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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갈 용기 - 자유롭고 행복해질 용기를 부르는 아들러의 생로병사 심리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노만수 옮김 / 에쎄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소설가 스지 구니오의 「장미의 침묵」에 카푸스라는 시인 지망생에게 보낸 릴케의 편지가 나오는 대목이 있다.
˝그곳에서는 시간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1년으로도 계산할 수 없습니다. 10년도 안 됩니다. 예술가라는 존재는 계산하지 않고, 셈하지 않고, 나무처럼 성숙하는 것입니다. 나무는 수액을 무리하게 밀어내지 않습니다. 거센 봄바람 속에서도 여름이 오지 않을까 불안해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서 있습니다. 여름은 반드시 옵니다. 마치 눈앞에 영원이 존재하는 것처럼 묵묵히, 여유롭게 기다리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스지는 말한다. ˝사람은 지식을 얻거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변용‘하기 위해 독서라는 지적 행위를 경험한다.˝ 217~2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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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어디를 말하는 걸까? 나무가 계절마다 새로운 색의 옷을 입고 벗듯이, 독서가는 나무라는 예술가처럼 본질은 유지하되 날마다 새롭게 변화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라고 말하면 독서한다가 예술한다와 동급이 되는 건가? 책을 읽는 행위가 곧 문학하는 행위이기에 또 문학은 예술의 한 장르이므로 독서는 지식습득이란 00한 목적을 탈피해 예술적 행위로 변화해야 한다. .....
늙어갈 용기를 읽다가 독서예술론으로 마감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