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한다.
대한민국은 집값 때문에 망할 것이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학기 초 MT간 후배들을 위해 격려라는 이름으로 숙박지에 갔다. 나이있는 선배라는 이름으로 '에헴'하고 있는 동안, 총무가 한바탕 술안주를 깔았다.
'치킨', '짬뽕국물',...우리가 모아준 돈으로 거하게 시킨 안주에 후배들은 감사해 하며 떠들썩하게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때 한 바구니의 바나나가 내 앞에 있었는데, 몇개 되지 않는 바나나를 총무가 한 사람 당, 한 개 씩 나누어 주는데, 난 선배라는 이름으로 바나나를 마다하며, '너희들 먹어라' 사양했다.
하지만, 마음 속에선 배고픔이 바나나를 갈망하고 있었다. 바나나는 너무도 먹음직스럽게 노란색을 빛내고 있었다. 살짝 스쳐가는 바나나 향을 맡는 순간 내 어릴 적 집 앞, 대형 슈퍼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그때 6살이었고, 내 동생은 4살이었다. 엄마는 나를 걸리고, 내 동생은 업고서 슈퍼에서 장을 보았다. 슈퍼 안 가운데 바나나 한 덩이가 매달려 있었는데, 아직도 생각나는 가격표 '500원'....
나는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바나나를 사 달라고 졸랐다. 징징거리는 나의 손을 뿌리치다 못한 엄마는 주인 아저씨에게 물었다.
"바나나 두 개에 얼마해요?"
"천 원 입니다."
"예, 천 원이요" 놀란 엄마의 눈이 생각난다.
엄마는 바나나 한 덩이가 20개 정도 되는 한 덩이 모두가 500원인 줄 알았던 듯하다. 당시 짜장면이 한 그릇 가격이 150원하던 시절이었다. 아빠가 공사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손에 받아든 일당이 1500원이던 시절이었다.
망설이던 엄마가 슈퍼에서 돌아서 나오려는 순간,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날 안스럽게 보던 엄마가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돌아서던 장면이 기억에 선명하다.
거북선에 이순신 장군이 그려져 있던 오 백원 짜리 종이 돈을 주인 아저씨에게 내밀며 말했다.
"바나나 큰 걸로 한 개만 주세요. 큰 걸 로요."
주인 아저씨가 건넨 바나나는 크고도 실한 것이었다. 바나나를 받아든 나는 너무도 좋아 웃었다. 슈퍼 앞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 엄마는 바나나를 둘로 갈라 큰 부분을 나에게 주었고, 작은 부분을 등에 업은 동생에게 주었다. 그리곤 살짝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던 엄마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후배가 나누어주던 바나나를 보면서, 솔직히 나는 너무도 먹고 싶었다. 배 속에서 바나나를 갈망하는 기운을 느꼈다.
그 순간, '그때의 엄마도 바나나가 얼마나 드시고 싶었을까?'
당시 엄마의 나이는 바나나를 받아든 후배를 바라보는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였다. 그때, 엄마는 얼마나 바나나가 먹고 싶었을까? 살짝 눈물이 앞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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