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간 - 반국가단체 만들기에 희생된 한통련의 50년
김종철 지음 / 진실의힘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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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세계 사이,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 야만의 시간


최근 한국사 연구의 트렌드는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역사학이다. 국민국가를 당연한, 주어진 것으로 여기는 방법론적 민족주의를 벗어나, 네이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흐름이다. 현대사는 아마도 고대사와 더불어 트랜스내셔널한접근이 가장 활발한 시대일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현대란 어떤 나라도 외따로 존재할 수는 없는,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나 국제기구, 기업 등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니 말이다.

 

그렇다면 현대사 연구에서 민족이란 더 이상 유의미한 변수가 아니게 된 걸까? 그렇진 않다. 방법론, 다시 말해 역사를 이해하는 틀로서 의미가 없어졌을 뿐 트랜스내셔널한현대사회에서도 네이션은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이젠 “2민족 2국가란 얘기도 나오지만)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국민국가와 세계 각지의 디아스포라 공동체로 나뉜 코리아라면 더더욱. 한국 현대사는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굉장히 글로벌하게이뤄졌다는 점에서, ‘네이션트랜스내셔널은 상충하기보다는 오히려 함께 간다고 봐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김종철의 야만의 시간역시 민단계 재일코리안 사회단체인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50년사를 통해 네이션트랜스내셔널이 복잡하게 얽힌 한국 현대사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지은이는 한통련이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혀 무고한 사람들이 숱하게 고통 받고 오늘날까지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아픈 현실에 집중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의식을 보다 잘 나타내는 말은, 제목보다는 뒤표지에 적힌 대한민국 국민은 한통련에 큰 빚을 지고 있다에 가깝다. 한통련은 한국의 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고, 그로 인해 말 못할 고초를 겪었으나, 아직까지 대한민국 국민은 그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

 

한통련은 그 탄생부터 한국 현대 정치사와 밀접히 얽혀있다. 한통련의 기원 중 하나인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부터가 4·19혁명에 큰 자극을 받아 “4월혁명의 이념을 자신들의 이념으로 삼아 그 이념을 실천해가는 조직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또 다른 기원인 유지간담회역시 5·16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며 민단의 여당화를 꾀한 단장 권일에 맞서 김재화와 배동호가 주축이 돼 결성한 민단 내 개혁파였다. 이들은 한국 내 학생운동 세력 및 야당과 연대해 한일회담 반대운동을 벌이는 등 민단과 한국의 민주화를 나눠서 생각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찬반과 맞물린 민단 내 대립은 1967년 한국 총선을 기점으로 폭발한다. 공화당이 권일을 전국구 의원으로 공천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신민당의 유진산은 김재화를 공천하겠다 약속했는데, 유지간담회가 신민당에 보낸 4,000만 엔을 정보부가 총련의 공작 자금으로 몰고 간 것이다. 급기야 1971년 민단 정기대회에서 정보부는 사실상 조작된 것이나 다름없는 녹음테이프를 근거로 유지간담회 측이 조총련과 함께 한국 정부를 전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단장 선거를 파행으로 몰고 갔다. 결국 197277일 민단 중앙은 유지간담회의 거점인 민단 도쿄본부와 한청, 한학동을 민단 와해를 기도하는 불순분자로 규정하며 산하단체에서 제외했다.

 

갈 곳을 잃은 ()민단 개혁파는, 역시 박정희 정부에 의해 해외를 떠도는 망명객이 된 김대중을 만나며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1973321일 김대중의 하코네 연설을 계기로 이들은 민단과 한국의 민주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의기투합했다. 당시 7·4남북공동성명의 여파로 재일코리안 사회에서도 민단과 총련 사이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나, ()민단 개혁파는 총련과 선을 긋고 선민주 후통일을 분명히 해달라는 김대중의 요구를 수용하면서까지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한통련의 전신) 일본지부 결성에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이 납치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민단 개혁파는 일본 시민사회에 이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나 자작극이 아닌 박정희 정부에 의해 벌어졌다고 호소하며 김대중 구명운동을 벌였다. 그렇게 한민통은 김대중 구출운동의 중심이 됨으로써 일본사회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김대중을 한국 민주화운동의 얼굴로 부각시킬 수 있었다.

