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 자연스럽게 당당하기 프로젝트

 

  그녀는 혼자 뼈다귀해장국집에도 들어갈 줄 안다. 이제 식당에 혼자 들러 삼인 분의 삼겹살을 시켜 먹을 뻔치도 생겼다. 두 판 짜리 세트 피자를 주문하는 일도, 통닭 배달이 늦는 것에 대해 적당히 항의하는 것도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되기까지 몇 개월의 실전 연습이 필요했다. 그녀는 열일곱 살이다.

 

  열일곱은 어른도 아이도 아닌 나이다. 상대가 부모가 아닌 제 삼자의 어른이라면 소통에 아주 난감한 나이가 열일곱 살이다. 상대가 어른이라면 열일곱은 참 애매한 나이이다. 어른을 상대로 단독자로 뭔가를 요청하기엔 시건방져 보일까 걱정하고, 단체로 뭔가를 어필하기에도 반항끼 있어 보일까 애태우는 나이이다. 되바라지지 못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기성 사회에 편입하는 과정이 쑥스럽고 불편스럽기만 하다.

 

  한 아이를 상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심각한 고민은 아니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적응기를 지켜봐주기만 하면 된다. 전형적 모범생인 그녀 고민의 예는 이런 거다. 배가 고파 분식점에 들어간다 치자. 종업원이 정중히 다가와 주문을 요청하는 일도 없지만, 왠지 자리에 앉아 음식을 시키면 분식점 주인에게 버릇없게 보일까봐 스스로 주방까지 걸어가 우동 한 그릇이요, 하고 조심스레 주문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어른을 공경하라고 배웠고, 될 수 있으면 모범생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으니까.

 

  주방까지 가서 공손히 음식을 주문한 내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으면 괜찮다. 한데 뭔지 모르게 속이 뒤틀리고 대접 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자신이 싫다. 어른에게 모범생이고 싶은 욕구와 손님으로서 대접 받고 싶은 당당함이 상충한 것이다. 왠지 당당함을 선택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때부터 홀로서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피자가 먹고 싶어도 엄마가 시켜주지 않으면 전화 한 통 못하고, 어른 상대라면 혼자서는 스타킹 한 짝도 사기가 어렵다. 어른 도움 없이 식당에 들러 한 끼 사먹는다는 것은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수동적인 자세가 어른들에게 먹히는 것이 싫은데, 자신도 모르게 그들이 원하는 행동에 길들여져 버린다.

 

  그런 자신을 벗어나기 위해 부러 친구들과 삼겹살도 먹으러 가고, 물횟집에도 들러 본다. 뼈다귀해장국집 문도 열어 보고, 피자집에도 주문 전화를 넣어본다. 생각보다 어렵진 않다. 예의를 벗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당당한 소비자 역할을 시도해본다. 의외로 아무렇지 않다. 어른 세계 어느 누구도 당당한 소비자 연습을 하는 열일곱을 질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당연한 소비자 역할하기가 이리도 어렵다면 그건 기성 사회의 잘못이다.

 

  어른처럼 당당한 열입곱을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니 착한 이미지에 죽고, 모범생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열일곱은 행동거지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열일곱이 위선을 선택하는 건 욕할 일은 아니지만 칭찬할 것도 아니다. 억압된 위선의 부산물이 모범으로 비칠 수 있는 사회라면 그건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그들에게 자연스런 당당함을 연습시키는 건 기성세대가 할 일이다. 연습을 시켜서라도 열일곱 식 자연스러운 당당함은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플라톤을 배우고 공자를 익히는 것만큼 실전 연습이 필요하다.

 

  17세라면 지금 당장, 엄마 손 빌리지 않고 피자 시키기 프로젝트를 수행할 일이다. 물론, 이미 그런 연습이 필요치 않은 당신들, 17세들도 많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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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2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열일곱은 위선이 어울리지 않지요.
차라리 건방이 낫지 싶어요.^^(어른 관점이지만)
좀 착하지 않게 보여도 당당하고 용감하면 좋겠구요.
나의 열일곱이 생각나네요. 조금은 성숙하고 당차고 생각이 많았던, 베레모 그 시절.^^


다크아이즈 2012-11-24 17:18   좋아요 0 | URL
프레님, 저 아이의 사소한 고민이 공감 됐던 건, 다 큰 우리딸도 아직 당당하고 의연한 소비자 역할에서 한참 멀거든요. 피자 한 판 시키는데도 매끄럽지 못해요. 속에 천불 납니다. 시간이 해결하겠지요?

저 아인 스스로 깨치고 예행 연습을 하고 있어서 무척 신선하게 보였답니다.

댈러웨이 2012-11-2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는 열일곱 살에 이런 고민 안 했던 것 같아요. 모범생처럼은 보이고 싶긴 했지만요. 날라리였나? --; (매일 새벽 이렇게 글 쓰시잖아요. 이보다 더한 자극이 어디 있겠어요, 팜므느와르님!)

다크아이즈 2012-11-24 17:22   좋아요 0 | URL
댈러웨이님, 빙고~~ 저도 소심한 청소년기였는데 의외로 할 말은 할 수 있었던 체질(?)이었던 것 같은데, 소비자로서 안절부절못하거나 지나치게 굽신 모드인 울 아들 같은 놈 보면 약간의 연습이 필요하단 생각이...
저 학생의 사소한 고민이 무척 공감되었답니다.

매혹적인 자극제라면 댈러웨이님 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