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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한 달도 더 된 얼마 전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를 지인에게 선물을 받았다. 표지의 붉은 노을 빛 속의 기도하는 모습은 ‘밀레의 만종’의 한 장면이다. 밀레의 만종에서 만종의 의미는 `아이의 울음이 저물었다.` 즉, ‘죽었다’라는 표현이 어울리게 나온다고 한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신의 은총에 대해서 기도하는 모습이 그려진 밀레의 만종이 이런 표현이 나왔을까하는 감상평이 많이 나와 있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사랑을 담아 책의 내용 속에 나올듯한 엄마의 모습을 표지에 올린 것이라 생각되었다.
40대 중반의 두 딸을 가진 나는 주부이다. 나처럼 주부이면서 자신의 엄마가 칠순에 가까운 나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함께 살지 않으면서 살아가시는 친정엄마를 떠올리면서 안타까워하며 걱정하며 그렇게 책을 다 읽는 동안 몇 번을 울었다. 책을 덮었다가 다시 펼치길 반복하며 밤을 꼬박 새웠다. 작가는 나에게 아픔을 주었고 무교인 내가 그 누구에게 기도하게 했다. 엄마가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라고 또 바라기를 이른 아침 친정엄마에게 전화걸때까지 계속하게 했다.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전단지를 만들기로 상의한다고 모였다. 무엇하다가 그렇게 늦게 엄마를 찾기 시작한 것일까! 엄마의 진짜 나이도 잘 모르고 어떤 모습인지도 제대로 기억 못하는 자식들이 서로의 다른 의견에 대립한다.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은 엄마를 잃고는 살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는 제 3자가 그들을 보며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읽으며 들려주듯 적혀있다.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출장을 나갈 때면, 늙으신 부모를 잃어버려 찾는 현수막이 달린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부모를 잃어버린 자식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까? 부모가 자식을 잃어서 아픈 마음처럼 찾기 전까지 아픔과 슬픔으로 지낼 것이다. 작가는 읽는 독자들에게 이런 마음이 들게 유도한 것일까? 그렇다면 성공한 것이다. 난 책을 읽은 지 오래되어서도 그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앞의 1장부터 3장까지의 글 속에는 큰딸, 큰아들, 아버지가 2인칭, 3인칭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4장에는 사라졌던 엄마가 몸은 어디 간데없고 허공에서 눈만 뜨고 보는 모습으로 1인칭이 되어 나타난다. 엄마의 실종으로 가족은 어마가 그동안 어떻게 자신들 앞에, 옆에 있었는지를 찾게 된다. 엄마의 존재성을 잊고 있었던 것은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그 큰 힘과 큰 사랑을 견주어 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1장에서 큰딸은 ‘너’라고 했다. 너를 과거 엄마의 집으로 찾아가도록 한다. 너는 고향집 헛간 평상에서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뒤틀린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자신의 무릎에 엄마의 얼굴을 끌어 놓으면서 엄마 혼자 두지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나중에 가겠다는 엄마를 그냥 두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아지리라 생각했을까? 책임회피로 보여 진다. 절대 큰딸은 엄마에게 효녀가 아닌 것 같다. 작은 오빠로부터 글쓰기도 배웠고 중학교에 입학을 못하게 한 아버지와 싸워가며 엄마는 자신의 반지를 팔아 중학교 입학금을 냈다. 너는 그렇게 공부하여 작가가 되었다. 엄마는 누룩을 발효시켜 양조장에 넘기고 돈을 벌기도 했다. 자주 쓰러지시는 듯하다. 두통이 심하다고 했다. 무슨 병일까? 너의 이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엄마는 너무 맘이 아파서 울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엄마의 아픔은 그때부터였을까? 엄마는 큰딸에게 ‘작은 나라’에 혹 가면 ‘장미묵주’를 구해달라고 하신다.
나의 바로 위 언니도 13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만성 신부전증으로 온 몸에 인공신장을 만든다고 혈관을 찾아 주사바늘 자국과 멍이 이곳저곳 가득하면서 혈액투석을 하며 몇 번을 저혈압으로 쓰러지더니 후유증으로 두 눈도 거의 실명하고 친구네 집에서 자신의 생일파티를 한다고 엄마에게 손 흔들며 인사하더니 그 다음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의 엄마는 딸을 잃고 억장이 무너졌으리라, 속이 반 이상 탔을 것이다. 엄마 앞에서 언니이야기를 하면 눈물바다가 된다. 엄마는 작년에 칠순을 보내셨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누가 바보같이 엄마를 잃어버렸대요. 엄마는 길 잃어버리지 않게 꼭 주민등록증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다니세요. 치매에 걸리지 마시고 동네 분들과 화투치기도 하세요."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들 모두가 바보스러웠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누구는 암 투병 중에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재산을 두고 형제간에 싸움을 한다. 서로 보험금을 타 쓴다고 하고 몸이 불편한 막내아들에게 좀 더 주자는 유언공증에도 대들며 다툰다. 아마 가장 힘든 것은 시집온 며느리가 아닐까?
