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독서본능 - 책 읽기 고수 '파란여우'의 종횡무진 독서기
윤미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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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고수가 되는 건 아니다 




  종횡무진 리뷰판을 벌이는 파란여우의 꼬리를 잡으러 간다. 숨차고 머리 어질하다. 내 드문 리뷰에 가문 덧글은 당연하다. 그래도 그 덧글 중 가장 강열한 인상을 준 이가 ‘깐깐한 독서본능’을 쓴 파란여우였다. 장정일과 박정만(시인) 덕분이다. 그 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동년배라는 걸 눈치챘던 것이다. 그미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혹, 자신의 숨은 동창 친구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물어온 적도 있다. 칠십 년대에 초등학교(국민학교란 말이다!)와 중학교를 다녔고, 팔십 년대에 고등학교와 대학을 누빈 자의 우연한 공통분모가 그런 착각을 불러 온 것이리라. 같은 시간을 건너온 자의 먼지 한 톨 같은 공유의식이 실제론 멀지만 가상공간에선 가까운 친구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내가 서재를 방치하는 동안 그녀가 책을 냈고, 다시 몇 글자씩 끼적이게 됐을 때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고 있음을 현장 목도하고 있다. 스테디셀러가 되기를 조용히 응원한다. 그 응원의 한 갈래로 당장 책을 샀고,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느려터진 내 읽기 속도로 며칠 더 걸릴 것이다. 반 이상은 읽었으니 설사 더 늦어질지라도 조급해할 필요는 없으리라. 읽은 이는 알겠지만 이 책은 단숨에 읽어 내릴 책이 아니다. 자신의 책 무더기 주변,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읽는 자의 길잡이 노릇을 하게 해도 썩 괜찮다.  



  솔직하자면 내 빈약한 독서 이력에는 걸맞지 않는 책이다. 하지만 그건 내 지성의 ‘빈약함’ 때문이지 내 독서취향과는 별개의 문제다. 어쭙잖게 독자로서 작가에게 빌붙는 변명을 하자면 나도 장정일과 김훈과 수전 손택 이야기엔 흥분한다. 장정일의 형형하고도 순정한 눈빛과 작가정신을 미더워하고, 우수수 잎 떨어진 겨울나무 같은 김훈의 스트레이트 미문을 죽도록 흠모하며, 수전 손택의 개별자의 고통과 아픔을 살피는 그 눅눅한 통찰과 인심을 존경한다. 그러니 앞서가고 달려가는 그미의 독서법이 다소 벅찬 독자라도 충분히 그녀식 읽기의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  



  궁금한 자, 호기심 어린 자, 다 ‘깐깐한 독서본능’에 모여라. 나 잡아봐라, 폭설 맞은 꼬리를 털어내며 저만치 내달리는 파란여우 잡으로 가자.

  불만이 없다면 주례사 비평으로 몰릴까 두려우니 억지로라도 찾아보자.  

  저자, 출판사 이름 정도는 책 사진 밑이나, 리뷰 내용 중에 삽입했어야 했다. 편집 상 세련미를 고집한 때문일까? 편집자의 눈썰미가 아쉽다. 책 안내자 역할을 하는 리뷰성 글인데, 불편한 편집 때문에 독자의 읽는 수고를 더욱 짐지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읽으면서 저자와 출판사를 확인하느라 저 앞면의 ‘소개되는 책’으로 끊임없이 되돌이표를 해야만 했다. 작가 이름이 내용에 언급되나 싶으면, 출판사 이름이 빠져 있으니 덜 꿰맨 이름표를 달고 책상 앞에 앉은 꼴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편지’ 같은 경우 끝까지 읽어도 그 책의 겉표지 정보를 꿰차지 않은 상태에서는 책의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결국, ‘정민, 박동욱 엮음’, ‘김영사’라는 정보를 얻기 위해 앞 부분 ‘소개되는 책’란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책 읽기 고수들에게는 그런 수고가 별 것 아니겠지만, 일반 독자들에겐 짜증을 불러낼만한 편집이다. 저자가 언급하는 도서목록을 한쪽에 몰아두는(감춰두는) 것이, 이번 목록에 끼지 못한 다른 책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 것일까? 제법 두꺼운 책이라 읽을 때 조금만 부주의해도 지면이 자꾸만 엎어진다. 거기다 양 손으로 지탱해가며 확인 차 앞뒤로 왔다 갔다 하려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이래저래 재바르지 못한 사람, 인내심 테스트 하는 것 같아 살짝 서운하다.    

 

 

 

  만연체를 구사하다 보니 더러 비문이 보이는 것도 옥에 티다. (흔한 건 아니고 몇 군데 보인다. 잘 살펴 다시 흔적 남길 수 있어야 할텐데...) 김훈의 문체를 이해하는 작가의 세심한 눈길이 털털한 문체 - 제목에서 ‘깐깐한’이라는 관형사를 사용했는데, 이건 내용상 그렇다는 뜻일 것이다. 저자의 문체는 확실히 털털한 편이다. - 와 조화를 이룬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글쓰기가 될 것이다. <6년 전, 황야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놀던 무식한 나에게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책의 문을 열면서 나는 내 황폐한 영혼의 ‘빵꾸’를 수리하고 시력을 교체했다>(59쪽) 같은 표현이야말로 작가의 털털함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앞으로 책 안내자의 역할을 넘는 글쓰기가 작가에게 요청될 것 같다. 충분한 자격이 있는 작가의 앞날에 또 한 번 박수를 보낸다. 좋든 싫든 이제 작가는 글 써서 염소 먹이 파는 밥벌이의 비루함(위대함!) 대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부디 다음 책도 건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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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10-01-12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님,김정만 시인이 아니라, 박정만 시인입니다.ㅎㅎ
진정성 베인 리뷰 잘 읽었습니다.편집의 아쉬움과 더불어 제 글의 빈약함까지 고언을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다크아이즈 2010-01-1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고, 이런 실수를... 고칠게요. 세월 가니 박정만 시인도 가물가물~ 재혼부인 염미혜 씨 이름이 더 기억남으니 아무래도 '미세스 염'을 질투했나 봅니다. ㅋㅋ 그리고 감히 누가 여우님 글의 빈약함을 운운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