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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적 킬러의 고백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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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랜만에 읽은 세풀베다의 소설. 이 책에는 '감상적 킬러의 고백'과 ' 악어' 두 작품이 실려 있다. 두 작품 다 추리소설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에서는 당연히 '킬러'가 주인공이고, DEA가 나오며, 마약상이 나온다. '악어'의 주인공도 과거 강력반 형사/인터폴 출신의 보험회사 직원과 형사들이니 등장인물의 면면만 보더라도 추리소설같지 않은가? 추리소설적인 구조에  행동하는 지성으로, 환경작가로 이름 날리는 루이스 세풀베다이다보면 뭔가 멋진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가?

'감상적 킬러의 고백'- 시종일관 영화화면 넘어가듯 책장이 넘어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킬러이다. 실패라고는 모르는 킬러. 그리고 프랑스 계집. 이 나이차이나는 관계는 분명 나에게 레옹과 마틸다라는 프랑스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그가 '킬러'라고 할때 '레옹처럼요?' 라고 하는 장면도 소설 속에 나온다. 실패라곤 모르는 킬러가 '감상적'인 것은 짐잠할 수 있듯이 그 프랑스 계집 때문이다. 그녀를 기다리는 어느 호텔방. 그녀의 전화를 받는다. '특이한 남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졌어요. 이주 있다가 돌아갈께요.지금은 이 남자가 좋아요.' 애니띵 엘스의 크리스티나 리치 버금가는 뻔뻔스러움이다.

킬러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용서할 수 없다. 그녀의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을때마다 실수하고, 결국 처음으로 맡은 일에 실수를 하고 만다. 그는 실업자가 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실수를 무마하고 업계를 떠나기로 한다. 원래대로라면 50살에 은퇴해서 바닷가에 집을 짓고 프랑스 계집을 데려가서 살았을 노후를 갑자기 내던져지듯이 그 자신의 의도에 반하여 실업자가 되어 버린다.

그는 결국 임무를 완수하는가?

'악어' - 칠레의 강력반 형사출신인 '나'는 지금은 스위스의 보험회사 직원이다. 보험회사의 VIP고객인 피혁회사의 사장이 사고사나 자연사가 아닌 타살당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이탈리아로 파견된다. 그는 자연사가 아닐뿐더러, 그를 죽인 범인까지 찾게 되는 '나'.

두 작품 다 세풀베다의 사회적 메세지를 담고 있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에서는 좀 약하고 방법도 옳지 않아 보이긴 하지만, 미국의 멕시코탄압에 대한 복수. 그리고 '악어'에서는 뭐, 제목이나 피해자가 피혁회사인 것에서 쉽게 눈치챌 수 있듯이 아마존의 자연생태계 보호이다. 그 자연 생태계 속의 원주민들은 그들의 언어에서 그들은 ' 물에서 온 사람'이고 그들이 접하게 되는 현대문명의 탈을 뒤집어 쓴 밀렵하는 인간은 ' 물을 증오하는 사람'이다.

루이스 세뿔베다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특히 더 낫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확실히 재미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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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3-01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연애소설 읽는 노인'만 읽었는데, 보고 싶군요. 올해 안에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하이드 2005-03-0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구 끝의 사람들하구, 갈메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도 재밌어요 ^^ 파타고니아 찬가는 자전적인 이야기인데, 좀 지루했지요.
 
아저씨의 꿈 외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재만.박종소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도스또예프스끼는 내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였다." 고 니체는 말한다.

러시아 작가의 소설들은( 이라고 일반화 하는건 옳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서도) 보드카와 같다. 무색의 강렬함이다. 차갑게 넘어가지만, 삼키고 나면 뱃속에서 불이 난다.

강렬한 성격의 주인공들은 그러나 보기에 유럽식의 로맨스와도 중남미의 뜨거움과도 비슷하지조차 않다.

이 책에는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와 '아저씨의 꿈' 이라는 한 편의 미완성 장편과 한편의 중편이 나온다.