큰 오빠인 그는 전단지를 보고 엄마를 봤다는 여자를 만났다. 동사무소 앞에서 파란색 슬리퍼를 신고 발등의 상처를 보았다고 한다. 일주일 전의 일이라고 한다. 일주일전에 동사무소 앞에 있는 아줌마를 본 사람 그 누구들은 왜 신고를 하지 않았을까? 몸에서 냄새가 나고 파리가 자꾸 달라붙던 거지같은 아줌마를 보았다고 한다. 분명 그의 엄마일 것 같다. 그때 일주일전에 엄마가 아는 곳을 찾아왔었다면 좋으련만 왜 엄마는 길에 많은 파출소에 들려보지 않았을까? 자신의 부모가 아니라고 문을 걸어 잠그는 사람들이 너무 야속하다. 아버지가 바람나서 딴 여자를 데리고 와서 살림을 차렸을 때에 엄마는 집을 나갔다가 그가 검사가 되겠다고 해서 집으로 들어와 그를 위해 아버지의 자전거도 타라고 내주었다.
다른 지방으로 살림 차려 가버린 아버지를 기다리며 아침밥을 풀 때 아버지 밥그릇에 밥을 담아 아랫목에 묻어두던 엄마는 너무 서글펐다. 일등을 하던 아들이 검사가 되지 못했지만 엄마는 자신보다 자신의 아이들을 더 사랑했다. 약국의 약사가 엿새 전에 엄마를 보았다고 한다. 얼마나 걸었는지 발등이 깊기 패어 뼈가 들여다보일 지경으로 상처가 곪아 터져서 상처를 소독해주고 치료해주었다고 한다.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놓고 나와 보니 없어졌다고 한다. 그는 엄마가 베이지색 샌들을 신었다고 했지만 자신의 엄마를 봤다는 사람들마다 파란색 슬리퍼를 신었다고 한다. 아마 그 사람들이 만난 아줌마가 바로 엄마가 맞았을 것 같다. 약사가 주위를 좀 더 찾아봤다면 더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고 안타까웠다. 오빠와 그녀는 엄마를 찾지 못하여 안타까워한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으나 아내에게 화풀이하고 엄마의 꿈이던 자신이 검사가 되지 못했던 것으로 가슴이 터질듯 아파한다. 엄마를 보았다는 사람들마다 파란 슬리퍼에 곪아 터진 살과 상처를 이야기 했다. 자식들은 패인 상처를 떠올릴 때마다 또다시 얼마나 오열할까.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식들이 편하라고 생일상을 받고자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왔다가 서울역 지하철에서 남편을 놓친 후 길을 잃고 사라졌다. 혹시나 집을 찾아올까하여 고향집으로 내려간 남편은 자신에게 시집온 아내가 외도하며 밖으로만 나돌던 자신을 기다리며 대문을 열어두었던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자신의 아내는 집안의 대소사를 다했고 제사를 지내고 아이들을 위해 온갖 일을 다 했다. 당신이 집으로 가 있을 때, 박소녀 아주머니를 찾아 소망원의 사람이 찾아온다. 아내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 여자에게서 아내가 십여 년 전부터 소망원에 봉사를 하러 다녔고 한 달에 사십오만 원씩 후원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아픈 것은 병원에도 안가는 사람이 그 많은 돈을 기부하는 것을 자식들이 알고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대체 어디에 있소!”
아내를 잃어버리고 혼자 남은 당신은 자식들 앞에서 소리를 지를 수 없었던 울분을 그제야 터트리며 눈물 흘렸다. 빈집 마루에서 울고 있는 당신의 끅끅거리는 소리가 더 높아진다(p172) 아직 찾지 못한 그들의 엄마를 나도 함께 찾아 헤맸다. 아내를 잃어버린 그날을 떠올렸다. 언제나 자신의 아내보다 먼저 앞서 걸었던 그에게 아내는 좀 천천히 가면 좋겠다고 했다.
내 남편도 언제나 나보다 먼저 걸어간다. 내가 손을 잡으면 걸음을 맞춰 걸어가지만 그렇지 않고는 큰 키의 남편은 나를 뒤로하고 언제나 먼저 걸어간다. 남편이 이 책 속의 아내보다 먼저 걸어가는 남편의 이야기를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난 앞으로도 남편과 길을 걸을 때면 손을 잡아야겠다. 몇 년 전 골절사고로 수술실을 들어가던 남편이 나에게 “나에겐 당신 밖에 없어.” 라고 했다. 저녁으로 어머님께서 당신 옆에 있을 때도 아침이면 늦게 온다고 소리칠 때, 난 몇 번을 과로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었다.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이야기해야한다. 서로의 생각을 바라보고 사랑해 줘야한다. 오늘 남편은 낮에 예천군청 앞 식당에 들어가면서 내 손을 잡고 길을 건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보쌈정식을 함께 먹었다. 언제나 나의 손을 잡아준다고 약속했다.
