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쪽그에게 모어母語란 호흡이고, 생각이고, 문신이라 갑자기 그걸 ‘안 하고 싶어졌다‘해서 쉽게 지우거나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말과 헤어지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말과 잘 사귄 것도 아니었다.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는 자기 삶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 혼자 하는 말이 아닌 둘이 하는 말, 셋이 하면 더 좋고, 다섯이 나누면 훨씬 신날 말. 시끄럽고 쓸데없는 말. 유혹하고, 속이고, 농담하고, 화내고, 다독이고, 비난하고, 변명하고, 호소하는 그런 말들을ᆢᆢᆢ그는 언제고 자유롭게 나를 부리고 싶어했다.ㆍㅡ어릴 적부터 단어 가지고 노는걸 좋아한 저자의 마음이 보인다.<#잊기좋은이름>을 읽고 작가님을 한 층 더 알게 된거같은 느낌이다.그 후에 읽은 책들이 더 잘 이해되는 기분이다.
26쪽물리적 허기만큼 수시로 찾아오는 문제가 인간관계의 갈등과 그로 인한 불편함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매번 자격증을 가진 의사나 상담사를 찾을 수는 없다. 끼니 때마다 찾아오는 허기만큼이나 잦은 문제라서 그때마다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면 일상이 불가능해진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집밥 같은 심리학이 필요한 이유다.일상에서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으면 짜증이 많아지거나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무기력해진다. 마찬가지로 삶의 바탕인 인간관계의 갈등들이 해결되지 않고 쌓이면 마음도 엇나가고 삶도 뒤틀린다. 안정적인 일상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집밥 같은 치유다. 집밥 같은 치유의 다른 이름이 적정심리학이다.
김혜나작가님 이야기 민달팽이는 제나를 생각나게 했다. 작가님의 이런 분위기가 좋다~뭔가 방탄한듯 안방탄하고 쓸쓸한 분위기.ㅋㅋ그래서 오늘은 이 부분을 옮겨왔다.📌155쪽나는 그에게 왜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서 지내는지, 앞으로도 계속 혼자 살 것인지,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는지에 대한 것들을 물어봤다. 그도 딱히 이렇다 할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답을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고, 생각하고 싶을 대로 생각해도 그만일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은 어차피 다 허상이었다. 우리의 존재에, 우리의 삶에, 아무런 흔적도 의미도 남기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아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 알아봤자 더 가까워지거나 멀어질 만한 관계도 아니었다. 마치 이 호텔에 드나드는 사람들처럼 그저 잠시 잠만 자고 나가면 그뿐, 이곳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조금도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ㅡ김혜나작가님은 대체로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난 이런 이야기들이 좋다.
109쪽편의점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교체되고 있을 뿐, 줄곧 같은 광경이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147쪽내가 음식을 씹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좀 전까지 편의점의 ‘소리‘속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가게를 머리에 떠올리자, 편의점의 소리가 고막 안쪽에 되살아났다.그것은 음악처럼 내 속을 흐르고 있었다. 내 안에 새겨진 소리, 편의점이 연주하고 편의점이 작동하는 소리 속에서 흔들리면서 나는 내일 또 일하기 위해 눈앞의 먹이를 몸속에 채워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