 

김대중과의 만남은, 그러나 한민통에겐 크나큰 시련이기도 했다. 김대중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군사정권은 그가 의장을 맡았던 한민통에 반국가단체라는 낙인을 찍었다. 박정희 정권은 일본에서의 차별에 낙담해 고국을 찾은 재일코리안 청년들을 간첩으로 몰아갔고, 이들과 별다른 접점도 없던 한민통은 보안사에 의해 총련의 지령을 받고 한국에 간첩을 파견한 반국가단체로 탈바꿈했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김대중을 사형시키기 위해 그의 한민통 의장 경력을 국가보안법에 따른 반국가단체 수괴 혐의로 둔갑시켰다.

 

이는 김대중 개인에게도 큰 불행이었지만, 한민통에게도 그만큼의 비극이었다. 한민통이 반국가단체로 규정됨으로써 한민통에서 활동한 사람들에게도 여러 차별과 제약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여권을 발급받지 못해 입국도, 투표도 할 수 없는 한통련 의장 손형근, 한국전쟁 당시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출전했음에도 한민통 활동 경력 탓에 보훈보상금을 받을 수 없게 된 곽동의, 한통련 회원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이어오던 거래처마저 빼앗긴 허경민은 한통련(한민통은 1989년 한통련으로 개편)에 새겨진 반국가단체라는 낙인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프게 보여준다.

 

이처럼 한통련(한민통)50년 역사는 한국의 국가폭력, 그리고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 한통련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물론 한통련의 목표가 오로지 한국의 민주화였던 것만은 아니다. 야만의 시간에서 가장 가슴 벅찬 대목 중 하나인, “보통의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오사카의 재일코리안 고등학생 김창오가 의식화되는 순간은 이를 잘 보여준다. 평범한 고등학생답게 멋 내기에만 관심이 있던 그는 도쿄 우에노공원의 판다를 보여준다는 형의 꼬임에 따라간 한청 집회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김종철과의 인터뷰에서 그때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제가 아는 조선 사람은 가난한 집에 살면서 육체노동을 하고 술 취해서 집에 오면 부인과 아이들을 때리는 그런 가난하고 야만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런 인상밖에 없었는데, 거기 모인 동포들이 당당하게 자기 나라의 장래를 이야기하는 걸 보고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는 한청에 가입했죠.”(p.209.)

 

김창오에게 한청이란 단순히 한국의 민주화를 지원하는 단체가 아니었다. 그동안 부끄럽게 여기던 조선/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새롭게 긍정할 수 있게 해주는, 나아가 조선/한국인으로서 일본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목소리를 내며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지원이라는 대의와 일본사회 내 마이너리티로서 재일코리안의 존엄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서로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그 점에서 재일조선인(그는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3세 역사학자인 정영환이 재일코리안을 의도적으로 민족과 떨어뜨려 서술하려는 최근의 연구경향과 거리를 두며, 이들에게 조국에 대한 공헌과 외국인으로서 권리 획득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지적한 것은 곱씹을 가치가 있다.

 

그렇다고 한통련(한민통)50년 역사가 전적으로 민족이란 틀 안에 갇히는 것은 아니다. 기실 한통련(한민통)눈부신 성과는 국제사회의 연대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한민통은 윤이상의 소개로 1977년 도쿄에서 열리는 사회주의인터내셔널 정상회담에 참석한 빌리 브란트를 만났고, 그에게 한국 민주화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듬해 6월 본과 런던에서 열린 한국 민주화에 대한 국제회의는 그 결실이었다.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이 19806월 오슬로에서 열린 간사회에 한민통을 공식 옵서버로 초청한 것 역시 그 연장선 위에 놓여있다.

