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극에 달한 순간, 그의 눈 앞이 갑자기 하얗게 변하더니, 한 마리 나비가 내 눈앞에 날아들었다. 그리고 너무도 평온해 졌다. 한참을 조용히 날던 나비가 그의 어깨에 앉았다. 그리고 한번 더 날개 짓 하더니, 저 멀리로 날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1882년 8월 김장손(김춘영의 아버지), 유춘만(유복만의 형) 등 임오군란의 주모자들은 능지처사의 형을 받았다. 그들은 모진 고문을 당했고, 처참한 죽음의 형을 받았지만, 형 집행에 임하여 순순히 그리고 담담하게 극형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억울한 것이 많았을 것이다. 누구 하나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았으니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은 흥선대원군 마저 그들을 이용해 먹었다. 결국 청나라 군인들은 흥선대원군을 납치하고, 원세개 등 청군이 이태원과 왕십리에 거주하던 무위영과 장어영(과거 훈련도감)의 군인들을 습격하여 많은 이들을 무참하게 참하는 진압 작전을 주도하였다.
김장손, 유춘만 등 주모자들은 결국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들은 흥선대원군에게 말했다. '홀로 청군영에 들어가지 마소서' 하지만, 역사가 박은식 선생의 평가처럼,불학무식한 대원군은 어디서 그런 당당함이 앞섰는지 혼자 유유히 청군의 막사로 걸어들어갔다가 납치 당해 천진으로 보내졌다. 김장손 등 주모자들은 사실 궁궐까지 습격할 생각은 없었고, 일본인을 죽일 생각도 없었으며, 고관들을 척살할 생각도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하소연을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자, 그들이 마지막으로 찾은 것이 힘빠진 흥선대원군이었다. 사실 흥선대원군은 서자 이재선 역모사건 이후로 더욱 궁지에 몰려있었던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김장손 등의 하소연에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들이 흥선대원군을 독대한 뒤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났다. 특히 흥선대원군이 군복을 입혀 경복궁에 침투시킨 허욱은 어디까지나 왕비 민씨를 찾기 위해서 였다. 그 역시 다음 해 찢겨 죽는 형을 당했다.
그들이 궁궐을 습격하였고, 왕비인 민씨를 잡아 죽이려하였으며, 부패한 고관(영의정 이최응, 선혜청 당상관 민겸호, 경기감사 김보현 등)을 죽였다는 점에서 죽음의 형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료를 꼼꼼하게 읽다 보니, 그들에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세상은 달려졌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이해된다. 역사는 이렇게 또 한번 도도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 장길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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