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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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 중 손꼽히게 좋았다. 논픽션이라기보다는 인문학, 혹은 철학서에 가깝다. 중국어나 일본어로도 번역되어 더 많은 사람이 읽는다면 좋겠다.

난 장강명 작가님(이하 존칭 생략)의 책에서 작가가 그리 강조하지 않은 대목에 꽂히는 경향이 있다. 처음엔 그가 정말 중요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슬쩍 숨기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내가 장강명의 책을 살짝 꼬아서 읽는 것도 같다. 작가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내가 그의 책에서 읽어낸 중요한 이야기가《당선, 합격, 계급》에서는 '피드백 공동체'였다면, 《먼저 온 미래》에서는 '모호함의 소멸'이었다.

인간은 생각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이지도, 명료하지도 않다. 오히려 인간 문명을 떠받친 건 모호함이었다. 바둑이든, 소설 창착이든 인간 활동은 탁월함이나 기세, 가치, 낭만, 인간다움 등 우리가 똑부러지게 설명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개념에 기대 이루어졌다. 그게 뭔지 잘은 알지 못했지만, 대충 어떤 뜻이라는 것 정도는 공유했고, 오히려 이런 모호함 덕에 끝없는 창조나 변주가 이뤄지기도 했다. 비단 언어만 그랬던 게 아니다. 언어로 담아내지 못하는 암묵지 역시 근본적으로는 매뉴얼화할 수 없는, 몸으로 굴러야 체득할 수 있는, 하지만 모두 그런 게 있다는 건 알았던 지식이었으니까.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런 모호함의 영역을 크게 줄였다. 사람들은 알파고가 바둑기사의 개성이나 예술성을 죽이고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바둑을 두게 만들었다며 비판한다. 하지만 알파고 이전에도 다들 몇몇 거장의 기보를 따라해 저마다의 개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한탄이 나왔다. 오히려 알파고가 가져온 중요한 변화는 모든 게 수치화되었다는 데 있다. 기사가 두는 한 수 한 수마다 이길 확률이 몇 프로로 딱 찍혀 나오니 바둑은 수치 게임이 되었고, 바둑 중계는 심하게 말해 경마와 다를 바가 없어졌다.

물론 여전히 모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게 인간의 것이 아닐 뿐. 그렇기에 기사들은 AI와 바둑을 두며 초반 포석을 외우다시피 한다. AI가 신의 자리에 오르며 역설적으로 기사들 사이의 격차는 줄었고, 바둑은 민주화되었다. 이는 바둑이라는 행위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갔다. 뛰어난 천재들의 예술이 아니라, 지독한 공부벌레들의 암기력 테스트가 된 것이다. 이는 AI에 의해 바둑이 기대고 있던 모호함의 영역이 사라지거나 적어도 크게 줄어들었기에 발생한 결과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난 AI가 바둑을 '해킹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AI는 모호함을 잠식한다. 문제는 인간 문명이 지금껏 모호함에 너무나 많이 의존해왔다는 데 있다. 따라서 AI의 발전은 인간의 존립 기반을 흔든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이 텅 비어있다는, 모두가 알지만 쉬쉬해온 진실을 폭로한다. 비유하자면 오랜 세월 켜켜이 쌓아올린 엄청나게 높은 젠가블럭이 있는데, 그 첫 단에 사실 아무 것도 없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모호함의 실체가 드러났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그것이 소멸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 말해 인간 문명을 완전히 새롭게 구성해야 함을 받아들이거나, 이를 보다 정교한 형태로 계속해서 보존하거나. 장강명의 선택은 후자다.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거나 아쉬움을 드러낸, 인간만의 가치를 강조한 책의 9장과 10장은 그 점에서 지극히 자연스런 결말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점에서 AI의 등장은 그동안 우리가 모호하게 퉁치고 넘어갔던 가치들, 가령 탁월함이나 예술, 인간다움 등을 보다 진지하게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애써 덮어온 구멍을 강제로 들여다보게 되었으니, 이젠 어떻게 이를 완전히 메우지 않을지 고민해야 한다.

기실 장강명은 이런 모호함을 아주 오래 전부터 붙들고 고민해온 작가이기도 했다. 《먼저 온 미래》 말미에 나오는 《재수사》가 그랬고, 그에게 한겨레문학상을 안겨준 《표백》이 그랬고,《뤼미에르 피플》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소설인 《열광금지, 에바로드》가 그랬다. 장강명이 《재수사》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도 더 늦기 전에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탁월함에 도전해보기 위해서였으니. 그는 이과 출신의 냉정한 현실주의자라는 선입견과 반대로, 혹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나 열정, 영성에 주목해온 작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는 지독한 올드스쿨이다.

그런 만큼 나는 9장과 10장이 다소 성길지언정, 지극히 장강명다운 결말이라 생각한다. 특히 바둑을 주제로 삼는다면 더더욱. 그의 책에 등장하는 바둑기사들의 인터뷰 역시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책도 그렇게 모호함을 부여잡고 탁월함에 이르고자 분투한 결과로 읽힌다. 갑작스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평정심을 유지하며 무언가를 해내는 것의 어려움을, 아주 조금은 안다고 생각한다. 작가님의 분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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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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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이 남지 않는 작가다.

성해나의 《혼모노》를 정신없이 읽어가는 가운데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보통 작가들은 여기가 '본진'이구나 싶은 영역이 있다. 그게 작가의 경험이든, 문제의식이나 취미든 한 번 '담그지' 않는 이상 절대 이렇게 쓰기 어려운, 작가 스스로도 쓰면서 엄청 신나보이는 대목이 거의 대부분 나온다.

내가 요 몇 년 사이 읽었던 작가들만 떠올려봐도, 박상영은 첫 직장이었던 잡지사 경험, 김초엽은 연구실 생활과 독서, 장류진은 '연대 감성'과 판교 테크노밸리, 서이제는 시네필 생활과 90년대 초반생 감성, 김사과는 먹물인데다 돈도 많은 엘리트에 대한 (내부자만 가질 수 있는) 환멸, 김금희는 노동과 동식물에 대한 애정, 그리고 천주교, 황정은은 "여씨 아저씨"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버지와 전파상, 가난, 좋든 싫든 대를 이어가는 (비)혈연 가족, 고영범은 실향민 정서와 교회 등, 그리 섬세하지 않은 독자라도 작가가 어디에 꽂혔는지, 혹은 뿌리를 박고 있는지 대강은 알 수 있다. 작가들 역시 이를 드러내는 데 크게 거리낌이 없는 편이고.