도스또예프스키의 창작활동을 보통 3기로 나누는데,이 책은 그 중 중기에 속한다. 1기는 그가 일약 무명의 청년에서 그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 로 24세의 나이에 평론가의 극찬과 더불어 화려한 작가의 길로 들어서고 사회주의 이론과 혁명적 사상을 옹호하고 당대 러시아 상황에 대한 비판적 모임이었던 뻬뜨라셰프스끼 서클의 회원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당할 때까지의 기간이 이 기간에 해당한다. 이후 4년간의 유형 생활을 마치고 복직되면서 작품 활동을 재개하여 중,단편소설을 발표하던 기간이 그의 창작활동 기간중 중기에 속하고, 도스또예프스키의 자아의 정수가 표현되었다고 하는 1864년의'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부터 그의 생의 마지막 대표적 장편소설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 이르는 기간이 그의 창작의 마지막 시기가 된다고 대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중기에 속하는 작품들이 여러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의 글들에서 모티브를 따온것이 분명해 보이는 짜집기식의 스토리에 그 완성도로서도 일반적으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음과 같은 점을 보면 나름대로 재미있게 일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후에 읽을 도스또예프스키 작품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악령', '죄와 벌' 그리고 '백치' 등에서 등장하게 되는 도스또예프스키의 전형적인 인물상들을 미리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네또츠카에서 등장하는 까챠의 모습.

'여러분도 한번 이상적이라 할 만큼 매력을 지닌 인물. 충격을 줄 정도로 눈에 번쩍 띄는 미인을 상상해 보라. 그런 사람을 보게 되면 어러분은 무엇에 찔린 것처럼 기분좋게 당황하다가 환희에 흠칫 몸을 떨며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될 것이다.'

어린 까챠의 모습은 유형이후 도스또예프스키 작품에 등장하는 도도한 여성상의 선구가 된다. ( '노름꾼'의 뽈리나, '백치'의 나스따시야 필리뽀브나,'악령'의 리자 그리고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까쩨리나 이바노브나. 그리고 '아저씨의 꿈'의 지나의 모습도.  그리고 이에 대비되는 '죄와 벌'의 소냐, '미성년'의 소피아, '악령'의 다사에게서 나타나는 온화한 여성상의 모습을 우리는 네또츠까나 3부에 나오는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둘째, 전집 두권씩으로 나온 한 번 말하기 시작하면 두장도 넘어가는 후기의 주옥같은 장편소설에 비해 짧다. 맛뵈기로 읽을만하다. 그리고, 평소 러시아 소설을 안 읽다가 '까라마조프' 같은 책을 읽으면 체하기 십상이니, 체해버리고 도스또예프스키 같은 그러니깐 니꼴라이 베르쟈예프라는 사람이 말하길 ' 도스또예프스끼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러시아 민족의 존재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는 정도의 이 초인간의 초작품들을 던져버리고, 죽을때까지 쳐다보지 않는 것보다는 중기의 중,단편들부터 접해도 무리 없다.

셋째, 내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에서 항상 놀라워하고 느끼는 바는 인간의 심리묘사이다. 그런면에서 니체가 말한 '도스또예프스끼는 내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였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아저씨의 꿈'에서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가 남편을 어서 빨리 모르다소프로 데려가서 공작을 시골로 모셔가기 위해, 남편이 있는 시골로 가며 조급해 하는 장면이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마음속에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만큼 묘한 불안이 계속해서 엄습해 오는 것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는 것을 필자는 숨기지 않겠다. 이런 심정은 참다운 영웅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그들이 정작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찰나에 느끼게 되는 그러한 기분인 것이다. 어떤 종류의 본능이 그녀에게 모르다소프에 그냥 있으면 위험하다고 소곤거려 준 것이었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자기 손을 비비면서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하긴 어려움이라야 그리 대수로운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손을 쓸 수도 있긴 했지만, 문제는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모든 것을 정복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만큼 욕심이 강한 스스로의 성질을 아무래도 억누를 수가 없다는 데 있었다. 그녀는 자기의 성질을 끊임없이 아파나시 마뜨베이치에게 퍼붓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전제(專制)를 하게 되면 마침내 그것이 습관화되고 습관은 필요로 변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로는, 아시다시피 상류 사회에 속하는 우아한 귀부인 가운데는 무대 뒤로 가면 살롱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언동을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

