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에게는 각자의 취향이 있기마련.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그 누군가가 열광하는 것에 혹해서 구입한다고
나  또한 그것에 열광하리라는 믿음은 어디서 오는건지.

박찬욱.
B급영화를 좋아한다.
복수는 나의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따위의 영화를 만든다.
앰버연대기를 좋아한다.(요건 나랑 좀 비슷하군)

라는데,
이번에 '박찬욱의 몽타주' 읽다가 지대로 낚였다.
' 기다리는 톰'
Tom Waits에 열광하는 글이다.

마침 어제 간 그 곳에 톰 웨이츠의 CD가 꽤 많길래,
하나 집어 봤는데,
금요일 밤, CD를 컴퓨터에 집어넣고 미디어플레이어를 온하고
계속 황당해하고 있는중이다.

그러니깐 나는 '톰 웨이츠 Tom Waits라면 '기다리는 톰' 일 텐데, 기다리긴 뭘 기다려. 내가 보기에 이 톰은 아무 희망도 안 가진 자다. 희망은커녕 가사나 멜로디나 음색이나 모든 게 절망으로 가득하다.' 라는 말을 좀 더 심각하게 들었어야 한다.

그래 어쩌면, ' 연극배우, 영화배우, 무대 및 영화음악가이기도 하다. 짐 자무시, 프랜시스 코폴라, 테리 길리엄, 로버트 윌슨, 로버트 알트먼 같은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그는, 소문에 의하면 대단한 술꾼이라고도 한다.'
나는 이걸 보고 오 괜찮은 사람인걸?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무튼, 내가 지금 듣는 이 긁는 목소리는 ( 가사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말한대로 ' 담배를 한 보루쯤 연달아 피우고 나서 부르기라도 하는 듯, 완전히 쉰 목소리로 으르렁대다시피 불러대던' 이다. 정말루.

정말 꼭 들어야 할, 안 들으면 클날것 같은 곡소개가 있다.
박찬욱은 톰 웨이츠의 모든 앨범과 유럽에서 발매된 해적판, 그의 곡을 다른 가수들이 다시 부른 곡만 모아서 낸 앨범까지 다 사 모았다고 하는데, 모두 합치면 서른장 정도라고 한다.
' 그 가운데 한 장만 고르라면 물론 그래미 수상작 <본 머신>이지만 한 곡만 뽑아야 할 경우엔, 가장 재즈적인 분위기를 내보았던 <블루 발렌타인> 수록곡 <미니애폴리스의 창녀로부터 온 크리스마스 카드>다. 무성의한 듯 감칠맛 나는 피아노도 피아노지만 사실 이 노래의 진짜 매력은 가사에 있다. 부른다기보다는 차라리 그냥 뇌까린다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높낮이 변화가 없는 멜로디지만 그런 소박함이 오히려 감동을 준다. 한심한 낙오자들의 비천한 인생을 묘사한 얘기지만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아름답다. '

음. 그의 음반 중 하나를 듣고 있는데, '무성의한듯' 한 피아노에 동감. 피아노뿐만 아니라 모든 악기가 다 무성의한듯한걸?  '부른다기보다는 차라리 그냥 뇌까린다' 는데도 동감. 뇌까린다. 플러스 질러댄다.

찰리, 나 임신했어요.
지금 유클리드 거리 끝
9번가의 낡은 책방 위에 살아요.
마약도 끊었고 위스키도 안 마시죠.
남편은 트롬본을 불어요.
철도일 하는 사람이죠.

그이는 날 사랑한다고 해요.
비록 자기 아인 아니지만
자기 아이처럼 키우겠대요.
그리고 어머니가 끼던 반지를 내게 주었어요.
토요일 밤이면 그이는 날 데리고 춤추러 나갑니다.

찰리, 당신 생각이 나요.
주유소 앞을 지날 적마다
당신 머리에 묻은 기름때를 떠올리죠.
아직도 '리틀 앤서니 & 더 임퍼리얼스'의
레코드를 간직하고 있어요.
하지만 누가 전축을 훔쳐가버렸죠.
열받을 만하죠?

마리오가 체포됐을 때
난 거의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식구들하고 살려고
오마하로 돌아갔죠.
그런데 나 알던 사람드은
죄 죽었거나 감옥에 있더군요.
그래서 미니애폴리스로 돌아왔죠.
이제 그냥 여기서 살까봐요.

찰리 그때 사고 이후 처음으로 행복한 것 같아요.
우리가 마약 사는 데 썼던 그 많은 돈들을
지금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중고차 가게를 하나 사고 싶어요.
차는 절대 안 팔고
그날 기분 따라 매일 바꿔 타고 다니는 거예요.

그런데 찰리,
내 처지를 솔직하게 말해줄까요?
나, 남편 없어요.
그러니까 트롬본도 불지 않아요.
그리고 있죠...
사실은 변호사 줄 돈이 당장 필요하거든요.
찰리, 난 요번 발렌타인 데이나 돼야
보석으로 나갈 수 있을 거예요.

박찬욱,이무영 공동번역이란다.

