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지도 -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이런 시도 나쁘지 않다.
특파원으로 세계를 떠돌던 '불행한' 남자 에릭은 '행복'을 찾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미국을 포함한 10개의 나라에서 '행복하십니까?' 라는 조금은 닭살 돋는 질문을 던지고 다닌다.

행복을 찾는 여행의 첫테이프를 끊는 나라는 바로 '네덜란드'다. 왜 아니겠는가. 행복을 연구로 끌어 올린 박사님을 찾아가기로 한 네덜란드에서 행복연구회에서 연구하는 박사님에게 각 나라의 행복지수들에 대한 정보를 구한다. 
1년의 시간동안 돌게되는 10개의 나라와 행복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네덜란드(관용)- 스위스(돈/시스템)- 부탄(도)- 카타르(돈/졸부) - 아이슬란드(술?)- 몰도바(불행)- 태국(마이펜라이) - 영국(안 행복) - 인도(그루) - 그리고 미국

이야기는 재미있게 풀어나가지만 의외로 술술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런만큼 이런저런 건질 이야기도 버릴 이야기도 많다. 

행복만큼 주관적인 것이 있을까. 그것을 연구한다는 것도, 행복한 나라를 찾아간다는 것도 허무맹랑해 보인다. 그가 만난 표본(?)들이 그 나라의 몇몇에 불과하기에 좀 믿기 힘든(혹은 싫은) 점이 있기도 하다. 썩소를 짓게 만드는 미국인 특유의 잘난맛을 보는 재수없음도 없지 않다. 

영국편에서는 런던 근교의 슬라우 마을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들어본다. 작년엔가 올해초인가에 나왔던 BBC 다큐 '행복'을 책으로 낸 <행복>이란 책에 나왔던 바로 그 마을이다. 그 책을 관심있게 봤다면, 비하인드 스토리와도 같은 이 책의 영국편도 궁금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랑해 마지 않는 영국이기에, 저자가 영국을 보는 관점이 맘에 안들긴 했다. 몇번 가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영국 사람들은 행복하다. 미국사람들처럼 '나는 행복해' 얼굴에 써붙이고 다녀야만 행복한건 아니다. 그건 외려 더 피곤할 수도 있다구. 

부탄과 카타르, 몰도바, 아이슬란드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 어느 여행서에서도 찾기 힘든 이야기들일 것이기에 이 책은 그 점에서는 상당히 가치 있다. 국민총생산지수 옆에 행복지수가 있다는 부탄, 석유로 무진장 돈을 벌었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는 않은 카타르, 20%의 카타르인들과 80%의 외국인들로 이루어진 그 나라의 계급과 차별은 '행복'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다. 돈을 3배 더 번다고 3배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라는 미국의 예도 함께 나온다. 러시아에서 분리된 몰도바라는 나라(처음에 목차를 봤을때 몰디브인줄 알았다.)는 루마니아인들이 사는 러시아였어서 러시아에 가면 '루마니아놈들' 루마니아에 가면 '러시아놈들' 이라며 어정쩡한 위치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문화도 없는 그런 처지에 돈도 지지리도 없는 나라이다. 몰도바 사람들이 읽으면 좀 많이 화났을 것 같다. 

가장 맘에 들었던 챕터는 아이슬란드이다. 개인적으로 아이슬란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데, 저자의 아이슬란드행은 그들이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행복'한 것에 대한 이유를 찾기 위한 여행이다. 결론이 무엇인지는 모호하지만,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더 맘에 들어져버렸다. 

|미국에 살다가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이 책의 말을 빌리면 '현지화'한) 제러드가 아이슬란드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말한다. 

   
  제러드는 땅에서 지열이 만들어낸, 황금처럼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커피나 마시러 오라며 남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특별한 화제가 없는데도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애정 담긴 목소리로 자기 나라를 '얼음 덩어리'라고 부르는 모습도 좋아한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국회의원 세 명의 이름을 금방 외울 수 있다는 점도 좋아한다. 상쾌한 겨울날 발밑에 밟히는 눈이 천국에서 만든 스티로폼처럼 사박사박 소리를 내는 것도 좋아한다. 12월에 시내 중심부의 쇼핑가에 늘어서는 성가대도 좋아한다. 강하고 눈부신 그들의 목소리가 밤을 돌려놓는다. 다섯 살짜리 아이들이 새까만 어둠 속에서 혼자 학교까지 걸어가도 안전하다는 사실도 좋아한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와중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의 마술 같고 초자연적인 느낌도 좋아한다. 차가 눈 속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게 됐을 때 항상 누군가 차를 멈추고 도와준다는 사실도 좋아한다. 비행기가 케플라비크의 국제공항에 내려앉으면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그저 집에 돌아온 게 기뻐서 박수를 치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하늘 같은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오만하지 않은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물론 어둠도 좋아한다. 그는 어둠을 그냥 견디는 수준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아한다. 하지만 제러드가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건 사람을 틀에 가두지 않는 문화, 아니 적어도 사람이 이 틀에서 저 틀로 자유로이 오갈 수 있게 해주는 문화 속에서 사는 것이다. ' 
 
   

조금 길게 옮겼다. 아마 모든 나라가 맘에 들지는 않을 수 있지만, 나처럼 맘에 쏙 드는 나라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독서 성공. 

행복에 대한 갖가지 이론과 실험, 인용이 나오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행복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는 것도 내가 행복한가 자문해 보는 것도, 조금쯤은 행복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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