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루이스 세풀베다의 작은 단상들이 모여 있는 이 책에서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존 버거와 다이앤 애커먼을 본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에서 존 버거를 보고, 지구상의 희귀한 동물들과 희귀해져 가는 동물들에 대한 사랑과 보호와 그들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다이앤 애커먼의 모습을 본다. 그의 작품에 고저가 있기는 하지만, 2000년에 쓰인 이 작품은 그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는 행동파 작가이다. 산도적같이 생긴 얼굴에 눈만은 맑고, 빛난다.

책의 들어가는 이야기는 '소외된 이야기들' 이다. 작가는 독일의 베르겐 벨젠 유대인 수용소를 방문한다. 수억가지 감정을 안고 있는 그는 거기 수용소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칼끝이나 못으로 써 놓은 글귀를 보게 된다. '나는 여기에 있었고,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글을 쓴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도 모르지만 세풀베다는 깨닫는다. '그가 그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걸'

어느날 밤 집에서 끌려 나와 몰매를 맞으며 자식과 헤어져, 번호판 없는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끌려와 붕대로 두 눈이 가린채 세상과 멀어져 군화자국과 피부에 새겨진 전기 고문흔적들로 만신창이 된 금발머리 여자와 검은 머리 여자. 한 가족이었던 고귀한 고양이 소르바스에 대한 이야기. 실수로 칠레에 가서 실수로 결혼하고 실수로 좋은 친구들을 두고, 다른 더 큰 실수로 행복했던 이탈리아 남자 주세페. 바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배를 폐선장까지 이끌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주는 벵골 남자 심파, 등등 세계 구석구석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얘기, 멈추지 않고 항상 움직이는 세풀베다와 함께 한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유려한 문장이라거나, 반전이라거나 그런 재미가 아니라, 진실을 이야기 할 때 나올 수 있는 힘. 앉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장에서 쓰는 세풀베다의  필력은 대단히 영향력 있다. 환경을 파괴하는 자들이 있고 그것을 지키려는 자들이 있다. 자유를 추구하는 자들이 있고 그것을 억압하는 자들이 있다. 세풀베다는 지키려는 자, 자유를 추구하는 자의 편에서서 강력한 글들을 써낸다. 그들은 소수이다. 극소수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고 했다. 과연 '펜은 돈보다 강할까?

작가의 인생은 치열했고, 지금도 치열하다. 작가가 인용한 브레히트의 ' 평생을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다' 라는 말처럼. 루이스 세풀베다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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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5-29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보고 싶은 마음이 잔뜩 들게 만드는 리뷰군요.
땡스투에 추천 하나요~

하이드 2005-05-2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감사해요. 읽으면서 계속 소름 돋더라구요. 단편 하나 '책/작가 이야기'에 올려놨어요.

바람돌이 2005-05-30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은 작가가 또 한사람 느네요.
연애소설읽는 노인을 읽고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늘 뒤로밀려 아직 저는 루이스 세풀베다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님의 리뷰덕분에 이제 만나러 가야겠네요.

moonnight 2005-05-30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읽고 싶어요. ㅜㅜ 저도 아직 세풀베다를 읽지 못했거든요. 미스 하이드님 덕분에 좋은 작가를 알게 될 거 같네요. 감사합니다. ^^

하이드 2005-05-30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과분한 추천들이^^;;
네. 정말 한 하늘 아래 다른 세상인줄 알고 있던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특이한 이야기들도 많고, 울컥하는 이야기들도 많고, 워낙에 좋아하던 작가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 정말 다시 봤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5-05-31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읽어보고 싶으네요.. 추천..

다른사람 2005-08-05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리뷰를 읽고 이 책을 주문했답니다. 지금 기다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