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 공부하는 삶과의 만남
김태완 지음 / 맛있는공부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곧 두 딸의 학기말고사가 있다.  '공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책의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이것을 읽으면 정말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길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 더 열심히 공부하고 공부를 해서 남주지 않고 자기것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 20명의 인사들의 성공한 삶이 되기까지의 간단한 자서전적인 글이 적혀있다.  한 분씩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작은 타이틀은 우리가 적어두기도 하는 격언같은 글이다. 제목만 한 페이지로 만들어 프린트해두어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만같다.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어떻게 공부해서 지금의 위치에 올 수 있었는지를 읽어보면서  지금의 나이들이 40대 후반부터 정연퇴임을 하신 후에도 고문활동을 하는 분들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공부할 때의 환경은 지금의 환경과는 영 딴판인 것을 알 수 있다. 많이 어려운 환경이었다. 내 나이가 올해 만으로 43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도 '육성회비'를 내서 공부를 해야했다. TV 프로그램에서 '검정고무신'을 본 지금의 아이들은 조금은 30년전 그보다 더 전의 생활 환경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난 '검정고무신' 만화 시리즈 중에 두 권을 사주었다. 모두가 '엄마 , 아빠가 어렸을 때' 라는 주제로 된 것이라 만화책을 좋아하는 두 딸은 재미있게 읽어보면서 그 시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러 인사들의 글을 읽어가면서 '고승덕'변호사의 사진을 보고 반가웠다. TV 오락프로그램에서도 가끔 뵌 고승덕 변호사는 공부를 하려고 밥먹는 시간도 아끼며 비빔밥만 해 먹었다고 한다. 그분은 '공부, 피할 수 없다면 맞서자!'라고 타이틀과 같은 타이틀의 제목으로 시작되었다. '정성을 쏟은 만큼 결과는 나온다'라는 타이틀로 포기를 모르는 영문학자 장영희씨의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벌써 고인이 된 분이라 마음이 아팠다. 그분의 책을 인터넷서점에서 주문을 하면서 그분의 또다른 강의를 듣는 듯 대신하고 싶었다. 2004년 척추암 판정을 받고 3년간 연재하던 북 칼럼마저 접어야했지만 장 교수의 말을 기억하고 싶어 옮겨본다.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나는 번번이 죽을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P36)

한사람의 이야기라 끝나면 그 분들의 '공부 멘토링'을 간략하게 두 페이지에 적혀두었다. 장영희 교수는 [공부는 목정이 아니라 수단이란 것을 기억하라,], [외우는 것도 공부의 한 방법이다.], [독서를 통해 지식을 넓혀라]라고 알려주고 있다.

 

대부분의 공부 멘토링에는 계획을 세우는 것과 꿈을 미리 정해보는 것 또 꿈이나 미래의 계획을 너무 멀리 잡지 말고 3가지로 나눠서 혹은 3단계로 기간을 정해서 계획해보고 실천하라고 한다. 어떤 분은 중학교 중퇴에서도 공부를 한 분도 있고 상업고등학교에서 체육과 특기생으로 들어간 후 열심히 공부해서 유학도 가고 또 경제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나보다 4년 2개월 빨리 태어난 그리고 나와 같은 대구가 고향인 백순근교수님은 나의 공부철학처럼 '삶이 곧 여행이듯 공부는 여행이다'라고 말한다.  '공부를 잘하려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P162) 라고 알려준다.  부모님은 아들이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며 농사일을 인부를 사서 하더라도 시키지 않았다고한다.  어떤 부모님은 격려와 칭찬으로 용기를 주고 어떤 부모님은 항상 옆에서 지켜보며 또한 응원했다.

 

나처럼 고등학교만 졸업해서 취업을 했던 때에는 여자들의 꿈은 '현모양처' 인 사람이 많았다.  난 주말이면 엄마와 함께 음식을 만들어보고 간식도 만들어보았다. 결혼전에는 집에서 제사도 지내지 않았지만 미리 제사음식도 만들어보고 뜨개질도 배웠다. 그래서 결혼 전에 동창들 모임에서 자주 음식을 했던 나는 많은 친구들에게서 프로포즈를 받았고 지금의 남편은 동창의 친구로 만났다가 연애하고 결혼을 했다. 연애를 하기전에 남편이 5살 때 서로 마주보고 살던 소꼽친구였던 것을 알았다. 시댁이 바로 집 가까이여서 둘째며느리이지만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맡아야했다. '현모양처'는 되었으니 꿈은 이루어졌다.

 

2주전에는 아이들과 영화관에 갔다. 그곳에서 어린이들이 보는 에니메이션영화를 두 아이가 보고 있을 동안 아래층 식당가에 갔고 그곳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노력하는데 큰사람이 되지 않겠어?" 하고 감탄했고 존경하게되었다. 자투리시간을 활용하고, 습관처럼 공부를 하고, 독서를 많이하고, 어려운문제는 답과 풀이를 보고 바로 확인하여 알게하고,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고, 예습과 복습을 꼭 하고, 목적의식을 갖고 공부하고, 자신의 멘토를 찾고, 교과서를 읽고 다독하고 원리를 이해하라고 한다.  

 

필자인 김태완씨는 '공부를 잘한다고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했다. 하지만 땀이 묻은 공부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으면서 그들은 공부 덕에 인생을 바꿀 수 있었다고 했다. '내가 두 딸에게 앞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일은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되었다.  '어떤 분을 아이들의 멘토로 찾아봐야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2년 전 '프린세스 마법의 주문'을 읽고 작가인 '아네스 안'을 멘토로 생각했었다.  젊은 나이에 해박한 지식이 부러웠고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며 여행을 떠나는 모습도 부러웠다. 나의 두 딸이 '아네스 안'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우리나라 백두산도 안 가본 내가 오늘 남편에게 "아이들과 여름방학때 이탈리아나 일본 같은데 여행하고 올까요?" 하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안가본 곳도 많으면서.. 아이들과 앞산공원이라도 꼭대기까지 올라가보시죠?" 하고 답하는 남편에게 "그렇게 무작정 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탈리아의 노상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어요." 하고 맞대답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난 아이들이 20대가 되면 '아네스 안'의 '프린세스 마법의 주문'을 읽도록 두 권을 준비해두었다. 자신을 위한 목표 목록을 만들라고 한다. '공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 책 속에서도 나오듯 자신의 목표를 적어보는 것도 꿈을 이루거나 미래의 자신상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도 나이 들어서도 꼭 '작가'가 되어보고 싶다. 5년의 목표로 꿈을 꾸어보지만 아직은 그 꿈을 꾸기 시작한지 3일이 되지 않았다.

