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산 아래 외가집에도 비가 많이 내렸다. 뒷뜰로 나가는 방문을 열어보았다. 처마끝에서 빗방울이 모여서 떨어져서 아래 바닥 흙이 움푹패여서 작은 모래같은 흙들이 뛰어올랐다. 건너 벽쪽으로 장독대가 있다. 방문을 닫고 방안에 누웠다. 어두워서 문틀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올려 형광등을 켰다. 긴 형광등은 옆방과 붙은 벽 위 천장쪽에 구멍을 크게 뚫어서 양쪽방을 다 밝히게 해두었다. 신기했다.  

문틀 쪽 가까이의 더덕더덕 겹쳐 바른 벽지는 벌어져 있어 그 곳을 살짝 벌려보면 안에는 흙벽이다. 눅눅한 벽은 냄새도 이상했다. 작은 방문을 열어 부엌으로 나갔다. 부뚜막에 발을 올렸는데 많이 뜨겁지 않았다. 큰 무쇠솥을 열려고하니 너무 무거웠다. 행주를 감싸고 한쪽으로 솥뚜껑을 밀어열었다. 아직도 살이 통통한 뿌연 옥수수가 들어있었다.  

"할머니, 할머니, 정지에 와보이소"  
"왜 불러? 옥수수 먹고싶냐?"  
"네.. 젓가락에 끼워주세요."  

큰 옥수수를 하나 다 먹고나니 배가 불렀다. 나 혼자 방에서 뒹구는데 언니도 안보이고 동생들도 안보였다. 옆 방을 지나 다시 마루쪽의 문을 열어 마루로 나갔다. 마루에서 언니 동생들이 과자를 먹으며 놀고 있었다. 마루아래에 누런개가 누워있다. 개 이름은 마루이다. 마루의 이마 위 털을 가위로 누가 장난치듯 잘라두어서 덤성덤성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도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다른 개랑 같아보인다. 마루는 암놈인데 새끼를 몇 마리 낳았던 어느 날 새끼한마리가 지나가는 군용트럭에 치어 죽었다고 했다. 마루가 더 불쌍해보였다.  

아침 일찍 하늘에는 해도 보이지 않는데 외가집 뒷산을 올랐다. 뒷산까지 긴 논밭길을 걸어야했다. 산 아래 도착했을 때 운동화 신은 발목까지 풀에 생긴 이슬들이 떨어져 축축해졌다. 길을 잃지 않으려서 조금 가다 뒤돌아보고 또 조금 가다 뒤돌아보며 산위로 올랐다. 한참을 들어가니 해가 나무사이로 비쳤다.  무슨 새소린지 새들소리로 귀가 간지러웠고 곧 이어 매미소리가 가득해졌다. 난 엄마가 알려준대로 작은 나무나 풀위에 앉은 잠자리앞에 몰래 다가갔다. 잠자리 얼굴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엄지손가락위로 잠자리가 턱 올려졌다. 잠시 놀라서 손을 털뻔했지만 검지손가락으로 잠자리 발을 눌러잡았다. 검지와 중지사이에 잡은 잠자리 날개를 넣었다. 두 손가락을 꼭 붙이고 잠자리 얼굴을 쳐다보았다. 촘촘한 무늬의 커다란 눈을 한참 쳐다보니 머리가 아팠다.  가는 가지를 주워서 잠자리 입가까이 가져갔다. 여러 갈래로 나눠진 것 같은 입은 조물거리며 움직였다.  

외가집 뒤뜰로 들어서 집을 한바퀴 돌아 집 앞으로 갔다. 펌프 앞에 큰 고무다라이를 갖다놓고 물을 퍼 담고 있는 엄마에게 갔다. "엄마, 뭘 만들어? 이게 뭐야? 뿌옇고 이상하네? 밀가루야?" 내가 잡은 잠자리를 보여주면서 난 잠자리의 입처럼 쉴새없이 엄마에게 물어댔다. 엄마는 감자를 갈아서 녹말가루를 반죽해서 콩을 넣어 감자송편을 만들어주신다고 했다. 감자송편과 감자부침개를 함께 먹었다.  
"엄마, 우리 여기 외가집에서 살아요. 맛있는것 너무 많아요. 진짜 맛있어요.흐흐.." 
"미야가 여기가 좋은가보네? 내일부터 아빠랑 며칠 여행다녀올거라면서? 좋겠네"  

결혼 후 몇년이 흘러서 남편과 둘이서 안동하회마을로 여행을 갔다. 하회마을에는 한옥을 이용한 식당이 많았다. 한 곳에 들어가서 그곳에 파는 감자전을 먹었다. 강원도의 감자부침개랑 달리 감자를 채썰어 전을 만들어준 것인데 강원도의 향수를 씻어줄수는 없었지만 무척 맛있었다. 아이들과 몇 년후 다시 갔을 때는 감자부침개를 사먹진 못했지만 집 가까이의 평화시장 입구 노전에 파는 감자송편은 가끔 사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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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 2009-08-06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을 좋아하시나봐요.
많이 읽다보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건필하세요.~~

미야 2009-08-09 22:35   좋아요 0 | URL
책을 많이 읽기위해 언제나 책을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자주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