하지만 《혼모노》는, 정말 이상하리만치 작가가 '담갔던' 영역이 느껴지지 않는 소설집이었다. 굉장히 치밀하고 꼼꼼한 조사를 거쳐 소설을 썼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어디서도 작가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성해나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와 상관없이, 모든 주제에 '공정하게' 같은 관심과 정성을 주고 있는 듯 보였다. 심지어 인터뷰에서 관심이 많다고 밝힌 건축을 소재로 한 단편 <구의 집> 역시 다른 작품들과 거의 비슷한 애정이 느껴졌다.

이런 '공정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혼모노》에 실린 단편들은 그 다음이 궁금하지 않았다. 재미없거나 밋밋한 소설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 단편에서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를 미리 계산한 뒤, 이를 정교하고 날렵하게 연출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고 남는 '앙금'이나 '여지'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 주제를 가지고 이 이상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이게 끝이라는 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달까? 작가가 "이게 전부입니다."라고 친절하게, 하지만 건조하게 알려주는 기분이었다.

《혼모노》의 뜨거운 인기 역시 이런 건조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보면 되는데."란 박정민의 추천사가 너무 충격적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성해나 소설이 쇼츠 보는 '요즘 세대' 구미에 맞게 굉장히 강렬하고 감각적일 줄 알았다. 94년생인 작가 역시 이런 새로운 감각에 익숙하리라 지레짐작했고. 하지만 《혼모노》는 오히려 굉장히 고전적이랄지, 기성 소설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 인터뷰에서도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았다고 이야기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모노》가 '책 안 읽는' 젊은 세대를 끌어들인 이유는, 역시 그 바삭거림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작가의 정교한 설계에 따라 주어진 목표를 향해 단숨에 내달리는 쾌감이 있달까. 이건 김사과 소설의 무자비함과 그로테스크함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혼모노》가 딱히 유머가 돋보이는 책은 아님에도 굉장히 재밌게 읽히는 까닭 역시 그래서라 생각한다. (그럼 유머가 돋보이는 소설가는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정세랑과 이기호, 그리고 남들이 잘 모르지만 김금희.. 김금희는 특유의 '아재 개그'가 있는데다 상황 자체를 굉장히 웃기게 그려내는 힘이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혼모노》를 읽으며 등장인물의 얼굴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을 다른 장르로 옮긴다면 뭐가 좋을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서이제의 《0%를 향하여》는 웹툰, 고영범의 《서교동에서 죽다》는 그래픽노블,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드라마, 김금희의 《첫 여름, 완주》는 애니메이션 등 작품마다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는 장르가 있었는데, 《혼모노》는 그게 없었다.

역설적인 건, 이처럼 성해나가 《혼모노》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진다는 점이다. 원래 뭐 하던 분인지, 왜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는지, 한 번 '담근' 곳은 어디인지 등. 그래서 지난 1주일 동안 작가 인터뷰도 보고, 공저자로 참여한 소설집까진 아니더라도 책으로 나온 작가의 모든 소설들을 찾아 읽었다. 다소 의외였지만, 다른 작품들에선 작가의 '흔적'이 퍽 잘 느껴졌다. 가령 학습지 교사였던 어머니, 86세대를 향한 애증, 언젠가 깨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인간 본성 등. 작가가 인터뷰도 많이 하는 등 신비주의를 고수하지도 않고.

내가 이상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혼모노》보다는 작가의 '흔적'이 드러나는 소설이 더 좋았다. 건조하게 웃으면서 "이게 전부에요."라 말하는 소설보다는 다소 성길지언정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 좋았고. 내가 가장 재밌게 읽은 성해나 소설은 《두고 온 여름》이었다. 《혼모노》에서도 뭔가 덜 완성된 것 같던 <길티 클럽>이 가장 좋았고. 그렇다면 성해나는 왜 '여지'를 주지 않는, 날렵하고 정교한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그 이유가 계속 궁금했다. 주제넘은 호기심일 수 있겠지만.

나는 성해나가 자신이 한 번 '담갔던' 무언가를 갖고 장편을 써주면 좋겠다. 지금까지 써온 글만 봐도 그렇고, 그는 단편에 특화된, 혹은 단편에 맞는 몸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온 작가로 보인다. 애초에 등단도 중편으로 했고. 《두고 온 여름》역시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분량에도 못 미치는 중편에 가까운 소설이다. 그런 성해나가 다소 성기고 들쑥날쑥할지언정,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로 끝까지 밀고나간 장편을 읽고 싶다.

단순히 단편은 많이 읽었으니 이젠 장편을 읽고싶단 마음은 아니다. 《혼모노》를 봐도 그렇고, 인터뷰를 읽어도 그렇고, 성해나는 굉장히 성실하고 안정적인 사람인 듯 보인다. 자료 조사도 꼼꼼하고 철저하다. 공부를 했어도 훌륭한 연구자가 되었으리라 생각할 정도로. 괜히 건축을 좋아하는 게 아니구나 싶달까. 늘 불안하고 잘 흔들리는 사람으로서 이런 안정감과 뚝심은 굉장히 부러운 재능인데, 이는 단편만큼이나 장편에도 어울린다 생각한다. 장기인 자료조사를 살릴 수 있는 역사소설도 좋고, 의외로 추리소설도 굉장히 잘 쓸 것 같다. 뭐가 되었든 성해나가 계속 소설을 써주면 좋겠다. 앞으로도 그의 글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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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 - 한 개인의 역사에서 모두의 역사로
이동해 지음 / 푸른역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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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온 역사가 필요하다: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

 

살다보면 종종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과거 잘 모르고 지나쳤던, 혹은 그리 대단하다 생각지 않았던 일이 실은 더 큰 흐름의 일부였음을 문득 깨닫는 경험 말이다. 반대로 그때는 무척 심각하고 중요하게 느껴졌던 일이 돌이켜보니 그런 흐름과 별반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이처럼 뒤늦게야 알게 되는, 거대하고 도도한 흐름을 우리는 보통 역사라고 한다. 역사가의 작업이란 그런 흐름 속에 개인이나 사건을 알맞게 위치시키는 일일 테고 말이다.

 

아마도 구술사는 이런 위치지우기로서 역사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난 작업 중 하나일 것이다. 구술사, 혹은 구술생애사는 개인의 내밀한 경험을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과 연결한다. 동시에 개인의 삶을 통해 역사에 대한 기존의 통념이나 편견을 뒤집어버리기도 한다. 가장 큰 것 역시 가장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져 있음을, 나아가 가장 작은 것이 때로는 가장 큰 것을 전복하고 무너뜨릴 수도 있음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구술사의 묘미가 아닐까.

