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는데, 고등학교때 읽었던 이문열의 <세계문학 명작 산책> 시리즈가 어느새 양장본으로 나왔었나보다.
이미지로 보는 만듦새는 훌륭해 보인다. 아직도 동생 방 어딘가에는 내가 고등학교때 산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의 반양장본의 짝 안 맞는 몇 권이 더 이상 듣지 않는 카세트 테이프들과 함께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항상 책이 고팠는데, 아니, 어렸을때부터가 아니라, 어렸을때는. 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집에 있던 몇 질인가의 전집들을 생각하면, 그 많은 전집들을 읽었던 꼬꼬마때가 아는 건 개뿔 없어도, 가장 풍부하게 순수문학을 접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이가, 집에 있던 세로 줄에 한문까지 섞여 있는 양장본의 검은 전집을 들고, 장농과 벽 사이의 구석에 들어가서 책을 읽는 모습이라니.

어렴풋이 사진처럼 남아 있는 기억은 그렇다. 그 나무 장농의 조각들을 손으로 훑으며,검은색 양장에 아무도 안 읽어 세월의 먼지가 앉은 비닐이 있었고, 각각의 책은 케이스에 들어 있었다. 그 책의 약간 바랜 종이의 색과 냄새와 글씨체들. 당시 나에겐 아무 의미 없었던 한문들. 그때 그 전집들은 어디로 갔을까? 

교보에서 세트로 66,500원에 판매하고 있고, 3천원 쿠폰이 있고, 적립금도 좀 있으니, 이번달의 지름은 이 전집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버뜨, 10권이라고 하니, 또 어디에다 쌓아야 할 것인가가 고민된다.

다시 확인한 컨텐츠는 무척 맘에 든다.  어쩔까나..


1권
'세계명작산책'을 내며
제1권 <사랑의 여러 빛깔> 서문

르네|F. R. 샤토브리앙 _ 초월로 가는 길목으로서의 사랑
호수|테오도르 슈토름 _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영혼의 낙인
귀여운 여인|안톤 체홉 _ 세상을 이해하는 눈 혹은 삶의 방식
에밀리를 위한 장미|윌리엄 포크너 _ 세월과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전율스러움
환상을 좇는 여인|토마스 하디 _ 외날개의 새
달로 가는 도중에|바실리 아크쇼노프 _ 싱싱하게 형상화된 사랑의 양면성
별|알퐁스 도데 _ 멀고 잡을 수 없는 것의 아름다움
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아르투르 슈니츨러 _ 치정, 혹은 흉기 같은 사랑
서정가|가와바다 야스나리 _ 곱고 애절한 사랑의 만사
바니나 바니니|스탕달 _ 다른 가치와의 충돌

2권
'세계명작산책'을 내며
제2권 <죽음의 미학> 서문

우국|미시마 유키오 _ 삶의 보완 양식 혹은 가치 부여의 수단
숲 속의 죽음|셔우드 앤더슨 _ 삶을 인상적으로 진술하는 방식
크눌프|헤르만 헤세 _ 삶의 최종심
킬리만자로의 눈|어니스트 헤밍웨이 _ 신이 없는 죽음과 감추지 않는 주저흔
이반 일리치의 죽음|레프 톨스토이 _ 한 속인을 통한 죽음의 성찰
연인의 죽음|마르크 베르나르 _ 살아남은 자의 외로움과 슬픔
나라야마 부시코|후카사와 시치로 _ 죽음으로 다가가는 또 다른 양식
알리스|샤를르 루이 필립 _ 독점욕이 빚어낸 특이한 죽음의 양상
불 지피기|잭 런던 _ 관념이 배제된 죽음의 과정
마차|바이오레트 헌트 _ 염세적 세계관을 배음으로 한 기상곡

3권
'세계명작산책'을 내며
제3권 <성장과 눈뜸> 서문

조니 파이와 바보귀신|스티븐 빈센트 베네 _ 삶에 대한 눈뜸과 죽음과의 친화
토니오 크뢰거|토마스 만 _ 길을 잘못 든 속인의 자기 성찰
약혼녀|안톤 체호프 _ 애처롭고 아름다운 눈뜸의 이야기
나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프랭크 오코너 _ 정신분석의 명쾌하고 재치 있는 형상화
애러비|제임스 조이스 _ 상처 혹은 고통으로서의 눈뜸
늙은 소년 액슬브롯|싱클레어 루이스 _ 엉뚱한 늙은이의 신선한 눈뜸
시인|헤르만 헤세 _ 추상의 절심함과 아름다움
제3의 강둑|후앙 기마랑스 로사 _ 외로운 떠돎으로서의 삶
보트 속의 남자|에이빈트 욘손 _ 환상 혹은 신비적 체험으로서의 눈뜸
순직한 영혼|귀스타브 플로베르 _ 단순하고 소박한 영혼의 궤적