넷째, 이것저것 짜집기 했으니깐, 어쨌든 재미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다 읽고, 뒤에 작품해설을 읽고 있자니, '아저씨의 꿈'은 블랙코메디로 쓰여진 것이란다. 블랙코메디! ... 뭐,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미국식,유럽식 블랙코메디에는 익숙한 나이지만, 도스또예프스키의 블랙코메디라. 키득. 하며, 다 읽고, 괜히 다시 재미있어했다.

사족 : 러시아 작품 속의 등장인물 이름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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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3-01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참 잘 쓰셨네요. 제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이다보니, 기대치가 너무 높았었는지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아저씨의 꿈은 솔직히 별루였었는데요. (타 작가들의 책과 비교했을때는 상당히 좋은 작품이겠죠. 헤헤) 정말 인물 묘사/심리 묘사들이 참 대단한거 같아요. 근데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돌아온 후부터는 자꾸 검열을 의식해서인지, 본인 스타일대로 쓰지 못하고 저런식의 코메디 물이나 쓰려고 했던 청년 도스토예프스키가 안쓰럽게 느껴지더군요. 역시 도스토예프스키는 확실히 단편보단 장편에서 실력 발휘하는 것을 느꼈던 책이었습니다.

하이드 2005-03-0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감사합니다. 사실 리뷰쓰기 좀 막막해서 미뤄놨었는데, kel님 정말 그럴까요? 다른 나라 애들 이름 들으면, '애게, 그게 다야?' 할까요? 흐흐흐
perky님 ^^a 장편에 대한 첫시도였다고 하니, 그것에 의미를 두고 읽어나갔는데, 꽤 재미있더라구요.
 
독일인의 사랑 대교북스캔 클래식 4
막스 뮐러 지음, 김시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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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쯔 제목하고는.

막스 뮐러는 슈베르트의 가곡으로 유명한 '겨울나그네'의 원작자 빌헬름 뮐러의 아들이다. 그는 작가이기보다는 학자였다. 이 작품은 유일한 그의 작품이다. 학자로 지내다가 재미로 썼던가, 아니면, 학자로 지냈으나, 문학에 대한 열정이 있었거나, 아니면, 어느날 문득. '문학'의 신님이 잠시 강림하셔서 그의 손끝을 빌리셨던가. 그것도 아니면, 작품에 나오는 것 같은 '사랑'을 꿈꾸거나, 경험했거나.

책을 읽으면서 '왜 이 책을 썼을까?' 고민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왜 나는 이렇게 사서고민 하고 있는건지.

'독일문학은 재미없다.' 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적어도 이 책을 에스키벨의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이나 보통의 책들처럼 재미있게 읽어내려가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재미를 붙이려고 노력을 해본다면, 예를들면 토마스 만의 '마의 산' 같은 책을 정말 힘겹게 힘겹게 읽어내고나서 이 책을 들으면, 150페이지정도 되는 이 책에 나오는 사랑이야기쯤은 가벼운 산책처럼 산뜻하고 흥겨웁게 읽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서양의 중세 경건주의를 바탕으로 동양의 불교적인 신비주의,범신론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쓴 이 책은 독일인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적인 사랑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소설이다.

일생을 병상에서 보내온 공녀 마리아. 그리고 그 옆집에 살던 평민인 소설속의 주인공 '나' .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알고보니 그녀도 '나'를 사랑한다. 그렇게 둘은 사랑을 확인하고 그 다음날 허무하게도 '그녀'는 죽는다. 하지만 관념소설답게도 '하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남아있다. 한 방울의 눈물이 대양에 떨어지듯 그녀에 대한 사랑은 인류라는 대해에 떨어져 몇백 만의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어 그들을 에워싸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내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수 백만의 낯선 사람들을. ' . 하며 끝까지 '사랑'에 대해 '상념'하고 ' 고뇌'한다.