 

문제는 구술사가 갖는 어마어마한 매력과 잠재력에 비해, 정작 제대로 된구술사를 쓰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생각과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이 만만하게(?) 느껴져서인지, 최근 공공역사가 각광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술사는 이제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세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자신이나 부모, 조부모의 생애사 쓰기를 꼭 한 번은 과제로 내준다. 공공도서관이나 문화센터에서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지자체에서 하는 각종 사업에서도 구술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말이다. 하지만 구술사를 어떻게 하는지, 그게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과문한 탓인지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이동해의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는 이처럼 구술사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높지만 그 방법과 의의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 지금 가뭄에 단비처럼 등장한, 너무나도 훌륭한 구술사 교과서다.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는 90년대생 지은이가 구술사의 대상으로 삼은 이는 1935년생 외할아버지 허홍무. 얼핏 내 할아버지의 역사혹은 나의 뿌리를 찾아서같은 뻔한 주제가 떠오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대학원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역사학자답게 지은이가 무척이나 촘촘하고, 또 치밀하게 할아버지의 개인사와 격동의 한국근현대사를 연결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두 가지 사실에 우선 놀라게 된다. 우선 문장과 구성이다. 지은이 이동해는 자칫 어렵고 전문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도, 혹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지엽적이라 느껴질 수도 있는 개인의 내밀한 경험들도 흥미롭고 유려하게 풀어내는 놀라운 재주를 지녔다. 얼핏 듣기로 그는 출판사에서 2년 간 어린이용 원고를 쓰는 일을 했다는데, 그 솜씨가 어디 가지 않는다고 느꼈다. (이쯤 되면 모든 역사가를 대상으로 출판사 의무근무제를 시행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한때 그가 브런치에 열심히 쓰던, 전문적인 학술논문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는 글도 무척 재밌게 읽었다. 이처럼 이동해는 좋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 지 아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무척이나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고, 여하튼 좀 거대하고 무거운 주제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도 앉은 자리에서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를 뚝딱 읽게 되는 것이리라.

 

문장과 구성만큼, 아니 그보다 더 훌륭하고 경이로운 점은 이동해의 꼼꼼함과 집념이다. 우리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제시대 때 천석꾼 집안이었다느니, 6.25 동란 때 죽을 위기를 넘겼다느니, 지금 보이는 저 아파트촌이 20여 년 전만 해도 논밭이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한두 개씩 가지고 있다. 다만 아 그랬구나~”하고 더 깊이 파헤칠 생각을 않을 뿐. 이동해는 달랐다. 학부 2학년 때인 2016년 구술사를 처음 접하고 바로 할아버지를 인터뷰했다. 물론 학부 2학년생이 그 맥락을 이해하기는커녕 잘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할아버지의 구술을 갖고 바로 역사책을 쓸 수는 없을 터. 그는 좌절하는 대신 오랜 시간 논문을 읽고 자료를 모았다. 족보, <호적부>, 국민학교 <생활기록부>, 군 생활 내력이 담긴 <거주표> 등 할아버지와 관계된 자료를 모으는 것은 물론 그의 삶을 보다 풍부히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을 쌓고자 자료를 찾아 헤맸다.

 

무려 8년에 걸친 이러한 빌드업의 결과가 이 책이다.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의 탁월함은 다름 아닌 각주에서 드러난다. 각주는 역사가가 얼마나 두텁게, 또 정확하게 대상을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 책은 240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는 이례적으로 주석이 많이 달렸다. 세어보니 무려 437개다. 놀라운 점은 그 많은 주석 중 허투루 달린 주석이 없다는 사실이다. 허홍무의 생애사를 따라가다 이 부분이 궁금한데?’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엔 논문이든, 신문 기사든, 공문서든, 기관에서 제공하는 아카이브든 어김없이 주석이 달려 있었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주석이 달린 맨 뒷부분과 본문을 분주히 오가곤 했는데, 무척이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한 사람의 삶을 오롯이 설명하기 위해선 최소한 437개의 주석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깨달았다고나 할까.

 

437개의 주석으로 두텁고 풍부하게 맥락을 덧댐으로써, 얼핏 그리 대단치 않아 보였던 허홍무의 삶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아마 본문에 다 담지 못한, 혹은 않은 탓이겠지만 사실 허홍무의 구술이란 그리 대단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다. 어린 시절 동네에 창고가 있었는데 그게 다 우리 거였다든지, 천안 철도국에서 근무하던 작은할아버지가 제련소를 관리하며 금광을 할 생각을 했다든지, 금광이 망하며 아버지가 부평 미쓰비시 공장에 취직했다든지, 인민군을 피해 고모 집 뒷산에 있는 항아리 묻는 방공호에 숨었다든지 하는, 우리 모두 한두 번은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동해는 이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에, 온갖 자료를 뒤져가며 맥락과 의미를 부여한다. 비단 구술사뿐 아니라 모든 역사가들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물론 모두 해야 한다고 해서 잘 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동해는 무척이나 탁월하게 이 작업을 해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두 가지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나는 개인의 삶을 통해 거대한 역사적 풍경을 상상하는 즐거움이다. ‘나무 심기에 성공해 총독부로부터 임야를 양도받아 천석꾼으로 행세하며 면협의원까지 될 수 있었던 식민지 조선의 지주들, 일제가 국제연합에서 탈퇴하고 영미와 관계가 나빠지며 치솟은 금에 대한 수요와 조선에 도래한 황금광시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중공업단지 조성과 헌병이 감시하는 삼엄한 군수공장, 여운형의 인민위원회와 이승만의 독립촉성회, 미군정이 난립하던 해방공간의 혼란, 공교육이 감당할 수 없었던 폭발적인 교육열을 대신 채워줄 서당의 존재, 인민군과 국군이 서로 죽고 죽이던 마을로 간 한국전쟁까지. 허홍무의 삶 그 어느 대목도 한국근현대사의 거대한 흐름과 연결되지 않았던 게 없었다.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온 역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너무나도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

 