 

한민통이 주최하지는 않았지만, 김대중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자 일본연락회의가 주도한 집회에 일본 시민 17000여 명이 참가해 김대중의 석방을 외치기도 했다. 김대중의 1심 선고가 있던 날 전일본국철노동조합은 일본의 모든 기차역에서 항의의 기적을 울렸으며, 전일본항만노동조합도 일본의 모든 항구에서 한국 선박의 선적과 짐 내리기를 거부했다. 김종철의 말마따나 이웃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위해 한 나라의 시민이 이처럼 깊이 연대투쟁을 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p.235.)

 

요컨대 한통련(한민통), 나아가 한국 현대사는 전적으로 내셔널하지도’, 그렇다고 전적으로 트랜스내셔널하지도않다. 같은 민족을 뿌리로 삼는 두 개의 국민국가, 그리고 해외의 여러 디아스포라 공동체에게 민족이란 굉장히 중요한 정체성이었으며, 이를 둘러싼 협력과 경쟁이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앞서 이야기했듯 애초에 한국 현대사의 트랜스내셔널한교류 대부분이 네이션을 매개로 이뤄진 것이기도 했다. 물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정말로 다른네이션들이 미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만큼 한국 현대사를 이해할 때는 민족과 세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진부한 얘기지만) 양자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문제의식과 시선이 필요하다. 지은이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야만의 시간은 내게 그런 한국 현대사 연구의 가능성을 제시한 책처럼 읽힌다. 나 같은 얼치기 역사학도의 기를 죽이는, 기자의 취재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촘촘한 서술도 인상적이다. (좋아하는 선생님께선 늘 역사학도가 기자를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더랬다.) 재일코리안 연구는 물론 국가폭력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연구할 때도 중요하게 언급될 이 책을, 역사문제연구역사학연구, 역사비평같은 훌륭한 학술지에서 다뤄주길 바라는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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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사상계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총서 142
이상록 지음 /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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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제, 근대화, 국민주권, 그 너머의 민주주의: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사상계》》

지금은 아닌 것도 같지만, 어쨌거나 87년 이후 민주주의는 한국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자 거스를 수 없는 당위로 자리 잡았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간단하다, 교과서를 보면 된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만 펼쳐도 1960년 4.19를 거쳐 1980년 5.18에서 좌절했다 1987년 6.29로 '완성되는' 민주주의의 승리서사를 찾을 수 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간단명료한 도식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역사가 경전(canon)화 되었다는 증거다.

흥미로운 점은, 교과서에서 민주화(운동)의 단초를 언제나 선거의 문제로 환원한다는 사실이다. 4.19는 '역사적인' 3.15 부정선거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6.29의 핵심은 대통령 직선제고 말이다. 교과서의 도식에 따르면 한국 민주화운동사는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제대로 된 선거 하나를 위해 고군분투해온 납작한 역사로 쪼그라들고 만다.

물론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단순히 선거나 대의제만으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촛불시위마다 등장하는 구호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알 수 있듯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표가 국민의 뜻을 무시할 때 이에 저항하는 명분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 때의 민주주의란 국민의 "총의" 혹은 "주권"이다. 그런가 하면 민주주의는 산업화와 더불어 한국(만)이 이뤄낸 자랑스런 성과이자, 나머지 아시아(여기엔 때때로 일본까지 포함된다!)보다 '앞서' 있다는 자부심의 원천이 되어주기도 한다. 요컨대, 한국의 민주주의란 기능적으로는 대의제요, 실질적으로는 국민주권이며, 수사적으로는 선진 혹은 근대인 셈이다.

이상록의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사상계》》(이하 《자유민주주의》)는 이처럼 대의제, 국민주권, 근대(화)로서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기원을 찾아나선다.《사상계》자체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이를 매개로 삼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비평"처럼 느껴지는 이 책은, 지은이 이상록의 조금은 재밌는 이력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고전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퍽 독특한 지성사 연구서로 거듭났다.

