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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사춘기 - 인생 9단 엄마의 눈물이 주르르, 웃음이 푸하하 전방위 수다
김희경 지음 / 마고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슈리슈바 김희경님은 나보다 15살이나 많은 분이다. 나는 올해 40 중반을 달리는 노땅아줌마이다. 작가인 김희경님의 사진을 볼 수 없어 노매드관광청을 찾았고 '제주비안나이트'를 찾아보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웹사이트 즐겨찾기만 해두었다. 표지의 목마를 타는 케릭터를 보고 오래 전 큰애를 임신하고 대구 우방랜드에 갔을 때, 목마를 탔던 기억이 났다. 몇 바퀴를 돌고 또 탔었다. 벌써 13년 전이다. 김희경씨은 나의 큰이모랑 나이가 같다. 김희경님처럼 뚱보이면서 멋있던 이모는 몇 년전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셨다. 젊어서 미인이었고 하춘화처럼 노래도 잘 불렀었는데 아직 시집도 안보낸 두 딸을 두고 하늘나라에 갔다. 기독교인으로 진실하게 살았던 이모는 아마 하느님곁에서 잘 지내고 있으리라..
책 속의 글 모두를 엮어보면 더 오래된 과거가 뒤쪽에 나오지만 제주비안나이트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시작되어 몇 년전 가봤던 제주도에 또 가고싶다는 희망을 품게했다. 난 신혼여행을 태국을 다녀왔고 제주도는 몇 년전 가족모두와 함께 다녀왔다. 제주도에 가면 꼭 슈바슈바님을 만나고 싶다. 그녀가 있는 별장에서 하루 지내고 싶고 그녀가 다니는 '라이프'라는 고사리밭을 함께 여행하고 싶다. 나 또한 중무장을 해서 포복으로 또는 옆걸음질로 '라이프'를 따라 걸어가고싶다. 나도 고사리를 무척 좋아한다. 어린 아이들이 노루가 보고싶어 새벽일찍 할머니라 기다린다. 어린 아이들에게 작가는 할머니가 불렸다. 노루가 송악 줄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처음 알았다. 혜지와 승상이가 새끼노루를 만났다. 승상이가 ET처럼 노루에게 말을 건다. 승상이가 노루와 바로 앞에 마주하며 노루가 승상이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사진을 찍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그 모습이 그려졌다. 삽화가 있었다면 더욱 실감났을 건데, 난 왜 제주도에서 노루를 구경못했을까?
부모와의 불화로 할머니댁에 오게된 초등 3학년인 봉달이는 멀리 학교를 걸어서 다닌다. 봉달이가 자주 별장으로 놀러왔다. 그러다 또래 현수와 친구가 되었다. 부모와 함께 온 현수는 봉달이와 함께 궝알을 주워오던 날은 현수가 서울로 떠나야 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없어져 종일 찾아다녔다. 11시에 아이들이 온 몸에 긁힌 상처를 하고 집으로 왔다. 서둘러 공항으로 떠나는 현수는 차안에서 봉달이에게 울면서 손을 흔든다. 아이들이 울면 난 슬프다. 안타깝고 부모가 미워진다. 아이들은 누구나 사랑스럽다. 서울로 간 현수 엄마는 다음날 전화를 했고 사고가 난나해서 걱정했지만 그것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고 한다. 봉달이에게 샌들을 하나 사서 보내겠다고 한다. 참 다행한 일이다. 그래도 현수에게 봉달이와 통화를 하게하고 다시 만날 기약을 하게하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두 아이의 모습이 보고 싶다.
지금은 힘세고 뚱뚱한 천하무적의 할머니가 되었다는 김희경씨의 결혼성공기의 이야기가 나왔다. 연애결혼을 못마땅해하시는 어머님을 속여서 5년의 연애는 밥말아먹고 다소곳한 성당에 다니는 여자가 되어 그 성당 다니는 그 남자의 집안 형님께 중매를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결혼을 하게되었다. 홍수처럼 주고 받은 연애편지의 내용은 어떠했을까? 그녀의 남편은 직업군인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만난 한 학년 위의 남자에게 '오빠'라고 부르며 그가 직업군인이 되길 바라던 적이 있었다. 그사람이 학교에서 전교1,2등을 다툴 때, 나도 그에 어울리게 열심히 공부했었다. 김희경씨의 첫사랑 이야기를 읽을 때에 난 그 오빠가 떠올랐다. 나도 김희경씨처럼 첫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언제나 긴 생머리카락에 치마입은 모습을 좋아했던 나의 '오빠'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를 했다. 그러면서 기숙사 생활을 겸하던 학원에서 긴생머리카락의 다른 여자를 알게되었다. 난 단칼에 정리를 했다. 후에 '오빠' 입대 후 1년마다 휴가나와서 날 만나러 왔지만 나의 단칼은 모질었다. 그 때의 3년 동안 날 괴롭히는 스토커로 있어서 지칠대로 치쳐있었고 그사람의 배반으로 딱 한번 수업을 안하고 하루종일 양호실 침대에서 지낸 후 깨끗하게 정리를 한 상태였다. 가끔씩 그 오빠가 떠올랐다. 학교 후배들이 학교에서 그 오빠를 보았다며 소식을 전해주었을 때는 그 오빠의 지난 미소조차 내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고 채념을 할 때이다.