긴 말이 필요 없다. 그냥 내가 미국 감독이라면 이 제목, 이 스토리 그대로 영화 하나 꼭 찍는다. 캐스팅도 끝났다. 이 앨범 재킷 뒷면을 보면 톰 웨이츠가 빨간 원피스 입은 여자와 사랑을 속삭이는 사진이 있다. 뒷모습만 보이는 그녀는 한때 애인이었던 릭키 리 존스인데 '여자 톰 웨이츠' 라고 할 수 있는 이 퇴폐적인 가수를 창녀 역으로 쓰는 것이다. 물론 찰리 역은 '남자 릭키 리 존스' 인 톰 웨이츠로 하고,
감옥에 들어앉아 옛 애인한테 편지 쓰는 창녀의 심정, 돈 부쳐달라는 사정을 하려고 펜을 들었다가 비참한 심정이 되어버린 그녀는 행복한 거짓말만 잔뜩 늘어놓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용건을 꺼낸다. 그러고는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변변히 인사도 못한 채 서둘러 편지를 끝내는 것이다. 이 마무리 반전은 '너무 웃기는 나머지 슬퍼지는' 종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살아온 철부지 창녀가 꿈꾸는 행복이란 또 얼마나 하찮은가. 아마도 이 여자한테 여러 번 속아봤을, 그래서 사랑하지만 끝내는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 이 노동자 애인은 결국 또 돈을 부쳐주고 말 게 뻔하다.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가 되면 미니애폴리스 교도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이 노래를 들을 적마다, 주유소 지나면서 애인 머리의 기름때를 그리워하는 대목에만 가면 난 그만 울고 싶어지곤 한다. 이런 가사는 톰 웨이츠 아니면 못 쓴다. 달리는 택시 뒷자리에서 태어나 학교도 안 다니고 부랑아로 청춘을 다 보낸 자 아니면 이런 거 못 쓴다. (43pg)

아래가 바로 '블루 발렌타인' 음반이다.

Blue Valentine

http://www.amazon.com/gp/product/B000002GWJ/ref=m_art_li_9/103-8502409-0598264?s=music&v=glance&n=5174

'미내아폴리스의 창녀로부터 온 크리스마스 카드' 들을 수 있다.
'트럼본 불고, 철도일 하는'까지만 ^^;

어제 그게 뭐였더라, 딱 한곡 하면 뭐였더라, 하면서 음반 매장에서 갸웃거리며 기억을 되살리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내가 산 음반은 아래의 음반이다.
그러니깐 엊저녁부터 ( 젠장, 점심때까지만 해도 스티비 원더 모드였다 이거지!)
지금까지 볼륨 이빠이 올려 놓고 계속 듣고 있는 음악.

심지어 난 beautiful melodis (아름다운 멜로디~) 인줄 알고 샀다.
지금 다시 보니! beautiful maladies( 아름다운 병(폐)) 다.
헐, 뭐, 다시 생각해보면, 그거나, 그거나

뭐, 내가 지금 이 음반 들으면서 엊저녁 꾹 참은 맥주 한캔 따서 마시고 있다고 해서 누가 뭐라 그러겠어.
뭐,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누러댕댕하고,  뉴욕은 지금 저녁 7시43분이라구.

Beautiful Maladies: The Island Years

http://www.amazon.com/gp/product/B000007QQL/sr=8-1/qid=1142036202/ref=pd_bbs_1/103-8502409-0598264?%5Fencoding=UTF8

같이 들으며 맥주들이키고 싶은 목마른 사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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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3-11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쾌한 아침입니다. 하이드님 이벤트 글 쓰는 중이에요.

하이드 2006-03-11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상쾌한 황사 아침~

한솔로 2006-03-1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의 저에게, 너는 탐 웨이츠를 좋아하게 될 거야라고 누가 말해준다면 콧방귀를 꼈을 거에요.

하이드 2006-03-11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누가 저한테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실 꺼에요' 라고 말한것과 색은 틀리지만, 비슷한 맥락?

울보 2006-03-1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귀가 얇은가봐요,어제 님이 너무 좋은책하고올리신리뷰보고 바로 질렀잖아요,,,ㅎㅎ이야기랑은 상관없나,,,,,ㅎㅎ 토요일인데 지금무얼하시나 출근은 안하셨을텐데,,

로드무비 2006-03-1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말이 필요 없다. 그냥 내가 미국 감독이라면 이 제목, 이 스토리 그대로
영화 하나 꼭 찍는다.

하이드님 어쩜 그리 저와 같은 생각을!
블루 발렌타인이 품절이라 낙망하고 있는데
어느 님이 시디를 구워 보내주셔서 저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지요.
그런데 노래듣기 너무 감질나네요. 한두 소절 겨우...^^;;

하이드 2006-03-11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어제 갔던 그 음반매장에 톰웨이츠꺼 디게 많던데,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무튼, 아마존에서는 찾아서 냉큼 장바구니 넣었으니, 들어보긴 할꺼여요.
울보님 ^^ 아침부터 인나서 맥주 마시는 중입니다 . 좀 있다 탭댄스 가야죠, 탭탭탭

mong 2006-03-1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 발렌타인 앨범 강추 추추추~
그리고 이곡 The piano has been drinking
내가 아니고 피아노가 취했다구~~
투덜투덜 노래를 부르는 사포 목소리+주정뱅이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피아노두 아니고 톰 아저씨도 아니고 내가 취한것 같다
(저번날 쓴 페이퍼에서 긁어 왔어요 ㅎㅎ)

2006-03-11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3-11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