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지도 -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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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시도 나쁘지 않다.
특파원으로 세계를 떠돌던 '불행한' 남자 에릭은 '행복'을 찾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미국을 포함한 10개의 나라에서 '행복하십니까?' 라는 조금은 닭살 돋는 질문을 던지고 다닌다.

행복을 찾는 여행의 첫테이프를 끊는 나라는 바로 '네덜란드'다. 왜 아니겠는가. 행복을 연구로 끌어 올린 박사님을 찾아가기로 한 네덜란드에서 행복연구회에서 연구하는 박사님에게 각 나라의 행복지수들에 대한 정보를 구한다. 
1년의 시간동안 돌게되는 10개의 나라와 행복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네덜란드(관용)- 스위스(돈/시스템)- 부탄(도)- 카타르(돈/졸부) - 아이슬란드(술?)- 몰도바(불행)- 태국(마이펜라이) - 영국(안 행복) - 인도(그루) - 그리고 미국

이야기는 재미있게 풀어나가지만 의외로 술술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런만큼 이런저런 건질 이야기도 버릴 이야기도 많다. 

행복만큼 주관적인 것이 있을까. 그것을 연구한다는 것도, 행복한 나라를 찾아간다는 것도 허무맹랑해 보인다. 그가 만난 표본(?)들이 그 나라의 몇몇에 불과하기에 좀 믿기 힘든(혹은 싫은) 점이 있기도 하다. 썩소를 짓게 만드는 미국인 특유의 잘난맛을 보는 재수없음도 없지 않다. 

영국편에서는 런던 근교의 슬라우 마을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들어본다. 작년엔가 올해초인가에 나왔던 BBC 다큐 '행복'을 책으로 낸 <행복>이란 책에 나왔던 바로 그 마을이다. 그 책을 관심있게 봤다면, 비하인드 스토리와도 같은 이 책의 영국편도 궁금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랑해 마지 않는 영국이기에, 저자가 영국을 보는 관점이 맘에 안들긴 했다. 몇번 가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영국 사람들은 행복하다. 미국사람들처럼 '나는 행복해' 얼굴에 써붙이고 다녀야만 행복한건 아니다. 그건 외려 더 피곤할 수도 있다구. 

부탄과 카타르, 몰도바, 아이슬란드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 어느 여행서에서도 찾기 힘든 이야기들일 것이기에 이 책은 그 점에서는 상당히 가치 있다. 국민총생산지수 옆에 행복지수가 있다는 부탄, 석유로 무진장 돈을 벌었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는 않은 카타르, 20%의 카타르인들과 80%의 외국인들로 이루어진 그 나라의 계급과 차별은 '행복'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다. 돈을 3배 더 번다고 3배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라는 미국의 예도 함께 나온다. 러시아에서 분리된 몰도바라는 나라(처음에 목차를 봤을때 몰디브인줄 알았다.)는 루마니아인들이 사는 러시아였어서 러시아에 가면 '루마니아놈들' 루마니아에 가면 '러시아놈들' 이라며 어정쩡한 위치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문화도 없는 그런 처지에 돈도 지지리도 없는 나라이다. 몰도바 사람들이 읽으면 좀 많이 화났을 것 같다. 

가장 맘에 들었던 챕터는 아이슬란드이다. 개인적으로 아이슬란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데, 저자의 아이슬란드행은 그들이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행복'한 것에 대한 이유를 찾기 위한 여행이다. 결론이 무엇인지는 모호하지만,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더 맘에 들어져버렸다. 

|미국에 살다가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이 책의 말을 빌리면 '현지화'한) 제러드가 아이슬란드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말한다. 