책의 머리말이자 프롤로그는 막스 뮐러가 고인이 된 친구의 편지들을 발견하고 그 내용을 보게 된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니깐, 그 친구는 이 소설의 주인공 ' 나' 이다.) 1장에서 8장까지 있는데, 각 장은 '첫번째 추억' 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추억'으로 끝난다.

소설 속의 두 주인공들은 관념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고, 시인의 '시'로 이야기 한다. 예를들면 워즈워드의 이 시를 읽어보세요. 하는 식으로.

쉽게 넘어가는 책만 읽다가 읽어낸 이 책은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좀 버거운 독서경험이었지만, 몇권 더 읽으면, 다시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재미있었을' 때도 분명 있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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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2-27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전 이책 예전에 읽었는데..
음 찾아보아야 겠네요..
그때 읽고 너무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님덕에 다시한번 보아야 겠습니다,,,,

비연 2005-02-2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땐가 읽었었죠..그 땐 어린 마음에 참 좋았다는 기억이 남아있는 책입니다.
지금 읽으면 어떨런가..모르겠네요...^^;;
 
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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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어제 서울에 (사실상) 첫눈이 내렸다. 눈다운 눈이 내렸단 말이다. 그리고 잠깐잠깐 내렸던 눈은 내가 집에 쳐박혀 있을때만 와서, 뉴스에서나 볼 뿐이었다. 폭설에 차량정체인 강원도 저 곳은 우리나라인가? 눈발을 맞으며 새벽길을 나서는데, 문득 화가 치밀어올랐다. 카페인이 들어가기 전인 잠결이였지만, 그 감정은 분명 '분노' , '화' 로 분류될 수 있었다. 이런 날은 산에 가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으며 그 감촉을 발바닥 뿌리부터 느끼며, 산의 침묵을 들어야 하는데, 이따금 나뭇가지가 얹힌 눈이 버거워 털어내면 나뭇가지위의 그것이 바닥에 쌓인 더 많은 눈 위에 조금은 거칠게 내려앉는 소리만 들릴뿐인 그런 산을 타야하는데. 예전 어느 구정에 산과 눈과 까치와 하늘밖에 없었던 겨울 한라산에서처럼. 혹은 언제나 공상만 하는 겨울바다에 가야하는데, 검은 바다가 꿈틀대고, 하얀 눈발이 그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파도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들어줘야 하는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 설국' 을 읽으며, 나는 눈의 고장에 들어갔다 나온것 같았다.  '내 소설의 대부분은 여행지에서 씌어졌다. 풍경은 내게 창작을 위한 힌트를 줄 뿐 아니라, 통일된 기분을 선사해 준다. 여관방에 앉아 있으면 모든 걸 잊을 수 있어 공상에도 신선한 힘이 솟는다. 혼자만의 여행은 모든 점에서 내 창작의 집이다' 그래. 하나가 빠졌다. '설국'에서 시마무라는 고마코와 함께이지만, 어느 노소설가처럼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혹은 어느 방황하는 철이 덜든 어른처럼 '혼자' 여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작품은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구상된 것이 아니였고 작가의 같은 소재로 씌어졌던 단편들이 모여 연작형태의 중편 '설국'으로 탄생하였다. 그렇기에 1장 2장의 표시도 없는 이 책을 읽다보면,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만나고 있다가, 어느 순간 오랫동안 그녀를 찾지 않았고,1년만에 만난 그녀는 게이샤가 되어 있었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어느 순간 다시 1년이 지나 가을에서 겨울이 되는 눈고장이 나오고. 그렇다.  그러나 그 해나, 그 전해나, 그 전전해나, 그다지 다를 것은 없다. 겨울이면 눈이 오고, 기온이 내려가고, 춥고, 그녀는 얼굴이 빨개져서 연회를 다니고, 그는 산골 눈마을의 여관을 찾아 '고마코'를 만난다.