 

내 여동생은 "언니는 언니 자신의 능력을 너무 허비하는 것같아. 좀 더 자신있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 좀 좋아?" 하고 말한다. 상업고등학교 졸업이 나의 학력의 모두 이지만 아직까지는 아이들의 수학, 영어를 가르칠 능력은 된다. 좀 더 지나면 아이들에게 뒤쳐지게되겠지만 그러지 않기위해 공부를 하려고 결심도 하였다. 오늘도 둘 째딸의 학교 과제물 프린트의 수학문제를 보면서 문제가 잘못된 것을 확인했고 문제에 줄을 그어 수정해주었다.  며칠 전에는 사회과목 프린트물에도 참고 교과서 페이지가 모두 잘못적혀있어서 참고서나 전과를 못보게 한 선생님이 수정하지 않은 프린트물을 아이들에게 주면서 모두 적어오라고 한 것에는 작은 실망을 하기도 했다. 숙제든 공부든 꾸준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글을 읽고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매일 숙제를 내어주는 선생님이 고맙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문제나 페이지표시 등은 미리 체크해야할 선생님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했다.

 

필자 김태완씨는 공부 이야기가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됐는지 미지수라는 글을 올렸다. 나에겐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명의 짧은 과거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지만 솔직히 260페이지의 분량은 초등학생들에게는 읽기에 지루해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나처럼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하지 않을까?  내 두 딸이 중2학년이 될 즈음에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다. 혹 중1에 올라간 큰 딸이 지금이라도 읽어보고 싶다면 읽어보게 할 것이다.  얼마 전 아이에게 이런말을 했다. '무작정 공부만 잘해야한다는 생각보다 공부를 잘하면 자신이 선택할 대학이 많아지고 또 대학 졸업 후에 취업을 준비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많은 취업자리가 있을거야. 중간고사 잘 치고나니 기분이 좋더라고 했지? 아직은 공부가 재미있기만해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말할 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아이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려면 많이 칭찬하고 사랑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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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 언덕의 소녀 레인보우 북클럽 11
비욘스티에르네 비요른손 지음, 고우리 옮김, 어수현 그림 / 을파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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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 또래 친구들보다 늦게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또 3년이 흘러서 아이를 낳았다. 두 딸은 20개월 차이로 사이좋은 자매로 자라고 있다. 어려서도 누구보다도 착하고 순하게 자란 두 딸은 엄마를 한 번도 실망시킨적이 없었다. 엄마젖을 먹일 수 없어서 분유를 먹일 때도 분유가 잘 안받아서 두유를 먹고 키울 때도 두 딸은 중1이 되었고 초등5학년이 되어서 엄마보다 훨씬 더 커 버렸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두 딸은 결혼을 생각할 나이가 될 것이다. 딸을 키우는 부모들 마음처럼 똑같은 마음으로 내 아이같은 '해맞이 언덕의 소녀' 이야기를 읽게되었다. 

목동이 나오고 소를 치고, 양을 치고, 높은 언덕이 있고 저녁노을이 멋진 그런 곳의 이야기가 나오면 '알프스하이디' 이야기가 떠오른다. 소를 치고 양을 치는 소년들은 요들을 부르고 주말이면 교회에 다닌다. 난 가끔 시어머님을 따라 절에 가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가족들은 교회에 다니고 있다. 이 책속의 주인공들도 그의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닌다. 신에게 의지하는 마음만큼 그 신의 보호아래 사랑을 키우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책을 받고 지은이의 이름을 찾았을 때, 긴 그의 이름은 '비욘스티에르네 비요른손' 인 것을 발견했다. 작가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19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 4대 거장 중의 한사람인 것도 알게되었다. 긴 작가의 이름을 외우기는 정말 어려웠다. 혹 독서골든벨에 참석해서 혹 객관식 문제로 작가이름을 찾으라면 답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목사의 아들이라 내용 안에 교회를 주된 연결고리로 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이지만 '나도 아이들과 교회에 다닐까?' 잠시 생각했었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누가 나타나 함께 교회에 가자고 하면 같이 갈 것만 같다.  교회는 절 때로 안된다는 시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남편과 나 그리고 나의 두 딸은 아직까지 '무교(無會)'이다.  

해맞이 언덕이라는 이름의 '솔바켄'의 농장의 부부에겐 첫 아들을 잃고 다시 얻은 딸의 이름을 '신뇌베'라고 지었다. 사람들은 마을이 생긴 이래로 신뇌베처럼 사랑스런 아이는 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울까? 난 소설책 속에도 삽화가 많이 들어있으면 했다.  칼라로 된 삽화가 있다면 더욱 재미있고 그 내용에 푹 빠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흑백의 삽화가 드문 드문 몇 컷 들어있지 않아서 많이 아쉬웠다. 솔바켄 언덕 맞은편의 높은 산 밑의 농장인 전나무 숲이란 이름의 '그란리덴'농장에는 '토르비욘'과 그의 여동생 '잉글리드'가 아버지인 '세문트' 어머니인 '잉게비요르그'와 함께 살고 있다.  트르비욘을 잘 키워야한다는 아버지 '세문트'의 바람은 아이를 자주 때리고 야단치게된다.  토르비욘이 일고여덟 살쯤 되었을 때, 집안일을 도울 '아슬락'이란 소년을 데리고 온다. 그아이는 토르비욘에게 나쁜 것을 가르친다. 욕이나 이상한 노래를 가르치는 것을 알게된 세문트는 아슬락을 혼내고 집에서 내쫒아 버린다.  그리고 토르비욘과 잉글리드를 데리고 가족 모두 교회에 나간다. 토르비욘은 교회에서 신뇌베를 보게되지만 자신을 귀찮게하는 아이를 혼내주는 것을 본 신뇌베가 크게 놀라고 그를 멀리하게된다. 신뇌베가 잉글리드와 자주 만나고 친한 친구인 것을 알게되고 말을 걸어보지만 신뇌베는 첫 인상에서 그를 신뢰하지 못하고 만나길 거부한다.  다시금 친하게 된 두 아이는 학교에서도 서로 경쟁을 하며 공부를 했다. 토르비욘은 견진성사를 일찍 받지 못하고 신뇌베나 잉그리드와 같은 시기에 받게되었다. 신뇌베는 이미 열여섯 살이 되어있었다.  소년들은 토르비욘을 약올려서 싸움을 하게되었고 토르비욘은 신뇌베를 위해 밤에 몰래 신뇌베의 꽃을 심어주고 오고 난 후 오랫동안 솔바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중일까? 그는 아버지를 도와 농장일을 하면서 청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신뇌베를 다시 만난 토르비욘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된다.  

얼마전 난 중학생이 된 딸아이에게 "아직 남자친구 없는거야? 중1이 되면 남자친구 사귀어서 커플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너희반에는 그런 것 없니?" 하고 물었다. 아이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이제 중학생이된지 세 달이 되어간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선생님들도 좋아해줘서 친구들이 자신을 부러워하면서도 미워하지 않고 칭찬해주고 좋아해줘서 학교생활이 너무 즐겁다고 수다를 내내 떨었다. 컴퓨터 수행평가로 '자연'에 대한 UCC를 완성해서 집에서 편집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하는 숙제가 많으면 좋겠다고 한다. "와우, 우리 딸이 너무 착하네.." 오버엑션을 하면서 아이를 안아주었다.  