   
  제러드는 땅에서 지열이 만들어낸, 황금처럼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커피나 마시러 오라며 남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특별한 화제가 없는데도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애정 담긴 목소리로 자기 나라를 '얼음 덩어리'라고 부르는 모습도 좋아한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국회의원 세 명의 이름을 금방 외울 수 있다는 점도 좋아한다. 상쾌한 겨울날 발밑에 밟히는 눈이 천국에서 만든 스티로폼처럼 사박사박 소리를 내는 것도 좋아한다. 12월에 시내 중심부의 쇼핑가에 늘어서는 성가대도 좋아한다. 강하고 눈부신 그들의 목소리가 밤을 돌려놓는다. 다섯 살짜리 아이들이 새까만 어둠 속에서 혼자 학교까지 걸어가도 안전하다는 사실도 좋아한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와중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의 마술 같고 초자연적인 느낌도 좋아한다. 차가 눈 속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게 됐을 때 항상 누군가 차를 멈추고 도와준다는 사실도 좋아한다. 비행기가 케플라비크의 국제공항에 내려앉으면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그저 집에 돌아온 게 기뻐서 박수를 치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하늘 같은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오만하지 않은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물론 어둠도 좋아한다. 그는 어둠을 그냥 견디는 수준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한다. 하지만 제러드가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건 사람을 틀에 가두지 않는 문화, 아니 적어도 사람이 이 틀에서 저 틀로 자유로이 오갈 수 있게 해주는 문화 속에서 사는 것이다. ' 
 
   

조금 길게 옮겼다. 아마 모든 나라가 맘에 들지는 않을 수 있지만, 나처럼 맘에 쏙 드는 나라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독서 성공. 

행복에 대한 갖가지 이론과 실험, 인용이 나오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행복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는 것도 내가 행복한가 자문해 보는 것도, 조금쯤은 행복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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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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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출판사의 저자소개에 나온 타임스의 인용처럼 '지금 세상에서 가장 강렬하고 뜨거운 사상가' 인 것은 맞는지 모르겠지만, '월가의 새로운 현자, 세계 금융위기의 권위자' 라기 보다는 파이터, 왕따.. 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저자가 평범하고 우매한 대중(여기는 수많은 학자들과 통계학도들을 포함한다.)에게 보내는 글은 어그레시브하다. 그래서 더 이야기가 되고, 더 많이 읽히는지도. 저자가 말했듯이. 

검은 백조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검은백조는 '극단값'이다. 이것은 과거의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기대 영역 바깥쪽의 관측값을 가리키는 통계학 용어이다.
둘째, 검은백조는 극심한 충격을 안겨준다.
셋째, 검은 백조가 극단값의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가 증명되면, 인간은 적절한 설명을 시도하여 이 검은 백조를 설명과 예견이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구세계의 사람들은 모든 백조는 희다.는 것을 굳게 믿었고, 다른 어떤 설명이나 상상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검은백조 한 마리가 조류 학자 앞에 나타나서 백조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뭐, 그런 이야기에서 만들어진 이론이다. 이것을 조류학의 센세이셔널한 이슈로 보지 않고, 저자는 거기에서 세상 어디에나 통하는 이론을 만들어냈다. '블랙 스완' 이론을.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 예기치 못한 것이 나타났을때/ 예기치 못한 일이 현실로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거기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다. 

저자가 눈에 불을 켜고 비판하는 것은 설명하고, 이론을 가져다 붙이는 '똑똑한' 인간들이다. '예견 불가능성'을 일절 용납하지 않은 인간의 우매함.이다. 

철학자를 꿈꿨던 저자답게 철학, 문학, 예술, 심리학, 과학 등등의 학문을 끌어와 꽤 괜찮은 문장으로 재미있고 쉽게 읽히는 글을 쓴다. 픽션인 이야기를 끼워 넣어(예브게니 어쩌구라는 여류소설가의 예) 더 쉽게 저자가 주장하는 검은백조 이론을 설명하고자 한다. ( 이부분에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결론은 '예측할 수 없는 것(블랙 스완)을 예측하라' 는 아이러니인데, 빠르게 변해가는 '극단적인 세계'일수록 검은 백조의 등장이 더욱 잦아지게 되고, 그것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검은 백조'가 나타났을 때, 패닉에 빠져서 그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상황을 지배해야 한다고 '충고' 하고 있다. 저자가 '검은 백조'를 대하는 방식은 '긍정적 검은 백조에 노출될 수 이을 때에는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긍정적 검은 백조는 피해가 적다. 반면에 나는 부정적 검은 백조의 위협을 받을 때에는 아주 보수적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지만, 결코 쉬워보이지 않는다만,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검은 백조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음으로서, 다가올 많은 무규칙적 예측불가 상황을 지배할 수 있도록, 인생의 기준을 스스로 결정하고, 경쟁의 질서 그 위에 서야 한다.