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컸다. 그는 그 마음을 다 알고, 그녀가 너무도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안타까웠지만, 그녀의 사랑을 헛수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그 자신의 생각에 또 더 애틋해하고, 사랑하고, 안타까워한다.

별로 그렇지는 않았다. '설국' 이라는 눈냄새 물씬 나는 이 책을 물이 얼어서 무거워져서 떨어져 내린 이 하얀 얼음덩어리들을 보면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이 책을 꺼내 읽은 것은 늦은 밤이였고, 그 다음날에는 (사실상 나에게는) 첫눈을 만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 여름에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이 책으로 피서하려하기보다는 이 추운 날들이 다 가기전에 한두시간이면 읽어낼 수 있는 이 짧은 중편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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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2-24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고나니까 저도 눈이 그리워집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겨울에 비만 내리고 있어요. 일주일에 4~5일씩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데 몇달째 이러니까 우울해지려고까지 해요. (샌프란시스코의 겨울은 정말 최악입니다.ㅠㅠ)

하이드 2005-02-24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 사람. 가스자살 했더군요. 소설과 맞물려 뭐가뭔지 모르겠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계시는군요~! 다들 살고 싶어하는 곳인데, 아, 근데, 그지역은 비 잘 안오고 맨날 맑은날인거 아니에요? 흐흐

perky 2005-02-24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작가들 중에 유독 자살한 사람이 많은 거 같아요. (자살을 하나의 '미학'으로 여겨서 그러는건지..) 샌프란시스코는 겨울이 우기랍니다. 거의 5월부터 10월까지는 비가 한방울도 안 내리다가, 11월에서 2월동안 비가 몰아서 내린다지요. (일주일에 3~5일 비가 내리니, 참으로 음산한 날씨의 연속입니다.)

하이드 2005-02-24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제가 딱 좋아하는 날씨인걸요? 전 하늘이 구름 한점 없이 맑으면 막 화나요. ( 직장인병인걸까요? 하늘은 맑고, 다들 즐기는데, 나는 회사로. ) ^^ ;; 아무튼 하늘에 구름이 뭉게뭉게 혹은 런던의 하늘처럼 비장한! 그런게 좋아요. 비오고 음산한 날씨. 좋은데. 아무래도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거겠지요? 그럼 전 '우울해지는걸' 즐기는걸까요? 설마? 헉.
 
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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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제목은 신경숙씨의 '스무살에 만난 빛' 을 패러디한거다.

굉장히 멋져 보이는 연회색( 어쩌면 살때는 하얀색이었을지도 모르는) 하드커버의 김승옥 소설전집이다.오프라인에서 사려들었기에,( 사람 손을 너무 타서 꼬질꼬질한 것이 1,2권이 있었다.)  벼르고 벼르다 읽기 시작했다. 착실하게 표지, 책날개, 작가의말, 목차 본문, 뒷책날개, 뒷표지 읽어내는 편인데, ' 작가의 말' 에서 고민이 몰려왔다. 아무튼 목차를 보니 단편이 하나, 둘, 셋,,, ,무려 열다섯개나 실려 있다.

김승옥에 대한 진짜인줄 알았던 허구: 박통때 있지, 김승옥이 글을 너무 잘써서 박통이 호텔에다 잡아 놓고 글 쓰라 그랬대. 왜 호텔방에 가둬놓고 글좀 써라 하고 싶은 작가 있잖아? 근데, 박통이 그랬댄다. 그런데, 요절해서 작품이 몇작품 없대지, 아마?

누구랑 누구를 헷갈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2004년도에 책까지 내시고 펄펄하니 계시다. 호텔방 이야기는 사실. 박통때. 이어령 문화부장관이 서린 호텔에 방 잡아 놓고 ( 그렇다고 안기부 직원들을 막 문 앞에 세워놓고 그런거 아니고,그런거 상상했었다.) 옆방에 편집자 데려다 놓고 감시 아닌 감시를 시켰다는 것이다. 그의 경험은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단편 '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 에 잘 나와 있다. (어디서부터가 논픽션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알 수 없지만, 순간 작가의 말이 뒤에 또 나온줄 알았다. )

어렴풋이 생각해보는 것이 김승옥의 '무진기행' 이 교과서에 나왔었고, 수능 문제에도 자주 나왔었고, 뭐, 그런거. 문화부 장관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작가여서 그 빽도 있었던걸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해본다.