김희경씨에게도 결혼 생활의 파국이 있었다. 딸아이에게 물어 변호사 비용이 많이 들며 그전에 부부클리닉에 다니기로 약속도 하지만 결국 부부의 불화는 칼로 물배기로 끝이 난다. 이리저리 엄마의 심정을 어렵게 만드는 딸이 그 역할을 하면서 조금은 야박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두 딸은 커서 이런 상황에 어떤 답을 해줄까? 난 결혼 3년차가 되었을 때 큰 딸을 임신하게되었다. 그 전에 크게 싸워서 이혼을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누구에게나 한 번 즈음 들어본 이혼이야기에서 대부분 주위의 친척이나 시댁, 친정 식구들 모두는 도움은 커녕 '그렇게 살 바에는 이혼이 나을 것 같다.'라는 말을 한다. 내가 아는 동생도 그렇게해서 두 아들을 시댁에 빼앗기며 이혼을 했다. 젊은 나이에 그녀는 20대 후반이었다. 이것 저것 계산적으로 이혼해서 위자료 톡톡히 받으라는 딸의 응원같지도 않은 응원에 김희경씨가 불쌍해보였다. 난 가끔 싸워도 절 때 이혼은 하지 않을거다.
군인 가족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안에서 안타깝게 자살을 한 임 중사 이야기는 날 울컥하게 했다. PX를 관리하던 임중사는 금전상 결손부분을 걱정하며 탈영을 하고 결국 야산에서 목을 매 죽은 채 발견된다. 대장님이 미국으로 갔다가 3년만에 다시 와서 연락을 해와서 임중사의 부인을 찾게된다. 부산여자인 그녀는 무주에서 '영도다리'식당을 하고 있었고 그녀의 두 아들은 씩씩하게 컸고 큰 아들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육군에 하사로 입대한 후 장기 복무를 지원해 중사가 되었다. 이 아들은 한 번도 자신의 아버지가 부끄럽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잘 된 일이었다. 눈물이 나왔지만 다행스럽다는 마음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무주 설천으로 가게된다면 '영도다리'식당에 들려 그녀의 '도리뱅뱅이조림'을 먹어보고싶다. 술을 전혀 못마시는 내가 갑자기 술이 먹고싶어진다.
김희경씨도 나처럼 뚱보이다. 또 나처럼 걷기 운동을 하지만 살이 잘 안빠지는 것 같다. 운동길에 과수원의 똥개 두 마리는 언제나 잡아먹을 듯 짖어댄다. 그런 두 마리의 개에게 먹을 것을 주어 달래보지만 언제나 후퇴만 연속하고 나중에는 농약에 절인 오징어를 가지고 간다. 그런데 그 개가 사고가 나서 크게 다닌 것을 목격했고 옆에 있던 한 마리도 그 사고난 개와 더 이상 운동길에서 볼 수 없었을 때 들개가 되었을 남은 한 마리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내가 사는 대구의 신천강변길은 걷기 운동에 아주 좋다. 작년에는 운동길을 더 닦아놓았고 가끔씩 있는 버드나무들은 긴 그늘을 만들어주고 강 중간 중간 길 게 내뿜는 분수는 여름 햇살을 뒤로하고 무지개도 만들어낸다. 내일부터라도 나도 걷기운동을 해야겠다. 언제나 신천강변길에 빠지지 않고 지나는 다리가 불편한 남자분과 두 팔을 씩씩하게 흔들며 지나가는 미씨아줌마가 떠오른다.
'달콤쌉쌀 로또이야기'에서 김희경씨도 나의 남편처럼 똑 같이 '로또가 당첨되면.. '라고 긴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보았다. '백만인의 조 오빠'는 TV 인간극장에도 나올 만한 '조 오빠'라는 분이 존경스러웠다. 난 '나는 아녀자야'라는 모습으로 "조 오빠는 남자잖아.'라는 핑계로 남자들이 용기있게 하는 일의 수천가지의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런 어려운 수천가지를 '조 오빠'는 해왔던 것 같다. 그가 세상을 떠나 어쩌면 더 편할 하늘나라에 갔을 때 찾아온 조문객들을 봐도 영웅이고 위대한 사람임을 알았다. 후에 위인전에 이름이 올려져 나의 자식들과 그의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읽게되지 않을까? 나도 내가 살아있을 때 '조오빠의 전기문'을 읽어보고 싶다.
친구인 '배추집 딸 애숙이'이야기와 '노총각 진규씨' 이야기로 책의 내용은 끝이났다. 다른 이웃과 친구들은 결혼을 했지만 늦게 아들 한 명 데리고 물일을 하며 고생하는 미경씨와 결혼을 하게된다. 그의 아들이 한 쪽 귀가 멀어 수술을 하는 것도 도와주며 예쁜 딸을 낳아 미리 사둔 '아트빌리지'에서 잘 산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뭉클하게 감동을 주었다. 그냥 읽어도 잘 발음을 할 수 없는 제주도 방언을 따라 읽어보면서 난 잠시 제주도의 아낙네가 되어보았다. 남편을 따라 시외로 여행하면서 차 안에서 책 속의 이야기를 안타깝게 혹은 호탕한 웃음 섞여 들려주면서 느낌의 답을 바라며 "우리도 나중에 늙어 제주도에 별장지어 살까요?" 하고 물어보았다.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 별장을 지어 사냐. 내 고향 영천에 집 한 채 지어도 어찌 농사나 지어 살 수 있겠나. 우리 로또나 살까?" 하며 답한다. 그래서 며칠만에 또 로또를 오천원 주고 샀다. 김희경씨도 나만큼이나 수다스러운 듯하다. 아니 책 제목이 그녀를 수다쟁이로 만든 것 같다. 인생 9단이 되려면 나도 15년 즈음 더 살아야하나? 나도 아직은 사춘기의 추억 속에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