어떤 물리학자가 말했다는 '미래는 과거와 다르다' 는 명제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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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윈이 중요한가 - 진화하는 창조론자들에 맞서는 다윈주의자들의 반격
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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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나 굴드만큼 우리나라에서 유명하지는 않지만, 마이클 셔머 역시 일반인들을 위한 진화론과 과학사에 대한 책들로 유명하다. 왜 다윈이 중요한가. 진화론은 교과서에서 배우는 과학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은 그렇지가 않다. 종교계와 과학계 사이의 논란이 법정에서, 학교에서 치열한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종교권력은 만만찮은데, 교육에 별 관심이 없던, 너무 관심이 많아서 종교가 침투할 수 없건, 그닥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다. 아니면 너무 많은 문제 속에 묻혀서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로 보일지도..

이 책은 창조론자와 논쟁이 붙었을때의 총알이다. 왜 진화론이 맞는지. 왜 진화론이, 다윈이 중요한지에 대해 창조론의 논점과 진화론의 논점을 대비시키며 조목조목 이야기해주고 있다. 

"갈라파고스 생물 분포, 아메리카 화석 포유류의 형질에 너무 깜짝 놀란 나는, 종이란게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려 줄 만한 모든 종류의 사실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할 결심을 했다네." 바다에서 5년, 집에서 9년 동안 갖가지 '책 더미'를 파고든 결과, 다윈은 결국 이렇게 인정하게 되었다. "마침내 서광이 비쳤다네.(처음에 가졌던 견해와는 사뭇 대조되지만) 종은 결코 불변하는 것이 아님을 거의 확신하게 되었네(꼭 살인죄를 자백하는 것 같군)."
 
다윈이 쓴 편지다. 진화를 알고도 20여년 후에나 발표해야했던, 발표하고 나서도 지금까지 가장 큰 과학계와 종교계의 논란중에 하나인 진화론이니, 당시는 오죽했겠나. '살인죄를 자백하는 것 같다' 고 하였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셔머는 창조론자였다. .. 오타가 아니라, 1971년 고등학교때 거듭난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가 되고(1970년대 미국에서는 복음주의 운동이 세를 얻어가고 있었다.) 창조론자였으며, 대학원 시절에도 내내 창조론의 주장을 펼쳤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취해야 하며, 진화론은 틀린 것이여야만 했으나, 진화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때 저자의 느낌 역시 '살인죄를 자백하는 것 같았다.' 라고 한다. 

우리는 다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상 문화적으로 가장 반발이 심한 이론이라 해도 좋은 자연선택 이론은 '다윈혁명'이였고, 이 혁명이 과학과 문화에 일으켰던 변화는 어마어마했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종교와 과학의 싸움으로 번져왔는데,
창조론의 주요 논의를 만든 페일리의 논점은 '위에서 아래로' 설계한 존재, 신을 가정하는 것이었고, 다윈의 답은 '아래에서 위로' 설계한 가정, 자연선택을 가정하는 것이었다. 페일리와 같은 자연신학자들은 이것이 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여겼다.

시계공 이론
시계가 있으려면 분명 제작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언제 어딘가에, 우리가 사실상 답이라고 여기는 그 목적을 가지고 시계를 만들어 낸, 말하자면 시계의 구성을 이해하고 그 쓸모를 설계한 한 사람이나 여럿의 장인이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생명은 시계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래서 설계 추론이 더욱 힘을 발휘한다. 설계자 없는 설계는 있을 수 없다. 발명가 없는 발명품은 있을 수 없다... 설계의 낌새가 너무 강해서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다. 설계가 있으려면 반드시 설계자가 있어야 한다. 그 설계자는 틀림없이 어떤 인격일 것이다. 그 인격은 바로 신이다. 우리 곁에 진화론이 있어 온 세월보다 더 오랫동안 우리 곁에는 지적 설계를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있어 왔다.
 
