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블라디미르 레닌이 죽었다
(……)
사람들 위에 그토록 높이 있으면서도 공명심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생생한 관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 또 있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에게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공감을 끌어내는 자석과도 같은 매력이 있다. 레닌은 이태리어를 할 줄 몰랐으나 샬랴핀 같은 다른 러시아 거물들을 많이 보아 왔던 카프리 섬의 어부들은 어떤 놀라운 후각 같은 것으로 대번에 레닌을 특별한 자리에 놓았다. 그의 웃음은 매력적이었다. 그 웃음은 어리석은 인간의 아둔함과 이성이 부리는 교묘한 잔꾀를 꿰뚫어 볼 줄 알면서도, ‘단순한 심장’에서 나오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 또한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진실한’ 웃음이었다.
지오반니 스파다로라는 늙은 어부가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정직한 사람이 아니고는 그렇게 웃을 수 없지요.”
하늘처럼 푸르고 맑은 물결 위의 흔들리는 배 안에서 레닌은 낚싯대 없이 손가락으로 낚싯줄을 놓아 낚시하는 법을 배웠다. 어부들은 그에게 손가락에 낚싯줄의 떨림이 느껴질 때 바로 줄을 잡아채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코지, 드린-드린, 까피시”
그는 대번에 물고기를 낚아 끌어올리고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흥분한 사냥꾼의 함성을 질렀다.
“아하, 드린-드린!”
어부들 역시 아이들처럼 기뻐하며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크게 웃으며 낚시꾼에게 별명을 붙여 불렀다.
“씨뇨르 드린-드린.”
그가 떠난 후 어부들이 늘 내게 묻곤 했다.
“씨뇨르 드린-드린은 어떻게 지내나요? 러시아 황제가 그를 잡아가지 않았나요?”
1907년 런던에서 레닌을 처음 본 몇몇 노동자들이 전당대회에서 보인 그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그의 장점을 들어가며 말했다.
“글쎄요, 어쩌면 여기 유럽 노동자들의 지도자 중에도 그런 똑똑한 사람이 또 있을지 모르지요. 베벨110이라든지 다른 누가 있겠죠. 하지만 이 사람처럼 단번에 내 마음에 들 만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또 다른 노동가 웃으면서 말을 보탰다.
“저 사람이야말로 정말 우리 사람입니다. 결단력이 있어 보여요.”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대꾸했다.
“플레하노프111도 우리 사람이죠.”
나는 적확한 대답을 들었다.
“플레하노프는 우리한테 선생이나 상전 같은 사람이지만 레닌은 우리 동지죠.”
1918년 가을 소르모보의 노동자 드미트리 파블로프에게 레닌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단순함이지요. 그는 단순합니다. 진실처럼요.”
이 말을 할 때 그는 오랫동안 심사숙고하여 결론을 내린 듯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의 밑에서 일했던 사람이 누구보다 엄격하다. 그런데 레닌의 운전사로서 많은 일을 겪은 S. K. 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레닌은 특별합니다. 그런 사람이 없지요. 먀스니츠카야 거리를 운전해 모시고 가는데 차가 많아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어요. 혹시 차라도 긁힐까 신경이 쓰여 경적을 울리면서 무척 걱정을 했지요. 그런데 그가 다른 차에 부딪힐 위험이 있는데도 차 문을 열고 나와 차 발디딤대를 타고 앞쪽으로 와서 내게 그러는 거예요. ‘걱정 마세요, 길. 다른 차들처럼 천천히 갑시다.’ 내가 오랫동안 운전을 해서 알지만 누구도 그렇게 하진 않거든요.”
나의 오랜 친구 하나가 있는데, 역시 소르모보 출신으로 온화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 그가 체카에서 일하기가 너무 힘겹다고 한탄을 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건 자네 일이 아닌 것 같고, 자네 성격에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
그는 침울하게 동의했다.
“내 성격에 전혀 어울리지 않지. 하지만 일리치 또한 자신의 본마음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면 내 나약함이 부끄러울 따름이네.”
나는 자신들이 헌신하는 대의의 승리를 위한 조직적인 사회적 이상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자신의 본마음을 감추려” 했고, 지금도 그래야만 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알고 있었고 또 알고 있다.