교과서에 나오면 무조건 싫었던 '나' 에게 열아홉, 수능기출문제단편소설로만 여겨졌던 '무진기행' 이( 근데, 이 책 청소년이 읽어도 되나? 이런말 하는거 보면 나 좀 많이 나이가 들어버린것 같기도 하고 ) 스물 아홉 내 손에 다시 들어왔다. 무진기행은 중간에 나오고, 정말 신이라도 내린듯한 김승옥의 글빨( 표현이 경박하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의 버라이어티인 이 책의 열다섯개나 되는 단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무진기행'이다. 이런 내용이였던가? 내 머리 속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던 것은  무진의 안개.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 오는 여귀가 뿜어서 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

누구나 마음 속에 '무진'을 가지고 있다. 그곳으로 도피하거나, 그곳에서 치유당하거나, 그곳에서 위안과 안심을 얻거나간에. 그 곳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장소일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고 각자의 관념속에만 존재하는 곳일 수도 있겠다.

그 밖의 단편들 중 '싸게 사들이기' 에서는 헌책을 싸게 사는 방법이 나온다. 곰보 영감의 헌책방에서 갖고 싶은 책에 침을 발라서 찢어내어 ( 인디안지일경우는 빙고다) 챙겨놓고, 나중에 책이 이렇게 많이 찢어졌는데 누가 사가겠소 하면서 싸게 책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 와서 찢어놓은 부분을 테이프로 붙혀서 승리감에 빠져 재미있게 보는거다.

''역사' 에서는 '찢어지게 가난한 하숙방에서 막노동꾼, 창녀, 술에 쩔은 절름발이 사내와 그 딸 등을 이웃하고 살다가 '규칙적'이라는 이름의 집에 ' 규칙적' 이라는 사람들에 둘러쌓여 살게 되면서, 그 극과 극 사이에서 갈등하는 백수의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그 비슷한 백수가 '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에도 나와서 모든 건물과 그 건물의 직선은 몬드리안에서 그쳐버렸다는 고정관념, 일본 카드에 나와 있는 빨간 해와 그 옆에 금빛으로 찍혀있는 글씨를 보고 일본 사람들은 금빛을 좋아하나보다는 고정관념등등을 주저리는 것도 볼 수 있다.

폭력과 희생자 ( 사람이기도 혹은 동물이기도 ) 에 대한 불쾌감을 자극하면서도 뭐라 욕하고 싶은 맘이 가득하면서도,  꼭 집어서 명쾌하게 '이런 죽일놈' 할 수 없는 찝찝한 감정들이 생기게 하는 '건' , '염소는 힘이 세다', '야행' 등과 같은 단편도 있다.

본인의 경험이 십분 반영되었을듯한 ' 차나 한잔' 과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 와 같은 작품들도 있다.

어느것 하나 버리고 싶지 않고, 되새겨서 읽어도 또 좋을 것 같은 우리 작가의 단편을 만난다니 반가운 일이다.

벌써부터 두번째 전집 ' 환상수첩'을 읽을 생각에 기대감에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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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2-24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승옥 소설하면, '아련함' '우수' 뭐 이런 단어들이 떠올라요. 왠지 로맹가리랑 느낌이 비슷한 작가인거 같아요.

하이드 2005-02-24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멩가리. 아직 아껴두고 있답니다. perky님 리뷰 읽고, 너무 읽고 싶어서 냉큼 샀는데, 막상 사니깐, 아껴두게 되요. ( 미뤄두는거 아니고요~~~!) 이렇게 아껴두고 있는 책은 로멩가리랑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메뚜기요. 그리고 코넬 울리치의 상복의 랑데부, 등등. 몇개 있네요. 김승옥 전집은 아직도 네권이나 남아서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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