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테러 라이브(2013)   설국열차 개인적인 감 

 1. 영화관이라는 피서지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피서지는 영화관이다. 피서지에 대한 합리적 대가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시원함의 호사뿐만 아니라 입 호사 눈 호사까지 누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이다. 땅 좁은 우리나라에서 보통 사람들이 활동적인 여가를 즐기기는 쉽지 않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면서 보통 사람들은 영화관을 적절한 여가 장소로 활용할 줄 알게 되었다. 그나마 편하고 경제적인 여가 활용 중의 하나가 영화 보기이기 때문이다. 한 영화당 관객 천 만 시대를 가뿐히 넘기게 된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의 이런 여가 활용법도 한몫했다.

 

  피서지로도 그만인데 영화가 좋으면 금상첨화이다. 신인감독 김병우의「더 테러 라이브」는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원래 분탕질이 심한 영화를 체질적으로 싫어해 영화 시작 십 분이면 졸기 일쑤다. 개연성도 없이 눈요깃감으로 쏘고, 부수고, 때리는 장면들이 어쩐지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감정 이입이 쉽게 되지 않았다. 한데 이번 영화는 달랐다. 실시간 속보라는 긴장감에다 비루함과 비열함이 뒤섞인 인간군상의 아이러니 앞에서 절로 서늘해졌다.

 

  고립된 스튜디오 안이 장면의 대부분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테러리스트와의 대화를 중계한다는 독창적인 상황도 눈길을 끌었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긴장감으로 엮여 있어 더욱 딴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소박한 영상으로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급 영화를 뛰어넘는 관객 시선 고정을 이끌어낸 것에 점수를 주고 싶다. 등장인물에 군더더기가 없고, 대사 처리에도 늘어짐이 없으며, 내용면에서도 과장이 덜 했다.

 

 

  다만 결론 부분이 약간 신파로 옮아간 것이 아쉬웠다. 파죽지세이던 감독의 진격에도 호흡이 달렸는지 다소 급하고 억지스러웠다. 90 여분 동안, 라이브로 중계되는 테러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다보면 관객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 있었던 사람처럼 긴박감과 울분에 온몸이 저려온다. 더위 피하기 위한 잠시의 여가에서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쐬었으니 이보다 더한 여름나기가 어디 있겠는가.

 

   *** 더 테러라이브가 설국열차 보다는 내게 낫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더 테러라이브가 개연성 넘치는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내 취향이 그나마 전자쪽이라 더 테러라이브 단상만 올려본다.

 

 

 

  

2.  사랑의 속성 - 애지욕기생에 붙여

 

 

  느지막이 영어 공부에 매혹당한 친구가 카톡으로 영어 문자를 보내왔다. 동양고전을 쉬운 영어로 풀어쓴 것을 하루에 한 문장씩 익히는데 영어도 늘고, 마음공부도 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란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그가 살기를 바라고, 누군가를 미워할 때는 그가 죽기를 바란다. 과거에는 그가 살아있기를 바랐지만 지금은 그가 죽기를 바란다. 이거야말로 자기기만이다.’ 이런 내용인데, 자신의 요즘 심경을 대변해주는 말 같아 맘에 새기고 있단다.

 

 

  첫 문구를 보니 어딘가 익숙하다. ‘애지욕기생’(愛之欲其生)이란 글을 풀어 쓴 것 같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살기를 바라는 것’이란 의미로 사랑에 관한 단상을 말할 때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고 장영희 선생의 수필에서 그 말을 처음 접하고 공감했던 기억이 났다. 출처를 찾아보니 ‘논어’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애지욕기생’ 이 부분만을 인용해서 사랑의 충만함에 대한 메시지로 활용한다. 근데 따라온 뒷말을 보니 일종의 반전이 있었다는 걸 알겠다.

 

 

  원문과 해석을 찾아봤다. 덕 쌓기의 숭고함과 미혹의 어리석음에 대한 가르침을 주기 위한 예시 중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사랑하면 상대가 살기를 바라고 미워하면 죽기를 바란다. 이미 그가 살기를 바랐으면서 다시 죽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야말로 미혹이다.’ 인간 사랑의 숭고함이나 낭만성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인간 심성의 간사함에 대해 공자는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사람의 마음을 경계하는 가르침인 셈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처 주고 상처 받기 쉽다. 상대를 그러안는 동안에는 모든 게 사랑스럽다. 하지만 미운 마음이 한 번 들기 시작하면 자제가 어렵다. 인간의 나약함을 선현들은 일찍이 갈파하고 있었다. 친구 역시 스스로를 단속하기 위해 이 경구를 새기고 있는 중일 게다. 사랑의 솔직한 속성은 할 때는 쉬워도 끊을 땐 비루해진다는 것이다. 그걸 뛰어넘으려는 안간힘을 가리켜 인간적이다, 라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3. 해리엇 제이콥스

 

  휴가는 게으르게 보내야 제격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빈둥빈둥 시간을 축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달콤한 휴가이다. 잠시 지루한 타이밍에 집어들 수 있는 책 몇 권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이번 휴가 때 가장 눈에 들어온 책은 해리엇 제이콥스에 관한 것이었다.

