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가 찾아온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어느 때보다 책에 빠져들기 좋은 환경이었음에도, 올해 읽은 책은 작년보다 줄어 총 124권입니다. 제가 책을 고르는 안목이 없어서인지, 출판계가 예년보다 부진했는지, 둘 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단순히 읽은 책의 양뿐 아니라 질 역시 떨어진 느낌입니다. 그래서 잘못하면 2020년에 나온 책만으로는 올해의 책 열권을 추릴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12월 들어 반짝이는 신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일찍 읽었더라면 오랫동안 그만뒀던 서평 쓰기를 다시 시작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요.
2020년도 역시나 주요 언론사가 꼽은 2020년의 책들은 《경향신문》 정도를 제외하곤 그저 그랬습니다. (특히 《동아》나 《조선》처럼 감각 있는 외부 필진에게 자리를 마련해주지도 못한 《한겨레》는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작년처럼 2020년에 나온 책들로만 열권을 꼽아 봤습니다. 작년에 쓴 글을 보니, 2020년의 목표로 두 가지를 적었더군요. 하나는 매주 꾸준히 서평을 쓰는 것, 다른 하나는 저자를 기다리게 하는 서평가가 되는 것. 이 얼마나 오만한 목표였는지요. 올해는 그저 뜨문뜨문, 하지만 완전히 놓지는 않고 서평을 써보려 합니다. 늘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하 반말)
1. 『정의의 감정들』
조선의 법체계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건 크게 두 가지, 원님재판과 “저 놈의 주리를 틀라!”일 것이다. 공명정대한 성문법도, 독립적인 판관도 없이 고을 수령이 제멋대로 내리는 판결, 그리고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했던 야만적인 고문과 처벌은 그간 조선시대가 법에 의한 지배가 전혀 관철되지 않는 사회였다는 유력한 증거가 되어 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1912년 일제가 도입한 조선민사령이야말로 이 땅에 처음으로 뿌리내린 근대의 씨앗이라는 주장도 가능했다.
『정의의 감정들』은 조선의 법체계가 근대적이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는 고루한 논쟁을 우회해, 당대의 약자였던 여성들이 어떻게 법정이라는 무대에서 정의를 호소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는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원통함(寃)을 해결하고자 기꺼이 주체가 되어 목소리를 낸 다양한 신분의 여성들을 보노라면, SF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이감(Sense of Wonder)은 비단 거대하고 웅장한 서사를 통해서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임진전쟁 이후의 조선에서 21세기 대한민국의 기원을 찾는 건 이제 좀 식상하게 느껴지지만, 국민청원을 비롯해 오늘날 한국의 모습을 자꾸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2. 『거대도시 서울 철도』
매일 밤,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6번 출구 앞에는 광역버스를 기다리는 긴 줄이 여럿 만들어진다. 하남, 성남, 용인, 수원 등 경기 동남부의 위성도시 거주자인 이들은, 낮 동안 서울 각지에서 분주히 일하다 지하철을 타고 을지로입구역에 집결해 각자의 보금자리로 가기 위한 긴 여정을 기다린다. 『거대도시 서울철도』의 저자 전현우는 이들이야말로 서울이란 거대도시의 통근 패턴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즉, 서울 내 이동에선 지하철이 앞서지만 시계(市界)를 넘는 먼 거리는 광역버스가 압도적인 우세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후위기를 대비하기 위해선 자동차와 버스의 수요를 철도가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핵심은 신분당선과 같은 광역급행의 확충과 GTX를 연장한 광역특급의 대대적 준설이다. 북한과 중국까지 내다보는 호방함과 경기도 도농복합시 중 최약체인 광주를 배려해주는 세심함을 갖춘 동시에, 분석철학 전공자가 철덕이 되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과가 탄생할 수 있는지를 실감케 한다.
