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레미제라블 : 일반판
톰 후퍼 감독, 휴 잭맨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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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둠속에 사라진,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이 노래는 빛을 향해 오르는 자들의 힘찬 함성소리.

이 땅의 약자들을 위한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꽃.’

이 노랫말은 영화 레미제라블의 주제곡에 해당하는 가사의 일부입니다.

지난 연말부터 레미제라블이란 말이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지요. 레미제라블은 비참한 사람들 혹은 가난한 사람들이란 뜻이며, 1862년 출간된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이고, ·중등학생들에겐 장발장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요.

150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 레미제라블이 회자(膾炙) 되는가요?

단지 잘 만들어진 영화 한편, 뮤지컬 한편의 흥행 때문일까요?

나는 이후 원전인 레미제라블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사이 언론에는 계층갈등, 이념갈등, 고독사, 청년실업, 경제민주화, 비정규직문제 등이 자주 거론됩니다. 실로 현실은 외롭고, 힘들며, 아슬아슬하지요. 힐링(치유)이 필요한 때지만, 이제 힐링이란 말자체가 더 이상 고통 받는 이들을 치료하지 못하는 시점에 까지 이르렀다는 생각입니다.

레미제라블이란 소설의 배경은 1815년부터 1832년인데요, 당시는 프랑스혁명(1789) 이후 프랑스 사회변화를 시민들의 고통과 아픔 속에서 겪어 내던 시기였습니다. 나폴레옹의 워털루전투 패배와 오스트리아가 주도한 빈체제(메테르니히체제)의 시작이 출발점이고, 18307월혁명 이후 등장한 7월왕정에 저항하며 공화정을 요구하는 민중들의 이야기가 종결점입니다.

당시 프랑스 시민들은 국민의 빈곤과 빵 없는 노동자라는 소설 속 표현처럼 어렵고 힘든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형태만 다를 뿐 경제위기로 고통 받는 현재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7월왕정기는 유산계급만을 위한 제한선거와 오스트리아의 수상 메테르니히가 주도하는 복고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탄압의 시대였습니다.

한마디로 비참한 시대였지요.

19세기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레미제라블은 21세기의 우리나라 사람들과 감성을 함께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공명(共鳴)하고 있는 것이지요. 모든 문학과 예술이 당대 사람들과 공명해야 눈길을 받는 것처럼 레미제라블도 오늘날의 우리와 함께 노래하고 있기에 이슈로 부상한 것입니다. 19세기 초 프랑스를 바라보는 눈은 동시에 현재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눈과 동일한 것입니다. 즉 동일시(同一視)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주변을 둘러볼까요? 취업을 못하고 아파하는 젊은이들, 불확실한 미래를 앞에 둔 비정규직 노동자들, 노년의 고달픈 생활고, 대기업의 횡포에 고통 받는 중소자영업자들, 세대 간에 벌어진 갈등과 반목, 이념에 사로잡혀 갈팡질팡하는 사람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빅토르 위고는 소설 속에서 무지에 대해 비판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무지를 있게 한 사회에 책임을 묻고 있었습니다. 비참한 사람들의 무지를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무지는 무엇인가요? 같은 세상을 바라보아도 진보의 눈과 보수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한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대의 무지는 자신의 입장과 위치에서만 세상을 보고 반대편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절대란 말은 쓸모가 그리 크지 않더군요. 더욱이 사람 일에 절대란 말은 너무도 극단적입니다. 좌가 되었던, 우가 되었던 자신의 위치에서 서로 반대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 즉 그들의 주장을 보고,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안목과 귀와 지식이 필요하다는 걸 소설을 읽으면서 알게되었습니다.

시대의 무지는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읽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생각에 갇힌 좁은 식견을 말합니다. 진보든 보수든 간에 서로 자신의 주장과 함께 상대의 주장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시대정신을 이끌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레미제라블은 시대의 무지를 벗어나야 함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을 구상할 당시인 1850년경에 정치적 자유 옹호 연설을 했습니다. 그때 좌파는 환호와 갈채를 보내면서도 그를 자신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우파는 그를 배신자로 몰아 조롱하고 경멸했고 모욕과 비방을 보냈습니다. 레미제라블은 이런 경험이 있은 뒤에 완성된 것입니다.

민중의 노래 소리는 좌에서도 울리고, 우에서도 울립니다. 어느 한쪽에서만 울리는 민중의 노래 소리가 없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지요.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 소리는 좌에서 울렸습니까? 우에서 울렸습니까? 자베르와 마리우스를 모두 구한 장발장은 좌파였나요? 우파였나요? 장발장은 인류 공통의 보편성을 지닌 고전 속에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주인공으로 평가받습니다. 좌와 우를 모두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모두와 함께한 자리에서 조용한 죽음을 맞이하는 장발장의 모습은 숭고하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길이 없더군요.

소설에서 울려 퍼지는 민중의 노래 소리는 우리 모두를 숭고함으로 위로하려는 듯합니다. 더 넓은 안목과 더 넓은 마음으로 시대를 바라보고 싶습니다.

 

2013.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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