 

  흑인 노예였던 그녀는 주변의 도움으로 『린다 브렌트 이야기』라는 가명 자서전을 출간할 수 있었다. 1861년 나온 이 책은 어린 주인의 재산으로 양도된 노예 제이콥스의 처절한 투쟁기이다. 그녀는 성적 괴롭힘을 당하지만 당당하게 맞섰고, 사랑 앞에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고, 7년이란 긴 독방 생활을 처절하지만 잘 버텨냈다. 얘기에 쉽게 몰입되는 건 그녀의 글 솜씨도 한몫했다. 감각적이고 유려한 그녀의 문체 때문에 발간 당시에는 여성 편집자의 소설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을 정도였다. 여주인의 배려로 글을 배울 수 있었던 건 노예인 그녀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그녀는 폭군 주인을 피해 사랑하는 백인 남자와의 사이에 두 명의 아이를 낳고 숨어서 지냈다. 그렇게 7년을 분투한 끝에 아이들도 되찾고 북부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여성 노예 신분으로 자신의 운명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이런 모습에 당시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단순히 제 처지를 알리기 위해 글을 쓴 건 아니었다.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노예들을 위해 힘이 돼줄 수 있는 깨친 여성들의 힘이 필요했다. 처절한 환경 속에서 속박 받는 2백만 남부 여인들의 처지를 북부 여성들이 깨닫기를 바랐다. 기본 인권에 대한 그녀의 정신은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여권권리신장으로 이어졌다.

 

 

  개인적 차원이라면 침묵해도 좋을 고난사를 그녀가 기록으로 남긴 건 인간 존엄에 대한 깊은 인식 때문이었다. 그녀가 말한다. ‘오직 경험해본 자만이 악의 나락이 얼마나 깊고, 어둡고, 추악한지 깨달을 수 있다’고. 세상의 악행 앞에서 저항하는 모든 개별자들의 의지는 끝내 유의미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제이콥스 여사였다.

 

 

 

  

4.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는 영화 제목이 있다. 불안에 대한 인간의 제 상황을 생각할 때마다 영화와는 상관없이 그 제목 한 번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로 우리 삶은 불안하고 그 불안 때문에 영혼이 야금야금 잠식당하는 기분이 드는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자족의 빛이 넘쳐나는 것만큼 불안의 그림자 또한 짙다.

 

 

  불안과 친구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한 예를 들자. 입시생 엄마들이 모이면 관심사 중의 하나가 ‘용한 점집 찾기’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풍경일 텐데 불안의 정서와 관계가 깊다. 자식의 앞날을 좌지우지하는 대학입시야말로 부모가 느낄 수 있는 최대의 궁금증이자 불안감일 수 있다. 수험생들 속 타는 것 이상으로 엄마들도 노심초사한다. 섣불리 허심탄회하게 드러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삭이자니 속병이 날 지경이다. 그 와중에 ‘잘 본다’는 소문이 도는 역술인들의 정보라도 얻으면 성지 순례하듯 길을 나선다. 내 불안을 위무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국인 정서 밑바탕엔 기본적으로 샤머니즘적 유전인자가 깔려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진 종교와 관계없이 입시철이 되면 역술인들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우리식 종교 정서는 기복신앙에 가깝고, 그 기복 대상 또한 내 가족, 내 핏줄이 우선이다. 내 자식의 앞날이 궁금하고, 내 남편의 재복과 건강이 궁금한 것이지 거창한 주제인 인류공영 따위는 인심 쓰는 덤에 지나지 않는다.

 

  불안의 제일 원인은 욕심이다. 사회는 급변하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당연히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며 여유를 가질 시간이 없다. 오직 나와 내 가족의 안녕과 자족만을 삶의 목표로 삼기에도 벅찬 시대가 되어버렸다. 점집을 순례한다고, 그곳에서 내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고 근본적인 불안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맘 잃고 헤매는 영혼들에게 그보다 나은 위안처가 없으니 사람들의 귀가 솔깃해진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니 그렇게라도 위로를 간구하는 것이다.