3. 『대표: 역사, 논리, 정치』
정치사상은 흔히 현실과는 별 상관이 없는 상아탑의 고담준론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소한 대표(representation)에 관한 한, 정치사상은 여전히 현실을 보다 잘 이해하고 나아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강력한 자원이다. 가령 총학생회가 학내 구성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남혐’ 강사를 초청했다며 전학대회에서 총학생회장 탄핵안이 발의된 모 대학을 살펴보자. 총학생회는 선출된 순간 나름의 자율성을 지니는가, 아니면 학내 구성원의 뜻을 철저히 모사(摹寫)해야 하는가? 만약 후자라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대표: 역사, 논리, 정치』는 이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대표 개념의 역사와 그 논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미래를 위해 그 범위를 확장할 것을 제안한다. 얇지만 밀도가 높기에 후루룩 읽고 넘기기보다는 여러 번 정독하며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4. 『연년세세』
황정은이 2014년에 퍼낸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에서는 주인공 소라와 나나를 돌봐주는 이웃집 아주머니 순자가 등장한다. 그는 접경지대에 있는 할아버지의 묘에 매년 제사를 지내러 간다. 그리고 황정은이 2020년에 퍼낸 연작소설 『연년세세』의 첫 단편인 「파묘破墓」는, 똑같이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역시 접경지대에 있는 할아버지의 묘를 파버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책이 나온 해를 기준으로 6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황정은은 연속보다는 단절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단절은 의식적인 결단이라기보다는 자연스레, 혹은 어쩔 수 없이 그리 되어버린 상황에 가깝다. 연년세세, 즉 여러 해를 거듭하며 계속 이어진다는 뜻을 담은 제목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그간 해오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기도, 가장 가깝지만 그래서 자신을 힘들게 한 이를 원망하기도, 혹은 전혀 뜻밖의 일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그 무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엇은 끊길 수밖에 없고 무엇은 이어져야만 하는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질문이다.
5. 『SF 작가입니다』
단언컨대 배명훈은 한국에서 가장 지적인 작가다. 그가 처음으로 낸 에세이집인 『SF 작가입니다』는 평행우주나 타임머신처럼 SF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SF하면 으레 떠올리는 주제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배명훈이 이야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세계’다. 이때의 세계란 있는 그대로의 ‘세상’보다는 조금 작은, 그러니까 세상을 나름의 주관과 논리에 따라 재배열해 만든 작지만 질서 있는 소우주다. 배명훈이 생각하는 SF란 결국 세계에 대한 이야기, 즉 작가가 만들어낸 소우주가 주인공인 이야기이며, 그런 만큼 순문학과 SF의 독법은 달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비단 작가 지망생이나 SF 애호가들뿐 아니라 대학원생이나 연구자, 좀 더 소박하게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은 모든 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6.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하나의 유령이 출판계를 배회하고 있다, 유튜브라는 유령이. 구텐베르크 혁명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매체로 등극했던 책은 이젠 유튜브 혁명으로 영상에게 그 자리를 내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다. 머지않아 책은 박물관에서나 보게 될 것이라는 비관과 책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낙관이 횡행하는 가운데,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는 이러한 불안에 따뜻하고 진지하게 응답하는 흔치않은 책이다. 두 저자는 책의 존폐 여부보다 중요한 건 사람과 사람, 매체와 매체를 잇는 다리 놓기의 리터러시이며, 이를 가장 잘 기를 수 있는 방법은 읽기라고 이야기함으로써 결국 책을 다시 살려낸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와 조롱이 유독 심했던 2020년이었던 만큼, 상대방을 존중하며 대화를 통해 앎을 확장하는 두 저자의 모습이 참 귀하고 소중하다.
