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둘다 미술에 지독지독하게 문외한인 동시에 재주도 없고 능력도 없다. 그래서 아이를 가졌을 때 이 아이만큼은 미술과 이렇게 멀리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생전 보지도 않던 미술화보집도 꽤 구입을 했다.

하지만 그 화보집들은 늘 엄청난 수면의 압박으로 다가왔다. 남들은 - 특히 뚱뚱한 궁딩이를 가진 털갈이 중인 모님을 위시하여 - 흥미진진하게 보는 미술책이었겠지만 내게는 성경책 다음 가는 수면효과를 보여주는 서적이 되고 말았다.

대신 미술사 쪽으로의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무쟈게 관심이 많아서...(헐헐헐..원래 쓸데없이 관심만 많고 주둥이 나불거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정사보다 야사에 관심이 많은 법이다.) 그런 책들은 댓권 읽다보니 정작 그림은 하나도 모르면서 그 그림이 어쩌구 저쩌구...누가 그 그림을 그릴 때 이런 일이 있었네 저런 일이 있었네..이런 건 또 기가 막히게 머리에 쏙쏙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네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하나도 모르지만 그의 그림이 살롱에서 어쨌네 저쨌네..이런 이야기는 참 잘도 알지....^^;;;

아이가 태어나고 점점 자라면서 육아서적을 보니 몇개월에는 난화기라 하여 이런 특징이 있는 그림을 그린다더라... 등등 아이의 성장과 관련하여 미술쪽 발달도 지켜보았는데 이거이 원...피는 못 속인다고 미술엔 영 잼병인 아이가 된 것이다.

하긴 그 밭에 그 씨가 뿌려졌는데 거기서 고흐가 태어나면 것도 이상하잖아~~~

이제 7살. 내년이면 학교를 간다. 들리는 소문이 무지무지 흉흉하다. 1학년 때는 미술로 하는 숙제가 많다. 그림을 못 그리면 일년이 괴롭다...등등.

더구나 내 아들이 누구인가. 큰 차력사가 아닌가? (요즘은 스파이더맨이지만...) 엄마들이 내 손을 꼭 부여잡으며 하는 말이 "호야 엄마는 꼭 어머니회 해야겠다" 그런다. 이거이 나으 탁월한 능력을 인정한다거나 또는 우리집이 갑부이거나 혹은 울 아들이 엄청나게 똑똑하기 때문에 듣는 소리가 아니다.

아들내미가 찍히지 않기 위해서...다만 평균을 지키기 위해서 엄마가 몸바쳐 희생해야 한다는 그런 조언인 것이다....ㅠㅠ  거기다가 미술? 오~ 이건 정말 확실한 스팀히터기이다. 지난 주말에도 유치원 숙제가 있었는데 "물놀이를 하기 전에 해야 할 준비운동으로 어떤 것을 할까요?"  여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그리는 것이다. 다소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울 아들...

10분 뒤 울 집에서는 고성이 오가고 질질 눈물이 떨어지고.....

아..아니...지금 무슨 글을 쓰고 있는 거지? 제목이 뭐였더라? 아..아..아...내 정신...

그런 놈이기에 지난 주에 미술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오늘 첫수업을 받았다. (원래는 이게 첫문장이 되어야 했던게 아닐까?)  첫날이므로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로이 그리자고 하신다. 

한시간 뒤, 선생님이 보여주신 호야의 작품은...참으로 감동스러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경이 색칠되어 있는 그림을 그려낸 것이다.  그림의 내용은 스파이더맨이랑 닥터 악토퍼스가 싸우는 그림이다.  빌딩을 올라가는 스파이더맨이 아주 자세히 그려져 있고 나머지는...ㅠㅠ

선생님의 말씀.  "관찰력이 뛰어나네요. 이 스파이더맨 좀 보세요, 정말 세세하게 잘 그렸죠? 그런데 본인이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대한 호불호가 상당히 뚜렷하네요. 집중력은 좋은 편인데 지구력이 짧아요."

아고....어찌 아이의 특성이 이리 정확히 나온다냐....^^;;;  어쨌든 오늘은 재미있었다고 말하는데 앞으로는 어떨런지...앞으로 갈 길이 막막~~하다.  내년이 오는 것이 두려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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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4-07-21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까 수업중이시라더니...

그래도 좋으셨겠다...감동도 받으셧을 듯..

