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달링턴 홀 집사로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스가 1956년 여름 6일간의 여행을 하면서 남긴 기록의 형식. 과거와 현재가 씨날줄로 엮여 진행된다. 황혼을 맞아 과거를 돌아보는 스티븐스는 아버지, 여자, 옛주인과 현주인 등에 대한 이야기로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서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혈육에 대한 관심과 연애 감정마저 포기한 채 충직스런 집사 역할을 해낸 한 남자의 내면 이야기

 

 

제목이 <남아 있는 나날>이라니. The remains of the day 그날의 잔재, 그날의 흔적, 살아온 흔적들, 인생이 남긴 것 등등 아무리 봐도 지나온 과거를 말하는 게 더 어울리는데 남아 있는 나날이라니 어리둥절하기만. 책을 다 읽고 나면 더욱 우리식 제목과는 안 어울린다는 느낌. 차라리 <살아온 나날>이나 <삶이 남긴 것> 등이 더 어울린다는 느낌. 책 제목은 그렇다쳐도 영화제목마저 같은 것은 혼란을 막기 위해서일까. 생뚱맞지만 아마 최초 번역이 나중 번역에 영향을 끼치니까 그런 것도 같다. 의도된 번역이겠지만 왜 그렇게 한 것인지 잘 이해는 되지 않는다. 참고로 작가 자신의 제목에 대한 변과 해설은 다음과 같다.

    

 

한 작가 친구가 언급한 낮의 잔재라는 프로이트의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파리 리뷰와의 인터뷰 중에서)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꿈을 깨어 있는 동안, 곧 낮 동안의 사유 활동과 연관시켜 의미를 부여했다. 낮의 잔재(잔해, 파편)debris of the day’(해설에서는 주간 잔재 : day residue)가 분위기상 작품과 어울린다고 본 이시구로는 이를 조금 변형시켜 자신의 작품에 ‘The Remains of the Day’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런데 이 이란 하루의 한 부분인 동시에 인간의 활동 기간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남아 있는 나날이라는 우리말 판 영화와 소설 제목은 그 점에 비중을 둔 셈이다.

 

 - (?) 해설의 의도대로라면 <<살아온 나날>>, <<인생유감>>, <<삶이 남기는 것들>> 정도의 의미가 아닌지. 지난 삶보다 앞으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 이 제목은 작가의 의도와도 맞지 않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게 된 작품이다. 영국인 집사의 품위 문제는 인간적인 품위를 놓친 뒤에야 얻게 되는 집사로서의 품위에 한정 된다. 충직성과 평판을 위한 품위에 한 생을 걸기 위해 판단유보의 행보를 견지하는 품위. 그것이 지나치면 악의 평범성을 곁에 둔 아이히만의 행보와 다를 바 없게 된다. 판단유보의 행위는 행위 자체가 악을 견지하지는 않지만 판단유보 때문에 악의 침투를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위계 사회에서 충직한 하위의 삶은 맹목의 충성을 위한 자긍심 말고 또 무엇이 남아 있을 것인가. 도덕적 판단력이 마비되고 현실감이 억제된 상태에서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에 안타까움과 인간적인 분노가 인다.

 

 

해설의 오류도 보인다. <304쪽 요컨대 일류급 집사들의 모임인 헤이스 소사이어티회원답게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았다. --> 스티븐스는 헤이스 소사이어티 회원이 아니라 그 사실들을 전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가치관(자신들이 모시는 주인이 저명한 가문인가 아닌가)과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스티븐스 세대는 도덕적 지위에 관심을 두는 이상주의자가 더 많았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던가.

 

 

자신의 삶을 절절이 정당화할수록 스티븐스 가치관의 경직성이 오히려 두드러진다.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어떤 가치관의 전복 -그것이 옳든 그르든-은 텍스트나 설득력 있는 이데올로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 예를 들면 집밥이 최고이니 엄마에게 밥하기를 강요하고, 늘어진 양말을 신는 엄마의 미덕을 찬양하는 것이 가정폭력의 한 행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텍스트나 그런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매개물이라는 것. 그런 것들을 접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 스티븐스에게 그런 절실한 매개물이 없었기에 스티븐스는 아주 오랫동안 집사로서의 자신의 품위에만 집착하게 된 것은 아닌지

 

  

집사혼으로 나치에 간접 복무하는 격이지만 그것에 대한 판단 자체가 없었다. 충직한 봉사자들의 실제 성격과는 상관없이 악의 평범성은 그들에게 당연지사가 된다는 아이러니. 집사라는 직업은 가치판단 보류를 유지할수록 유능한 직업인이 되니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다만 가치 판단 미스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스티븐스 인격을 신뢰하면서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집사로서의 품위에 안달복달할 때 자기 존엄 또는 인간 자체에 대한 품위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못했다는 점. 켄턴, 저 아련하게 무너지는 켄턴 양을 어찌하란 말인지. 켄턴 양의 마음을 알면서 스스로를 자제하거나 억압한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애초에 그런 애정에 관한 감정 따위를 자각하려 하지 않은 것 같아 더욱 안타까웠다.

