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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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많이 불온하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일개 독자로서 충분히 불편하고 부끄럽기를 바랐다. 소나기 속으로 뛰어든  미친년처럼 그의 '불온한' 장대비를 흠뻑 맞았다.  다 읽고 난 지금 독자로서 충분히 불편하고, 부끄럽다.  하지만 그가 전혀 불온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좀 더 불온해도 좋았을 것을.  불온하다고  고백하는 그의 위악은 되려 온건이 지나쳐 따뜻하기까지 하다. 그는 예리한 칼날을 제 주먹껏 움켜쥐고 세상을 향해 디민다.  예상대로라면 그의 손과 세상 사람들 - 많이 가진 자, 조금 덜 가진 자를 말한다. 물론 아주 적게 가진 자나 못 가진자는 제외 - 의 어깨뼈 어디쯤에 핏물이 스쳐야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스한 칼날로 벼린 그의 글은 필연적으로 그가 전혀 불온할 조짐조차 없음을 반증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가진 자들에게 성찰과 반성을 친구 삼게 만들거나 요구하는 것이 어찌 불온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좀 더 불온해지더라도 나는 그를 따뜻한 온건주의자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강준만을 읽으면서도, 진중권을 스치면서도, 혹은 고종석을 거치면서도 잘 이해되지 않던 계급적, 혹은 정치적 용어들을 어렴풋이나마 정리할 수 있게 된 것도 그의 수고 덕이다.  예를 들면 '개혁'과 '진보'가 엄청나게 다른 개념이라는 것과, '자본주의'보다  '신자유주의' 가 더 무지막지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은 것. 어디 가서 내 무식이 탄로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이다.

  쉽게 쓰려는 방식은 고종석과 닮았다, (아마 둘 다 이오덕 선생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그 유연한 대처 방식에서는 고종석이 한 발 더 나아간 듯하다.)  강준만의 대책없는 아집을 넘어서고, 시니컬과 독설이 진중권에 못미치는 것에서 그를 더욱 신뢰하게 된다.  체험의 물살에서 길어내는 그의 언어가 근본적으로 휴머니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아, 수정해야겠다. 여기서 '체험의 물살' 운운하는 건 그의 가정사가 등장하는 장면, 특히 딸과의 관계를 훔쳐볼 때에 더 해당하는 말이다.

  어느 존경받는 진보적 인사가 정작 제 식구들, 특히 제 딸에게서 전혀 존경받지 못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저렇게 훌륭한 아버지를 왜 존경하지 않는 걸까?' 얼마가 지나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흔히 짐작하듯(그리고 그런 인사들의 가장 편리한 면죄부인) '세상에 헌신하느라 가족에게 소홀해서'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실은 매우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딸은 단지 딸아들 하는 자식 중의 하나가 아니다. 딸은 한 남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가장 정교하게 알아낼 수 있는(폭로하는) '삶의 시험지'다. 한 남자가 '딸에게서 존경받는 인간'이 되려고 애쓴다면 그의 삶은 좀더 근사해질 것이다.  (175쪽)

  흔히들 '운동'을 했다(한다)하면 가정과 신념을 분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혹은 용서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가 미더운 것은  아동인권, 여성문제(기득권 남성과 똑 같은 권력을 얻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그의 칼날은 단호하다. 이미 기득권 남성이 되어버린 여성 권력들을 나 또한 혐오한다. 그들은 그들의 여성성을 자각하지 않으며  소수자 여성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혹 주게 되더라도 교묘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의 기득권만은 포기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의 몇몇 문구에 무척 거부감이 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소수인 약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그의 애정이 상대적으로 넘친다는 걸 알기에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인간으로서의 예수, 생태 문제를 일관성 있게 자분거려주기 때문이다. 그것도 알아먹기 쉽도록.

  스스로 나는 E급 좌파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한갖 보수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보수에는 개혁과 수구가 있을지 모르지만 제 아무리 개혁을 외치는 자라도  김규항 같은 좌파에게는 '씨팔'  '좆같이'  - 이 두 욕은 그의 귀여운 딸 김단이도 쓴다! -  똑 같은 보수에 지나지 않으므로.

  각설하고, 그가 발행한다는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 구미가 확 당긴다. 내 아들 딸이 아니라 내가!  또, 어디선가 인터뷰한 것을 봤는데 '예수전'을 기획하고 있다는데  그 책이 나오면 빠른 독자가 되고 말리라. 미사 시간에 강론은 듣지 않고 성서 읽기에 골몰하는 나로서는 당근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가 궁굼치 않겠는가. 

  참, '좋은 글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며, 좋은 음악은 가슴이 아프다.'(251쪽)는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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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1-18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불.편 하신건 맞군요^^
땡스투는 당연히 못 해드립니다. 저도 이미 사서 읽어버렸으니^^
대신에 추천만 살포시.

2007-01-18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07-01-18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파란여우님, 정말이지 불편하고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E급 좌파도 못 되는 제게 달라질 건 없다는 거죠.
* 속삭인 님, 꼭 리뷰 써줘요. 김규항이 말했잖아요. '칼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제 멋대로 해석!) 글이야말로 좋은 글인 걸요. 그에게도 반성(?)할 기회를 줘야 하는데 죄다 뻑 가는 리뷰만 올린다면 그는 계속해서 골방에서 이런 글만 올릴걸요. 그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니랍니다. '칼맞지' 않으니까 신선한 님의 생각 던져 주세요.

마법천자문 2007-01-2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A+급 좌파인 저의 어깨가 무거워지는군요.(에구에구~ 돌 날라온다~~~)

다크아이즈 2007-01-23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애리님 센스 만점! 근데 불멸의 나애리랑 A+급 좌파랑 어울리는 조합인가?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