책이 안기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허홍무의 구술과 역사의 공식 기록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줄다리기다. 이동해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의 말에 미심쩍인 부분이 있으면 꼭 자료를 찾아보고 정말 허홍무의 말이 맞는지, 맞지 않다면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치밀하게 파고든다. 가령 군복무를 하며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인민군 포로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을 보았다는 허홍무의 이야기에 이동해는 할아버지의 참전 용사 등록을 위해 병무청에서 <병적증명서>, 국방부 인사사령부에서 <거주표>를 발급받았지만, 문서에 따르면 허홍무의 입대일은 정전 이후 1년 가까이 지난 1954712일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것도 후방에서 근무한 데 따른 부끄러움에 허홍무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물론 이런 팩트체크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동해는 할아버지가 무심코 한 이야기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어코 그것이 진짜였음을 보여준다. 허홍무의 작은할아버지 허옥이 운영한 광산이 <조선총독부 관보>에 등록되어 있었다든지, 인민군이 철수하며 인주면 부면장을 처형하고 십자가에 매달아놓았다는 허홍무의 기억이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실려 있었다든지, 허홍무가 부산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 첫사랑을 만나게 해준 철길이 지금은 사라진 문현선이었다는 대목에선 짜릿함마저 들었다. 마치 잘 쓴 추리소설과 같은 긴장감과 쾌감을, 다름 아닌 1935년 허홍무의 구술사에서 느꼈달까? 공교롭게도 내가 아는 훌륭한 역사가 선생님들 중에는 추리소설 마니아가 많은데, 좋은 역사책은 추리물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는 비단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의 공공성을 다시금 묻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최근 공공역사란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기존의 역사학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질문과 혼란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아주 삐딱하게 말하자면, “그럼 기존 역사학은 공적이지 않다는 얘기냐!”는 반론도 가능하고 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이 책은 공공역사란 이런 것이라고까지는 말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역사가가 실천할 수 있는 공공성의 한 갈래를 무척이나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학부 4학년 때 들었던 답사 수업에서 교수님께서는 요즘 같은 시대에 역사가의 공적 역할이란 여러 맥락을 살피며 이들을 제대로 이어주는 게 아닐까하는 말씀을 하셨다. 꼭 역사왜곡에 분연히 맞서고 선비의 결기로 잘못된 시대에 준엄히 목소리를 내는 것만이 역사가가 실천할 수 있는 공공성의 전부는 아니다. (물론 요새는 그런 게 필요하다 느껴지기도 하지만...) 평범한 개인의 삶을 역사라는 보다 큰 맥락과 이어주고, 동시에 개인의 삶을 통해 역사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작고 소박하지만 꼭 필요한, 역사가의 의무일지 모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역사학자 이영남이 이야기한, “중층적인 삶의 층위를 펼쳐 사회의 내면에 자리 잡은 것을 들추어내 서로 조정하고 관련짓는치유와 연대의 임상역사의 길로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영남,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푸른역사, 2007, 300.)

 

이동해 역시 할아버지의 구술사를 쓰며 그런 치유의 과정을 경험한 듯하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허홍무의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은 그를 이해하며 어린 시절 맺혔던 마음 속 응어리를 조금씩 풀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가족들 역시 조금씩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허홍무 역시 한두 마디씩 거들며 소통의 장이 마련되었다. 구술사가 가진 치유의 힘을 경험한 것이다. 물론 개인의 삶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해서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또 이해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러한 이해와 소통, 나아가 소통의 장을 마련할 수는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역사가가 맡을 수 있는 가장 보람 있는 역할일 것이다. 이번 책으로 그 가능성을 멋지게 보여준 이동해가, 앞으로도 자신의 방식대로 역사가의 공공성을 실천해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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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10-18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한다는 착각
김지원 지음 / 유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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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음의 쓸모를 설득하기: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는 동생과 밥을 먹는데, 글쎄 얘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자기가 그동안 책을 너무 안 읽은 것 같다고, 그래서 삶의 깊이나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가 부족한 것 같단다. 그 얘기를 듣고 짧게 답해줬다. 네 형을 보라고, 난 대한민국 평균에 비해 그래도 책을 많이 읽는 축에 들 텐데, 내가 지혜롭거나 깊이를 갖춘 사람처럼 보이냐고. 그러자 동생은 !” 하고 감탄인지 한탄인지 모를 말을 내뱉더니 더 이상 내게 뭘 물어보지 않았다.

 

반쯤은 농담이었지만, 마냥 실없는 소리는 아니다. 난 정말로 책 읽기가 대단한 자랑거리나 인간이 갖춰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책을 비교적 많이 읽고, 또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현명하거나 성숙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예민하고, 서투르며, 비관적이고, 침울한 사람에 가깝다. 내게 책 읽기란 말 그대로 배운 도둑질이 이것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다. 막말로 내가 다른 좋은 취미, 가령 공연 관람이나 스트릿 댄스를 좋아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밝고 건강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종종 생각한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기지만, 어쩌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사람들이 왜 책을 읽지 않는가?”가 아니라 왜 지금까지 사람들이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나?”일지도 모른다. 다들 책 좀 읽으라는 잔소리는 많이 들어보았겠지만 유튜브 좀 보라는 잔소리는 들어본 적 없지 않은가. 책보다 유튜브가 못할 건 없다. 적어도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우리의 걱정은 그저 책이라는 매체가 (그 가치에 비해) 훨씬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인류 역사에서 무척 짧고 예외적인 시기의 끝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호들갑은 아닐까.

 

김지원의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책이 더 이상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는 시대에 용감하게 책의 쓸모를 주장하는 책이다. 한데 그 이유가 재밌다. 책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쓸모를 갖는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경향신문에서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를 발행해온 지은이가 정의하는 책만의 특징은 굳이로 요약할 수 있다. 요즘처럼 타자 몇 번 두드리고 클릭 몇 번만 하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에, 책은 그걸 굳이엮어서 일정한 리듬과 질서를 갖게 만든 뒤 종이에 찍어내 물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바로 이 굳이로부터 책의 쓸모가 발생한다.

 

지은이가 꼽는,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적지 않다. 우선 책은 가치 있는 텍스트를 모은 방주. 이때 방주라 함은 내가 찾는 정보만이 아닌, 그야말로 온갖 이야기들이 모여 있는 아카이브란 의미다. 그렇기에 우리는 책을 읽으며 원래는 생각지 못했던, 그러나 혹은 그렇기에 꼭 필요했던 번뜩이는 통찰을 우연히발견하곤 한다. 알고리즘의 필연성에 대항하는 책의 우연성은 이처럼 당장 필요하지 않은 정보까지 굳이읽는 해찰의 경험에서 나온다. (이게 내가 발췌독을 하지 않고, 웬만해선 책을 끝까지 읽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나 내가 찾으려는 책보다 그 옆에 꽂힌 책에 눈이 가는, 도서관 서가의 법칙도 마찬가지다.

