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방과 작업공간이 부족하다고 일터 증축을 시작한지 1년이 지났지만

 

꼼꼼하게 짓고 돈이 마련되면 짓고 하다보니 여전히 공사 중이다.

 

그래도 이제 막바지라 좀 더 열심이다보니 엄마나 아빠나 지치고 신경이 곤두 선 요즘이다.

 

어느 날 아침부터 일도 너무나 많고 급해서 티격태격하다보니

 

치료수업을 데려간다 못간다 신경전을 벌였다.

 

일단 사촌누나가 데리고 갔다가

 

미리 정해진 일정대로 누나는 서울로 가고

 

수업 마치는 시간에 엄마아빠가 데리러 가기로 했지만

 

이렇게 바쁘고 어수선한 상황에서 과연 제 시간에 갈 수 있을지 엄마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예전에는 웬만큼 바쁜 날이면 그냥 오늘은 쉬라고 하는 날이 잦았었는데

 

원래 아들이 치료수업 나들이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지난 가을부터 부쩍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니

 

요즘은 무리를 해서라도 꼬박꼬박 빠뜨리지 않고 열심히 가라고 배려를 해주어서 고마웠는데 ㅠ.ㅠ

 

어찌되었건 아침부터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배추모종을 다 심고 간신히 시간 맞추어 아들을 데리러 갔다.

 

엄마는 아무 생각없이 수업마친 아들 이름을 불렀는데

 

어쩐 일인지 언어치료수업이 끝나도 책상 앞에 그대로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던 아들이

 

스프링이라도 달린 듯 펄쩍 뛰어일어나며 손뼉까지 크게 치고 달려나와

 

엄마를 부르며 품에 와 안겼다.

 

알고보니 첫 수업인 음악치료 시간에는 크게 분 풍선에 가족들 이름을 매직으로 써 넣다가

 

엄마를 부르며 풍선 위로 엎어지며 엉엉 울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데리러 오지 못할까봐 내심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따로 일러주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알만큼 인지능력이 향상되고

 

또 엄마 자리가 우리 아들에게 그렇게 컸던가 싶어서 깜짝 놀랐다.

 

늘 일에 쫒기느라 같이 생활하시는 큰엄마와 사촌누나에게 기대는 일이 많은데,

 

한편으로는 엄마라는 좁은 관계에만 매이지 않도록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한 가지라도 더 엄마가 직접 챙겨야겠다는 반성을 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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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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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유리잔이었다.

어쩌다보니 자주 홀짝이게 된 냉커피를 타기에 딱 알맞아 보이기에

씌어진 문구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유리잔을 내 손에 넣을 수 있는 대상도서를 쓰윽 훓어보았다.

 

단숨에 눈길을 끄는 책은 없었다.

쓰윽 서너 번 되풀이하다 그냥 한 권 골랐다.

읽지 않은지 너무 오래이다 보니 모든 작가의 이름들이 낯설었다.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아이들과 넘쳐나던 손님들과

하루가 도무지 정신없던 시절에도 읽던 날이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요즘엔 사서 재어두기는 커녕 구경만 하는 일도 드물다.

 

아뭏든 좋은 말로는 소박한 바램이요, 나쁜 말로는 어리석은 물욕으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주문한 후에는 대충 잊고

도착한 날에는 유리잔부터 챙기고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 화면에서는 미처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그 하늘색의 채도와 명도에 감탄한 나는

모든 일에서 첫인상에 유난히 그리고 맥없이 휘둘리는 위인인지라

두 팔의 정적인 혹은 동적인 포즈와 소매 끝을 말아 쥔 손끝도 마음에 들었고

흰 색으로 씌어져 너무 한낮의 눈부신 또는 바랜 빛을 제대로 구현한 글씨도 마음에 든 나머지

이런 표지는 누가 만드나?

작가보다도 표지디자이너를 먼저 궁금해하며 책장을 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제주도에 시부모님도 계신다는 결혼한 아낙이

아무리 단편소설이라라지만 두 해 동안 9편의 글을 써서 묶어내었다는 것이 대단했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냥 쓰윽 씌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내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걸까?  그냥 사샥 써내려 갈 수도 있다는 걸

 

아뭏든 나는 재미있게 때로는 당혹스런 마음을 안고 재빨리 다 읽어버렸다.

딸은 엄마가 책 읽을 시간이 있었느냐고 놀라워했다.

대충 쓰윽 읽었건 졸아가며 읽었건 아뭏든 다 읽었다.

 

성석제를 읽으면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들이 겹쳐 떠오르고

권여선을 읽으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구석구석 한숨나는 현실이 어딘가 살아있을 듯 했는데

김금희를 읽으니 이건 일상의 탈을 쓴 기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연성이 부족한 것은 아닌데 내게는 무척이나 기이한 이야기들이었다.

성석제와 권여선에게 받은 느낌들이 적당히 뒤섞여 있다고나 할까?