진화론은 과학이다. '나는 중력을 믿는다' 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진화를 믿는다' 고 선언할 수는 없다.신을 믿는 것처럼 진화도 '믿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진화론에 반감을 느끼는 이유이다.

이 외에도 1.과학에 대한 일반적인 반감, 2. 진화가 특정종교의 교의에 위협이 된다는 믿음, 3. 진화가 인간의 가치를 훼손시킨다는 두려움, 4. 진화를 윤리적 허무주의와 도덕적 타락과 같은 선상에 둠 5. 진화가 인간이 고정된 본성을 지니고 있음을 함축한다는 과학적이지 않은 '우려'때문에 진화론에 반감을 느낀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가능한 관계들(충돌, 동일, 분리)중

요한 바오로 2세의 "창조론 논쟁의 맥락에서 둘이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육체와 영혼이 존재적으로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육체와 영혼이 서로 다른 실재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진화는 육체를 만들었고, 신은 영혼을 창조했다는 말이다.  신은 과학의 영토를 넘어서 있으며, 과학은 신의 영역 바깥에 있다." 가 가장 나의 구미에 맞는 가능한 관계로 보였다. 

진화에 대한 여러가지 증거들과 창조론에 대한 반박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논점들에 대한 반박과 그들이 진정 반박, 혹은 의문을 가져야할 진화론에서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까지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으니, 진화론과 창조론의 중간에서 선 독자들을 설득할만한 자연신학자가 나오기는 요원해보인다. 

다윈이 왜 중요하냐면 진화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진화가 왜 중요하냐면 과학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 왜 중요하냐면, 과학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뛰어난 이야기,
곧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해 주는 서사적 모험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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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인격의 심리학 -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놀라운 여행
리타 카터 지음, 김명남 옮김 / 교양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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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올 하반기 쏟아져 나온 심리학책들의 러쉬 속에서도 눈에 띄는 책이 바로 <다중 인격의 심리학>이다. 최근 나온 심리학책들에는 유전학, 신경과학, 그리고 뇌과학등이 함께 이야기되어 읽기에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인데, 이 책은 일단 읽기 쉽다. 저자인 리타 카터가 영국에서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의학칼럼니스트로 인기가 높은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우리가 '다중인격'하면 생각하는 범죄영화에나 나올법한 다중성을 다루고 있지 않다. '다중인격환자'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씩은 지니고 있는 '정상적인' 다중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중인격환자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기도 하다. 왜려 완벽한 단일인격, 이 책의 용어를 빌리자면 하나만의 주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특이한 것이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혹은 영화 아이덴터티에 나온 주인공들처럼 극단적인 다중인격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안의 주인격과 보조인격들, 인격의 다양성을 확인한다고 하더라도 이것들은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완전히 별개인 인격(개인)이 아니라 몸이 붙은 샴쌍둥이에 가깝다고 말한다. 자극에 동일하게 반응하고, 많은 일들을 공유하기 때문에 인격과 인격의 쉬프트를 정확하게 경계짓기는 어렵다. 그와 같은 이유로 우리가 인격 전환을 간과하기 쉬운 것이다. 저자가 인격전환의 단서로 들고 있는 것은 '목소리의 사소한 변화', '살짝 다른 어휘의 사용', '선 자세나 웃는 모습의 미묘한 변화' 등이다. 회사목소리와 집목소리가 달라서 '회사인격'이 따로 있다고 우스개소리로 말하는 것이 우스개소리만은 아닌 것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주 인격과 주인격과 어울리지 못해 주 인격으로 결합되지 못한 보조인격들이 있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동시에 외향적이고, 또 내성적일 수는 없지만, 보조인격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기에 특수한 상황에서 나오는 인격으로 볼 수도 있고(어떤 사람과 자꾸 다투고 싶다거나, 특정 상황에서 자꾸 폭식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습관), 특정 상황에서 나오는 인격이다보니 그 특정상황에서만 만나는 누군가인 경우 다른 상황에서 만나면 전혀 다른 인격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회사 동료와 주말을 보내며 익숙하지 않는 상황을 겪게 되는 경우, 부부동반으로만 보다가 다른 상황에서 보게 될 때, 등)   