 

책은 읽기에서도 다른 매체는 줄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읽기에서 책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심지어 읽지 않기라는 선택지까지 존재한다는 점이다. 모바일의 읽기란 끊임없는 간섭과 방해의 연속이다. 비단 엑스 버튼이 어디 있는지 돋보기를 들이대야 겨우 찾을 수 있는 끝없는 광고의 벽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사가 독자의 편의를 위해 마련해둔 온갖 링크 역시 때로는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책은 이런 간섭 없이 편하게, 어디서나 원하는 페이지에서 펼치고 접을 수 있다. 내키지 않을 땐 그냥 안 읽으면 그만이다.

 

요컨대, 적어도 책을 상대로는, 내가 주도권을 100% 가져가는 폭력적인 관계가 가능하다. 난 솔직히 이게 책을 읽는 가장 강력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사람을 상대할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신경 쓰는가! 말투부터 표정까지 사소한 것 하나 하나 파악하며 상대방이 혹시 지루해하거나 기분 상하진 않았는지, 내가 뭐 실수한 건 없는지 강박적으로 되돌아보지 않는가. 책은 그럴 일이 없다. (나는 안 그러지만) 북북 줄을 치거나 모서리를 접어도, 메모를 남겨도, 읽다가 이해가 가지 않거나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에 이의 있소!”하고 딴지를 걸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과의 관계에선 이런 식의 폭력성이 적극 권장되기까지 한다. 마음껏 폭력적이어도 된다니, ‘무해함이 미덕인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얼마나 좋은가! (최소한 사람이나 동물한테 그러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책의 쓸모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은이의 말처럼 책은 원산지가 표시된 정보. 이건 단지 책에 쓰인 이야기를 믿을 수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난 좋은 책을 판가름하는 유무는 결국 각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각주를 사다리 삼아 더 넓고 깊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끔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좋은 책은 믿을 만한 지식의 지도가 되어준다. 정말로 훌륭한 책(가령 방기중의 한국근현대사상사연구)은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에 발을 딛을 수 있게끔 해주는 베이스캠프가 되어주기도 한다. 책을 지도 삼아, 각주를 길잡이 삼아 내가 갈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고, 막힐 때면 언제든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책이 갖는 쓸모, 결국 그 쓸모없음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한때 책은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한 가장 효율적이고 쓸모 있는 매체였을 수 있다. 하지만 클릭 몇 번, 아니 챗GPT에게 대충 물어만 봐도 원하는 답이 뚝딱 나오는 요즘 같은 시대에 책은 지나치게 수고롭고 품이 많이 드는 매체가 되어버렸다. 물론 책이 갖는 강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는 모두 쓸모를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부수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이다. 우연히 얻게 되는 통찰도, 자유로운(혹은 폭력적인) 읽기의 경험도, 각주를 길잡이 삼아 앎의 전선을 넓히는 일도, 속도와 효율이 중시되는 지금은 지나치게 한가로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요컨대, 책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쓸모를 갖는, 지극히 역설적인 매체다.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시기에, 역시 같은 유유출판사에서 나온 우치다 다쓰루의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도서관은 근본적으로 쓸모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도서관은 공공의 탈을 쓰고 있지만 민간에 위탁한 일부 도서관이 그러하듯, ‘고객을 더 불러 모으고 이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흥미 위주의 책을 배치하거나 인스타그래머블한 북카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도서관이란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경계의 장소여야 하며, 사서는 저편의 문지기, 즉 마녀와도 같은 존재여야 한다. (학교에서 겉도는 학생들이 자주 찾는 장소가 보건실과 도서실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문제는 쓸모없음의 쓸모를 설득하기가 무척 난망하다는 사실이다. 앞서 길게 얘기했듯 책은 그 자체론 쓸모를 갖지 않고, 설령 갖는다 해도 이를 바로 알아차리기 무척 어렵다. 그런 만큼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오지 않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고 책을 읽으려 할 때, 책은 어렵기만 하고 곧바로 느낄 수 있는 효용은 적은 매체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검색 엔진이나 챗GPT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책은 읽는 사람만 읽는매체로 전락하고 만다. 비단 독자뿐 아니라, 시장과 정부에게도 책의 쓸모를 보여주기란 어려운 일이다. 일단 돈이 안 되지 않는가. 몇 백 명이나 읽을까 말까한 두툼한 학술서를 지역의 공공도서관에 비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치다 선생님껜 안타깝게도, 사람이 오지 않는 도서관은 결국 문을 닫게 된다. 그 점에서 난 조용한 봉쇄수도원 같던 우리 동네 중앙도서관이 최근 인스타그래머블한 네온등을 주렁주렁 단 것을 이해한다.

 

책이 쓸모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거나 슬프지는 않다. 애초에 책은 그러라고 만들어진 매체니까. 다만 쓸모가 없다고 아무도 책을 읽지 않고, 도서관에 투자하지 않는 사회가 썩 바람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럼 결국 쓸모없음으로부터 발생하는 쓸모는 포기하게 되는 것이고, 그때 사회가 잃는 것이 적지는 않을 테니까. 아니, 이런 진지하고 거창한 고민까지 갈 것도 없이,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재밌는 읽을거리가 계속 나와 주긴 해야 할 텐데. 이제 와서 공연 관람이나 스트릿 댄스에 도전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배운 도둑질이 책 읽기밖에 없는 미련한 사람으로서 머지않아 몇 안 되는 재미를 잃을 수도 있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쓸모없음의 쓸모를 설득할 수 있을까, 내가 떠올린 방법은 책이야말로 가장 진지하고 정성스런 말 걸기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가곤 하는 배우성의 독서와 지식의 풍경은 책과 출판에 대한 근대주의적 시선을 걷어내자 이야기한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은 오늘날의 기대처럼 책을 (목판이든 금속이든) 활자로 찍어내 모두가 자신의 글을 읽고,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이 원했던 것은 자신의 생각을 알아줄 단 한 사람의 독자였다. 그 독자가 굳이 동시대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먼 훗날이라도 좋으니, 누군가 책을 읽고 그 뜻에 공감해준다면 이들로서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다.

