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시대 이야기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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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등학생 시절, 18세기 조선사를 공부할 때면 언제나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박지원과 박제가를 위시한 북학파. 교과서의 설명대로라면 조선의 발전을 대표해야 마땅할 이들 북학파, 정작 발전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교통이 시망이라 국토가 쬐깐한데도 물자가 널리 유통되지 못한다거나, 청은 변방의 어염집도 이리 삐까번쩍한데 조선은 수도인 한성조차 땟국물이 줄줄 흐른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교과서의 설명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북학파가 열렬히 사모해 마지않았던 청은 강건성세((康乾盛世)의 끝물을 지나며 서서히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결국 1840년 한 줌의 영국 함대에 무력하게 패배했다. 그러니깐 교과서는 조선의 낙후성을 극딜했을 뿐 아니라, 기껏해야 느그 청이나 보며 감탄했던 북학파발전의 상징으로 자랑스레 추켜세웠던 것이다. 물론 교과서도 바보는 아닌지라, ‘북학파의 현실비판은 조선의 개혁을 위해 일부러 말을 쎄게 한 것이라고 애써 변명하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중학생일지라도 그런 궤변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어수룩하진 않았다.

고작 청나라나 부러워해야 했던 18세기 조선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단 한국사 공부는 답이 아니다. 한반도 역사만 들입다 파봤자 우리의 잘나고 멋진 모습밖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남는 건 이렇게나 멋진 한국을 세계는 왜 알아주지 않느냐는, ‘국뽕이 가미된 열등감과 자기연민뿐이다.

한반도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바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오직 자기밖에 모르던 어린이는 유치원이라는 보다 넒은 세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역사도 다른 지역·국가와의 비교를 통해서만 보다 차분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신상목의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는 미우나 고우나 한국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건 다름 아닌 에도시대(1603~1867)의 일본이다. 폐쇄적이고 자족적인 농경사회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이 시기의 일본은 일견 이웃나라 조선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비록 나라의 빗장은 닫아걸었을지언정, 일본의 에도시대는 결코 침체와 퇴보로 점철되지 않았다. 오히려 에도시대는 일본이 근대로 나아가는 포텐을 착실히 쌓아가던, ‘축적의 시간이었다. 전근대엔 한반도나 일본이나 도긴개긴이었으리라는 (어디까지나 한국인의) ‘통념, 이 책 앞에서 와장창 부서지고 만다.

 

이 책의 백미는, 단연 저자가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 에도의 소바집을 취재한 가상 르포가 실린 1장이다. 현대 한국인에겐 지극히 평범한 대도시에서의 길거리 외식이, 실은 고도의 문명적 행위임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단 대규모의 수요를 창출한 대도시가 존재해야 하며, 물자를 원활히 조달받을 수 있는 도로와 수도시설 등의 인프라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 도시민들 사이에서 쌀이나 면포가 아니라 작고 가벼운 화폐가 널리 유통되어야 한다. , 손님을 끌어오기 위한 마케팅 기법도 빠질 수 없다.

놀랍게도, 에도시대의 일본은 이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보기 드문 비서구 국가였다. 드넓은 뻘밭이었던 간토는 대규모 치수사업을 통해 풍요로운 옥토로 거듭났고, 막부의 거점인 에도는 인구 100만의 초거대 소비도시로 등극했다. 각 번()의 다이묘는 막부에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 ‘천하보청(天下普請)’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공공사업에 동원되었을 뿐 아니라 참근교대(参勤交代)라 하여 격년으로 에도와 영지를 오가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인프라가 정비되고 낙수효과가 발생하며 일본의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막부와 다이묘라는 관()이 깔아준 에서 마음껏 기량을 발휘한 건, 다름 아닌 상인과 서민이라는 민()이었다. 포르노와 광고 전단지를 시작으로 온갖 종류의 인쇄물이 거리에 휘날렸고, 하다못해 목욕용 수건에도 섬세하고 화려한 무늬가 수놓아졌다. 민간의 여행이 활성화되어 변방인 도호쿠(東北)의 평범한 백성일지라도 정기 여객선과 잘 정비된 도로를 통해 전국의 명승지를 얼마든 둘러볼 수 있었다. 조선에 비유하자면, 함경도 경성(鏡城)의 호농이 여객선을 타고 원산까지 내려온 뒤, 거기서 다시 임진강과 연결된 운하를 통해 한성, 개성, 평양을 유람하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던 셈이다. 이 어찌 대단하다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저자가 풀어놓는 일본 이야기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랍고, 또 흥미진진하다. 물론 누군가는 근대에 집착하는 저자의 관점이 지나치게 편협할뿐더러 이미 그 수명을 다했다고 태클을 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책 곳곳에서 이건 좀 아니다싶은 설명이 등장하곤 하는데, 에도시대의 고문학자 오규 소라이에 대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소라이를 탈주자학의 기수이자 근대정신의 발현으로 여기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해석을 충실히 따른다. 하지만 최근 학계에서는 소라이학이 탈주자학이라기보다 주자학의 일본적 변용에 가까웠고, 그의 개혁안 역시 지극히 복고적이었으며, 그의 문파는 아카데믹한 문헌학에 치중함으로써 현실정치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해석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하긴 일본에 주자학이 들어온 게 빨라야 17세기고, 소라이가 활동한 건 18세기 초반이다. 한 사상의 전파와 수용, 극복이 일어나기에 100년이란 시간은 너무나 짧지 않은가!

