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더운 9월 중순...
언제던가, 아련한 중학교 시절, 어느 9월 등교 시간...우리는 언제나 학교정문 앞 대머리 학생주임의 눈을 피하기 바빳다.
지금 생각하면, 별 문제 아닌 것도 당시엔 큰 죄진 것처럼 호되게 욕 듣고, 심지어 싸다구 맞은 적도 많았다.
수학여행 때, 버스를 기다리는 유스호스텔 마당에서 갑자기 몇몇 어른이 기념품이랍시고, 화약총, 담뱃갑, 총모양 까스라이타, 등등을 가지고 학생들 앞에서 큰소리로 판매했는데, 우리 대머리 학생주임, 단번에
"야..이 **들아, 우리 애들한테 뭐하는 거야!!"
반말한보탱이 날려주시며, 학생들에게 누구도 사지 말라고 소리치셨다.
그 기념품 팔던 젊디젊은 아저씨 한 명이 대뜸 한다는 말이,,,
"왜, 뒷돈 안줘서 그러나!!"
같이 반말로 대꾸하니, 우리 학생주임 단번에 멱살을 잡고, 끌면서 유스호스텔 사무실로 들어가 아저씨를 메다 꼰졌다. 이후 우리를 태울 버스가 모두 도착했지만, 학생주임은 안 왔고, 일정 상 모두 출발하는 와중에도 옆 반 젊은 남자 담임선생님께서는 남아서 둘 사이를 말리고 있었다. 우리 반 버스가 출발하던 순간, 경찰차가 오는 것이 보였고, 점심을 지나서 다시 우리 앞에 학생주임이 돌아왔다. 얼굴은 울구락불구락했지만, 왠지 멋져보이던 대머리 학생주임 선생님,
그렇게 무섭던 학생주임도 20년이 훨씬 지난 어느 날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는데, 그렇게도 커 보이던 덩치는 온데간데 없고, 너무도 마르고, 자그만 모습으로 버스를 기다리다 힘들게 차에 오르던 모습을 보았다.
왜 난 먼저 다가가 인사를 드리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무서운 감정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짜증가득한 목소리로 이유없이 우릴 핍박하던 선생님은 아니었는데.
10여년 쯤 더 지난 뒤, 발 넓은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소식으론 당뇨로 고생하다 근래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한 20년 넘도록 고생하셨다고 했다.
아침 교문 앞에선 호랑이 저리가라 무서웠지만, 교실 수업에서는 매일같이 재미진 이야기와 농담을 뒤섞은 수업으로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하시던 우리들의 대머리 학생주임 선생님..교장이 돼야겠다는 일념으로 산골짜기 시골 학교로 전근가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시절을 잘못만났는지, 교원정년이 단축되는 바람에 결국 교장이 못되고, 교감으로 퇴직하셨다고....하지만, 자식 농사는 잘해서, 아들이 서울 큰 병원 산부인과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많은 생명 살리는 일한다고 한다.
가족 이야기는 단 한번도 안 하시던 선생님이라, 아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간혹 자식 없다는 소문, 결혼도 못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더랬지...
그런 낭만의 시절을 함께했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대머리 학생주임 선생님을 안주 삼아...오늘 친구와 한잔했다....지금 같았으면, 수 십 번도 더 구속되었을 우리들과 유쾌함을 함께했던 선생님....
먼 곳에서는 뜻한 바 이루시고, 평안하시길....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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