 

물론 영세할지언정 출판이 산업이 된지 오래인 지금 이러한 관점을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책에 대한 여러 기사와 리뷰들을 훑으며 느끼는 건, 저자에겐 자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삼프로 티비에 출연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을 받는 것만큼이나(차마 그보다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자기 책을 깊게 읽어줄 단 한 명의 독자를 만나는 일이 각별하고 의미 있는 경험일 수 있겠다는 사실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 중 하나도 언론사에서 제대로 된 서평조차 나오지 않은 책이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고, 책을 읽은 독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지한 감상을 올리는 모습을 볼 때다. 김영민의 말마따나 학식과 비판과 문체가 어우러져 좋은 글이 쌓이면, 그 사회는 그야말로 문예공화국의 면모를 갖게 될 것이다.” 좋은 소통의 매개로서, 문예공화국의 주춧돌로서 책이 갖는 쓸모는 여전히 존재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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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 사라진 문명의 기준
배우성 지음 / 푸른역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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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행간을 읽기, 탐침봉을 깊숙이 찔러넣기: 중화, 사라진 문명의 기준

 

1935년 만주, 삼학사가 다시 불려나오기까지

 

1935년 봉천(심양), 만주국의 국립봉천도서관 사서 김구경은 송시열의 삼학사전을 다시 펴냈다. 2년 전, 명에 대한 충절을 지키다 심양으로 끌려가 처형된 삼학사를 기리는 비석 일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따른 것이었다. 누군가는 청이 망하고, 민국이 들어섰으며, 심지어 만주국이 세워진 1930년대에 재만(在滿) 조선인 사회가 새삼스레 삼학사를 재조명했다는 사실이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에 근거가 없지는 않다. 김구경은 황조(皇朝)’대명(大明)’ 등의 표현을 그대로 썼을 뿐 아니라, 그 앞에서 칸을 떼는 대두법 역시 계속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뚜렷한 차이도 있었다. 김구경은 송시열이 쓴 ()’, ‘()’, ‘()’ 등을 찾아 그 대부분을 ()’으로 고쳤다. 뚜렷하게 중국을 겨냥한 동시에, 제국의 신민이자 만주국의 국민이었던 재만 조선인의 처지를 (최소한 중국인보다는 낫게끔) 고려해달라는 호소의 성격이 짙었다. 그렇게 송시열이 보편적 인륜으로 상정한 ()’, 만주국과 일본 제국이라는 뚜렷한 충성의 대상을 갖는 가치로 재해석되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 에피소드는 중화의 의미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300년 전 삼학사가 다시 소환되었다는 점에서 중화는 여전히 힘이 셌지만, 이들이 불려나온 이유가 제국 일본에 읍소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명백히 달랐던 것이다.

 

배우성의 중화, 사라진 문명의 기준(이하 중화)는 이렇듯 비교적 최근까지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그러나 그 내용은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달랐을 중화의 역사를 추적한다. 한데 그 방식이 독특하다. 지은이는 첫머리에서부터 넓고 큰 대로가 아닌, 좁고 구불구불한 샛길을 따라가겠다고 선언한다. 가령 이 책은 그간 학계에서 중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중화의 세 구성요소인 지리’, ‘종족’, ‘문화개념을 거의 논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국에서 중화를 논할 때나 의미 있는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지리적으로 중원이 아니며, 종족적으로 한족이 아닌 한반도의 경우 이들 개념만으로 중화가 상상되고 실천된 역사를 설명할 수 없다. (10여 년 전 계승범-우경섭 논쟁이 어딘가 겉돌았던 이유 역시 그래서일 수 있다.)

 

배우성이 택한 건 일종의 측면돌파’, 혹은 돌려깎기전략이다. 그는 한반도에서 중화개념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는 중심과 주변의 거리감 혹은 긴장감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중화연구는 이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거나(우경섭), 혹은 너무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계승범) 핵심에 다가서지 못했을 수 있다. 이렇듯 한반도가 중심을 민감하게 의식하고, 때론 동경했으나 결코 중심이 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을 전제한 가운데, 배우성은 이적’, ‘사대’, ‘동국’, ‘북학등의 키워드로 한반도에서 중화가 어떻게 상상되고 실천되었는지 들여다본다. 이들 키워드야말로 주변에서 바라본 중심을 가장 정교하게 포착할 수 있다. 배우성의 생각은 이렇지 않았을까.

 

사대와 북학, ‘관리된 모순의 본질을 읽다

 

자기만의 글쓰기와 내러티브를 갖춘 역사가는 많지 않다. 감히 말해보자면, 배우성은 그 드문 역사가 중 한 명일 것이다.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그는 세간에서 역사학()에 품는 기대와는 완전히 다르게 글을 쓴다. 배우성의 글은 팩트로 상대를 논박하기보다는 팩트자체를 의문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고, 복잡한 맥락을 말끔하게 해소해주기보다는 더 복잡하게 헝클어버리며, 분명한 교훈을 던져주기보다는 기존의 교훈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처럼 그간의 이해와 상식을 완전히 헤집어놓고, 그는 질문에 질문을 던지며 대상을 향해 탐침봉을 깊숙하게 찔러넣는다. 배우성의 글에서 행간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유는 그래서일 것이다. (원래는 필자는 아무개의 이 말/글을 이렇게 읽는다.”는 표현이 많이 쓰였는데, 흥미롭게도 중화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복잡하게 헝클어버림으로써 오히려 분명한 진실에 다가서는 배우성의 글쓰기는 중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히 그의 전공인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중화 인식에 대해서는, 과장을 보태 이들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왔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다. 중화 인식의 역사에서 조선 후기가 중요한 건, 누구나 알다시피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 명청교체로 이어지는 천붕지열(天崩地裂)’의 대변동 때문이다. 정통성을 갖춘 한족 왕조인 명이 멸망하고, 그 자리를 변발을 하며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左袵) 오랑캐가 차지했다. 나라를 다시 세워준 아버지와 같은 나라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원수에 고개를 조아리며 이들의 후의에 기대어 연명하게 되었다. 당장 죽어도 시원치 않지만 죽을 수 없다. 모멸감과 비루함을 견디며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조선 후기 지식인이 처해있던 상황이었다.

 

오랑캐인 청을 섬기면서도 망한 왕조인 명을 기리는, 얼핏 모순적인 행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계승범은 이를 두고 정신분열적이라고 비판했으며, 김영민은 그것이 관리된 모순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우성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관리된 모순의 본질을 파헤친다. 명이야말로 중국이라는 입장은 분명 조선 후기 지식인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조차 될 수 없는 진리였다. 그러나 100년 안에 망한다던 청이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전례 없는 성세(盛世)를 구가하며, 이들의 생각이 미묘하게 변해가기 시작한다. ‘상국/중국강국/대국을 구분하게 된 것이다.