7. 『서울, 권력도시』
이른바 ‘근대’는 한국사회가 아직도 풀지 못한 커다란 숙제다. 특히 일정기(日政期)에서 대일항쟁기까지 그 명칭도 다양한 식민지시대에 대한 평가 문제에선 더더욱 그렇다. 이 시기를 설명하는 유력한 관점들인 수탈론과 근대화론, 근대성론은 모두 근대의 압도적인 무게에 짓눌려왔다. 다만 근대가 조선을 철저히 털어먹었는지, 발전시켰는지, 아니면 규율권력을 창출했는지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반면 『서울, 권력도시』는, 비록 의도하진 않았을지언정 총독부의 동화정책에 웃음으로 저항한 경성의 조선인들을 통해 근대란 기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대담한 생각을 내비친다. 조선인들은 그 안에 담긴 총독부의 의도가 어떠했든 간에 오락을 오락으로 즐겼으며, 총력전이라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신사 앞에서 조선식 큰절을 했다. 그들은 근대의 폭력에 저항해야겠다는 거창한 사명감으로 움직인 게 아니다. 그저 근대를 의식조차 하지 않고 평소처럼 생활했을 뿐이다. 어쩌면 카터 에커트가 말한 제국의 후예란, 강력한 발전국가나 이에 기생하는 재벌 따위가 아니라 이처럼 권력의 선전에 웃음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8. 『사치와 고요』
누군가에게는 동인문학상과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나 끝내 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전부일 수도 있겠다. 확실히 기준영의 소설은 심심하고, 밋밋하다. 요즘 출판시장 최대의 소비자인 2030 여성의 호응을 얻을만한 요소도 부족하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독자는 이 책에서 때론 사치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과잉된 감정들이 모두 잦아든 뒤 찰나와도 같이 찾아오는 고요의 순간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기준영은, 마치 섬세하고 정교한 유리 공예품 같은 그의 소설에서, 오해와 불신,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그는 장편보다는 단편이, 초기작보다는 나중 작품이 좋은 작가다.
9. 『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그 성과에 부러움과 질시의 시선을 보내든, 그 불충분함에 야유 섞인 눈초리를 보내든, 그간 한국에서 메이지유신이란 기본적으로 서구화 운동이었다. 21세기의 나이토 고난이라 할 수 있는 박훈이 문제 삼는 건 바로 이러한 서구중심주의다. 그의 첫 한국어 학술서인 『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는 메이지유신의 원동력이 ‘사대부적 정치문화’였다고 이야기한다. 종적(縱的)인 박스형 사회였던 일본에서 하급 사무라이를 중심으로 성리학이 확산되며 횡적(橫的)인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이를 토대로 천하의 공론에 목소리를 내는 문화가 형성됨으로써 비로소 메이지유신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유교 없는 유신은 불가능했어도 유신 없는 근대는 가능하지 않았을지, 혹은 군현화가 시대적 대세던 일본에서 어떻게 봉건화의 핵심인 의회개설이 가능했을지와 같은 재밌는 질문거리를 안겨주는 책이기도 하다. 다만 편집이 조금 아쉬운데, 까치나 일조각에서 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10. 『누가 백인인가?』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의 블랙페이싱 논란 등, 한국에서 2020년은 그 어느 해보다 인종차별에 대한 관심이 컸던 해일 것이다. 그럼에도 『누가 백인인가?』가 크게 화제를 모으지 못한 건, 조금 이상하게까지 느껴진다. 저자는 명료하고 깔끔한 문장으로 미국에서 백인, 흑인, 황인, 히스패닉을 비롯한 인종이 어떻게 발명되었는가를 보여준다. 때로는 그 명료함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저자가 명료하게 정의내린 것이 과연 그렇게까지 명료한지 토론해볼 여지를 마련해준단 점에서 결코 나쁘진 않다. 가령 저자는 미국에서 히스패닉이 ‘민족’ 집단인지 ‘인종’ 집단인지 논란이 계속됐다고 하는데, 애초에 민족과 인종이 그렇게까지 상호배타적인 개념일까? 고등학교나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이 책을 읽고 인종을 둘러싼 여러 쟁점들에 대해 한바탕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