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톨스토이 평전 읽는 중 <노 임팩트 맨>과 <예술가란 무엇인가>를 함께 읽고 있는데 다른 책에는 잘 손이 안 가고, 일단 이 책을 마무리 하려 한다.
알바하면서 처음으로 '책' 이야기를 신나게 했다. 늘 책을 읽고 있는데, ' 책 많이 읽으시네요' 내지는 '무슨 책 읽어요' 정도인데, 오늘은 좀 달랐다.
책세상의 <톨스토이>의 앞부분 (유감스럽게도 안즉 앞부분이다.) 을 읽고 있는데 한 200페이지 쯤 읽고 있었나보다. 계산하느라 책을 잠깐 덮었더니 얼굴이 낯익은 그녀는 ' 이 책 읽고 계신거에요?' 그런다. ' 네' 그러니깐, 자기도 톨스토이 읽고 있다면서 톨스토이를 꺼낸다.
겉표지가 벗겨져 있어서 처음에 못알아 봤는데 작가정신의 톨스토이 시리즈중 <어린시절, 청소년 시절,청년시절>이다. 마침 내가 읽고 있는 부분이 톨스토이가 크림전쟁에 참여하며 <청년 시절>을 집필하고 있는 부분. 앞의 소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은 나왔고 말이다.
아니, 이런 반가울데가.
책세상에서 나온 위대한 작가 시리즈 신간이라며,
러시아 문학이랑 톨스토이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평전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톨스토이 문학에서 일기가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잖아요 (난 이 책 읽으면서 알았다.)' 그러니깐
그녀, '그렇죠, 그렇죠'
'일기랑 작품이랑 비교하고, 톨스토이 주변인물들 나오고, 톨스토이 심리를 보여주는데, 무지 재미있어요.'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톨스토이 이야기를 하는데, 아마 눈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을 꺼다. 핸드폰에 책 제목과 출판사를 메모하는 그녀. 늘 계산하고, 안녕히 가세요, 수고하세요. 의 사이였는데, ' 또 놀러올께요' 그러면서 나간다.
야간 동네 편의점에서 알바와 맥주 페트병 사가는 서로 '저 나이 좀 있어요' 라고 이야기하는 뒤늦게 새로운 일, 공부 시작한 두 여자의 서로의 재발견이다. 아, 내가 밤에 편의점에서 알바 한다는 이야기 서재에서 했던가? 처음 하는 듯. 꽃 이야기 며칠전에야 했으니. 이 나이에 밤에 편의점에서 알바하며 낮에 공부한다고 하는 건 딱히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뒤늦게라도 엄마 아빠한테 돈 드리고 있는 ( 갚는 거지만;) 내 모습은 마음에 든다. 아빠 무시하고, 엄마한테 한번 더 이야기하면, 그냥 꽃만 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아빠랑은 아직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 중이라, 입금할때 마다 긴 긴 이메일을 쓰고 있다.) 회사 다니면서 여행 다니면서 돈 쓴 거는 지금 생각해도 아깝지 않지만, 먹고 마시고 옷, 가방 사느라 쓴 돈은 지금 생각하면 아깝다.
한가쩍어서, 밤에는 책 읽고, 인터넷 하고, 노트 정리하고 복습하고 그러고 있다. 말일 월급 들어오는 날인데 아빠한테, 엄마한테, 집주인한테 계좌이체 하고 나니, 월급은 그야말로 내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누나 ... 왠지 시상이 ..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월급이여.. 오오..
밤에 편의점에서 알바한다는 이야기를 아빠한테 처음 했을 때, 아빠는 막 울라그러고, 엄마는 '돈 언제 들어오니, 관리비랑 공과금 이제 니가 내라' 그러고, 동생은 '삼각 김밥 같은 거 있으면 가져와' 그러고, 신댕은 ' 작년처럼 집 근처 사면 놀러가는 건데' 그러고, M군은 아빠랑 비슷하게 울려 그러고 ( 내 느낌이 그랬다. 아님 말고 ㅎ) 사장아, 내가 앞으로 1년간 커피 원두 주문해줄께 .. 라고 몇 번이고 그러는 걸 괜찮다며, 됐다며 그랬다. 짜식. 그러니깐,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 가는데, 나 커피 금단 아니라니깐.
그러니깐, a야, 먹고, 마시고, 놀고, 하고 싶은거 하면서 플로리스트 공부도 할 수 있는 건 아마 아닐꺼야. 나처럼 아싸리 공부하면서 눈에 보이는 목표 붙잡고, 현실을 접하며 하는 거랑, 일단 돈 모으고 시작하겠다. 하는 거랑은 다르겠지만, 그게 더 힘들겠지만, 지금까지와 다르게 살고 싶다면, 지금까지와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깎아 나가야 하는거거든. 십년 넘게 하루에 1리터씩 마시며 입에 달고 살던 커피도 안 사기로 하고, 서른 넘어 난생 처음 아르바이트라는 것도 해보고. 돈 벌기 시작한지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부모님한테 돈도 드려보고. 그렇게 .. 특별한 계기를 기다리지 말고, 특별한 목표와 반짝반짝 빛나는 미래를 꿈꾸는거지 .. 라는 이 오글한 만화 같은 멘트는 좀 미안 ^^; 왠지 '두근두근 베이커리'의 배경음악이 나오면서 꽃이 흩뿌려지고, 눈에 반짝반짝 효과라도 줘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나 자신도 열심히 삽질중이지만, 끌어주고 싶은 동생이니깐 .. a 너 말이야.
