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어떻게 올까? 대개 찰나적이고 때론 서서히 다가오는 게 사랑이다.
캠퍼스 느티나무 그늘에서 희고 긴 손가락으로 무심하게 고스톱 패를 돌리는 여학생의 특이함에 남학생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도무지 그 긴 손가락과 고스톱과 무심한 얼굴이 왜 떠오르는지도 모르는, 그 부조리한 상황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단박에 사랑에 빠져버리는 것. 거기엔 이유도 조건도 없다. 반면에 몇 년 간 알고 지내던 여학생이 서서히 여자로 보이기도 한다. 취업과 결혼을 해야 하고, 부모님과 2세 걱정도 하는 시기가 맞물려 사랑이란 감정이 자연스레 싹튼다. 이유와 조건이 충분한 사랑이다.
사랑의 흔한 두 예를 들어 보았다. 그 중 사랑의 염결성에 더 가까운 쪽은 찰나적 사랑이다. 적확하고 조리 있는 눈을 가진 자는 즉흥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흐린 눈으로 봐야 첫눈에 반할 수 있다. 계산 없는 사랑은 ‘사랑을 하는 단계가 아니라 사랑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후자의 필요에 의한 사랑도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 시작은 ‘찰나적’ 사랑만큼 순도 높은 건 아니다.
불교 용어 중에 돈오(頓悟)와 점오(漸悟)라는 말이 있다. 수행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박에 깨치는 것이 돈오이고, 수행의 공을 쌓아 서서히 깨닫는 게 점오이다. 사랑으로 견주자면 돈오의 사랑이야말로 순수한 사랑의 시작이라 할 만하다. 흔히 나이 들도록 사랑 한 번 못해 봤다고 말했을 때 이는 돈오의 사랑을 못해봤다는 의미이다. 점오의 그것은 타협의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그 시작이 돈오의 사랑만큼 강렬하지는 않다.
돈오든 점오든 그 사랑의 시작은 창대하나 그 끝은 제 각각이다. 하늘과 부처가 아닌 이상 그 사랑의 유지와 책임은 오롯이 당사자들에게 있다. 한 눈에 반하든, 서서히 반하든 서로 물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과정에 필요하다. 깨지기 쉬운 사랑의 속성 앞에서 갈등하는 갈대로 스치듯 스미듯 살아가는 게 필부필부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