토르비욘이 결혼 피로연에서 싸움을 하게되어 크게 다쳤다. 집으로 와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거의 아버지도 울었다. 잉글리드는 신뇌베가 걱정한다고 사건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겨우 말을 하게된 토르비욘은 자신이 건강해지지 않을 것을 걱정하며 헤어질 것을 메모지로 적어서 시뇌베에게 전해주라고 잉글리드에게 부탁한다. 엄마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신뇌베는 진심으로 토르비욘을 걱정하며 울었다. 잉글리드에 제대로 이야길 듣고싶어 몰래 찾아가지만 메모를 받고 속상해한다. 그리고 또 다시 몇주가 흘러 견진성사사 있던 날 몸이 다 나은 토르비욘도 부모님과 여동생과 함께 교회에 간다. 그곳에서 신뇌베를 만나고 집으로 가는길에 잉글리드와 신뇌베와 토르비욘이 만난다. 신뇌베를 만난 토르비욘은 자신이 준 메모를 어찌했냐고 묻는다. 태워 버렸다고 말한 신뇌베는 그런 메모를 보낸 토르비욘을 원망한다. 다시 만남을 약속하며 헤어지지만 세문트는 집으로 돌아온 토르비욘을 데리고 신뇌베에게 간다. 그리고 신뇌베의 부모님에게 두 아이를 맺어주길 바란다고 한다. 그렇게 둘이는 맺어졌다. 바로 따라온 잉글리드와 어머니도 함께 기뻐한다. 토르비욘은 창가에 앉았고 신뇌베와 함게 그란리덴을 바라보고 있다.  

표지에 나온 둘이 걷는 모습은 아마 둘이가 맺어지던 날 낮에 함께 걸어가며 이야길 나누던 모습인 듯하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토르비욘이 싸움에 휘말릴 때나 그의 아버지에게 매를 맞을 때, 신뇌베에게 자신있게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할 때, 크게 다쳐셔 생사를 오가는 토르비욘을 볼 때, 함께 가슴졸였다. 난 그때 잠시 토르비욘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또 자시 그의 아버지가 되기도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컸다는 것을 가끔씩 잊어 버린다. 보호욕이 커서일 듯 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일 것이다. 책 제목에는 '해맞이 언덕의 소녀'이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전나무숲의 토르비욘'의 이야기이다.  신뇌베의 어머니는 가축들이 아플 때마다 신뇌베에게 데려간다고 한다. 그만큼 아이의 기운을 성스럽게 여겼을 것 같다. 토르비욘의 아버지인 세문트가 자신의 아들의 잘못되는 것을 바르게 해준 것은 모두 신뇌베의 영향이라고 한 것처럼 토르비욘은 항상 자신이 잘못한 행동을 했을 때는 신뇌베를 생각하면 뉘우치고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사춘기를 겪고 오랫동안 서로를 생각하며 사랑한 두 남녀의 커가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딸에게 나의 사춘기를 잠시 이야기 해주었다. 나도 고1때 남자친구를 사귀어서 서로 공부 열심히 하자고 해서 장학금도 받아본 적이 있다고 자랑하면서 목표가 같다면 학교생활에 어긋난 행동없이 잘 지낼 수 있을거란 말도 했다. 그리고 어느 뉴스에 나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공부를 잘 하던 아이가 여자친구가 생기고 성적이 떨어졌다고 해, 그러데 그 여자친구가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며 헤어지자고해서 헤어졌는데 성적이 더 떨어졌다고 해. 넌 어떤 생각이 드니?"  세은이는 "정말 황당하네요. 공부를 아주 잘했다가 여자친구 사귀어 성적이 떨어진 것도 안타까운데 헤어지고 더 떨어졌다니.. 그냥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곳에서 새로운 여자친구 사귀면되지.." 하고 답한다.

 

나의 경우는 남자친구가 운동화 거꾸로 신은 경우이다.  상업계고등학교에서 전교 1, 2등을 다투던 남자친구가 대학교를 가기위해 1년 재수를 하면서 기숙사가 있는 학원에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어 나의 편지에 답장을 안하게되면서 난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 그 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학교수업을 못하고 양호실에서 울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다음날 모두 정리하고 잊었다.  그 남자는 군에 입대하고 1년에 한 번씩 날 찾아와서 용서를 빌었지만 세 번째 찾아왔을 때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그러고보면 내가 야속했을까? 아마 그는 지금 잘 살고 있겠지?  난 이런 이야기도 큰 딸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세은이는 "엄마는 잘 하신거예요. 그래서 아빠를 만나서 이렇게 예쁜 딸을 둘이나 낳았잖아요. 호호호.." 간지럽게 웃어댔다. 나도 함께 웃었다.  

또래의 결혼을 생각하는 친구들이 시기심에 싸움을 걸기도 하지만 결국 잘 견뎌낸 토르비욘과 신뇌베에 박수를 보낸다. 오빠를 도와주고 친구와의 우정을 소중히 하는 잉글리드도 착하고 고마웠다. 내 두 딸이 커서 어떤 상대를 만날 지 아직은 전혀 모르지만 나 두 딸의 선택에 응원을 할 것이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모두가 건강하고 서로를 누구보다도 아끼며 사랑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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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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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도 더 된 얼마 전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를 지인에게 선물을 받았다. 표지의 붉은 노을 빛 속의 기도하는 모습은 ‘밀레의 만종’의 한 장면이다. 밀레의 만종에서 만종의 의미는 `아이의 울음이 저물었다.` 즉, ‘죽었다’라는 표현이 어울리게 나온다고 한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신의 은총에 대해서 기도하는 모습이 그려진 밀레의 만종이 이런 표현이 나왔을까하는 감상평이 많이 나와 있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사랑을 담아 책의 내용 속에 나올듯한 엄마의 모습을 표지에 올린 것이라 생각되었다.