 

상국/중국강국/대국에 대한 입장은 남인 안정복에게서 가장 명료하게 전개된다. 안정복이 보기에 상국/중국강국/대국은 다른 차원, 다른 층위에 놓였다. 상국 혹은 중국은 한, , , 명처럼 중화를 계승한 한족 왕조다. 이들이 대국이자 강국일 수 있지만, 거란의 요와 여진의 금에 시달린 송나라를 봐도 알 수 있듯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상국/중국강국/대국이 아닐 때, 혹은 상국/중국강국/대국이 대치할 때 동국(東國, 한반도 왕조를 일컫는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국/중국에 대해서는 천명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강국/대국에 대해서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선에서 요령껏행동해야 한다. 비록 바꿀 수 없는 정리를 분명히 해두었을지언정, 안정복은 상국/중국강국/대국사이에서 동국이 주체적으로 운신할 여지를 열어두었다.

 

이러한 변화는 몽골의 원나라에 고려가 사대한 역사에 대한 새삼스런재조명과 맞물린다. 안정복도, 그의 스승 이익도 고려가 원에 갖는 군신의 분의를 인정했다. 심지어 이익은 요나라나 원나라가 이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이 나름의 ()’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배우성의 말마따나 이익과 안정복이 거란의 요와 몽골의 원에 대한 생각을 만주의 청에 그대로 적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분명 청에 대한 입장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었다. 존주의리의 수호자를 자처한 동시에 청에 대한 사대에도 정성을 다했던 정조의 모순, 그 점에서 이해 가능한 것이었다. 정조에게 상국/중국인 명을 기리는 마음과 대국/강국인 청에 대한 사대는 층위를 달리했고, 따라서 충돌하지 않았다.

 

같은 시기 (주로 노론이었던) 일군의 지식인 사이에서 일었던, ‘북학에 대한 갈망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배우성은 이러한 흐름이 청학(淸學)’이나 만학(滿學)’이 아니라 북학(北學)’으로 불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청나라를 배우자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청나라를 통해배우자고 주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청을 거쳐서라도 배워야 할 무언가란 어떤 것인가? 이는 박지원에게서 가장 정교하게 설명된다. 그는 소설 호질을 통해 청을 ()한 도둑에 빗댄다. 청은 분명 중국을 훔친 도둑이다. 그러나 훔친 재물을 어질고 정의롭게 사용하는 도둑처럼, 청 역시 중국의 문물을 현명하게 관리하며 성세를 구가하고 있다. 조선이 청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란 이처럼 청에 남아있는 중국의 문물, 구체적으로 한, , , 명의 유제다. 정조와 마찬가지로, 박지원에게도 북학존주는 전혀 모순되지 않았다.

 

동국과 근대, 모호하거나 성급한

 

이렇듯 배우성은 얼핏 모든 것을 모호하게 헝클어버리는 듯 보이면서도, 깊숙이 탐침봉을 꽂아 중화의 의미망을 정교하게 재구성한다. 그의 글은 (어쩌면 역사를 다룬 글로는 다소 이례적으로) 수많은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는 결코 답할 수 없는 것을 애매하게 덮어놓고 가려는 미봉책이 아니다. 오히려 질문을 극한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끝끝내 진실을 포획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앞서 살펴보았듯 그간 너무 단순하게, 혹은 애매하게 설명되었던, 청에 사대하면서도 명을 기렸던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모순에 다가서려는 그의 노력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다만 배우성이 모든 키워드에 대해 이렇듯 집요하게,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며 답을 낸 것은 아니다.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은 키워드가 있는가하면, 다소 성급하게 결론을 내버린 키워드 역시 존재한다. ‘동국(東國)’근대(책에서는 기자·진인·동양이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근대의 중화이므로)’가 이에 해당한다.

 

그간 조선 후기 중화 인식을 연구할 때 조선중화가 어떤 관계를 맺는지, ‘중화라는 의미망 속에서 조선이 어느 자리에 위치하는지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무척이나 논쟁적인 주제였다. 가령 정옥자는 명이 사라진 현실에서 조선이 곧 중화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고, 이는 조선 고유의 것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조선중화주의진경(眞景)’의 추구로 전화(轉化)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자인 계승범의 경우 조선이 추구한 중화란 기실 명이라는 타자에 불과했으며, 이는 조선이 권위의 원천을 스스로에게서 찾는 데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했다고 보았다. 그의 책 정지된 시간이 제목과 달리 조선의 시간이 나름의 방식으로 흘러갔음을 흥미롭게 보여주었음에도, “조선의 역사시계(중략) 더 이상은 힘차게 똑딱이지 않았다악명 높은결론으로 나아갔던 이유 역시 이처럼 조선이 권위의 자기화에 실패했다는 진단 때문이었다.

 

주목할 점은 얼핏 상반되는 듯 보이는 두 주장이, 조선만의 고유한 무언가가 있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두 주장의 차이란 조선중화주의가 그 무언가를 발견하는 데 긍정적인 촉매로 작용했느냐, 아니면 걸림돌이 되었느냐에 있을 뿐이다. (우경섭은 이를 우회해 중화를 보편적인 이념이나 가치의 수준까지 끌어 올리지만, ‘중화의 추상성을 극도로 높일 경우 이는 어디에나 갖다 붙여도 좋을 무색무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계승범의 말처럼 조선 후기 지식인에게 중화란 기실 종족적 아이덴티티와 거의 구분되지 않는 의관에 가까웠다.) 하지만 조선만의 무언가란 존재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적어도 식자층 사이에서) 뚜렷하게 인지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부터인가? 나아가 중화는 그 무언가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 만약 중화가 조선의 무언가를 발견하는 데 촉매로 작용했다면, 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했는가?

 

배우성은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중화를 말할 때 언제나 동국혹은 아동(我東)’을 칭했다는 점에서 조선 중화란 성립하기 어려운 개념임을 분명히 한다. 이들은 감히 중화를 자처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하지 못했다. ‘중화란 어디까지나 중원, 최소한 주희가 나고 자란 강남에서, 주씨 성을 가진 명 황실의 후손에 의해 회복되어야 했다. 조선의 역할이란 그때를 대비해 중화의 예악문물을 잘 보존해놓는 것이었다. 당시 표현으론 마지막 남은 등불, 요즘 말로는 백업용 하드디스크인 셈이다. 박지원이 허생전에서 북벌을 주장하면서도 조선이 오를 수 있는 최대의 지위를 천자가 아닌, 천자의 스승으로 한정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이처럼 동국조선의 역할이란 기껏해야 중화의 회복을 위한 하드디스크 정도였다고 할 때, 조선만의 무언가가 놓일 자리는 어디인가? 물론 그것이 꼭 존재했으리라고, 혹은 존재해야만 한다고 여길 이유는 없다. 하지만 김자현, 그리고 그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은 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말마따나 최소한 임진전쟁을 계기로 조선에도 일종의 네이션이 형성되었다면, 이는 중화혹은 동국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 설사 한국사에서 네이션의 형성이란 19세기 말 이후에나 관찰된다는 근대주의적 설명을 따른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요컨대, ‘중화라는 의미망 속에서 동국혹은 아동은 어떤 지위를 갖는가? 이는 단순히 조선이 중화의 자리를 탐하지 않았다는 설명으로 갈음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답이 없어 보일지언정) 훨씬 집요하고 끈질기게 질문해야 할 문제다.

