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농담이다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2
김중혁 지음 / 민음사 / 2016년 8월
평점 :
초등학교 1학년 조카가 학교에서 < 나는 나를... 생각한다 > 라는 문장을 완성하라는 과제를 받고
< 나는 나를 너무 좋다고 생각한다 >는 다행스럽고 근사한 대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도 꾸며주는 말을 써서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문제를
이렇게도 단호하고 짧게 해치워버리고 말다니!
꼼꼼하게 여러 날에 걸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지만
내가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심오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성의가 없어보이는 제목이다.
비록 사전조사 따위 별로 열심히 한 것 같아 보이지 않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우주와 그 언저리에 관한 책을 사들여 읽었고 스탠딩코미디도 많이 보았고
실로 심혈을 기울여 조사하고, 준비하고, 글을 쓰고
그것도 모자라서 탈고를 한 후에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내어서
작가의 말 씩이나 다 써냈다는 요지(내가 제대로 알아들었다면)의 작가의 말까지 다 읽었으나
여전히 내게는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제목이다.
그냥 농담 두 글자가 내가 보기엔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동의하기 싫다 이런 맘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 제목의 책을 왜 샀냐고? 거기다 다 읽기까지!
대상도서를 포함하여 몇 만원어치의 책을 구입해야 준다던 북램프를
간단하게 두 권의 책으로 내 품에 안겨준다는 말에 미혹되어 망설임도 없이 어쩌다 그리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든 북램프는 더도 말고 2박3일 간의 감격과
인스타그램에 올린 인증샷에 그 분의 좋아요를 남기고 안중에서 사라졌다.
김중혁은 나에게 소설가라기 보다는 한 때 몰입했던 김연수의 친구였고
아마도 늘 또렷하지 않은 나의 기억으로 씨네21에 정기적으로 영화평을 게재했던 사람이다.
아닌가?
다른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뭏든 그런 줄 알고 무려 책을 샀다.
소설이 아닌 바디무빙(소설인가?)의 표지가 인상적이기도 했다.
그 분홍색 바탕에 수경을 쓰고 온 몸을 길게 쭉 뻗은 인물이 그려진 표지말이다.
그리하여 몇 편의 소설을 쓰셨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소소한 정보들을 취합한 결과
소설가 김중혁에 대한 탐구정신을 발휘하여 첫번째 소설을 성공적으로 다 읽었다.
그리고나서 특별히 남길 말은 없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나에게는 무척 소중하고도 귀한 혼자있는 한밤중의 시간을 쏟아부어
그 소중하고도 귀한 잠을 줄여가며 일종의 독후감을 쓰고 있다.
독후감에서 가장 중요한 "감"에 해당하는 내용을 쓸 말이 없으므로
단 한 장 사진으로 남긴 구절을 여기도 남긴다.
"당연하지, 바보야. 당연한 거야. 그걸 이해할 수 있다고 떠드는 놈들이 사기꾼이야.
감정은 절대 전달 못 해.
...
어차피 우린 이해 못하니까 속이지는 말아야지. 위한답시고 거짓말하는 것도 안 되고,
상처받을까봐 숨기는 것도 안 돼. 그건 다 위선이야."
오늘 밤에 시간내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칠불사 불교수업을 들으러 갔다.
극락이나 천당에 가면 선업을 쌓기가 힘들단다.
거기는 뭐 워낙 착하고 다 갖춰진 사람들이 살아서 고통이나 괴로움 따위가 없다보니
그들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는 착한 일 따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고
그러다보면 다시 고통과 괴로움이 넘쳐나는 세상으로 떨어져 다시 태어난단다.
그런데 여기서도 선업을 쌓기가 어려운 까닭은 선악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결정하기 때문인데
제 아무리 좋은 뜻으로 한 일이라도
상대방이 더 괴로워졌다고 싫어하면 악업이 되고
제 아무리 나쁜 맘으로 막 저지른 일이라도
희안하게 상대방이 괴로움을 덜었다고 좋아하면 선업이 된다나!
선업을 쌓아서 윤회의 고리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서 이 고통의 바다를 떠나라면서
착하게 살아갈 시스템이라곤 영 갖추어져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네 속에 들어갔다 나온다한들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니 맘을 어찌 다 쫓으리.
니가 싫다고 할 때마다 나는 농담이 되어야할까?
니가 힘겨워 할 때마다? 사실은 내가 힘겨울 때마다?!
이 세상은 한 시도 그대로 있지 않고 한 시도 괴롭지 않은 때가 없다는데
나는 무엇이 되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