우선 이상록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대중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마지막 학술적 논쟁인 2000년대 중반 "대중독재 논쟁"의 메인 플레이어였다. 나는 갓 박사를 수료한 30대 초반의 연구자였던 그가 논쟁의 다른 쪽 당사자인 조희연을 조목조목 매섭게 몰아붙인 글을 잊지 못한다. (정작 나중에 만나본 이상록은, 적어도 내가 이야기를 나눈 역사가 중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인품의 소유자여서 적잖이 놀랐지만.) 또한 이상록은 《일상사로 보는 한국근현대사》(책과함께, 2006)나 《한국현대 생활문화사》(창비, 2016)에 공저자로 참여한, 한국사에 일상사와 생활문화사의 시각을 선구적으로 도입한 연구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두 개성이 맞물려 《자유민주주의》의 텍스트 비평은 도발적이면서도 깊이가 있으며, 지성사 연구가 자칫 빠지기 쉬운 공허한 관념론에 머물지 않고 사상과 현실의 낙차를 민감하게 의식한다. 고전적이면서도 독특한 지성사란 이런 의미다.

이 책에 대한 호의 가득한 서평을 쓴 한봉석의 말마따나 이상록은 얼핏 "백과전서"라 느껴질 정도로 풍부한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결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노력한다. 그럼에도 《사상계》지식인의 자유민주주의론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가 가능하다. 첫째, "대의제"다. 여러 학자들이 지적했듯(최근에는 김민철,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창비, 2023.) 대의제란 명백히 귀족정적 요소임에도 불구하고(그렇기에 김민철은 현대 자유민주주의란 기실 "선거자유주의"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한다), 《사상계》지식인들은 대의제를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이해했다. 한국 국민의 낮은 "민도"에 대한 이들의 한탄이나 4.19를 학생과 지식인이 주도한 시민혁명으로 포장하려는 노력 역시 인민에겐 대표가 필요하다는 신념, 즉 대의제에 대한 믿음의 소산이었다.

둘째, "국민주권"이다. 이상록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한 정치사상사 연구자 문지영이 《지배와 저항》(후마니타스, 2011.)에서 이야기했듯 장준하를 비롯한 《사상계》지식인들은 민주주의를 누리는 주체를 "국민"이나 "민족"처럼 하나의 집단으로 이해했다. 개인의 개성과 자율성이 들어설 자리는, 적어도 《사상계》 지식인의 민주주의론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무척 좁았다. 물론 "국민주권"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론은 6.3항쟁에서처럼 박정희 정부가 국민의 뜻을 무시했을 경우 강력한 투쟁의 명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박정희 정부가 "국민주권"을 내세워 유신을 단행한 데서 알 수 있듯, 이는 다분히 양가적인 것이었다. (유신체제에 대한 분석이야말로 "대중독재" 연구자로서 이상록의 진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셋째, "근대화"다. 봉건과 정체, 낙후로부터의 탈피는 (그것이 정당했는가와는 별개로) 당시의 "시대적 과제"였던 만큼, 《사상계》 지식인들은 근대(화)라는 문제를 민감하게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산업화가 민주화에 선행한다고 여기든, 산업화와 민주화를 병행할 수 있다고 여기든 이들은 결코 산업이나 발전, 근대를 의식하지 않는 자유민주주의를 상상하지 못했다. 《사상계》지식인 사이에서도 민주주의를 수단으로 여기는 입장과 목적으로 여기는 입장이 공존했지만, 결국 근대라는 최종심급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상계》 지식인"이면서도 이러한 흐름에서 빗겨난 인물이 있다. 바로 함석헌이다. 역시《사상계》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고 이 책에 대한 애정어린 서평을 쓴 김건우가 예리하게 지적했듯, 함석헌에 대한 이상록의 관심은 어딘가 독특한 구석이 있다. 책의 저본이 된 박사논문에서는 따로 하나의 장을 마련했고 이 책에서는 본문 곳곳에 흩뿌렸다는 차이는 있지만, 김건우의 말마따나 "무리를 무릅쓰고서라도 함석헌의 비중을 도드라지게 서술"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김건우, <《사상계》를 연구하려는 이들이 통과해야 할 하나의 문>, 《역사비평》132, 2020, p.402.)