얘기가 좀 길어지는데, 며칠전 M군이 집 앞에 와서 동태찜이랑 탕이랑 소주 사주고 갔다.
어제는 신댕이 집 앞에 와서 곱창 등등 고기 모음이랑 창해에서 커피, 치즈 케잌, 원두까지 다 사주고 갔다.
이거이거 톨스토이 이야기는 다음에 해야겠는걸. 좀 귀여운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나의 오해일 수도 있지만
두 녀석 다 한 명은 저기 월곡동, 한 명은 마포로 잠실인 우리 집에서 무지 멀다.
강남역 정도도 피곤하다며 안 나가는 나 고기 사줄꺼라고 집 앞까지 오는 녀석들이다.
근데,난 인천에서 오는 사람도, 안양에서 오는 사람도 다 우리 집 앞에서 만났었지 .. 응?
무튼 신댕이 어제 고기 사고, 집 근처 창해라고 원두 볶는 집에 갔다. 완전 골목 구석때기인데 좀 유명한 집이다.
커피 잔도 노리다케 쓴다. 여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커피 두 잔, 케이크 하나 만 팔천원 막 머릿속으로 계산기 두드리며,
살까 말까 하고 있는데, 거의 다 먹고, 화장실 가야지. 하는 신댕. '다녀와, 깨끗하더라' 하는데
일어나려다 멈칫 하더니 화장실을 안 간다.
문득 생각난 지난 번 홍대 만남.
뭔가 블랙올리브 빵을 비롯한 빵 몇 만원어치 사서 앵겨주고, 밥값보다 많이 나오는 커피도 사주고, 밥을 먹으러 갔는데, 돈까스 집에 들어갔다. 대충 만얼마면 될 것 같아서 화장실 간 사이에 계산을 했더니, 니가 계산 했냐며, 다른 이야기는 안 한다.
혹시 그 생각이 나서 화장실 가려다 안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드는 거다.
원두 판다고, 원두 달라고 그러면서 나보고 고르라고 그러는데, 며칠전 M군 만났을 때처럼 거절하려했지만,
내가 계산할까봐 화장실도 가려다 만 거 아닌가 싶어서, 뭔가 내 친구 귀여워져서 원두를 골라서 사 들고 빙글빙글 흔들며 집으로 왔다.
내일, 아니, 오늘은 노트 정리 마무리해서 보내고, 알바 끝나면, 꽃시장 갔다 와서 꽃정리 하고, 집에 잔뜩 있는 꽃들 수발 들고 (집이 거의 정글화되고 있다.) 저녁때 M군 만나 윤디 리 공연 본다. 예술의 전당 가면, 프라그랑스 가서 선생님도 찾아가 인사도 하고 그래야지. 윤디 리의 플라워 테라피는 뭐였냐고 슬쩍 물어봐야지.
밤 편의점 알바 하는 건 밤에 잠 안 자는, 그리고 얼척없게, 잠 안 자는게 자랑인( 잠 한꺼번에 많이 잘 수 있는 것도 좀 자랑스럽다. .. 응?) 나한테 딱 맞는다. 낮 시간을 맘대로 쓸 수 있는 것이 퍼펙트한데, 오늘처럼, 엿차하면, 잠을 못 자는 날들이 생긴다. 이제 슬슬 적응 되고 있다.
그리고 화요일은 수업 있는 날이니 잠 안자고, 이번주부터는 빠릿빠릿하게 검사 받으려면 여튼, 잠이 모질라는 한 주가 될 듯도 하다.
그러니깐, 난 밤에 알바도 하고, 책도 열심히 읽고, 꽃도 열심히 만지고, 고기도 잘 얻어 먹고 다니고, 공연도 보러 가고, 서재질도 열심히 하며, 꽃시장도 열심히 가는데다가, 바다 낚시 같은 것도 가서 광어 같은 것도 막 낚는다.
좀 칭찬 받아도 될 것 같다.
.. 아빠 마음이 풀렸으면 좋겠는데, 어떤 결과를 보여주려면, 시간이 지나야 하니깐, 그게 좀 답답하다.
인생에는 '미리보기'도 없고, 내 인생을 이미 읽은 사람들의 리뷰를 보고 뭔가 고를 수도 없으며, 한 장, 한 장 부지런히 넘겨가는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마 분명, 진지하게, 비밀댓글로 '건강 챙기세요' 라는 댓글이 달릴 것을 알기에, 덧붙인다.
지난 거의 1년 늘어져 있을 때에 비하면,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컨디션입니다. 커피 없이도 말똥말똥하고, 잘 돌아다니고, 잘 때는 푹 잘 자고, 잘 먹고 있어요. 여차하면 체력 기르기 위해 운동도 시작할지도 모르고요. 커피 사는 것도 끊었는데, 그깟 운동 시작 못 하겠냐구요. 어이어이, 한 번에 하나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