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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ㅡp. 483
내 인생의 모든 일들을 전부 취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일들을 초래한 실수들이 내가 한 실수들이 아니라면 무슨 권리로 내가 그것을 취소할 수 있겠는가? 사실 내 엽서의 농담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졌을 때 잘못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알렉세이의 아버지가(지금은 복권되긴 했지만 이미 죽어 버린 사람이 다시 살아나진 않는다.)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잘못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이런 실수들은 너무도 흔하고 일반적이어서 세상 이치 속에서 예외나 `잘못`도 될 수 없었고 오히려 그 순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이 책의 드문드문 분위기에서(주인공이 엽서에 농담 한 줄로 공산당의 적이 되어 군대에 가게 되고 거기서 검정 방패꼴 부대로 배정되어 탄광에서 육체의 한계에 다다를때까지 일하고 교육받으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내용들)
나는 우리나라의 삼청교육대나 5.18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잘못한 것이란 말인가? 역사 자체가? 그 신성한, 합리적인 역사가? 그런데 왜 그런 실수들이 역사 탓이라고 해야만 할 것인가? 인간으로서의 나의 이성에만 그렇게 보일 뿐, 만일 역사에 자기 고유의 이성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 이성이 인간들의 이해를 신경쓸 것이며 여선생처럼 꼭 진지해야 하겠는가? 그리고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나를 넘어서는)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ᆞ농담이 소재로 쓰이긴 했으나, 역사의 실수로 한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과거에 옭아매게 하는 삶으로 바꿔버렸다는 것을 놈담이라고 에둘러 얘기하는 듯 하다.
농담... 쉽게 하나, 책임을 져야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