레닌이 정말 “자신의 본마음을 감추려” 했을까? 그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에 대해 얘기할 만큼 스스로에게 관심을 기울인 적이 거의 없다. 그는 누구도 못할 만큼 자신의 정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내밀한 폭풍에 대해 침묵을 지킬 줄 알았다. 한번은 고리키 시에서 어떤 아이들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이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입니다. 우리가 겪었던 많은 것을 이 아이들은 겪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의 삶은 덜 잔혹할 것입니다.”
그러고는 멀리 언덕 위에 굳건하게 자리 잡은 마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덧붙였다.
“그렇다 해도 나는 이 아이들이 부럽지는 않습니다. 우리 세대는 놀라운 역사적 의의가 있는 과업을 수행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우리 삶에 강요한 잔혹함이 정당했음을 이해해 줄 날이 언젠가 올 것입니다. 모든 게 이해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는 아이들을 각별히 부드럽고 세심한 손길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악마가 교묘한 재주를 부려 놓은 우리 삶에서는 증오할 줄 모르고서는 진실로 사랑할 수도 없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그 본성상 인간을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는 이러한 필연성은 영혼을 분열시키고, 증오를 통하지 않고는 사랑에 이를 수 없는 불가피성은 삶에 파멸이라는 운명을 지운다.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한 보편적인 방법으로서 고통이 필요하다고 설교하는 러시아라는 나라에서, 나는 레닌처럼 사람들의 불행과 슬픔과 고통에 대해 그토록 깊고 강력한 증오와 혐오와 경멸을 느끼는 사람을 만나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 같은 감정들, 무엇보다 삶의 드라마와 비극에 대한 이 증오가 러시아의 철인 블라디미르 레닌을 높이 일으켜 세웠다. 러시아는 가장 뛰어난 재능으로 쓰인 복음서들이 고통의 영광과 성스러움을 주제로 하고 있는 나라이며, 본질적으로는 거개가 소소한 일상적 드라마에 관한 그렇고 그런 묘사로 가득 찬 책들을 읽고 따라 하며 젊은이들이 인생을 시작하는 나라이다. 러시아 문학은 유럽에서 가장 염세적인 문학이다.
우리나라 책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주제에 관해 쓰고 있다. 청년기와 성년기에는 이성(理怯)의 결핍으로부터, 전제정치의 폭압으로부터, 여자들과의 연애로부터, 가까운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로부터, 노년에 가서는 살면서 저지른 잘못에 대한 깨달음으로부터, 이빨이 빠져 없거나 소화가 안 된다거나 곧 죽어야 한다는 따위들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고통 받고 있는지를 그린다.
‘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에서 한 달을 지내거나 유형지에서 1년을 보낸 러시아인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겪은 고통에 관해 회상하는 책을 러시아에 바치는 것을 자신들의 성스러운 의무로 여긴다. 이제껏 어느 누구도 자기가 평생을 얼마나 즐겁게 살아왔는지에 관한 책을 생각해 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책을 보고 따라 하는 이 나라에서 그런 작품이 나왔다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대번에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따라 살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러시아 사람은 자신을 위한 삶을 생각해 내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그런 삶을 살 줄은 잘 모른다. 따라서 행복한 삶에 대한 책이 나온다면 러시아 사람에게 그런 삶을 어떻게 생각해 내야 하는지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레닌은 일상생활의 복잡한 드라마를 얼마간 단순하게 생각하여, 러시아적 삶의 온갖 외적 추악함과 불결함을 손쉽게 제거하듯 그 복잡한 드라마 또한 손쉽게 제거할 수 있을 거라 여긴 듯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로 하여금 그를 각별히 위대하다 여기도록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불행에 대한 그의 비타협적이고 꺼질 줄 모르는 적대감, 그리고 불행이란 결코 우리 존재의 어쩔 수 없는 토대가 아니며,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몰아낼 수 있고 몰아내야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그의 명료한 신념이다.
그의 성격에서 보이는 이 주요한 특징을 나는 전투적 낙관주의라고 부르려 한다. 이는 러시아적 특징이 아니다. 바로 그의 이 전투적 낙관주의가 내 영혼을 이 위대한 인물에게로 특히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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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러시아 대표 지식인 막심 고리키 저널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경외감, 삶에 대한 고결한 의지를 읽는다!
가난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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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9일 출간될 <가난한 사람들> 미리 읽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