아닌 게 아니라 함석헌에 대한 이상록의 시선은 굉장히 따뜻하면도, 동시에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냉정하다. 함석헌은 장준하를 비롯한 다른 《사상계》 지식인들과 달리 개발/발전/근대로 수렴하지 않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한 사상가지만, 그의 "민중"이란 실제 역사에 기반하지 않은 다분히 종교적인 개념이었다. 그런 만큼 현실의 민중이 함석헌의 기대와 조금이라도 어긋날 경우 자칫 (다른 《사상계》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민도"나 탓하며 이들에 대한 실망과 회의로 돌아설 위험이 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유신체제보다 더 강력한 "대중독재"의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었다.

함석헌이라는 여러 모로 '튀는' 인물이 가진 빛과 그림자를 이상록은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글의 통일성을 깨뜨리면서까지 함석헌을 조명하는 이유는, 추측컨대 《사상계》바깥의, "자유"가 붙지 않는 "민주주의"로 나아갈 연결고리를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김건우는 "개인적으로 이에 대해 저자와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지 궁금하다.)

한봉석과 김건우 모두 이아기했듯 《자유민주주의》는 2011년에 나온 이상록의 박사논문을 저본으로 한다. 박사논문을 내고 이를 토대로 책을 내기까지 10여 년의 시간 동안, 이상록은 한국 현대사에서 대의제, 국민주권, 근대화로 수렴하지 않는 또다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끝없이 모색해왔다. 선출된 대표 없이 인민이 스스로를 통치하고, 국민이나 민족이라는 집합적 주체의 이름을 빌리지 않으며, 근대의 개발주의와 발전주의를 문제시하는 민주주의란, 곧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에 다름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이상록의 "일상사 연구자"로서의 면목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인, 4.19 직후 인민이 학생과 지식인의 '지도'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간 과정은 그 점에서 퍽 의미심장하다. 이상록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어쩌면 이 작은 저항과 전유의 조각들이 아니었을까.

이상록은 시종일관 민주주의란 그 자체로 선이 아니며,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자행된 부조리와 폭력 역시 직시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민주주의를 대의제, 국민주권, 근대화라는 속박에서 해방시킴으로써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어젖히려는 시도로 읽힌다. 옛날 영화 제목을 빌리자면 "민주주의 일병 구하기"랄까. 그리고 그는 이미 또 한 권의 두툼한 단독 저서를 내도 될 정도로 훌륭한 연구를 숱하게 쌓아놓았다. 한국 현대 지성사 연구자에게는 든든한 밑천이자, 두려운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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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과학의 기원 - 이데올로기와 근대화의 이론 체계 역비한국학연구총서 39
홍정완 지음 / 역사비평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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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거부한 지성사, 고집스레 그려낸 지(知)의 지도: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 있다. 홍정완 선생님(이하 존칭 생략)의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이하 《기원》)이 그런 책이다. 좋든 싫든 나는 앞으로 한국 현대 지성사를 다룬 글을 읽을 때마다 《기원》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지성사 비스무리한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지성사 못 쓴다는 이야기다.

의미심장한 점은, "나 빼곤 다 한국 현대 지성사 하지 마!!"라고 선언하는 것만 같은 이 책이, 정작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성사" 하면 떠올리는 책과는 자못 다른 서술방식을 택한다는 것이다. 분명 욕 먹을 이야기란걸 알지만 나는 역사학(적 글쓰기)이 추리소설, 사회과학이 SF라면 정치사상사나 지성사는 평론 혹은 비평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진짜' 지성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일단 제쳐두고, 지성사를 표방한 글들은 일반적으로 사료를 하나의 완결된 책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지성사나 사상사 연구자는 사료를 꿰뚫는 나름의 이야기가 있으리라 믿고, 여기에 적극적으로 의미와 맥락을 부여한다. 지성/사상사의 글쓰기가 평론과 비슷한 이유다.