 

 

 

 [주의] 우리 준이가 태   휴대폰 소액결제 사기

  5. 스미싱 주의보

 

  ‘우리 준이가 태어난 지 벌써 일 년이 되었어요. 축하해주세요.’ 낯선 번호에 수상한 문자이다. 링크도 걸려 있다. 접속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잠시 한 호흡 쉬어가기로 한다. 주변에 돌을 맞는 지인도 없거니와, 있다 해도 느닷없이 저런 형식으로 문자를 보낼 것 같지는 않다. 궁금한 건 포털 사이트 지식 창에 물어 봐, 라는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얼른 검색을 해본다. 아니나 다를까 문자 피싱이다.

 

  이런 신종 사기 문자를 ‘스미싱’(Smishing)이라 한단다. SMS(Short Message Service)와 피싱(Phishing)의 합성어인데 안내장, 무료쿠폰, 요금 명세서 등의 문자로 가장해 첨부된 링크에 수신자가 접속하도록 해 돈을 빼가는 수법이다. 링크된 주소를 클릭하는 순간 악성 코드가 깔리고 소액 결제를 유도하는 메시지가 뜬단다.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만 걸려들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전자기기에 능숙한 젊은 세대들도 피해를 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바일 초대장이나 무료 쿠폰 문화 등에 익숙한데다, 이름도 그럴듯한 신제품 아이스크림 ‘악마의 쇼콜라’ 무료 시식권을 다운받으라는데 어찌 유혹당하지 않을 것인가.

 

 

  스미싱 피해 사례가 점점 늘어나는 건 그 수법 또한 날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한 방법에 대처할만하면 다른 기발한 방법으로 유혹한다. 깊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순간적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새롭고 희한한 문구들이 등장한다. 알고도 당하고 모르고도 속는다. 소액 결제 피해액이라 당하고도 귀찮아서 넘어가기도 하고, 요금 내역서를 제대로 보는 경우가 없으니 모르고도 지나는 경우도 제법 있을 것이다.

 

 

  근본적인 대책보다 그들의 교묘한 수법이 한 수 위이니 당분간은 스미싱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는 수상하거나 낯선 문자에 포함된 링크는 접속하지 않는 것이다. 혹시 그들의 낚시질에 휘둘렸다면 즉시 요금 결제를 막아달라고 통신사에 연락을 취하는 방법과 함께.

 

 

  

6. 행복 유예

 

  실로 다양화되고 다변화하는 시대이다. 한데 그 변화무쌍한 것들에도 일정 패턴이 있다. 한 해 발생한 트위터 문구 15억 건 이상을 모 소프트 회사에서 분석했다. 자료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행동에는 시간대별로 일정 패턴이 있단다. 예를 들면 커피 마시는 시간은 물론 마시는 행위도 유형화할 수 있다. 하루 세 번 특정한 시간에 ‘커피’라는 말이 등장하고, 그 각각은 속성별로 모닝커피, 테이크아웃 커피, 카페 커피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 마디로 수집 분석 된 자료는 우리에게 적절한 ‘때’를 알려준다. 데이터 중 흥미 있는 부분은 요일별 감성 지수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어떤 요일에 기분이 가장 좋을까? 월요일 최악의 상태였다가 금요일로 갈수록 기분 좋음의 최절정 상태를 맞이한다. 그러다가 토요일 저녁부터 급격하게 우울 모드가 된다나. 월요일 해야 할 일이 생각나 느긋하게 휴일을 즐기지 못한다.

 

 

  연구에 의하면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은 우리만큼 걱정을 앞당기지는 않는다. 그들의 토요일은 우리의 그것에 비해 훨씬 즐겁다. 미리 걱정하는 우리 정서로는 금요일 저녁이 기분 좋음의 절정이다. 오죽하면 ‘불타는 금요일’이란 말이 생겼겠는가. 토요일 저녁만 되면 월요병이 소급되어 텔레비전도 제대로 시청하지 못한다. 심지어 일요일 저녁에는 외식조차 꺼리게 된다. 다음날 맞닥뜨릴 일거리가 걱정되어 최대한 움츠리게 된다.

 

 

  행복을 유예하는 것도 일종의 문화적 관습 같다. 서구사람들은 일 년 번 돈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소비할 것인가를 구상한다. 한 달 간의 바캉스를 즐기기 위해 일 년을 일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하루 삶의 무게만으로도 벅찬데 제 평생의 삶을 미리 얹어 걱정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 정도는 유예하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미뤄진 행복이 먼 훗날에는 온다는 보장이 있기는 하던가. 다음날의 안녕을 위해 휴일 정서까지 방해 받는 소시민들에게 현재를 즐기라는 말은 너무 먼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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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3-08-13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느와르님, 더위에 무사하셨군요! 어쩐지 망망대해에서 등대 불빛을 만난 것 마냥 반가워서 흔적 남겨요.