아내에게 시어머니 같았던 누님이 찾아왔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누님이 아내에게 모질게 했던 것을 후회하는듯했다. 큰딸이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그날 엄마가 많이 아팠다는 이야길 해주었다. 글을 모르는 엄마가 글 잘 쓰는 큰딸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했다. 큰 딸의 책을 소망원 여자한테 읽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딸에게 엄마를 부탁한다고 한다. 꼭 찾아달라고 하는 것이겠지.. 눈물이 나서 더 읽지 못하였다. 한 참을 울었다. 하늘나라에 가 있는 나의 아빠가 보고 싶고 언니가 보고 싶어 나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작가 신경숙은 엄마의 존재가을 잊은 가족들에게 큰 슬픔과 아픔과 그로인해 씻을 수 없는 죄책감마저 주는 것 같다. 어떻게 풀어야하나. 나도 답답했다.
4장의 제목으로 ‘또 다른 여인’이라 적혀있다. 누굴까 했다. 그녀는 엄마였다. 여기에서는 엄마가 1인칭인 ‘나’가 되었다. 엄마는 딸아이에게 이야기 하듯 자신이 보는 것을 알려준다. 그녀는 아이를 셋 낳아 기르는 막내딸의 오피스텔로 갔다. 엄마인 자신을 생각하는 딸아이의 눈을 본다. 큰 딸인 언니가 전화를 했다. 외국으로 가려는 언니를 가지 말라고 말리고 결국 언니가 집으로 동생을 찾아온다. 그러다가 창밖의 모과나무에 앉아있는 엄마를 본다. -처음 보는 새네(p211). 엄마가 새가 되었나보다. 새를 바라보는 딸에게 “얘야, 에미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막내딸에게 사과하러 왔다고 한다. 다른 자식보다 잘해주지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내가신고 있는 굽이 다 닳아버린 파란 슬리퍼를 벗고 싶어. 내가 입고 있는 먼지투성이 여름옷도, 이제는 나도 이게 나인지 알아볼 수 없는 이 몰골에서 벗어나고 싶어. 머리통이 깨지는 듯하고나. 자, 얘야. 머리를 들어보렴. 너를 안고 싶어. 나는 이제 갈 거란다. 잠시 내 무릎을 베고 누워라. 좀 쉬렴.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엄마는 네가 있어 기쁜 날이 많았으니.(p223) 누구에게도 이야기 않고 평생을 자신의 비밀로 의지하던 곰소의 그 남자를 찾아갔다. 가족이 잃어버린 나를 찾아 백방 뛰어다닌 그 사람도 아파서 병원에 와 있다. 하고 싶던 말은 추억과 함께 튀어나왔다.
나는 곰소의 그 남자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책속의 ‘나’인 엄마가 구수한 산골의 아줌마 같이 느껴졌다. 힘들고 마음이 아파 그를 찾았던 이야기도 풋풋한 느낌의 사랑을 보는듯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형체 없는 구수한 말들이 깨어져 또다시 현실이 되었을 때, 영영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을 느꼈다. 세상인심이 야박하고 야속했다. 욕을 해주고 싶었다.
남편을 찾아 집으로 간다. 하지만 집은 텅 비었고 남편의 누님인 아이들 고모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본다. 그리고 추억을 들추어 고모에게 집을 비우지 말라고 당부한다. 자신이 태어난 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엄마를 만난다. 집 마루에 앉아있는 엄마는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자신의 발등을 들여다보며 슬픔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엄마의 품으로 안겼다. 그곳이 마지막 쉼터일까. 이젠 평안하신가. 엄마의 자궁에 쭈그려 있던 태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다.
작가인 큰딸이 엄마를 잃고 구 개월이 되었을 때 이탈리아에 와 있다. 여동생이 보내온 편지글에는 엄마를 생각하는 글로 가득했다. 자신이 엄마가 되어서도 꿈이 많은데 엄마는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엄마라는 존재의 일만 했다고 했다. 언니에게 엄마를 포기하지 말고 찾아달라고 한다. 자신의 남자와 함께 이탈리아에 온 그녀는 엄마를 찾으러 다닐 때 거의 미친듯했다. 엄마는 가족들이 쉬는 틈에도 일을 했다. 누구도 거들어주지 않고 당연 엄마의 몫이라고만 여겼다.
베드로 성당에 혼자 간 그녀는 그곳에서 가이드가 바티칸 시국은 세속의 한 국가이면서 신의 나라라고 설명하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바티칸 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라고 하는 소릴 듣고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장미나무로 만든 묵주를 산다. 그리고 다시 베드로 성당으로 들어가 중앙 홀에서 ‘피에타상’을 보게 된다. 죽은 예수를 성모마리아가 안고 있다. 눈물을 흘린다. 엄마가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느낌으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자리를 물러서 나오면서 여인상 앞에서 하려던 말을 한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안일한 생각만 아니라면 처음부터 엄마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