 

동국에 대한 배우성의 설명이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아있다면, ‘근대에 대한 설명은 다소 성급하게 마무리된다. 가령 그는 김윤식이 청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중국이라 일컬었다는 사실을 중화인식이 변화한 중요한 사례로 거론한다. 서세동점의 긴박함 앞에서 청은 더 이상 오랑캐가 아닌, 천명을 받은 진정한 중국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배우성은 마땅한 답을, 하다못해 질문조차 내놓지 않는다. 김윤식은 19세기에 이르러 종래의 중화인식에 균열이 일어나고, 마침내 해체되고 소멸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사례로 거론될 뿐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어쩌면 김윤식을 비롯해 김홍집, 어윤중과 같은 19세기 후반의 친청파관료들은 실무에 능할 뿐 별다른 지향을 갖지 못했던, 영혼 없는 테크노크라트였을 수 있다. 설사 이들이 목표한 바가 있었을지언정 그것은 왕현종이나 김종학의 말처럼 전통적인 군신공치의 현대화였지, 중화질서의 수호는 아니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어째서 이들에게 중화는 그저 아무래도 좋을 것이 되어버렸는가. 어째서 박지원까지만 해도 청을 통해배우는 것이었던 북학은, 그의 손자 박규수에게 배운 김윤식에 이르러선 청을 배우는 것으로 의미가 달라졌는가. 18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팽팽하게 존재하던 상국/중국강국/대국사이의 긴장은, 어째서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선 그렇게 눈 녹듯이 허물어져 버렸는가. 박규수라는 미싱 링크에 주목하는 건 이에 대한 답을 찾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단순히 김명호의 연구만으로 그에 대한 설명을 갈음하고 넘어가기는 어렵지 않은가. 가령 무엇이든 명쾌한 설명을 내놓던 김명호가 머뭇거린 몇 안 되는 대목인, “천한 만고에 예의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라는 박규수의 말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것은 조경달의 말처럼 ()’를 일종의 자연법으로서 만국에 적용한 결과인가, 아니면 김명호의 조심스런 해석처럼 로부터 벗어난 상대주의의 발로인가.

 

박규수를 파고드는 게 사소하고 지엽적인 방법이라면, 서양이라는 변수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보다는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일 수 있다. 배우성의 말처럼 조선의 중화인식이 결국 중심과 주변의 거리와 긴장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면, 서양이라는 또 다른 중심이 등장했을 때 기존의 중화인식은 어떻게 변화했을 것인가. 독립신문이 청나라를 중국이라 부르는 호명법은 유식자의 느끼는 정에 해로운것이라 했을 때, 이때의 중국은 어디이며 독립신문이 호명한 유식자는 누구인가. 이들은 과거 유일한 중국이었던 명을 떠올렸기에 청을 중국이라 부르면 안 된다고 느꼈던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중국으로 떠오른 서양에 비추어 청은 너무나 야만적이고 낙후했다고 느꼈던 것인가. 요컨대, ‘유식자의 마음에 자리했던 중심중화는 명인가, 서양인가. 나아가, 명에서 서양으로 중심이 교체되었다고 해서 중화라는 의미망은 소멸하는 것인가. 책의 제목처럼 중화사라진 문명의 기준이라면, 그것이 사라져간 과정에 대해서도 지금보단 많은 설명과 질문이 필요하지 않은가.

 

가벼우면서도 진지하게, 담론의 샛길을 헤매기

 

종종 전근대사를 공부하듯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근현대사 전공자면서도 조선시대를 다룬 책들을 (어쩌면 전공 서적보다도) 많이 읽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재미있는, 혹은 부끄러운 사실은 언제나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그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단 근현대사 연구가 지나치게 거대 담론에 짓눌린 것 같다는 느낌은 확실했다. 근대, 민족, 식민지, 차별, 통일, 민주주의, 냉전과 같은 말들은 내게 과하게 무거워 보였다. 현재 근현대사 연구의 최신 트렌드라 할 수 있는, 넓은 의미의 사회사역시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이처럼 무엇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건 분명하지만, 무엇을 하고 싶다는 건 여전히 모호한 상태다. 전근대사를 공부하듯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싶다는, 스스로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는 이상한 말은 어쩌면 이에 대한 나름의 변명인지도 모른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저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고, 혹은 계속해서 의미를 바꿔가며 오래도록 헤맬 것이다. 그럼에도 예정된 방황과 고민이 그렇게까지 걱정스럽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헤매도 된다는, 이 역시 좋은 연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글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내겐 배우성의 연구가 그렇다. 힘들거나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가 쓴 독서와 지식의 풍경을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고는 했다. 이상하게도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구태여 답을 내지 않고 복잡한 것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도 된다는 데서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조심스레 말해보자면, 중화는 지금껏 그가 썼던 글보다는 방향이나 문제의식이 뚜렷한 책이다. (단순히 질문으로 끝나는 문장이 이전보다 적어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배우성은 여전히 잘 닦인 넓은 길보다는 작고 구불구불한 샛길을 선호하며, 뚜렷한 답을 내기보다는 원래 자명하게 보였던 것조차 헝클어버리고, 길을 잃고 헤매거나 막다른 곳에 이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배우성의 글을 읽다 보면 나 역시 이렇게 헤매도 괜찮지 않을까, 근현대사 전공자라고 거대 담론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 괜시리 힘이 나곤 한다. 그렇게 나는 만약 배우성과 같이 민주주의의 개념사를 써보면 어떨까 생각하며, 가벼우면서도 충분히 진지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담론의 샛길을 헤매려는 마음을 먹어보게 되는 것이다. 큰 틀에서야 계속 달라지겠지만, 전근대사를 공부하듯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은 아마 이런 것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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