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 없었다면 여성들의 삶이 어떠했을까?  인간사 이래로 여성 삶의 진일보를 담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독서의 힘이 아니었을까. 그런 가정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책 한 권이 있다.

  독일 작가 슈테판 볼만은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고 선언한다. 작가는 한 때 여성의 독서가 지극히 위태로운 것으로 취급받던 시대가 있었음을 고찰하고 있다. 근대 이전의 유럽 여성들이 처한 상황이 그랬다. 여성들이 세상에 대한 대범한 호기심을 갖는 것이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고급한 사회는 남성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작가는 유럽의 명화 속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책 읽는 여자들을 불러낸다. 동시대 밖으로 나온 여성은 하녀이거나 안주인이거나 후작부인이거나 아주 가끔은 왕비이기도 하다. 그들은 신분에 관계없이 불온한 여자의 혐의가 짙었다. 그림 속의 여자들은 한결같이 책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불온한 자유주의자들은 가슴 속에 화약고 한 짐씩을 안고 살았을 것이다. 남성의 거울로 비추어볼 때 그 시대 여성의 독서는 백해무익한 것이었다. 세상을 지배하고 호령하는 것은 남성 고유의 영역인데, 더 많은 것을 여성과 공유하는 것은 피곤한 일에 속했다.

  이것을 눈치 챈 여성들은 그들만의 독서 장소를 물색할 수밖에 없었다. 집주인이 먼 길을 떠나기를 바라고, 읽을 거리만 있다면 전장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도 좋았다. 그녀가 하녀라면 볕 잘 드는 다락방이 제격일 것이다. 읽다만 중세시대의 로맨스의 뒷장을 위해 그녀는 어서 빨리 주인이 집을 비우고 먼 길을 떠나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주인의 실내화도, 씻어야 할 물주전자도 읽어야 할 책보다 우선일 수는 없었다. 불온한 독서의 자유야말로 달콤한 휴식의 절정이 아니었던가.

  그녀가 만일 높은 신분의 여자였다면 침실이 그녀의 독서실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높은 신분과 관계없이 여전히 여성에게 세속적이고도 낭만적인 내용의 책 읽기는 허용되지 않았다. 방해꾼 없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근육을 한껏 이완시킨 채 그녀들은 독서가 주는 자유로운 광풍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공간적 은밀함이야말로 책 읽기의 독자적 상상을 보장해주었던 것이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소수 엘리트들이었다. 엄격하게 말하면,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소수 엘리트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이런 생각은 팽배했다. 종교서적을 제외하고는 여자가 독서를 한다는 것은 '천성'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동서양을 가릴 필요도 없다. 자신만의 규방으로 내몰린 여성들은 책의 향연에 정식으로 초대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초대받지 못했는지 알 겨를도 없이 여성들은 다락으로 침실로 창고로 내몰렸던 것이다. 그곳에서 세상을 읽고, 낭만적 유희를 꿈꿨다. 남성들이 볼 때 그것은 불온한 자각이었고, 음탕한 유희였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그 정보들을 여성들과 공유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여성에게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욕구와 드넓은 우주 질서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않았을까.  억누를수록 여성들은 유쾌한 고립 행위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남성이 전하는 말씀이 아니라, 독서야말로 세상과 소통하는 멋진 통풍구라는 것을 안 이상 물러설 수는 없지 않은가. 숨어서 책 읽는 여자들이야 말로 페미니스트의 원조가 아니었을까.

  이제 여성에게 독서는 더 이상 위험한 것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책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책 때문에 불온해진만큼이나 세상을 보는 눈이 커진다면 그 보다 나은 독서의 진가가 어디 있겠는가. 덜 불온한 여성일수록 더 상처받는다. 상처 많은 사람들이 이 한 권의 책에서 힘을 얻는다면 이 또한 독서의 효용이 아니겠는가. 과감하고 은밀한 독서일수록 그 파장은 크다.  이 환한 봄날 과도한 휴머니즘이나, 교훈서, 미담 수준에서 벗어난 독서광이 되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상처입은 영혼들이여, 주저없이 유쾌한 고립의 여정을 떠나자. 책 읽는 여성은 불온하니까. 그리하여 종내엔 매혹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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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8-28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수 앨리트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 그래서 욕은 대부분 여성비하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도 많다지요. 80%가 그렇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녀도 그렇지 않나요? 그런 의미에서는 신조어도 일종의 욕의 매개체인지도 몰라요.
책 권하는 사회, 라지만 실제 제가 읽는 책들을 본 몇몇 남자들은 저를 약간 무서운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럴 때면 친절한 금자씨처럼 웃으며 말하고 싶기도 했어요.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후훗.

다크아이즈 2006-08-29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섭게' 본 남자들은 Jude님을 잘못 본 것일테고, 제 생각에는 많이 읽을수록 '불온'해지는 것은 맞다고 봐요. 네, 당연히 불온해져야죠. <친절한 금자씨처럼 웃으며> 호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