 

권여선은 <평범한 세상이 김금희의 문장을 통과하면 우리가 매일 맞이하는 정오처럼 익숙하면서도 이물스럽게 변한다.>고 말했다.

 

소설의 미덕이자 존재감이 복선과 반전에 있다고 한다면,

복선과 반전이 소설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김금희는 기본에 충실한, 존재감이 확실한, 소설가로서의 미덕을 갖춘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신문의 사회면을 뒤덮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는지 날마다 확대 재생산되는 엽기적인 범죄들과

소통을 외면하고 자기 변명을 늘어놓는 일에도 이제는 게으를대로 게을러진 사람들과

그 속에 감추어지거나 감추어지지도 않은 채 난무하는 폭력과 공격성,

그 폭력이 몰고오는 두려움과 위압감, 무기력과 좌절감을 감당하느라

맥락없이 웃고 기억을 각색하고 환영을 만들어내는 그와 그녀들이
딴청을 피울 수 없게 너무 선명한 까닭으로

오히려 그 빛에 눈이 부셔 제대로 들여다보기가 힘이 든다

 

 

오랜 만에 어쩌다 읽은 소설 한 권이

내게 또 다른 우리 소설을 읽히는 동력이 되어서 일단 문학상수상작품집을 하나 주문했다.
내가 읽지 않던, 읽지 못하던 사이에

좋은 글을 써 온 또 다른 소설가들이 틀림없이 있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머지 않은 날에 김금희의 첫 소설집도 물론 읽어보고 싶다.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제목부터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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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16-07-14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글을 너무 잘 쓰십니다. 좋은 리뷰 감사해요~! 저도 읽어볼게요.

2016-07-14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었음 보내주셔요 하고 싶지만 지난 번 책들도 다 못읽었네요^^;;
리뷰 잘 읽었어요..칭찬!!!
 

학교에서 친구사랑주간 행사로 친구자랑 글짓기를 했단다.

 

유치원을 같이 다니고 입학도 같이 했다가

 

몇 년 전에 전학 간 중원이 이름을 요즘 갑자기 계속 들먹이는데

 

이번엔 작년에 전학 온 한웅이가 산골소년 자랑을 해주었다고 선생님께서 문자를 보내주셨다.

 

 

내 친구 **이를 소개합니다.

**이는 블럭을 잘 만듭니다. 그리고 한 번 본 것은 기억을 잘한다.

**이는 그림을 잘 그리고 색칠도 잘 합니다. **이는 정리정돈도 잘 합니다.

**이는 성격도 좋고 착한아이지만 다만 전화기, 컴퓨터를 너무 좋아해서 가끔 문제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는 좋은 아이입니다. 또 **이는 선생님이 시키는 것도 잘 합니다. 이상으로 **이 자랑을 마칩니다.

 

2016/7/4 한웅이가

 

 

지난 봄 수학여행을 갔을 때는

 

잡월드에서 포인트를 획득해서 받은 블럭 장난감을

 

승환이가 산골소년에게 선물해주기도 했다.

 

엄마는 친구들이 고맙게도 산골소년을 있는 그대로 큰 편견없이 받아들이고

 

그리하여 이미 다섯 해 동안 별다른 문제없이 함깨 해오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아빠는 놀림 당하고 따돌림 당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이 지나친 나머지

 

술 취한 밤이면 친구들이 뭐라고 놀리느냐고 산골소년을 다그쳐서

 

결국 눈물 흘리게 하는 날들이 종종 있다.

 

엄마도 염려하는 문제이고 아빠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서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산골소년에게 오늘 학교에서 뭐했느냐고 물었더니

 

5학년 친구들이랑 교실에서

 

라는 평소와는 다른 대답을 웃는 얼굴로 들려주었다.

 

사실은 아침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문을 들어서는 것만 보아도

 

지금 이 순간 스스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문을 열고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고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으니

 

엄마아빠의 괜한 의심과 욕심은 똘똘 묶어 멀리 버려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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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시간마다 한 사람씩 자기 마음을 움직인 시를 돌아가며 발표하는데

 

하이쿠나 단문으로 된 시라든가

 

은유가 굽이쳐 흐르거나

 

함의가 석류알처럼 빼곡히 박혀있거나

 

의식의 흐름이 징검다리를 퐁퐁 건너는 그런 시는

 

선생님께서 판단하시기로는,

 

천방지축 송사리떼처럼 몰려다니며 해들거리는 열네살 아이들이

 

제대로 느껴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라

 

너희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시 중에 한 편을 골라오라고 하셨단다.

 

휴대폰을 들고 그 작은 화면 속에서 시를 찾는 따님을 위해

 

나도 잘 모르는 몇몇 시인을 천거하여 뒤적인 끝에 하나를 골랐다.

 

 

         소스라치다                     

                                     -  함민복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생명들

 

(시집 말랑말랑한 힘, 문학세계사 2005)

 

 

하지만 발표할 날까지 아직 여유가 남았다고 하니

 

몇 권의 시집을 사주고 읽혀서 진짜 따님의 마음을 움직인 시를 고르게 하고 싶다.