많이 읽진 못했지만, 한국 현대 지성사를 다룬 책들도 대체로 비슷하다. 김봉국의 《냉전과 투쟁》(선인, 2018), 이하나의 《대한민국, 재건의 시대(1948~1968)》(푸른역사, 2013), 이상록의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사상계》(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2020) 등, 여러 연구자들은 방대한 사료를 읽고, 이를 분석/해체/재구성함으로써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하나의 책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난 일단 영화를 사료로 삼은 지성사라 생각한다.)

반면 홍정완은 자신이 찾아내고 정리한 방대한 사료에 '이야기'를 입히기를 집요하리만치 거부한다. 난 그가 이야기를 찾지 '못한' 게 아니라, 일부러 찾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원》 역시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굉장히 뚜렷하다. 굳이 정리하자면, 아마도 "로스토우가 전부가 아냐 이것들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홍정완은 자신의 주제의식에 따라 사료를 재배열하길 거부한다. 대신 그는 굉장히 치밀하고 집요하게, 1950~60년대 생산된 교과서와 논문, 보고서, 각 대학이 발행한 신문에 이르는 방대한 텍스트의 계보와 관계를 추적한다. 그 결과 《기원》은 하나의 그럴싸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거대한 전함의 설계도나 한 도시를 오롯이 담아낸 지도처럼 느껴진다.

그런 만큼《기원》이 읽기 어려운 책이라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다. 3부와 4부를 제외하면 요즘 유행하는 '서사'가 뚜렷하지 않고, 그보다는 묵묵히 지식의 지도를 그려가는 책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밋밋함이야말로 《기원》을 다른 지성사 연구서와 차별화하는 지점이자, 지성사란 무엇인가 질문하게 만드는 촉매다. 솔직히 말해 "척박한 진실"보단 "풍요로운 오류"를, "재미없는 맞는 말"보단 "재미있는 헛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기원》처럼 정밀한 설계도 혹은 지도가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홍정완의 (감히 말하자면) '무시무시한' 노력 덕에 우리는 1950~60년대 한국 지성계를 아우르는 지도를 비로소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점에서 이우창이 《기원》의 서평을 쓰며 "하지만 나는 바로 이 시점에서 강조하고 싶다. 어떤 학술장의 수준은, 어느 사회의 지적 자긍심이라는 것은 정확히 이런 종류의 책들, 독자에게 문장마다 집중하고 생각할 것을 뻔뻔스럽게 요구하고, 인내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의 손에 지적인 대가를 무심히 쥐여주는 책들을 얼마나 내놓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인문학술장의 질적 쇠퇴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기원』을 읽고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찬사를 보낸 건 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우창, <길을 낸다는 것>, 《문학/사상 5: 로컬의 방법》, 산지니, 2022년 5월.)

문제는 (나를 비롯해) 홍정완 뒤에 한국 현대 지성사를 쓸, 혹은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음, 난 《기원》을 읽고 정말이지 질려버려셔, 한국 현대 지성사는 건드리고 싶지가 않다. 홍정완 선생님께서 다 해주실 거야... 그럼 난 뭐하지. 당장 이번 주까지 논문계획서 내야 하는데... 꼭 이 책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난 어젯밤 교수님들로부터 이런 형편없는 글을 논문이랍시고 가져왔냐며 질책을 받는 꿈을 꾸었다. 《기원》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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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논문 작성법
임경석 지음 / 푸른역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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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역사학이야말로 '독학자'가 나오기 가장 어려운 분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른바 '방법론'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이나 사회학, 국문학은 모델과 이론, 계보가 있다. 충실히 따라가면 학계 바깥의 연구자라도 탁월한 성과를 낼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반면 역사학은 속된 말로 '몸으로 구르는' 학문이다. 역사학의 전문성이란 암묵지적 성격을 갖는다. 어디서 사료를 찾아야 하는지, 사료를 어떻게 엮어서 어떻게 내러티브를 짜야 하는지 등 일체의 교육이 도제식으로 이뤄진다. 교수와 선배에게 엄청나게 혼나면서 배운다는 이야기다. 역사학이 유독 '강단'의 힘이 강한, 나쁘게 말해 고루하고 답답한 학문이란 이야기를 듣는 것도 그래서다.

