하여 하늘과 땅의 이치를 담으려고 했다는 것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경회루는 48개의 기둥을 사용하여 세웠는데 만들어지는 칸이 모두 35칸으로, 주역의 64괘와 밀접한 36궁 즉 육육궁(六六宮)과 관련이 있다. 건물의 칸수가 35로 36 중 1이 모자란 것은 비어있는 허공이 태극의 하나라는 뜻이 있어서 이를 합쳐 36이 되기 때문이다. 육(六)은 주역의 팔괘 중 감괘(坎卦)로 큰물을 상징한다. 따라서 경회루 축조의 뜻이 원래 불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복궁 전면의 관악산이 불타는 모습 즉 화형(火形)을 하고 있어 경복궁이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풍수지리설과 실제로 빈번했던 화재에 대응하기 위하여 이런 상징성을 동원하여 경회루를 축조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동(銅)으로 만든 용을 연못에 집어넣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용은 8괘 중 건(乾)괘에 해당되는 것으로 금생수(金生水)의 오행(五行) 원리에 따라 불을 제어한다고 한다. 실제로 1997년 연못 준설 때 이 동용이 발견되어 <경회루전서>의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 바 있다.

이외에도 <경회루전서>에서는 유교적 질서가 건축계획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즉 경회루 평면은 3중(重)으로 되어 있는데 제일 안쪽 3칸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의미하고 기둥 8개는 8괘를 의미한다고 한다. 내진(內陣) 칸은 12칸으로 1년 12달을, 기둥 16개에는 각각 4개씩의 문짝을 달았는데 이는 주역의 64괘를 의미한다. 외진(外陣) 기둥 24개는 24절기(節氣)를 의미한다고 한다. 즉 당대인들의 관점에서는 경회루가 유교적 철리(哲理)를 가득 담고 있는 상징이기를 염원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狂人 2011-10-04 17:16   좋아요 0 | URL
네, 이런 정보도 있었군요.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만 36궁을 위해 48이란 수를 썼다기 보다 6곱하기 8로 보는 것이 조금 나을 듯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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