40대 중반의 두 딸을 가진 나는 주부이다. 나처럼 주부이면서 자신의 엄마가 칠순에 가까운 나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함께 살지 않으면서 살아가시는 친정엄마를 떠올리면서 안타까워하며 걱정하며 그렇게 책을 다 읽는 동안 몇 번을 울었다. 책을 덮었다가 다시 펼치길 반복하며 밤을 꼬박 새웠다. 작가는 나에게 아픔을 주었고 무교인 내가 그 누구에게 기도하게 했다. 엄마가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라고 또 바라기를 이른 아침 친정엄마에게 전화걸때까지 계속하게 했다.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전단지를 만들기로 상의한다고 모였다. 무엇하다가 그렇게 늦게 엄마를 찾기 시작한 것일까! 엄마의 진짜 나이도 잘 모르고 어떤 모습인지도 제대로 기억 못하는 자식들이 서로의 다른 의견에 대립한다.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은 엄마를 잃고는 살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는 제 3자가 그들을 보며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읽으며 들려주듯 적혀있다.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출장을 나갈 때면, 늙으신 부모를 잃어버려 찾는 현수막이 달린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부모를 잃어버린 자식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까? 부모가 자식을 잃어서 아픈 마음처럼 찾기 전까지 아픔과 슬픔으로 지낼 것이다. 작가는 읽는 독자들에게 이런 마음이 들게 유도한 것일까? 그렇다면 성공한 것이다. 난 책을 읽은 지 오래되어서도 그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앞의 1장부터 3장까지의 글 속에는 큰딸, 큰아들, 아버지가 2인칭, 3인칭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4장에는 사라졌던 엄마가 몸은 어디 간데없고 허공에서 눈만 뜨고 보는 모습으로 1인칭이 되어 나타난다. 엄마의 실종으로 가족은 어마가 그동안 어떻게 자신들 앞에, 옆에 있었는지를 찾게 된다. 엄마의 존재성을 잊고 있었던 것은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그 큰 힘과 큰 사랑을 견주어 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1장에서 큰딸은 ‘너’라고 했다. 너를 과거 엄마의 집으로 찾아가도록 한다. 너는 고향집 헛간 평상에서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뒤틀린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자신의 무릎에 엄마의 얼굴을 끌어 놓으면서 엄마 혼자 두지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나중에 가겠다는 엄마를 그냥 두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아지리라 생각했을까? 책임회피로 보여 진다. 절대 큰딸은 엄마에게 효녀가 아닌 것 같다. 작은 오빠로부터 글쓰기도 배웠고 중학교에 입학을 못하게 한 아버지와 싸워가며 엄마는 자신의 반지를 팔아 중학교 입학금을 냈다. 너는 그렇게 공부하여 작가가 되었다. 엄마는 누룩을 발효시켜 양조장에 넘기고 돈을 벌기도 했다. 자주 쓰러지시는 듯하다. 두통이 심하다고 했다. 무슨 병일까? 너의 이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엄마는 너무 맘이 아파서 울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엄마의 아픔은 그때부터였을까? 엄마는 큰딸에게 ‘작은 나라’에 혹 가면 ‘장미묵주’를 구해달라고 하신다.

나의 바로 위 언니도 13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만성 신부전증으로 온 몸에 인공신장을 만든다고 혈관을 찾아 주사바늘 자국과 멍이 이곳저곳 가득하면서 혈액투석을 하며 몇 번을 저혈압으로 쓰러지더니 후유증으로 두 눈도 거의 실명하고 친구네 집에서 자신의 생일파티를 한다고 엄마에게 손 흔들며 인사하더니 그 다음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의 엄마는 딸을 잃고 억장이 무너졌으리라, 속이 반 이상 탔을 것이다. 엄마 앞에서 언니이야기를 하면 눈물바다가 된다. 엄마는 작년에 칠순을 보내셨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누가 바보같이 엄마를 잃어버렸대요. 엄마는 길 잃어버리지 않게 꼭 주민등록증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다니세요. 치매에 걸리지 마시고 동네 분들과 화투치기도 하세요."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들 모두가 바보스러웠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누구는 암 투병 중에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재산을 두고 형제간에 싸움을 한다. 서로 보험금을 타 쓴다고 하고 몸이 불편한 막내아들에게 좀 더 주자는 유언공증에도 대들며 다툰다. 아마 가장 힘든 것은 시집온 며느리가 아닐까?

큰 오빠인 그는 전단지를 보고 엄마를 봤다는 여자를 만났다. 동사무소 앞에서 파란색 슬리퍼를 신고 발등의 상처를 보았다고 한다. 일주일 전의 일이라고 한다. 일주일전에 동사무소 앞에 있는 아줌마를 본 사람 그 누구들은 왜 신고를 하지 않았을까? 몸에서 냄새가 나고 파리가 자꾸 달라붙던 거지같은 아줌마를 보았다고 한다. 분명 그의 엄마일 것 같다. 그때 일주일전에 엄마가 아는 곳을 찾아왔었다면 좋으련만 왜 엄마는 길에 많은 파출소에 들려보지 않았을까? 자신의 부모가 아니라고 문을 걸어 잠그는 사람들이 너무 야속하다. 아버지가 바람나서 딴 여자를 데리고 와서 살림을 차렸을 때에 엄마는 집을 나갔다가 그가 검사가 되겠다고 해서 집으로 들어와 그를 위해 아버지의 자전거도 타라고 내주었다.

다른 지방으로 살림 차려 가버린 아버지를 기다리며 아침밥을 풀 때 아버지 밥그릇에 밥을 담아 아랫목에 묻어두던 엄마는 너무 서글펐다. 일등을 하던 아들이 검사가 되지 못했지만 엄마는 자신보다 자신의 아이들을 더 사랑했다. 약국의 약사가 엿새 전에 엄마를 보았다고 한다. 얼마나 걸었는지 발등이 깊기 패어 뼈가 들여다보일 지경으로 상처가 곪아 터져서 상처를 소독해주고 치료해주었다고 한다.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놓고 나와 보니 없어졌다고 한다. 그는 엄마가 베이지색 샌들을 신었다고 했지만 자신의 엄마를 봤다는 사람들마다 파란색 슬리퍼를 신었다고 한다. 아마 그 사람들이 만난 아줌마가 바로 엄마가 맞았을 것 같다. 약사가 주위를 좀 더 찾아봤다면 더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고 안타까웠다. 오빠와 그녀는 엄마를 찾지 못하여 안타까워한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으나 아내에게 화풀이하고 엄마의 꿈이던 자신이 검사가 되지 못했던 것으로 가슴이 터질듯 아파한다. 엄마를 보았다는 사람들마다 파란 슬리퍼에 곪아 터진 살과 상처를 이야기 했다. 자식들은 패인 상처를 떠올릴 때마다 또다시 얼마나 오열할까.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식들이 편하라고 생일상을 받고자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왔다가 서울역 지하철에서 남편을 놓친 후 길을 잃고 사라졌다. 혹시나 집을 찾아올까하여 고향집으로 내려간 남편은 자신에게 시집온 아내가 외도하며 밖으로만 나돌던 자신을 기다리며 대문을 열어두었던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자신의 아내는 집안의 대소사를 다했고 제사를 지내고 아이들을 위해 온갖 일을 다 했다. 당신이 집으로 가 있을 때, 박소녀 아주머니를 찾아 소망원의 사람이 찾아온다. 아내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 여자에게서 아내가 십여 년 전부터 소망원에 봉사를 하러 다녔고 한 달에 사십오만 원씩 후원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아픈 것은 병원에도 안가는 사람이 그 많은 돈을 기부하는 것을 자식들이 알고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대체 어디에 있소!”

아내를 잃어버리고 혼자 남은 당신은 자식들 앞에서 소리를 지를 수 없었던 울분을 그제야 터트리며 눈물 흘렸다. 빈집 마루에서 울고 있는 당신의 끅끅거리는 소리가 더 높아진다(p172) 아직 찾지 못한 그들의 엄마를 나도 함께 찾아 헤맸다.  아내를 잃어버린 그날을 떠올렸다. 언제나 자신의 아내보다 먼저 앞서 걸었던 그에게 아내는 좀 천천히 가면 좋겠다고 했다.  


