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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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제목은 신경숙씨의 '스무살에 만난 빛' 을 패러디한거다.

굉장히 멋져 보이는 연회색( 어쩌면 살때는 하얀색이었을지도 모르는) 하드커버의 김승옥 소설전집이다.오프라인에서 사려들었기에,( 사람 손을 너무 타서 꼬질꼬질한 것이 1,2권이 있었다.)  벼르고 벼르다 읽기 시작했다. 착실하게 표지, 책날개, 작가의말, 목차 본문, 뒷책날개, 뒷표지 읽어내는 편인데, ' 작가의 말' 에서 고민이 몰려왔다. 아무튼 목차를 보니 단편이 하나, 둘, 셋,,, ,무려 열다섯개나 실려 있다.

김승옥에 대한 진짜인줄 알았던 허구: 박통때 있지, 김승옥이 글을 너무 잘써서 박통이 호텔에다 잡아 놓고 글 쓰라 그랬대. 왜 호텔방에 가둬놓고 글좀 써라 하고 싶은 작가 있잖아? 근데, 박통이 그랬댄다. 그런데, 요절해서 작품이 몇작품 없대지, 아마?

누구랑 누구를 헷갈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2004년도에 책까지 내시고 펄펄하니 계시다. 호텔방 이야기는 사실. 박통때. 이어령 문화부장관이 서린 호텔에 방 잡아 놓고 ( 그렇다고 안기부 직원들을 막 문 앞에 세워놓고 그런거 아니고,그런거 상상했었다.) 옆방에 편집자 데려다 놓고 감시 아닌 감시를 시켰다는 것이다. 그의 경험은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단편 '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 에 잘 나와 있다. (어디서부터가 논픽션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알 수 없지만, 순간 작가의 말이 뒤에 또 나온줄 알았다. )

어렴풋이 생각해보는 것이 김승옥의 '무진기행' 이 교과서에 나왔었고, 수능 문제에도 자주 나왔었고, 뭐, 그런거. 문화부 장관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작가여서 그 빽도 있었던걸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해본다.

교과서에 나오면 무조건 싫었던 '나' 에게 열아홉, 수능기출문제단편소설로만 여겨졌던 '무진기행' 이( 근데, 이 책 청소년이 읽어도 되나? 이런말 하는거 보면 나 좀 많이 나이가 들어버린것 같기도 하고 ) 스물 아홉 내 손에 다시 들어왔다. 무진기행은 중간에 나오고, 정말 신이라도 내린듯한 김승옥의 글빨( 표현이 경박하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의 버라이어티인 이 책의 열다섯개나 되는 단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무진기행'이다. 이런 내용이였던가? 내 머리 속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던 것은  무진의 안개.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 오는 여귀가 뿜어서 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

누구나 마음 속에 '무진'을 가지고 있다. 그곳으로 도피하거나, 그곳에서 치유당하거나, 그곳에서 위안과 안심을 얻거나간에. 그 곳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장소일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고 각자의 관념속에만 존재하는 곳일 수도 있겠다.

그 밖의 단편들 중 '싸게 사들이기' 에서는 헌책을 싸게 사는 방법이 나온다. 곰보 영감의 헌책방에서 갖고 싶은 책에 침을 발라서 찢어내어 ( 인디안지일경우는 빙고다) 챙겨놓고, 나중에 책이 이렇게 많이 찢어졌는데 누가 사가겠소 하면서 싸게 책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 와서 찢어놓은 부분을 테이프로 붙혀서 승리감에 빠져 재미있게 보는거다.

''역사' 에서는 '찢어지게 가난한 하숙방에서 막노동꾼, 창녀, 술에 쩔은 절름발이 사내와 그 딸 등을 이웃하고 살다가 '규칙적'이라는 이름의 집에 ' 규칙적' 이라는 사람들에 둘러쌓여 살게 되면서, 그 극과 극 사이에서 갈등하는 백수의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그 비슷한 백수가 '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에도 나와서 모든 건물과 그 건물의 직선은 몬드리안에서 그쳐버렸다는 고정관념, 일본 카드에 나와 있는 빨간 해와 그 옆에 금빛으로 찍혀있는 글씨를 보고 일본 사람들은 금빛을 좋아하나보다는 고정관념등등을 주저리는 것도 볼 수 있다.

폭력과 희생자 ( 사람이기도 혹은 동물이기도 ) 에 대한 불쾌감을 자극하면서도 뭐라 욕하고 싶은 맘이 가득하면서도,  꼭 집어서 명쾌하게 '이런 죽일놈' 할 수 없는 찝찝한 감정들이 생기게 하는 '건' , '염소는 힘이 세다', '야행' 등과 같은 단편도 있다.

본인의 경험이 십분 반영되었을듯한 ' 차나 한잔' 과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 와 같은 작품들도 있다.

어느것 하나 버리고 싶지 않고, 되새겨서 읽어도 또 좋을 것 같은 우리 작가의 단편을 만난다니 반가운 일이다.

벌써부터 두번째 전집 ' 환상수첩'을 읽을 생각에 기대감에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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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2-24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승옥 소설하면, '아련함' '우수' 뭐 이런 단어들이 떠올라요. 왠지 로맹가리랑 느낌이 비슷한 작가인거 같아요.

하이드 2005-02-24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멩가리. 아직 아껴두고 있답니다. perky님 리뷰 읽고, 너무 읽고 싶어서 냉큼 샀는데, 막상 사니깐, 아껴두게 되요. ( 미뤄두는거 아니고요~~~!) 이렇게 아껴두고 있는 책은 로멩가리랑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메뚜기요. 그리고 코넬 울리치의 상복의 랑데부, 등등. 몇개 있네요. 김승옥 전집은 아직도 네권이나 남아서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