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경주를 다녀왔다. 루야는 뷔페를 좋아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외식을 한 경험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그래도 여럿 기억에 남는다. 그 가운데 하나는 참새 고기를 직접 연탄불에 구워주시던 생각이 명료하다. 그때 내 나이는 아마도 6살 정도였을 것이다. 동생은 아직 갓 난 아기여서 엄마 등에 업혀 있었다.
아버지는 참새 여러 마리를 잡아 뜨거운 물에 담그고, 깃털을 뽑아 석쇠에 한 마리씩 올려 기름을 바르면서 구웠다. 나는 어려서 입이 짧았는데, 이상하리 만치 그때 참새 고기의 맛은 너무 도 입에 맞았다. 구워지는 대로 낼름, 낼름 먹어치웠는데도, 아버지는 계속 웃기만 했다. 나에게 그런 아빠의 모습이 있었다는 것을 돌아가신 뒤에야 알게 되니, 가슴 아픈 기억일 수도 있겠다.
10년 이상 되었지만, 어느 책에서 읽었던 대목이 기억이 난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훈련도감 군인이 왕을 모시고 행차를 하였다. 왕을 모시는 군인이라 하면, 대단한 위세를 떨치는 존재로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사실 조선의 왕은 그다지 부유함이 있은 경우가 드물다. 특히 임진녀과 병자년 전쟁을 치른 이후의 왕들은 언제나 근검절약을 생활화하여야 만 했다. 왕의 행차가 먼 곳에 이를 경우, 수라는 주로 그 지역의 부유한 양반 가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리 행차를 알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알리지 않고 드러닥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경우 양반이 대단한 것을 준비할 수 없어, 바삐 준비한 것을 간단하게 한상 차려내는 경우가 많았다. 왕의 수라가 이럴진데, 따르는 군사들의 먹을 거리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왔다. 왕의 가마(난여)가 어느 고을 양반가에 멈추자 왕은 양반내 마루에 앉아 수라를 들고, 호종하던 군사들은 집 밖 기와 담벼락 아래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게 되었는데, 자식 둘을 둔 훈련도감 군인은 자신의 몫으로 나누어준 떡을 하나만 입에 물고, 나머지 네 다섯 개를 땀에 젖은 수건에 감아 가슴 팍에 꽂으며 빙긋 웃었다. 자식들의 입에 들어갈 떡이라 그런지 너무도 흐뭇해 하는 모습을 보며, 옆 자리 나이 지긋한 고참 군인이 떡 한 덩이를 건네며 말한다.
'자네도 한덩이 더 하게'....
사람 사는 것은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 한 가지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주고파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루야는 뷔페를 좋아한다. 자주 시간을 내어야 겠다.
![](https://image.aladin.co.kr/product/27965/66/coversum/k622734312_2.jpg) | 역사비평 136호- 2021.가을
역사문제연구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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