내 남편도 언제나 나보다 먼저 걸어간다. 내가 손을 잡으면 걸음을 맞춰 걸어가지만 그렇지 않고는 큰 키의 남편은 나를 뒤로하고 언제나 먼저 걸어간다. 남편이 이 책 속의 아내보다 먼저 걸어가는 남편의 이야기를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난 앞으로도 남편과 길을 걸을 때면 손을 잡아야겠다. 몇 년 전 골절사고로 수술실을 들어가던 남편이 나에게 “나에겐 당신 밖에 없어.” 라고 했다. 저녁으로 어머님께서 당신 옆에 있을 때도 아침이면 늦게 온다고 소리칠 때, 난 몇 번을 과로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었다.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이야기해야한다. 서로의 생각을 바라보고 사랑해 줘야한다. 오늘 남편은 낮에 예천군청 앞 식당에 들어가면서 내 손을 잡고 길을 건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보쌈정식을 함께 먹었다. 언제나 나의 손을 잡아준다고 약속했다.

아내에게 시어머니 같았던 누님이 찾아왔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누님이 아내에게 모질게 했던 것을 후회하는듯했다. 큰딸이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그날 엄마가 많이 아팠다는 이야길 해주었다. 글을 모르는 엄마가 글 잘 쓰는 큰딸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했다. 큰 딸의 책을 소망원 여자한테 읽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딸에게 엄마를 부탁한다고 한다. 꼭 찾아달라고 하는 것이겠지.. 눈물이 나서 더 읽지 못하였다. 한 참을 울었다. 하늘나라에 가 있는 나의 아빠가 보고 싶고 언니가 보고 싶어 나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작가 신경숙은 엄마의 존재가을 잊은 가족들에게 큰 슬픔과 아픔과 그로인해 씻을 수 없는 죄책감마저 주는 것 같다. 어떻게 풀어야하나. 나도 답답했다.  


4장의 제목으로 ‘또 다른 여인’이라 적혀있다. 누굴까 했다. 그녀는 엄마였다. 여기에서는 엄마가 1인칭인 ‘나’가 되었다. 엄마는 딸아이에게 이야기 하듯 자신이 보는 것을 알려준다. 그녀는 아이를 셋 낳아 기르는 막내딸의 오피스텔로 갔다. 엄마인 자신을 생각하는 딸아이의 눈을 본다. 큰 딸인 언니가 전화를 했다. 외국으로 가려는 언니를 가지 말라고 말리고 결국 언니가 집으로 동생을 찾아온다. 그러다가 창밖의 모과나무에 앉아있는 엄마를 본다. -처음 보는 새네(p211). 엄마가 새가 되었나보다. 새를 바라보는 딸에게 “얘야, 에미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막내딸에게 사과하러 왔다고 한다. 다른 자식보다 잘해주지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내가신고 있는 굽이 다 닳아버린 파란 슬리퍼를 벗고 싶어. 내가 입고 있는 먼지투성이 여름옷도, 이제는 나도 이게 나인지 알아볼 수 없는 이 몰골에서 벗어나고 싶어. 머리통이 깨지는 듯하고나. 자, 얘야. 머리를 들어보렴. 너를 안고 싶어. 나는 이제 갈 거란다. 잠시 내 무릎을 베고 누워라. 좀 쉬렴.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엄마는 네가 있어 기쁜 날이 많았으니.(p223) 누구에게도 이야기 않고 평생을 자신의 비밀로 의지하던 곰소의 그 남자를 찾아갔다. 가족이 잃어버린 나를 찾아 백방 뛰어다닌 그 사람도 아파서 병원에 와 있다. 하고 싶던 말은 추억과 함께 튀어나왔다.  


나는 곰소의 그 남자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책속의 ‘나’인 엄마가 구수한 산골의 아줌마 같이 느껴졌다. 힘들고 마음이 아파 그를 찾았던 이야기도 풋풋한 느낌의 사랑을 보는듯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형체 없는 구수한 말들이 깨어져 또다시 현실이 되었을 때, 영영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을 느꼈다. 세상인심이 야박하고 야속했다. 욕을 해주고 싶었다.

남편을 찾아 집으로 간다. 하지만 집은 텅 비었고 남편의 누님인 아이들 고모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본다. 그리고 추억을 들추어 고모에게 집을 비우지 말라고 당부한다. 자신이 태어난 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엄마를 만난다. 집 마루에 앉아있는 엄마는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자신의 발등을 들여다보며 슬픔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엄마의 품으로 안겼다. 그곳이 마지막 쉼터일까. 이젠 평안하신가. 엄마의 자궁에 쭈그려 있던 태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다.

작가인 큰딸이 엄마를 잃고 구 개월이 되었을 때 이탈리아에 와 있다. 여동생이 보내온 편지글에는 엄마를 생각하는 글로 가득했다. 자신이 엄마가 되어서도 꿈이 많은데 엄마는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엄마라는 존재의 일만 했다고 했다. 언니에게 엄마를 포기하지 말고 찾아달라고 한다. 자신의 남자와 함께 이탈리아에 온 그녀는 엄마를 찾으러 다닐 때 거의 미친듯했다. 엄마는 가족들이 쉬는 틈에도 일을 했다. 누구도 거들어주지 않고 당연 엄마의 몫이라고만 여겼다.

베드로 성당에 혼자 간 그녀는 그곳에서 가이드가 바티칸 시국은 세속의 한 국가이면서 신의 나라라고 설명하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바티칸 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라고 하는 소릴 듣고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장미나무로 만든 묵주를 산다. 그리고 다시 베드로 성당으로 들어가 중앙 홀에서 ‘피에타상’을 보게 된다. 죽은 예수를 성모마리아가 안고 있다.  눈물을 흘린다. 엄마가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느낌으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자리를 물러서 나오면서 여인상 앞에서 하려던 말을 한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안일한 생각만 아니라면 처음부터 엄마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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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사춘기 - 인생 9단 엄마의 눈물이 주르르, 웃음이 푸하하 전방위 수다
김희경 지음 / 마고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슈리슈바 김희경님은 나보다 15살이나 많은 분이다. 나는 올해 40 중반을 달리는 노땅아줌마이다. 작가인 김희경님의 사진을 볼 수 없어 노매드관광청을 찾았고 '제주비안나이트'를 찾아보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웹사이트 즐겨찾기만 해두었다. 표지의 목마를 타는 케릭터를 보고 오래 전 큰애를 임신하고 대구 우방랜드에 갔을 때, 목마를 탔던 기억이 났다.  몇 바퀴를 돌고 또 탔었다. 벌써 13년 전이다. 김희경씨은 나의 큰이모랑 나이가 같다. 김희경님처럼 뚱보이면서 멋있던 이모는 몇 년전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셨다.  젊어서 미인이었고 하춘화처럼 노래도 잘 불렀었는데 아직 시집도 안보낸 두 딸을 두고 하늘나라에 갔다.  기독교인으로 진실하게 살았던 이모는 아마 하느님곁에서 잘 지내고 있으리라..