1부에서는 인간이 다중성, 즉 다중인격을 갖는 것의 자연스러움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중인격 테스트(난 정상으로 나왔다.), 다중인격의 원인과 배경 등에 대해 나오고, 2부에서는 자신 안의 다중인격들을 '만나고' 통합 혹은 제거 하는 실습이 나온다. 흡사 사이코드라마와 같은 2부는 영화속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해 흥미진진하다.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다중성은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것을 방어기제라거나 가면이론을 가져다 붙이는 등의 수동적인 입장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보아서, 상황에 따라 다채로운 행동을 취하여 맞닥뜨리게 되는 환경에 따라 다른 '자아'를 투사하며 유연하게 상황에 적응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다중성이 지나쳐서 각각의 인격들이 완전히 분리되어 소통하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의 극단적 예가 다중성 인격장애, 해리성 정체장애이다.소설 속의 <빌리 멀리건> 같은) 이런 경우에는 정상적인 세상에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 것이다. 일상에서는 최소한의 연속성과 일관성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2부의 자신 안의 다중성을 분석함으로써, 각각의 인격들과 협력하고, 각각의 인격들이 소통하고 격려하게 하며, 컨트롤 할 수 있도록 한다.

'다중성'에 대해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던 것들이 명징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내 안의 보조인격들을 분리해서 보려는 노력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을 좀 더 잘 마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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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동경이였고, 언젠가는 신포도였고, 지금은 왠지 언젠가는 꼭 가야한다는 의무감마저 드는 그 곳, 파리!
여기 파리를 보는 조금 특별한 세가지 시선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애덤 고프닉 <파리에서 달까지 >

  제목부터 카피,컨셉, 표지까지 한없이 가벼워 보이지만, 그렇게 술술 넘기고, 다 읽었다 던져버릴 책이 아니라 꼭꼭 싶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애덤 고프닉은 파리에서 생활하는 뉴요커다.
그는 뉴요커출신 기자로 영화제작자인 와이프와 어린 아들과 함께
어릴때부터 동경의 장소였던 파리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각 챕터마다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읽을 맛이 나는 독자를 빨아들이는 글을 쓴다.
나는 정치나 시사 이야기를 찾아서 읽지는 않지만, 애덤 고프닉의 눈으로 바라본 프랑스 사회는 정치 이야기마저도 흥미진진하다.  

파리의 가장 좋은 곳에 있는 아파트들은 행정사물(시의 것)이라던가, 취업률이 낮은 것을 해결하기 위해 누가 슬쩍 한 번 꺼내본 '조기퇴직'에 온 국민이 열광한다던가.

그동안 숱한 여행책에서 뒤마고와 플로르카페 이야기를 읽었으나, 이 책에서만큼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었던 책은 없었다.
19세기 수학자의 3체문제 이야기를 슬쩍 던지면서 관심을 끌어내고, 왜 지금 마고가 아니라 플로르카페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두 카페의 성쇠에 빠리지앵의 오만, 타협, 특유의 쿨함, 파리스러움이 잘 드러난 글이었다.  마지막 마무리의 에지에서는 일어나서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 종종 들었을 정도다.   

 

 린다 <책 한 권 들고 파리를 가다>

프랑스에는 두 명의 군주가 있었다. 루이 16세와 사상과 예술의 국왕인 볼테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항상 마음 깊숙한 곳에서 후자의 발 아래 머리를 조아렸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가 프랑스이고, 파리가 파리인 이유다.  -188pg-  