 

 

새로운 주인 페러데이의 가치관을 수용하려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스티븐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집사로서의 품위에 대한 스티븐스의 가치관은 바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살아온 나날보다 남아 있는 나날이 길지 않은 스티븐스에게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켄턴 양을 재회했을 때 갈기갈기 찢기던 그 마음의 정서를 유지했으면 좋겠고, 달링턴 홀로 돌아가면 패러데이 어른 식 유머를 조금이라도 구사할 수 있는 여유를 훈련했으면 좋겠다.

    

 

 

<등장인물>

 

*스티븐스 달링턴 홀 집사, 품위와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헤이스 소사이어티 멤버(일류 집사들의 모임)

*패러데이 달링턴 홀 주인, 달링턴 가문의 200년 된 저택을 인수. 미국에서 넉 달 정도 머물 예정. 홀 직원들도 달링턴 홀에 남기를 바람.

*달링턴 - 전주인

*켄턴 양 (벤 부인)결혼으로 콘월로 떠났지만 실패 후 다시 달링턴으로 오고 싶어함, 전직 총무, 헬스턴의 벤 씨 집에서 나와 리틀컴프턴에서 지인과 기숙. 결혼한 딸 캐서린.

*- 켄턴 양 좋아함, 집사 출신, 둘이 결혼해서 캔턴 양은 달링턴 홀을 떠남

 

*클레먼츠 부인 전 직원 중 홀에 남은 사람

*로즈메리 애그니스 클레먼츠 부인 추천으로 고용한 아가씨들

*제인 시먼스 지리여행정보를 쓴 작가

*심슨 씨 플라우맨스 암스 술집 주인

*마셜 씨(샤를 빌 하우스) / 레인 씨(브라이드우드) 품위 있는 유능 집사의 예

*스티븐스 아버지 평생 품위를 지켰던 완벽한 집사, 로버로 하우스에서 직무 마감

*레너드 스티븐스의 형, 남아프리가 전쟁에서 죽음.

*찰스 앤드 레딩 컴퍼니 사장 데이비드 찰스 씨 아버지의 품위 있는 대처 일화 들려줌

 

*존 실버스(로버로 하우스) -스티븐스 아버지가 한 때 15년간 모셨던 주인

*그레이엄 집사의 품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패배주의자적인) 견지하는 집사

*엘리스 화이트 분통 터지지만 가장 헌신적이었던 하녀

*시머스 달링턴 시절의 설비 점검 하인

*카를하인츠 브레만 독일군 장교 출신 달링턴 지인, 권총 자살

*마서, 도로시, 모티머 부인 달링턴 시절의 하녀들

*데이비드 카디널 국제회의(베르사이유 조약의 부당성 논의)차 들른 인사, 승마 사고사.

*레지널드 카디널 데이비드의 아들, (남녀?) 자연현상에 대해 가르쳐 주라고 데이비드가 달링턴에게 부탁. 달링턴이 다시 스티븐스에게 부탁하고, 스티븐스가 말하기도 전에 카디널은 그것에 대해 안다고 함. 레지널드는 달링턴의 나치 협력 사상을 스티븐스가 알고 있는지 확인하지만 스티븐스는 관여할 상황이 아니라고 응대함. 현실 직시 및 사태 파악 능력이 있음. 나중에 칼럼니스트로 명성. 전쟁 때 벨기에서 사망.

*리벤트로프 독일 대사, 달링턴과 친분

*루이스 / 뒤퐁 미국 대표(비열하지만 나치의 실상을 직시함) / 프랑스 회의 대표(시크함)

 

*루스, 사라 해고된 유대인 하녀들

*바넷 부인 친유대계 인사, 이 여자 영향력으로 루스, 사라 해고된 바도 없지 않음.

*리사 해고된 유대인 하녀들 대신 들어온 이쁜 하녀, 중고참 하인과 눈 맞아 도망,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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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2-15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크아이즈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