책 속의 글 모두를 엮어보면 더 오래된 과거가 뒤쪽에 나오지만 제주비안나이트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시작되어 몇 년전 가봤던 제주도에 또 가고싶다는 희망을 품게했다. 난 신혼여행을 태국을 다녀왔고 제주도는 몇 년전 가족모두와 함께 다녀왔다. 제주도에 가면 꼭 슈바슈바님을 만나고 싶다. 그녀가 있는 별장에서 하루 지내고 싶고 그녀가 다니는 '라이프'라는 고사리밭을 함께 여행하고 싶다. 나 또한 중무장을 해서 포복으로 또는 옆걸음질로 '라이프'를 따라 걸어가고싶다. 나도 고사리를 무척 좋아한다.  어린 아이들이 노루가 보고싶어 새벽일찍 할머니라 기다린다. 어린 아이들에게 작가는 할머니가 불렸다. 노루가 송악 줄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처음 알았다. 혜지와 승상이가 새끼노루를 만났다. 승상이가 ET처럼 노루에게 말을 건다. 승상이가 노루와 바로 앞에 마주하며 노루가 승상이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사진을 찍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그 모습이 그려졌다. 삽화가 있었다면 더욱 실감났을 건데, 난 왜 제주도에서 노루를 구경못했을까?

부모와의 불화로 할머니댁에 오게된 초등 3학년인 봉달이는 멀리 학교를 걸어서 다닌다.  봉달이가 자주 별장으로 놀러왔다. 그러다 또래 현수와 친구가 되었다. 부모와 함께 온 현수는 봉달이와 함께 궝알을 주워오던 날은 현수가 서울로 떠나야 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없어져 종일 찾아다녔다. 11시에 아이들이 온 몸에 긁힌 상처를 하고 집으로 왔다. 서둘러 공항으로 떠나는 현수는 차안에서 봉달이에게 울면서 손을 흔든다. 아이들이 울면 난 슬프다. 안타깝고 부모가 미워진다. 아이들은 누구나 사랑스럽다. 서울로 간 현수 엄마는 다음날 전화를 했고 사고가 난나해서 걱정했지만 그것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고 한다. 봉달이에게 샌들을 하나 사서 보내겠다고 한다. 참 다행한 일이다. 그래도 현수에게 봉달이와 통화를 하게하고 다시 만날 기약을 하게하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두 아이의 모습이 보고 싶다.

지금은 힘세고 뚱뚱한 천하무적의 할머니가 되었다는 김희경씨의 결혼성공기의 이야기가 나왔다. 연애결혼을 못마땅해하시는 어머님을 속여서 5년의 연애는 밥말아먹고 다소곳한 성당에 다니는 여자가 되어 그 성당 다니는 그 남자의 집안 형님께 중매를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결혼을 하게되었다. 홍수처럼 주고 받은 연애편지의 내용은 어떠했을까?  그녀의 남편은 직업군인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만난 한 학년 위의 남자에게 '오빠'라고 부르며 그가 직업군인이 되길 바라던 적이 있었다.  그사람이 학교에서 전교1,2등을 다툴 때, 나도 그에 어울리게 열심히 공부했었다. 김희경씨의 첫사랑 이야기를 읽을 때에 난 그 오빠가 떠올랐다. 나도 김희경씨처럼 첫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언제나 긴 생머리카락에 치마입은 모습을 좋아했던 나의 '오빠'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를 했다.  그러면서 기숙사 생활을 겸하던 학원에서 긴생머리카락의 다른 여자를 알게되었다. 난 단칼에 정리를 했다. 후에 '오빠'  입대 후 1년마다 휴가나와서 날 만나러 왔지만 나의 단칼은 모질었다.  그 때의 3년 동안 날 괴롭히는 스토커로 있어서 지칠대로 치쳐있었고 그사람의 배반으로 딱 한번 수업을 안하고 하루종일 양호실 침대에서 지낸 후 깨끗하게 정리를 한 상태였다. 가끔씩 그 오빠가 떠올랐다. 학교 후배들이 학교에서 그 오빠를 보았다며 소식을 전해주었을 때는 그 오빠의 지난 미소조차 내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고 채념을 할 때이다.

김희경씨에게도 결혼 생활의 파국이 있었다. 딸아이에게 물어 변호사 비용이 많이 들며 그전에 부부클리닉에 다니기로 약속도 하지만 결국 부부의 불화는 칼로 물배기로 끝이 난다.  이리저리 엄마의 심정을 어렵게 만드는 딸이 그 역할을 하면서 조금은 야박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두 딸은 커서 이런 상황에 어떤 답을 해줄까?  난 결혼 3년차가 되었을 때 큰 딸을 임신하게되었다. 그 전에 크게 싸워서 이혼을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누구에게나 한 번 즈음 들어본 이혼이야기에서 대부분 주위의 친척이나 시댁, 친정 식구들 모두는 도움은 커녕 '그렇게 살 바에는 이혼이 나을 것 같다.'라는 말을 한다. 내가 아는 동생도 그렇게해서 두 아들을 시댁에 빼앗기며 이혼을 했다. 젊은 나이에 그녀는 20대 후반이었다.  이것 저것 계산적으로 이혼해서 위자료 톡톡히 받으라는 딸의 응원같지도 않은 응원에 김희경씨가 불쌍해보였다.  난 가끔 싸워도 절 때 이혼은 하지 않을거다.

군인 가족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안에서 안타깝게 자살을 한 임 중사 이야기는 날 울컥하게 했다. PX를 관리하던 임중사는 금전상 결손부분을 걱정하며 탈영을 하고 결국 야산에서 목을 매 죽은 채 발견된다.  대장님이 미국으로 갔다가 3년만에 다시 와서 연락을 해와서 임중사의 부인을 찾게된다. 부산여자인 그녀는 무주에서 '영도다리'식당을 하고 있었고 그녀의 두 아들은 씩씩하게 컸고 큰 아들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육군에 하사로 입대한 후 장기 복무를 지원해 중사가 되었다. 이 아들은 한 번도 자신의 아버지가 부끄럽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잘 된 일이었다. 눈물이 나왔지만 다행스럽다는 마음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무주 설천으로 가게된다면 '영도다리'식당에 들려 그녀의 '도리뱅뱅이조림'을 먹어보고싶다. 술을 전혀 못마시는 내가 갑자기 술이 먹고싶어진다.

김희경씨도 나처럼 뚱보이다. 또 나처럼 걷기 운동을 하지만 살이 잘 안빠지는 것 같다. 운동길에 과수원의 똥개 두 마리는 언제나 잡아먹을 듯 짖어댄다. 그런 두 마리의 개에게 먹을 것을 주어 달래보지만 언제나 후퇴만 연속하고 나중에는 농약에 절인 오징어를 가지고 간다. 그런데 그 개가 사고가 나서 크게 다닌 것을 목격했고 옆에 있던 한 마리도 그 사고난 개와 더 이상 운동길에서 볼 수 없었을 때 들개가 되었을 남은 한 마리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내가 사는 대구의 신천강변길은 걷기 운동에 아주 좋다.  작년에는 운동길을 더 닦아놓았고 가끔씩 있는 버드나무들은 긴 그늘을 만들어주고 강 중간 중간 길 게 내뿜는 분수는 여름 햇살을 뒤로하고 무지개도 만들어낸다. 내일부터라도 나도 걷기운동을 해야겠다. 언제나 신천강변길에 빠지지 않고 지나는 다리가 불편한 남자분과 두 팔을 씩씩하게 흔들며 지나가는 미씨아줌마가 떠오른다.

