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 벽화 직찍
간만에 친구랑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였다. 식당 안은 한갓졌다. 방학인데다 한파까지 이어져 나 같은 아줌마들이 칩거를 하는 바람에 그런 모양이었다. 서너 테이블 밖에 안 되는 손님들은 그나마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가 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근데 좀 전부터 가족끼리 온 옆 좌석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티 나게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주문한 음식을 앞에 두고 여자는 불편한 눈빛이 역력했고, 뒷모습만 보이는 자녀 둘은 어깨를 움츠린 채 고개를 접시에 박고 포크질을 한다. 남자는 꽁한 얼굴로 제 앞의 접시를 여자 쪽으로 밀어낸다.
건너오는 말을 조합하자면 남자는 무슨 일로 조금 늦게 합류한 것 같았다. 아이들 식성에 따라 여자가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늦게 온 남자는 그게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먹기 싫은 음식을 먹어야 하니 고역인 모양이었다. 여자가 접시를 남자 쪽으로 다시 밀어주자 남자는 곁가지로 나온 밥만 시위하듯 먹기 시작한다.
저 식구는 왜 레스토랑에 왔을까? 처음부터 남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시키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종업원이 우리한테도 그랬듯이 은근히 같은 메뉴를 주문하기를 권유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바람에 여자는 메뉴를 통일했을 수도 있겠다. 남자도 그렇지. 이왕 그렇게 된 것 자식들과 여자를 위해 즐겁게 먹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주눅 든 채로 어린 아이들이 음식에 코를 박고 있는 걸 보니 가슴이 아리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도 나왔다. 육즙 반지르르한 스테이크가 차려지는데도 식욕이 돋지 않는다. 창밖을 내다본다. 나목이 된 자작나무 가지에 바람에 실려 가던 것인지, 누군가 일부러 던진 것인지 모를 비닐 인형이 걸려 있다. 가려줄 잎 하나 없이 매달린 저 인형, 몹시 추워 보인다. 옆 테이블 사람들이 저 나목에 걸린 인형처럼 보인다. 덩달아 인형이 된 내 속내를 감추고자 친구 앞에서 퍼뜩 어색한 입 꼬리만 올린다. 겨울일수록, 추울수록 따습게 보듬어야 할 저마다의 인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