역사학 트레이닝의 이런 암묵지적 성격은 양가적 의미를 갖는다. 누구나 열심히 '구르면' 괜찮은 역사학자가 될 수 있다. 역사학은 천재가 나오기 어려운 학문이라지 않은가. 하지만 어떻게 굴러야 할 지 모른다면, 혹은 옆에서 굴리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 것도 못하고 손가락만 빨다 자의 반 타의 반 대학원을 그만둘 수도 있다. 특히 사학과 학부수업에 강독, 연습류의 수업이 멸종하다시피 한 작금의 현실에서, 대학원에 갓 입학한 석사생들은 진짜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하나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단 굴러야 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두렵고 막막한 것이다. 교수님과 선배들은 화만 내고 말이지.

임경석의《역사논문 작성법》은 나처럼 어떻게 굴러야 할 지 모르겠는 석사생들을 위한 최고의 안내서다. 임경석이 누구인가, 자신의 이름을 따 "임경석체"라 불릴 만큼 유려하고 개성있는 글쓰기로 정평이 난 역사가가 아닌가. 그는 딱딱한 논문에도 내러티브를 녹여낼 줄 알고(김윤식 사회장 논문을 보라!), 대중적인 칼럼에도 깊이를 더할 줄 안다.(《독랍운동 열전》을 보라!) 요컨대, 그는 글쓰기에서 남들이 따라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경지를 이룩한 인물이다. 그런 임경석이 역사논문 작성법을 강의한다니, 혹시 팁이랍시고 자신밖에 할 수 없는 뜬구름잡는 얘기나 하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역사논문 작성법》은 주제 선정부터 연구사 정리, 사료 노트 작성과 플롯에 이르기까지 역사논문 쓰기의 모든 것을, 누구나 읽고 따라할 수 있게끔 자세하고 친절하게 담아냈다. 내가 석사 첫 학기 교수님과 선배들에게 혼나가며 배운 암묵지를 이렇게나 정갈한 문장으로 풀어낼 수 있을 줄이야!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근데 임경석은 그걸 해냈다. 그의 역사가 인생 40년이 이 책에 압축됐다. 엄청난 깊이와 내공이 느껴지면서도, 마치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수업을 듣는 것처럼 생생하고 정감이 간다. 역시 푸른역사에서 나온 글쓰기 지침서인《내 논문을 대중서로》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이고 풍부한 '연습문제'는 덤이다.

《역사논문 작성법》은 비단 구르는 법을 알려주는 훌륭한 매뉴얼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유려하고 개성적인 글쓰기도 결국 충실한 기초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단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임경석처럼 글쓰기의 독보적인 경지를 이룩한 역사가도 처음부터 글을 잘 쓰지는 않았다.(그가《한겨레21》인터뷰에서 밝힌 이야기다.) 자신만의 독특한 문장이나 논지, 생각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남들이 다 하는 고되고, 지루하며, 얼핏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단순 작업을 묵묵히 따라갈 때 비로소 개성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늘 요행만 바라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나 같은 사람이 특히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나는 이 책을 내 책상 가장 잘 보이는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마치 곰국을 끓여먹듯, 생각날 때마다 두고두고 참고할 생각이다. 나처럼 어떻게 굴러야 할 지 몰라 괴로워하는 동료들에게도 여러 권 선물할 것이다. 구르고, 깨지고, 혼나는건 역사학도의 숙명이지만, 그래도 모르고 구르는 것보단 알고 구르는게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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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 아무튼 시리즈 55
장강명 지음 / 위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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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흥창역 일대에 대한 흥미로운 지리지이자, 한국판 "프랑스혁명에 대한 성찰". 역시 한국에 몇 안 되는 "영국식 보수" 장강명 작가님. 보수가 "근대화"를 외치고 진보가 "전통"을 옹호하는 나라 한국에서 무척이나 독특하고 인상적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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