스파이더맨이라...
울아들은 흐음~~
배경...유심히 안봐서요.

panda78 2004-07-21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흐흐흐, 호야야, 거미 인간과 문어 박사가 그렇게 좋더냐- >ㅂ<
밀키 온뉘, 원래 머리 좋은 애들이 호불호가 뚜렷하대요. 너무 걱정 마셔요. 잘 할 거 같은데요,뭐! ^ㅂ^
- 뚱뚱한 궁딩이를 가진 털갈이 중인 모 올림-

마냐 2004-07-21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7살이면 그런 경지에 오르나요? 6살 우리 딸과 거리가 한참 멀군요...쩝.

starrysky 2004-07-21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호야가 싫어하면 억지로 보내지는 마세요.. 애들한테 안 좋아요.. ㅠㅠ
딸 하나는 어떻게든 예술 계통으로 보내려는 엄마의 강한 집념으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울면서 화실 다닌 인간..;; 아아, 당시의 제 인생은 우울한 암흑 ㅠ_ㅠ
울면서 그림을 그렸으니 뭐가 눈에 보였겠슴까?? 덕분에 그림 실력 아~주 개판임다. 이번 주말에 당시 화실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한다고 함다. 얼루 튀어야 할지 벌써 고민입니당..;;

두심이 2004-07-21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는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게 하는것이 발전가능성이 더 높다고 하더군요. 호야가 지금 그리는 그림들로도 아마 충분히 자기몫을 하고 있을 겁니다. 호야의 스파이더맨은 어떤 모습일까 무지 궁금합니다. 상상하니 재밌습니다.

밀키웨이 2004-07-21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심이님, 이럴 때 제가 디카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한답니다.
꽤 세밀해요. 가슴이랑 등에 그려진 거미문양이며 옷에 그려진 줄무늬 하며 특히 손가락을 그린 것 보면 오호! 소리가 절로 나온답니다.
같이 미술을 배울 선생님의 생각이 마음에 들어서 수업을 하게 되었어요.
저도 판에 박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정말 싫은데 이 선생님도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이 분은 그룹수업도 안하신대요. 아무리 소그룹이라 하더라도 같이 하다보면 자신만의 독특함 보다는 애들 눈에 잘한다고 여겨지는 친구의 것을 따라하게 된대요.
그리고 미술은 어디까지나 자기표현인데 그렇게 같이 하면 더 안좋다고 생각하신대요.
그래서 수입의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개인수업만 고집하시죠. 이왕 할 거 그룹으로 하면 돈을 더 벌수 있음에도 말여요 ^^

스타리님, 저는 정말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집에서 자라서 그런지 부모님께서 조금만 나를 뒷받침 해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런 생각이 늘 마음 속에 있답니다.
그래서 제가 호야에게 어떤 부분은 저 자신의 욕구를 투영시키고 있는지도 몰라요.
너에게만큼은 뭐든지 다 해준다! 이런 거요. 이것도 정말 안좋은 건줄 알면서 참...어쩔 수가 없네요 ^^
그나저나 당시 선생님들을 초대하신다구요?어머나~~!!
스타리님네 어머님이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런 인연을 아직도 그렇게 대접하시는 아름다운 마음 ^^

마냐님, 좋아하는 것은 아주 열심히 그렸지만 그 옆엣것들을 보셨다면....ㅠㅠ
저야 오늘 처음 비로소 좀 그림같은 그림을 그려서 감격에 겨운것이지만요..

새벽별님, 님의 마음..이해됩니다.
이게 글로만 단순하게 표현되는 것인지라 자칫 잘못하면 과장되어 보일 수 있죠.
정말로 잘하게 하려고 시키는 게 아니라요, 미술도 즐거운 작업의 하나다! 라는 것과 최소한의 학업과정을 수행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입지요...ㅠㅠ

판다님, 진짜? 와~~그럼 우리 호야 똑똑한 거네요 ^^
울 호야, 거미인간 넘넘 좋아한답니다.
거미인간이 쓰레기통에 쳐박았던 그 옷도 있다지요...ㅠㅠ

반디님, 맞어요. 바로 그 시간이었답니다.
그래서 제가 잠시후에 한다고 해놓고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다보니 까맣게 이자뿌렀네요...^^;;;

조선인 2004-07-2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미술로 생각하기"에 딸아이를 보내고 싶어 침 질질입니다.
하지만... 직장 다니면서 그게 가능하냐고욧!!!

loveryb 2004-07-21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희집 또한 둘다 미술에 무뢰한^^
전 미술로 다녀보니까.. 획일적인 냄새가 너무 나서..
그냥 지대로 버려두고 있습니다..

뭐 동그라미 선하나 주욱 그어 놓고는 기린머리니 공주다리니..
하는거 보고 와와 소리만 해주고 입죠^^

아무래도 미술은 정말 너무 너무 멀어~~

비로그인 2004-07-2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로 6개월 다니다 중단하고 어린이집 미술 수업 시키거든요.
미술로가 선생님 손이 많이가서 세련된 느낌이지만,,
작품의 스케일이 크지만,,,
그래도,, 아이 손이 많이 가서 조악하고 허접해 보이는 작품이 전 더 좋더군요.
지금 어린이집 방과 후 수업이 그렇거든요.
어제는 걸리버 여행기 읽어주고 나서 걸리버 아저씨 그리는 걸 했거든요.
독후활동이라고 해야 되나,,
미술로에 비해 참 허접한(^^) 느낌이지만 아이 손이 많이 가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