(소라이학이 과연 얼마만큼 탈주자학인지에 관심이 있다면 와타나베 히로시의 일본정치상사를 참고하라. 부끄럽지만 나 역시 이에 대해 짧은 글을 썼다. 소라이학은 과연 탈주자학인가?https://brunch.co.kr/@msg2012/8)

비단 소라이학에 대한 해석만이 아니다. 에도 시장의 등장을 중세 유럽의 자유도시와 곧바로 연결시키는 서술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고, 르네상스를 서구 근대 문명의 원점으로 이해하는 관점은 이젠 너무 낡았다고 느껴진다. 요컨대, 저자의 관점은 지극히 클래식하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클래식함이야말로 이 책이 갖는 최고의 장점이라 확신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근대가 뭔지, 이로 인해 인간에게 어떤 가능성이 주어졌고 또 박탈되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제1세계의 말석에나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한국인은 근대 서구가 이룩한 성과를 아주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다. 한술 더 떠 이제 곧 동아시아가 서구에게 빼앗긴 세계의 패권을 되찾으리라는 주장은 한국에선 아예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정작 그 근거란 굉장히 빈약한데, 역사적으로 동아시아는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후반까지의 찰나를 제외하고는 항상 서구보다 앞서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꼭 중세유럽의 파리와 런던이 인구 몇 만을 겨우 헤아릴 때, 북송의 카이펑(開封)은 백만을 바라보는 대도시였다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인구가 특정 도시, 나아가 문명의 발전수준을 가늠하는 유일한 지표라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문명화된 지역은 인도와 방글라데시여야 한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그 어떤 동아시아예찬론자라도 잘 알고 계시리라.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건 인구와 같은 단순한 수치라기보다는, 서구문명의 정신과 가치, 제도다. 세속주의, 개인주의, 합리주의, 모험심과 도전정신, 이윤추구 등 서구문명을 구성하는 가치들은 진지한 고민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가 소중한 이유는 그래서다. 저자는 서구, 정확히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일본사를 서술해간다. 욕망을 컨트롤하는 우아하고 세련된 관행의 발전,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시민사회, 자유로운 탐구정신의 고양을 문명화의 척도로 여기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는 대다수 한국 독자에게 어색하고 거북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낯설음이야말로 우리가 근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닐까? ‘근대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과연 이를 제대로 비판이나 할 수 있을까?

 

“B급 좌파를 읽느니 A급 우파를 읽게

 

대학 새내기 시절 들었던 <서양사개론> 수업에서 교수님이 건네신 이야기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포스트모던 역사가였던 교수님은, 비록 동의는 되지 않을지라도 A급 우파의 관점이나 논리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분명 도움이 될 거라며 무려 이영훈의 책을 추천하셨다. 식민지근대화론의 거두이자 위안부를 부정하는 이영훈을 읽으라고?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훗날 이영훈의 한국경제사를 접한 뒤에야, 나는 비로소 교수님께서 왜 그리 말씀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이영훈이 학자로서의 자아와 계몽가로서의 자아를 쪼개 각기 다른 얘기를 하는 모습은 여전히 아쉽다.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의 태도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내가 일말의 죄책감을 느낄지언정 여전히 이영훈의 책을 읽는 이유는, 그로부터 근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통찰을 얻었기 때문이다. 한국사를 바라보는 시야 역시 넓어졌고 말이다.

신상목 역시 이영훈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A급 우파. 사실 요즘 나는 과연 서구의 역사조차 근대성이 발현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조금 의문스럽긴 하다. 그렇지만 난 여전히 저자와 마찬가지로 서구, 정확히는 영미(英美) 근대성의 가치를 긍정한다. 설령 그것이 18세기 이후의 영국과 미국이라는, 지극히 특수한 시공간에서만 나타난 성격이라 할지언정 일종의 모델혹은 이상으로서의 중요성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저자는 한반도에 대해선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미 근대성,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라는 프리즘으로 바라본 일본사는 그 자체로 동시기 조선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참조점이 된다. 18세기 조선은 분명 발전했다. 인구는 1200만에서 1800만으로 50% 가까이 늘었고, 25만의 인구를 자랑하는 수도 한성은 제법 도회지 분위기를 풍겼다. 구리 동전인 상평통보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쓰였으며, 바야흐로 전국시장이라는 게 막 생길락 말락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선의 발전을 일본과 비교한다면 어떨까? 나아가, 같은 시기 서구와 비교한다면? ‘(영미) 근대성이 전 인류가 추구해야 마땅할 필연이자 보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장 폐기처분해버릴 만큼 무가치하지도 않다. 사실 영미 근대성이 좋다 나쁘다 왈가왈부하기 전에, 일단은 그게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친애하는 우리의 적, 일본이 묻는다. ‘근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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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아빠 2019-06-30 0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읽게 잘 읽었습니다. 어설픈 좌파보다는 세련된 우파를 더 읽어 보겠습니다 ^^

유찬근 2019-12-13 18:13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