'달콤쌉쌀 로또이야기'에서 김희경씨도 나의 남편처럼 똑 같이 '로또가 당첨되면.. '라고 긴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보았다.  '백만인의 조 오빠'는 TV 인간극장에도 나올 만한 '조 오빠'라는 분이 존경스러웠다. 난 '나는 아녀자야'라는 모습으로 "조 오빠는 남자잖아.'라는 핑계로 남자들이 용기있게 하는 일의 수천가지의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런 어려운 수천가지를 '조 오빠'는 해왔던 것 같다.  그가 세상을 떠나 어쩌면 더 편할 하늘나라에 갔을 때 찾아온 조문객들을 봐도 영웅이고 위대한 사람임을 알았다. 후에 위인전에 이름이 올려져 나의 자식들과 그의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읽게되지 않을까? 나도 내가 살아있을 때 '조오빠의 전기문'을 읽어보고 싶다.

친구인 '배추집 딸 애숙이'이야기와 '노총각 진규씨' 이야기로 책의 내용은 끝이났다. 다른 이웃과 친구들은 결혼을 했지만 늦게 아들 한 명 데리고 물일을 하며 고생하는 미경씨와 결혼을 하게된다. 그의 아들이 한 쪽 귀가 멀어 수술을 하는 것도 도와주며 예쁜 딸을 낳아 미리 사둔 '아트빌리지'에서 잘 산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뭉클하게 감동을 주었다. 그냥 읽어도 잘 발음을 할 수 없는 제주도 방언을 따라 읽어보면서 난 잠시 제주도의 아낙네가 되어보았다.  남편을 따라 시외로 여행하면서 차 안에서 책 속의 이야기를 안타깝게 혹은 호탕한 웃음 섞여 들려주면서 느낌의 답을 바라며 "우리도 나중에 늙어 제주도에 별장지어 살까요?" 하고 물어보았다.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 별장을 지어 사냐. 내 고향 영천에 집 한 채 지어도 어찌 농사나 지어 살 수 있겠나. 우리 로또나 살까?" 하며 답한다. 그래서 며칠만에 또 로또를 오천원 주고 샀다.   김희경씨도 나만큼이나 수다스러운 듯하다. 아니 책 제목이 그녀를 수다쟁이로 만든 것 같다.  인생 9단이 되려면 나도 15년 즈음 더 살아야하나?  나도 아직은 사춘기의 추억 속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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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어린이작가정신 어린이 문학 1
박완서 지음, 한성옥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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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런 아이가 미워서 멀리 미국으로 가 버렸고 아이의 이름음 복동이라고 지어졌다. 외할머니가 아이에게 지지리도 복이 없다고 해서 아빠는 홧김에 호적에 올리면서 이름을 김복동이라고 지어 버렸다고 한다.  박완서님의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내가 먼저 읽고 그리고 둘 째딸인 초등5학년의 세빈이가 학교에서 오전 독서시간에도 읽어서 이틀만에 다 읽었다. 세빈이에게 책을 읽고나서의 감상문을 한 번 적어보라고 권했는데 싫다고 한다. 그래서 난 서로 독후활동으로 내가 질문하고 느낌을 답을 받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박완서님의 '친절한 복희씨'를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친절한 복희씨'는 네 나이처럼 40대 이후나 혹은 20대 후반의 아줌마들이 읽으면 느낌이 있을 책이다. 그 안에는 나의 엄마들의 어릴적 이야기부터 크면서 이야기, 그리고 결혼후의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이 책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한 권 속에는 김복동이의 생활이야기가 가득했다. 미술학원을 하면서 복동이를 자식처럼 키우는 이모의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도 복동이의 이모처럼 다리가 불편한 막내이모가 떠올랐다. 나의 막내이모는 수녀가 되어 멀리 제주도에서 이해인 수녀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해인 수녀님이 지금도 제주도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세빈아! 결혼도 안하고 조카를 자식처럼 돌보는 이모가 불쌍하니? 아님 어떤 생각이 들었니?"

"네, 이모가 결혼 못한 것은 원래부터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참 고마운 사람 같아요. 또 조카 때문에 결혼할뻔했는데 못해서 조금은 안타까웠어요."

우리 두 딸과 아직도 친하게 지내는 전학전의 학교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태어나며서 머리가 조금 뒤틀리고 눈동자가 조금 튀어나오고 키도 자라지 않아 다른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아오곤했지만 우리 두 딸과는 어린이집도 함께 다닌 제일 친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이다. 큰 애는 세은이와 한 반이던 아이고 둘 째인 남자아이는 세빈이와 한 반이던 아이다.  5월이 되고 함께 롯데리아에서 만나 변함없는 우정을 확인했다. 여전히 키가 작아 키가 또래보다 큰 우리 아이들과는 같은 학년이 아닌 듯 보였지만 서로는 반가워하고 얼싸안는다. 뭐가 그리 반가운지.. 뭐가 그리 좋은지.. 


자신을 희생하며 남을 돕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책 속의 복동이의 이모처럼 조카를 위해 평생을 돌봐주며 사는 사람도 많이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또 복동이 곁에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두 명의 친구가 있다. 국일이와 준걸이의 엄마들도 복동이 이모랑 친하지만 세 명의 아이들은 친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 글의 내용 전체의 전개를 읽어보고 있으면 복동이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다.  일기장 같은 이 글을 복동이 이모가 읽어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 복동이가 착하고 이모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느낄테고 이모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한참을 펑펑 울며 감격할 것이다.   

 

"세빈아, 넌 자전거도 못타고 친구들과 어울려 어디 놀러가는 것도 잘 안하잖아?  남자아이들이지만 이렇게 형제처럼 꼭 붙어 다니며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니?"

"우리반 남자아이들은 짖궂어요. 그리고 제가 친구들이 많이 없는 것은 다른 친구들이 대부분 여러 학원에 다니고 방과후 수업을 해서 그래요. 저는 집에 올 때 함께 오는 친구도 있고 학원에서 만나는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있어요. 책이라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만들은 것 아닐까요? 제 주위에는 저렇게 몰려다니며 친하게 지내는 남자아이들을 못봤어요."

세빈이는 5학년 아이들 중에서 가장 키가 크다. 여자이면서 그런 세빈이를 친구들은 놀리지는 않지만 크게 어울리는 것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난 책속의 세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세빈이에게도 좀 더 많은 친구들이 생겨서 집으로 데려오고 함께 놀이터라도 나갔다가 오는 그런 시간들이 많으면 좋겠다. 오늘도 학원 숙제를 하면서 "어머니, 펜팔을 해보셨어요?" 하고 질문을 해왔다. 수업 주제가 '펜팔'이라고 했다. 편지쓰기가 한창 유행이던 내 어릴 적에는 펜팔이 또한 유행이었다. 난 세빈이에게 잠시동안 내 어릴적의 펜팔이야길 들려주었다. 세빈이는 갑자기 가방에서 뭘 꺼내더니 나에게 건내주었다. "깜빡 잊고 있었어요." 하며 내민 것은 얼마전 과학독후감대회를 한 후 오늘 시상식이 있었다면서 장려를 받아서 온 것이었다. 꾸준히 글짓기 상을 받아오는 세빈이를 보면서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난 오버엑션을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세빈아, 친구들과 노느라 숙제가 있는 것을 깜빡 잊은 복동이가 늦게 잠자리에 들었잖아? 너에게 친한 친구들이 생긴다면 이런 사건이 생길 수 있을까?"