 

엄마의 일천한 책읽기는 소설에 국한되어 있는지라

 

목적에 맞는 시인이나 시집을 고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시집이라곤 동시집도 읽어 본 적 없는 드 넓은 백지를 품안은 열 네살 소녀의

 

첫 마음을 움직여 줄 누군가를 아시는 분, 추천을 좀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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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를 기다리면서 책을 읽고 있었더니 같은 반 남자친구가

 

    - 나도 셰익스피어 잘 알아

 

   그래? 그럼 5대 희극 중에 하나만 말해 봐

 

   - 헨리

 

   햄릿? 그건 비극이거든!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건 햄릿에 나오는 대사잖아!

 

 

중학교 첫 시험을 치고 휴대폰 압수도 미흡하여 통화정지까지, 상황이 그러하였다.

 

시험 전 날

 

어차피 지금 벼락공부하는 것보다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해맑게 얘기하더니

 

둘째 날

 

시험 끝나고 누구랑 어디서 어떻게 신나게 놀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역시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되겠다고 룰루랄라 하더니

 

역시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결과는 엉망이었다.

 

노력하지 않고 결과가 좋으면 그게 사기일텐데 다행히 세상은 여전히 정의로웠다.

 

시골이라도 늦은 밤까지 사설학원에서 수업 끝나고 자율학습하는 아이들도 있고

 

그런 학원 안 다니지만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매일 한 시간 반 이상 공부하고 줄넘기 1000개 하고 잠든다는 1등하는 친구도 있다.

 

과목마다 성적이 속속 나오자 미니아빠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미니를 앞에 앉혀놓고 다다다다 다다다다 잔소리를 퍼부었건만

 

따님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아빠가 정성껏 삶아놓은 족발 한 접시를 그 사이 깨끗하게 해치웠다.

 

사춘기 일발 장전인가?  참으로 천연덕스럽기도 하였다.

 

연대책임으로 엄마에게도 쏟아지는 잔소리를 피해서 낮에 다 못한 일을 하고 있었더니

 

따님은 몸소 엄마를 찾아와

 

시험을 그렇게 치고도 아빠한테 말 걸고 싶으냐? 하셔서

 

시험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 좀 못 쳤다고 부녀 간의 연을 끊을 수는 없지 않겠냐고 말씀드렸다는 소식을 전하며

 

파인애플 좀 깎아달라는 한가하고 기막힌 부탁을 하였다.

 

따님 말씀과 같이 시험은 못 쳤지만 그래도 내 딸인지라

 

한 조각 깎는 시범을 보여주었더니 일말의 양심이 발동했던지 직접 하겠다고 해서 두고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음식물 쓰레기 통을 열었더니 파인애플 한 통의 사체가 장렬하였다.

 

동생들과 사촌언니와 두 통의 파인애플을 먹어치운 후 다시 혼자서 한 통이라니 잠시 어이가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그래, 지금은 놀아야 할 때지 이렇게 무덤덤했는데

 

잠깐 돌아선 사이 중학생이라고 이제는 걱정스럽다.

 

영수국 다 안되는 것도 그렇고,

아빠한테 뻣뻣한 것도 그렇고,

저렇게 먹은 게 제대로 다 소화될까 싶은 것도 그렇다.

 

미니가 아장아장 걷기도 전부터 우리 집에 들린 손님들은 진지하게 걱정을 했다.

 

여기서 애는 어떻게 가르칠 것이며 학교는 어디로 보낼거냐고.

 

살아오면서 내린 결론은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할 때는 이 곳이 미니의 동생에게 더할 나위없는 곳이라

 

미니가 일찍 집을 떠나기 싫다면 여기서 중고등학교를 다녀야 한다.

 

자사고, 외고, 과고에 진학하려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관리하여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도 쉽지 않다고

 

도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부모들이 충고를 하였다.

 

사실 면소재지의 중학교에서 놀며놀며 공부하여서는

 

안심할 수 있는 기숙사를 제공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으므로

 

너에게 열정과 의지와 목표와 능력이 있다면

 

고등학교 졸업하고나서 비로소, 뒤늦게, 어렵게, 처절하게

 

공부하고 준비하고 도전하고, 운이 좋으면 성취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만족하고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무대책이 엄마의 유일한 대책이라면 대책이다.

 

당장 엄마가 그런 열정과 의지와 목표와 능력과 인내를 완벽하게 구현하여 보여준다고 해도 될까말까 한 일이지만

 

따님이 앞으로 그런 열정과 의지와 목표와 능력과 인내, 그 어려운 걸 해내길 막연히 기대했는데

 

역시나

 

엄마든 딸이든 그런 삶은 쉽지 않다.

 

공부하기 싫으면 책이라도 읽어주면 좋겠다고

 

아무런 기준없이 즉흥적으로 사들인 몇 권의 책이 전부다.

 

미니 친구녀석은 헨리로 미니를 골려먹은건지 아닌지 아직도 알쏭달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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