4권
'세계명작산책'을 내며
제4권 <환상과 기상(奇想)> 서문

젊은 향사 브라운|나다니엘 호손 _ 환상적으로 드러낸 원죄 의식 혹은 인간 내면의 악마성
사빈느|마르셀 에메 _ 진진한 향수와 참혹한 종장
벽문|H. G. 웰즈 _ 때묻은 상상력으로는 열 수 없는 문
스페이드의 여왕|알렉산드르 푸슈킨 _ 죄의식이 만든 환상
립 밴 윙클|워싱톤 어빙 _ 익숙한 상상력의 서구적 형상화
악마와 대니엘 웹스터|스티븐 빈센트 베네 _ 어리숙한 악마를 물리친 통쾌한 억지
국경 위의 집|엘리아스 카네티 _ 제도와 권력의 희화
어셔 가의 몰락|에드가 앨런 포우 _ 현실에 바탕한 환상의 미학
하동|아쿠다가와 류노스케 _ 동양적 상상력과 서구적 정신병리의 만남
천녀유혼|포송령 _ 인의와 괴기가 어우러진 동양적 전범

제5권
'세계명작산책'을 내며
제5권 <삶의 어두운 진상> 서문

골짜기|안톤 체홉 _ 곱게 차린 악마들만 웃는 세계
원유회|캐더린 맨스필드 _ 소유가 연출하는 세상의 양면성
비계 덩어리|기 드 모파상 _ 양파 벗기기
마땅한 대책도 없이|아서 모리슨 _ 분배의 그늘에서 엇갈리는 삶의 명암
종신형|마르틴 A. 넥쇠 _ 어둡게 파악된 삶의 다른 이름
형리|페르 라게르크비스트 _ 신이 화석화한 뒤의 인류사와 그 주재자
나생문|아꾸다가와 류노스께 _ 인간성의 어두운 심연을 보는 차가운 눈길
가정을 가진 남자|V.S. 프리체트 _ 결혼 제도를 보는 이중적 시각
비|서머셋 모옴 _ 육신을 가진 존재의 슬픔 혹은 공허한 승리의 실상

제6권
'세계명작산책'을 내며
제6권 <비틀기와 뒤집기> 서문

하룻밤의 유숙|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_ 낭만적 환상에 끼얹는 찬물
목걸이|기 드 모파상 _ 두 가지 독법과 결말에 대한 시비
발전의 전초기지|조셉 콘라드 _ 문명과 진보의 암흑상 혹은 무위성
장거리 선수의 외로움|앨런 실리토 _ 불협화음을 주조로 한 미묘한 협주곡
외투|니콜라이 고골리 _ 러시아 현대문학을 덮어주는 외투
티볼리의 독심술사|빌헬름 모베리 _ 기이하면서도 통쾌한 복수
토버모리|사키 _ 인간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위험
엉뚱한 라디오|존 치버 _ 남의 감춰진 진실이 이끌어낸 자신들의 진실
개|파금 _ 개도 될 수 없는 개
뇌물|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_ 뒤집기의 뒤집기

제7권
'세계명작산책'을 내며
제7권 <사내들만의 미학> 서문

마테오 팔콘느|P. 메리메 _ 사내만이 연출할 수 있는 비정의 미학
우상 숭배자들|가브리엘 다눈치오 _ 광기와 공격성이 빚어내는 처절미
사카이 사건|모리 오가이 _ 단호함과 일치됨의 미학
기우사|헤르만 헤세 _ 거룩함으로 승화된 비장미,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재주
두 소몰이꾼|S. W. 스코트 _ 문화의 차이가 빚어낸 비극
타베티|프랑스 E. 실란패 _ 무엇이 위대하고 무엇이 비소한 것인가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R. 키플링 _ 왕다운 죽음으로 왕이 된 건달
무사의 혼|조셉 콘라드 _ 명예, 용기, 위엄, 신의
단지 비누 거품일 뿐|에르난도 테예스 _ 심약한 정의를 압도하는 악의 강건미
규염객전|두광정 _ 천하를 양보하는 의기

제8권
'세계명작산책'을 내며
제8권 <시간의 파괴력과 돌아보는 쓸쓸함> 서문

다시 찾아간 바빌론|F. 스코트 피츠제랄드 _ 불타버린 뒤의 적막감
귀향|그레이엄 그린 _ 의미에 간섭하는 시간 혹은 천진성의 의미
진홍빛 커튼|쥘 B. 도르빌리 _ 해석 안 되는 과거의 길고 쓸쓸한 여운
고향|노신 _ 전망을 남긴 애상
크리스마스에 걸려온 전화|알베르토 베빌라꽈 _ 모르는 사이에 피었다가 스러져간 사랑
레드|서머셋 모옴 _ 끔찍한 파괴자 혹은 말없는 목격자
살아 있는 송장|이반 투르게네프 _ 시간과 고난이 파괴하지 못한 아름다움
추억|다자이 오사무 _ 분장사로서의 시간
공주인형|카를로스 푸엔테스 _ 연결되지 않는 의미의 고리 잇기
서러워라 늙는다는 것은|E. 아리아스 수와레스 _ 아름다운 승복의 여운

