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후 첫 날부터 유치원에 다녀와 미주알 고주알 하루 일을 보고도 잘 하고,
자기 소개하는 연습을 해보자며 잠깐 가르쳤더니
" 안녕하세요, 저는 김수민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또록또록하고 우렁차게 얘기도 잘 하길래 처음이지만 잘 적응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자기는 현장학습 가기 싫다길래
안내문을 보니 고학년은 하룻 밤을 자고 저학년은 당일에 집으로 돌아오는 수련회란다.
내일이 수련회 가는 날일까봐 다음 날부터 당장 유치원을 가지 않으려고 할 정도라서
지난 번에 수목원으로 현장학습 갔을 때 무슨 부정적인 경험이 있었는지 전화를 드렸더니
수민이가 낯을 가린다는 말씀을 이제야 하신다.
입학원서에 장점으로 <인사를 잘 합니다.>라고 써보냈는데
선생님들께서 먼저 인사를 건네도 인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낯을 가려서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수민이가 말을 잘 하는지 모르는 선생님이 계신다고 한다.
게다가 유치원 급식시간이 끝나도록 점심을 다 먹지 못한 날에는
고학년들이 점심을 먹으러 급식소에 몰려들어오면
자기 식판도 치우지 못하고 선생님 옷자락에 매달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수련회는 유치원생부터 6학년까지 조를 짜서 모둠활동을 할 예정이라
그 날 낮에 조별모임을 하라고 보냈더니 도중에 울면서 유치원 교실로 돌아왔다고 한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유치원에서 좀 울었다고 하더니
다른 학년 언니,오빠들이 낯설고 무서웠단다.
수요일이 수련회였는데 화요일부터 결석하기 시작하여 목요일에도 수련회가 끝나지 않았을까봐 결석하고 점점 결석이 늘어서 요즘은 아예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 유치원에 간다.
그것도 자기가 간식당번이어서 간식도우미 하는 날 간식 가지고 가는 재미로
또는 선생님이 뭔가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주시는 요리시간이 있는 날 선심쓰듯 한 번 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 유치원 그만 다닌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린다고 하면 그러지 말란다.
1학년이 되려면 유치원에 다녀야하기 때문이라나?
동갑이라도 덩치나 생각이나 한글이나 수나 영어나 모든 것이 우위에 있는 하은이는
언니,오빠들과 블럭놀이를 하면서 미니는 끼워주지 않는단다.
" 끼우는 블럭은 끼워주는데 쌓는 블럭을 안 끼워 줘!"
(레고를 최근에 하나 사줬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까 나무쌓기 블럭도 사주고 싶어진다.ㅜ.ㅜ)
" 나는 영어를 못하니까 에이.비,씨,디를 좀 배워야 되. 엄마가 좀 가르쳐 줘."
이러면서 영어 테잎을 틀어놓고 종이접기 한 다음, 정말 알파벳 네 글자를 읽고 써보기도 했다.
한글도 따라쓰기에 열심이어서 전보다 몇 글자 더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주로 유치원 친구들 이름에 들어가는 글자들이다. <민>자는 받침이 있어서 그런지 어려워하고 자기 이름보다 김유수라는 친구이름을 더 즐겨쓴다.^^)
어리고 또 모르는 스트레스에다
집에서처럼 야무지게 굴지도 못해서 아마도 시키는대로 해야하는 스트레스가 있는 모양인데
아직 다섯 살이니 마냥 집에서 놀려야 할지 아니면 억지로라도 문제와 맞닥뜨려 해결하게 해야할지 초보 엄마는 갈피를 못 잡고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