"아녀요. 저는 친구들과 놀더라도 숙제는 먼저할거예요. 바보처럼 잠도 못자고 게임하고 분식점다니고 그게 뭐예요..피..그런데 우리 선생님은 숙제를 너무 많이 내주세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숙제를 내주시잖아요. "

두 살 더 많은 언니인 세은이의 경험으로는 숙제가 많지 않았는데 솔직히 세빈이 5학년 담임선생님은 어느 선생님보다 숙제를 많이 내주시는 것 같다. 책이나 공책 등에 숙제하고 메모한다고 붙여진 종이들을 언니에게 보여주니 언니는 "와.. 정말 숙제가 많으네.. 참 안됐다.. 불쌍한 우리 세빈이.. 힘내라.." 하고 말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다. 그 숙제 덕에 컴퓨터 하는 것은 조금 줄어들어기에 난 속으로 쾌재를 부렸다. 

월드컵 경기장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다가 국일이가 넘어져 한 쪽 팔이 금이가서 깁스를 했고 한 달 후 깁스를 풀고 등교를 하게되었다. 모두가 국일이를 축하해주려고 함게 바닷가로 여행을 간다. 우리 집 두 딸은 이종사촌인 큰 딸보다 한 살 많은 '혜진이'를 너무 좋아한다. 그의 동생인 올해 초등4학년이 '진수'도 좋아해서 작년 여름 휴가고 함께 보냈다. 주말이되면 서로 만나고 싶어하고 잠시라도 만나는 기회에서는 어쩔줄 몰라한다. 바닷가에서 지낸 여행은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장난기도 많은 남자아이들이지만 참 부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복동이는 멋진 친구 둘이가 있어서 복이 많은 것 같아. 애들 크면 모두 같은 날 합동 결혼식 하는 것 아닐까?

"에.. 설마 그럴리가.. 아닐꺼예요. 징그럽게 어떻게 합동결혼식을 해요?"

"왜 못해? 아빠가 요즘도 만나는 친구 중에서 한 명은 엄마와 같은 날 같은 예식장에서 같은 시간에 결혼식을 했는걸. 합동결혼식은 아니지만 아직도 결혼식을 못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합동결혼식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 합동결혼식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란다. 축하해줘야하는 일이지."

"정말 몰랐어요. 죄송해요. 어머니."  세빈이와 세은이는 아직도 사회생활에 대한 것이나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잘모른다. 내가 살아온 시절의 이야기에 크게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컴퓨터 게임의 아이템이 더욱 관심거리일 것이다. 그래서 두 아이는 얼마 전 중간고사시험을 대비해서 공부를 하면서 어휘에 대해 질문을 많이해왔다. 아이들이 참고서 속에 설명하고 있는 어휘를 보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고 생소한 것들이라 좀 더 많은 사회생활을 한 나는 그에 응답하느라 내 머리 속을 열어야했다.  난 큰 딸 시헝공부를 도와주던 덕에 사람들이 먹는 '쌀보리' , 맥주를 만드는 '맥주보리' , 사료 등에 쓰이는 '사료용 보리'가 있는 것을 처음 알았다.  새삼스럽지만 나 또한 도시생활만 한 사람이라 그런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친구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으로 나갈 계획이 있을 때, 복동이도 미국에 있는 아빠집으로 영어공부를 다녀오기로 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갔고 거기에서 새로 결혼한 아빠의 부인과 동생들을 만나 함께 생활하면서 학교에서 영어도 공부하고 그 나라의 역사도 공부하게 된다. 좋은 결과로 더 높은 단계의 공부를 위해 학교를 전학하고 가족 모두 여행도 다녀온다. 늦은 저녁 아버지는 혼자서 다락방에서 TV를 보시는 것을 보고 복동이는 아버지를 안고 사랑을 느낀다. 난 가끔씩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을 또 세빈이에게 했다.

"세빈아, 넌 아빠가 좋아, 아님 엄마가 더 좋아?"

"아이.. 잘 아시면서.. 전 두 분 다 좋아요. 사랑해요. 어머니.."  어버이날에도 색종이로 멋진 카네이션을 접어서 카드에 심부름을 마음껏 시킬 수 있는 효도티켓이 가득담은 정성스런 편지를 받았다.  내 두 딸의 친구들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경어를 쓰는 것에 놀라며 어떻게 경어를 쓸 수 있는지 물어보기까지 한다. 난 소꼽친구인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을 했지만 연애시절부터 난 남편에게 경어를 썼다. 그런 이유가 아이들이 부모에게 경어를 쓰는 자연스런 환경이 되어준 것 같다. 복동이가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고 다시 한국으로 갈 결심을 한다.  학교에 찾아온 외부 손님의 연설을 들으면서 그가 오십여 년 전 미국 가정에 입양된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연설을 하는 브라운 박사도 복동이처럼 자신이 태어나면서 엄마가 세상을 떠난 분이었다. 네 식구가 공항으로 환송을 나와주었다. 데니스는 처음 만날 때의 어색함이 조금 줄어든 듯 복동이가 안았을 때 밀어내지 않았다. 복동이는 후에 서로가 더 자라서 다시 마났을 때 좋은 가족이 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그때쯤은 그 아이도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한다.  

"세빈이는 태어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니? 엄마는 너희 둘이가 태어난 것이 큰 행복이란 생각을 한단다. 태어나 어려서도 징징대지도 않았었고 한 번도 엄마를 힘들 게 하지 않았단다. 밤낮으로 울어대는 아이들이 얼마나 엄마를 힘들 게 한다구. 우리 두 딸은 지금까지도 엄마를 너무 편하게 해주니 엄마가 복받은거야. 우리 두 복동이들..하하하.."

'아니..어머니! 여자에게 복동이가 뭐예요? 싫어요. 그냥, 세빈이라고 불러주세요. 착한 세빈이라고 해도되어요. 호호호.."   


내가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비춰졌던가!

"엄마가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친구들도 부러워해요. 우리들을 잘 돌봐주셔서 자신들의 엄마도 우리엄마같으면 좋겠다고해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래요. 전에 친구이 우리집에 놀러왔을 때 스파게티 해주시고 간식 만들어 주시니까 놀라더라구요." 하고 말한다.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가고 한 학기가 끝나 방학식을 할 때면 사물함의 모든 것들을 들고 올 가방을 들고 학교로 달려가는게 다 이건만 아이들의 친구들의 엄마들은 모두가 그러지 못하는 것은 어려워진 경제위기에 주부들도 직장을 가지기 때문이 아닐까? 난 아이들을 더 돌봐주려고 작년 5개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우리 두 딸이 나중에도 복동이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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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real florist 2009-12-05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글 이군여 잘 읽었네여

미야 2009-12-06 02: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주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