제9권
'세계명작산책'을 내며
제9권 <병든 조개의 진주> 서문

변신|프란츠 카프카 _ 소속 또는 관계의 비정함과 허망된
무소|외젠느 이오네스코 _ 병든 현대사회와 뒤집힌 진실
바나나피시가 나오는 날|제롬 D. 샐린저 _ 정신병자에게 포착된 전후 미국의 그늘
산월기|나카지마 아쓰시 _ 병든 시심이 빚은 끔찍한 진주
쾅, 쾅, 쾅|다자이 오사무 _ 관념의 타성을 깨는 ㅡ망치 소리
광인일기|노신 _ 광기로 해석된 사회사
나와 미스 맨디블|도널드 바셀미 _ 드러난 기호와 감추어진 기호
러브데이씨의 짧은 외출|이블린 워 _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힘 - 광기의 또 다른 이름
터널|프리드리히 뒤렌마트 _ 종말로 치닫는 지구라는 열차
지빠귀|로베르트 무질 _ 잠든 의식을 깨우는 신호음

제10권
'세계명작선책'을 내며
제10권 <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 서문

가난한 사람들|빅토르 위고 _ 가난해서 오히려 눈부신 인정
고향에 돌아온 죄수|우고 와스트 _ 우리 밖 한 마리 양이 주는 감동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레프 톨스토이 _ 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 살 만한 세상
마지막 잎새|O. 헨리 _ 사랑으로 완성되는 예술혼
이즈의 무희|가와바다 야스나리 _ 사랑의 아름답고 깔끔한 변주
빨간 망아지|존 스타인벡 _ 불통 속에 단련되는 유년의 순수
행복한 왕자|오스카 와일드 _ 순수하고 고양된 유미주의의 결정
어머니를 그리며|다니자키 준이치로 _ 순수한 그리움과 아름다운 서정
눈 속에 흘린 당신 피의 흔적|가브리엘 G. 마르께스 _ 어처구니없는, 그러나 사랑스런 당착들
헤르만과 도로테아|요한 볼프강 괴테 _ 건강한 사랑, 조화로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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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착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from little miss coffee 2009-02-25 21:25 
      차분한 책등의 밤색과 책 표지의 푸른빛 띤 녹색에 전통문양이 들어가 있는 것이 맘에 듬. 이 시리즈의 단편들은 정말 주옥같고, 한권씩 사서 원하는 것만 모으기에는 안 원하는 것이 없었기에 이렇게 전집으로 사게 되었다. 판형이 예전에 가지고 있던 반양장본보다 작아서 놀랐음. 신경써서 만든 양장본으로 보여, 소장 가치도 있다. 다만, 살짝 신경 쓰이는 것은 .. 예전에는 영웅이었던 이름이나, 지금은 ... 내가 그에 대해
 
 
무해한모리군 2009-02-17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전질을 사면 왠지 몇 권 안읽게되요.. 흑흑

하이드 2009-02-17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요건 10권이라 좀 만만하지 않나요? ^^ 전 이거나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정도면 사고파요.

무해한모리군 2009-02-17 10:35   좋아요 0 | URL
로마인 이야기는 가지고 있는데 한권씩 사모았거든요..
토지도, 태백산맥도 생각해보니 모두 한권씩 산 거 같아요..
(그래서 토지는 판형도 출판사도 지멋대로임 ㅠ.ㅠ)
뭔가 한권씩 안사고 10권 20권이 한꺼번에 나타나면 기가 질리나봐요.
내공이 빈약해서죠 --;;

Joule 2009-02-17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전집 사실 내용이 좀 알차지요. 저도 살짝 손가락이 근질거리는데 실물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하이드 2009-02-17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로는 꽤 괜찮아 보여요. 가격도 착하구요. 일단 저는 양장본인 것이 좋아요. 케이스가 통케이스가 아니라, 각각 케이스 달린거면 더 좋았겠지만요.

Joule 2009-02-17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 님이 먼저 사서 인증샷 올려 주시면 그거 보고 저도. ☞☜

하이드 2009-02-17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올라갑니다. 인증샷. 기다렸어요. 함께 질러줄 사람-

카스피 2009-02-17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집을 별로 안좋아해서 4권만 가지고 있다는.....

하이드 2009-02-17 22:01   좋아요 0 | URL
저도 집에 전집..이라 할 만한건 하나도 없긴 합니다만 ^^a 요정도는 욕심 나네요.

mannerist 2009-02-17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열"이라는 글자가 박힌 책 중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1人 ㅎㅎㅎ
저거 1996년 살림 초판본으로 헌책방에서 짝 맞추는데 2년 걸렸다지요. 마지막 빠진 이빨을 제대하고 처음 간 부산 보수동 골목에서 맞췄을때의 짜릿한 기분이란!! 소인의 베스트는 "환상과 기상" -_-b

하이드 2009-02-17 22:00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덕분에 찾아 봤다가, 양장본 세트로 나온걸 알게 되었다지 -_-;;

보물선 2015-02-02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작품초이스가 죽인대요~ 갑자기 갖고 싶어졌으나, 품절. 교보문고 딱 한군데 ~ 고민중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