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며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했다.약물도 점점 임계치를 넘어가고 감정 제어가 힘들어질 무렵 제주도로 도피 아닌 도피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번아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도 한계치를 넘어가면 사람은 제어하기 어려워지는데, 이럴 땐 어디론가 방향을 돌리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작가님이 선택한 제주도행이 굉장히 궁금해졌다.한 달간의 일정을 일기처럼 담아낸 책이었다. 제주도를 도착한 순간부터 떠나오는 날까지, 어떤 것을 경험하고 느꼈으며, 그날그날의 우울의 정도를 숫자로 표기하고 있었다. 애월 앞바다 해안가를 하염없이 걸었던 날, 이날은 제주도의 생활을 호기롭게 시작한 날이자 우울을 조금 낮춰준 날로 기억이 난다. 제주도 오름 중에 장엄하면서도 근엄하다는 새별 오름 길은 한번 보고 싶은 곳으로 인상적이었지만 아름다움을 즐길 수 없는 무거운 마음이 먼저 느껴져 우울도가 꽤 높았던 날로 기억난다. 장엄한 계곡을 품은 사려니 숲을 걸었던 날. 자연의 치료 덕분인지 우울감은 조금씩 좋아졌다가 제주 4.3사건과 섯알 오름 학살의 비극을 생각하며 감정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했고, 살아오는 동안의 기억들을 뒤돌아보며 에메랄드 바다에 발 담그고 수제 맥주 한잔 한 날은 우울감이 많이 감소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따라가는 발자취가 신선하기도 했고, 제주도라는 환경적 요인이 작가님을 포옹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양약도 우울증에 꼭 필요하지만 환경적인 치유도 굉장히 필요한 것이라는 걸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한 달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데, 굉장히 필요한 인생의 휴식기를 혼자서 겪지 않고 독자와 함께 겪으려 한 작가님이 존경스럽고 멋지게 느껴졌다. 우울과 삶의 공존에 대해 꽤 멋지게 담아낸 제주도에서의 한 달. 나도 언젠가 한 번쯤 이렇게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책이었고, 읽는 동안 개인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