장영희 선생의 글에서 저 문구를 보고 갸웃, 했더랬습니다. 살기를 바랐던 이가 죽기를 바라는 그 시점에서, 전 제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코요테 어글리의 자학 버전이랄까요. 이런 너를 사랑했다니 내가 미쳤다+이런 나를 사랑했다니 너도 만만치 않다 의 잡탕 이데아였던 것 같아요. 하긴, 남자의 긴 손가락에 반하는 능력을 잃은 지금에야 돌이켜 보며 괴상하게 웃을 뿐이어요. 그러고 보면 사람은 참 편리한 존재인듯 해요. 무슨 일에나 이유를 갖다붙일 수 있어서. 어쩌면 내가 바라본 이들은 정확하게 그들 인격 그대로를 보였을 뿐인데,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랐구나, 하고 팜므 느와르 님 친구분의 문자 메세지로 생각해 봅니다. 죽은 정자와 죽은 난자가 만나 죽은 아이를 만들어내기를 바라는 그런 일이요.

그런데 너무 더워요. 더워요. 더워요 ㅜㅜㅜㅜ 모쪼록 저처럼 더위먹지 마시고, 건강하셔야 해요.

다크아이즈 2013-08-13 16:37   좋아요 0 | URL
에뷔테른님 살아?!계셨군요. ㅋ 넘 더워서리... 안부 여쭙니다.^^*
확실히 장영희 선생 글은 반만 인용하셨더군요. 선생이 말하고 싶은 쪽으로만...ㅋ

아,에뷔테른 님다운 생각이에요. 대개 살기를 바랐던 이가 죽기를 바라는 게 사람 마음이거든요. 근데 자의식 강하거나 수치에 내공이 없던 순결한 영혼이라면 에뷔님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봐요. 하지만 지나친 자학은 그 누구를 위해서도 도움 되지 않는다고 봐요. 차라리 치졸한 인간 본성 그대로를 내다본 공자님 말씀처럼 되는 게 더 인간적이라고 봅니다.

사람은 자기 존재 고유의 성질대로 존재하는 건 맞습니다. 보는이가 그것을 가공하고 확대하거나 때론 왜곡하거나 축소하는 거지요. 죄 있다면 타자가 아니라 제대로 못 본 자신인 거죠. 뭐. 살아낸다는 건 항상 힘겨운 투쟁입니다.

더울 땐 더더욱... 빨리 이 여름 지나가기를 바라고 바랄 뿐입니다. 테른님도 무사히 폭서의 강을 건너시길^^*

곰곰생각하는발 2013-08-1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구 사람들이 한 달 바캉스를 위해서 일 년 동안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밑바탕에는 케어(복지) 시스템이 든든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가 무너지면 국가가 어느 정도 책임진다는 생각이 깔려 있죠. 그런데 한국은 아시다시피 모든 것은 개인이 해야 해요. 일본인들이 재난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십시요. 담담하잖아요. 집이 떠내려가도 말이죠. 복지가 잘된 국가는 일종의 보험을 든 것과 같아요. 그래서 크게 울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집 떠내려가면 대성통곡을 해요.
왜 ? 국가는 개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렇죠. 경제 10위권 국가입니다.
그만큼 이윤이 남는데 이 이윤은 모두 몇몇 재벌들이 가지고 가죠. 세금은 모두 그들 이권 사업으로 들어갑니다. 복지로 들어가야 할 것을 말이죠. 아이고 하여튼 더운 이야길 했네요
시원한 이야길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오늘 무지막지하게 덥군요.

다크아이즈 2013-08-13 16:45   좋아요 0 | URL
이래서 제가 곰발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지요.
복지시스템이 든든한, 한 마디로 조상 잘 만난 덕에 노후 걱정 안 해도 되는 그들 삶을 잠깐일도 엿보고 왔으면서도 단순한 기질 차이라고만 보려 한 제 시각을 깨뜨려 주시는... 감사합니다,곰발님^^*
보험 든든한 사람들은 실은 미래 걱정할 필요가 없죠. 가까운 예로 부부 교사 친구는 해외 여행 가도 심리적 위축이 덜 되지요. 퇴직후 육백만원? 정도 되는 연금이 보장되니까요. 하지만 일개 월급쟁이 아내인 저는 쫄 수밖에 없어요. 퇴직하면 뭐 먹고 사나 하는 걱정 때메 느긋할 수가 없는 거지요.
기질 상 걱정을 더하고 덜 하고도 있겠지만 확실히 미래 보장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나 없나에 따라 걱정의 순도치가 영향을 받겠네요.

오늘도 좋은 걸 가르쳐주신 곰발님, 더위 잘 견디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