중국인 저자 부부, 농부였고, 샹하이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고, 파리를 50여일간 여행하면서 이 책을 썼다. 그들의 의미 있는 책 한 권은 위고의 <93년>이다. 혁명의 시기를 지내야했던 50년대생인 둘은 위고의 책을 들고, 파리로 간다. 그들이 그곳에서 자취를 찾는 것들 역시 작가와 혁명과 깊이 관계되어 있다. 위고와 볼테르, 약간의 디킨스와 발자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나오기도 하고(다빈치는 프랑스에서 살다가 죽었고, 무덤도 프랑스에 있다.), 나폴레옹의 이야기도 나온다. 혁명귀족 라파예트, 자코뱅클럽을 찾는 이야기같은건 꽤 흥미로웠다. 혁명, 문학, 귀족, 정치가, 파리, 파리의 건축( 둘 중 하나는 건축을 전공했다. 건축에 대한 이야기들도 쏠쏠하다.) 등등  

가장 맘에 들었고, 신선하게 여겨졌던건( 이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해서, 아마 이 책을 내 글 읽고 보게 된 사람들한테는 하나도 안 신선할듯 ^^;) 부부가 그린 그림들. 한 명이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그렸다고 한다. 부부라서 닮아가나?  멋진 부부  

이 책, 편집도 좀 독특하다. 여행에세이라기보다는 인문서에 가까운 느낌이라 그런지, 약간 모험적인 편집. 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 그림 보기 ---------------------------------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저자가 쓴 책. 이 책에서는 학생이고, 그림도 팔고, 그리 많지 않은 나이(로 생각되는데)이다. 글보다는 그림과 사진이 재미났던 책. 많은 발품을 팔아서 꾸렸을테고, 이 책을 가지고 가는 '화가들을 사랑하는 여행자'는 조금 덜 발품을 팔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문 작가의 맛깔스러운 글은 아니지만,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여전히 새롭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에펠탑을 싫어하는 화가, 좋아하는 화가 이야기를 하며 에펠탑 그림과 사진을 넣는다거나. 하는 식의 지루하지 않은 접근들이 글이고 그림이고 사진이고 딱히 흠잡을 곳 없이 술술 넘어가면서도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다. 저자가 이 글 쓸 때 어린 나이였던 것 같은데, 꽤 진중한 성격인듯.

류승희 <화가들이 사랑한 파리>

 

표지에 별 생각이 없었는데, 다 읽고 나니, 아 이거, 싶다. 아마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보자마자 알겠지만서도;; 약간 비스듬한 상단과 하단은 하단은 그림이고, 상단은 그 그림이 그려진 시점/위치의 사진이다.  

표지처럼 재미날정도로 과거와 똑 같은 파리의 건물과 거리들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아마도 여전히 똑같을 거리와 건물을 각각의 화풍으로 표현해낸 화가의 그림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어, 너무 단순해서 지루한 경우를 피했다.  

 
마티스의 노트르담

------------------------------- 그림 더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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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8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9-11-28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 컴퍼니 책이 두 권이나 읽는데, 멋지다- 하고 사서, 손도 안 되고 있어요; 전 그닥 파리에 대한 로망 같은 건 없었는데 말이죠. 이번에는 어쩌다보니, 없던 로망도 불끈불끈 생기네요.

헤밍웨이책은 ... 제가 오늘 사려고 찜해둔 책 찾으려고 검색하니, 가장 먼저 나왔던 바로 그 책이네요. 아마 오늘 처음 본 책인데, 이렇게 하루에 두 번이나 만나다니. 책연인가요? ㅎㅎ

2009-11-28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9-11-28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혹시 이 책인가요? 저 이 책 읽었어요. 오래전이라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요. 번역이 엉망이었다는 이야기도 기억나네요.

에이프릴 2009-11-29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파리 ~ 내년에 기필코! 저 요즘 불어과외해요 ㅋㅋ 근데 과외선생님이랑 노느라 공부가 늘지를 않아요 ㅋㅋ

Kitty 2009-11-29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허나 저도 지금 이거 읽고 있는데 ㅎㅎㅎㅎ
파리에서 달까지, 화가들이 사랑한 파리, 백야의 페쩨르부르크에서 이렇게 3개 같이 읽고 있는데
파리갔다가 러시아갔다가 왔다갔다 하느라 아주 다리가 아파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