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광석이 있었다. 감성적인 가사로 읊조리듯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덤덤하면서도 슬퍼보였다. 기타와 간주용 하모니카가 잘 어울리던 남자. 하모니카 그 목걸개 장치가 제 운명의 덫처럼 보이던 남자. 끝내 불운을 넘어서지 못하고 세상을 등져버린 남자. 너무 일찍 안타까운 전설이 돼버린 포크 가수.
그가 죽은 지 십 년도 훨씬 넘었다. 하지만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 가슴 속에선 언제나 부활 중이다. 시적 감수성과 편안한 음색의 조화 덕분에 그의 노래는 버리고 싶은 게 하나도 없다.「서른 즈음에」같은 경우엔 금세기 최고의 노랫말로 알려질 정도로 인기 있는 노래가 되었다. 그가 전설이 되고 그의 노래는 신화처럼 붙박이고, 대구 방천시장엔 벽화로 만든 그의 거리가 생겨나기까지 했다.
만인의 김광석은 거기까지였으면 싶었다. 나 혼자만의 욕망일 한 곡쯤은 숨겨두고 싶었다. 그의 사후 앨범 ‘노래 이야기’ 첫 번째 수록곡인「먼지가 되어」가 그런 노래였다. 노랫말도 그가 지은 게 아니고 작곡자도 그가 아니다. 처음부터 그가 부른 것도 아닌, 라이브 리메이크 곡이었다. 김광석 것이 아닌 노래가 김광석에게 와서 듣는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런 노래였다. 물론 가사와 멜로디도 그 느낌에 한몫을 했다. 수많은 그의 히트곡을 대중에게 양보하더라도 이 노래만은 혼자만 까먹는 알밤처럼 숨겨 두고 싶었다.
그 노래가 검색어 앞 순위를 다투고 있다. 한 케이블 방송 가수 발굴 프로그램에서 경쟁자끼리 듀엣으로 불렀는데 화제가 되었단다. 뒤늦게 동영상 화면을 찾아봤다. 난리 날만하다. 락 버전 편곡으로 부른, 두 도전자의 하모니에 눈과 귀가 뚫렸다. 김광석의 담담함도 좋지만 젊은 듀엣의 패기도 만만찮았다. 내가 먼저 발견한 책이나 노래가 베스트셀러가 되어갈 때의 야릇한 서운함 같은 게 잠깐 밀려왔다. 하지만 누군들 이 노래를 진작 몰랐을 것인가.
혼자만 간직하고픈 것일수록 만인의 것이 되기 쉬운 게 세상 이치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적극 광고나 해야겠다. ‘시를 써 봐도 모자란 당신’이 생각나는 이들아,「먼지가 되어」를 다섯 번만 들어 보라. 물론 김광석의 라이브도 좋고, 젊은 듀엣의 도전곡도 상관없다. 가을맞이 선물로 이보다 맞춤한 감성 자극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