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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0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평점 :
투르게네프의 자전적인 중편소설 '첫사랑', 그리고 장편소설 '귀족의 보금자리'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감동적인 단편 '무무'
세편의 각기 다른 개성의 장편,중편,단편이 종합선물세트.같이 묶여 있는 책이다.
러시아작가의 소설을 읽을때마다 '러시아적'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러시아인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랑타령 소설을 읽을때, 그것은 거의 대부분 희극. 혹은 비극. 으로 클라이막스에서 끝이 난다.
소설 자체로는 클라이막스 바로 다음이 결말이겠지만, 인생에서야 뒈지지 않는 이상 어디 그런가?
사랑과 연애의 클라이막스 후에도 인생의 시계는 또깍또딱 흘러가고, 지구는 자전을 멈추지 않으며, 해도 매일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진다.
'첫사랑'
손님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자정이 넘어 한 방에 남게 된 주인을 포함한 세사람. '첫사랑'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말주변이 없는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는 다음번에 올때 수첩에 적어오겠다고 약속하고, 2주후 그들은 한 자리에 모인다.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의 수첩에 적혀 있는 그의 첫사랑 이야기.
시작부터 보면, 자정이 넘었고, 파티는 끝났고, 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램프블이 어른거리는 방의 오래된 소파에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먹다 남은 밤참은 치워지기만을 기다린다. 라는 분위기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파티를 끝내고 난 후 약간의 충만감과 피곤함과 허무를 잘 버무린 자정을 넘긴 시간. 첫사랑의 달콤함과는 다른 시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블라지미르의 열여섯 여름에 있었던 그의 온 몸과 정신을 쥐게 될 여신, 천사, 악마와의 만남으로.
투르게네프의 자전적인 소설이자, 우리나라에 가장 널리 알려진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질풍노도시기의 주인공은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그 연상의 여인은 주변의 남자들에게 여왕처럼 떠받들어지는 도도한 존재다. 그러나 그 닿을 수 없는 천상 혹은 지옥의 여주인같은 그 여인은 그의 아버지와 사랑에 빠졌다.
"내 아들아, 여인의 사랑을 두려워해라. 그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해라...."
앞에 장황하게 말했듯이 사랑의 독에 열병을 앓고 난 후에도 인생은 흘러간다.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채 흘러가는 인생은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보다 더욱 더 잔인해 보인다.
귀족의 보금자리
이 소설의 첫 장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화창한 봄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조그만 장밋빛 구름이 맑은 하늘에 높이 떠 있는데,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감청 빛 심연 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1842년에 있었던 일이다. 도청 소재지인 O시 변두리에 있는 아름다운 집의 활짝 열린 창문 앞에 여자 둘이 앉아 있었다. 한 여자는 쉰 살쯤 되어 보였고, 다른 여자는 벌써 칠순의 노파였다.'
게제오놉스키가 방문하여 '라브레츠키 표도르 이바느이치'가 왔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야기는 드디어 시작된다. 아주 한참 후에야 깨달았지만(온 가족사가 다 나오는 서사적인 이야기다) , 이 이야기는 라브레츠키.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 서사적이고 짜증나게 도덕적인 등장인물들, 짜증나게 수다스럽고 경망한 등장인물들, 짜증나게 우유부단한 등장인물들, 짜증나게 교활한 동시에 멍청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정말 힘겹게 힘겹게 읽어내고 나면, 내가 생각하는 그 러시아 특유의 차가운 에필로그.가 나온다. 이 책에 등장하는 투르게네프의 소설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특히나 이 소설에서는 가족사, 사랑, 도덕, 말고도 더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토론에 진하게 묻어나는 당시 러시아의 상황인데, 소설은 '농노제 하의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정신적 발달의 역사적 단계(볼테르주의, 영국 숭배, 낭만적 환멸, 서구주의와 슬라브주의 등) 와 직,간접적으로 연결' 되어 있다. 작품 뒤의 작품 해설을 읽고 나서 다시 읽는 에필로그.는 사랑, 인생, 허무, 역사, 러시아, 사람, 그 모든 것이 녹아 있는 내가 본 최고의 에필로그이다.
'죽을 때까지 농노 제도의 폐지를 위해 투쟁하고 농노 제도와는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투르게네프의 이른바 '한니발의 맹세'는 투르게네프 창작의 주요한 특징인 휴머니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고 했다. ( 왜 한니발의 맹세인지는 못 찾았다)
가장 슬프고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무무'. '무무'과 '사냥꾼의 수기.는 알렉산드르 2세가 농노 제도의 폐지.를 결심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이야기까지 있으니. 소설의 힘은 놀랍다.
'무무'는 거인의 이야기이다. 키는 1m95에 네사람분의 일을 혼자 하는 벙어리 귀머거리 거인의 이야기이다. '무무'는 거인이 죽을뻔한 어린것을 구해내고 애착을 가지고 키우게 된 강아지 이름이다. 러시아의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고 하는 이 단편.은 동화 같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심장에 한꺼풀 내려 앉는 것 같기도 하고,
러시아 작가들의 책을 읽을때마다 오는 이 허탈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