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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ㅣ 창비시선 253
문성해 지음 / 창비 / 2005년 8월
평점 :
조금은 충격이다.
문성해의 시집을 산 지는 한 달이 넘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들춰보았다. 간만에 알라딘에 들어와 독후감을 쓰려고 보니 그 어떤 리뷰도 없다. 조금 충격 받았다. 유명 시인은 아니지만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성해 시인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매니아 한 두명 정도는 리뷰를 남기지 않았을까, 내심 기대를 했던 것이다. 한데 아무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시집이 나온지 일 년이 훨씬 넘었는데...
시인이 대중적 인기가 없어서 그런가 싶어 그나마 대중적, 문학적 성과를 거뒀다고 회자되는 문태준 시인의 <맨발>을 클릭해보았다. 웬 걸? 그곳 사정도 여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겨우 세 편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대한민국에 시를 사랑하는 인구가 소설이나, 여타 장르를 사랑하는 인구보다 훨씬 많은 걸로 안다. 한데 독후감 실적은 여타 장르에 비해 영 아니올시다, 이다. 알라디너들만 시에 대한 독후감을 쓰지 않을까, 아니면 시를 공부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독후감 따위에는 관심이 덜하다는 것일까. 괜한 호기심 하나 추가이다.
각설하고, 문성해의 시를 좋아하게 된 것은 '공터에서 찾다'라는 시 때문이다. 언젠가 지방지 신춘문예 당선시에서 그 시를 발견하고 나는 전율에 휩싸였다. 시가 뭔지 잘 모르던 시절, 시를 이렇게 쓰는구나, 라고 한 방 먹이게 한 작품이 바로 '공터에서 찾다'라는 시였다. 혹 내가 시에 대한 편견을 갖고 이런 시를 좋아하나 싶어 심사위원을 살펴보니 이성복 시인이었다. 꼭 대가가 선택했기 때문에 믿음이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문단에서 내로라 하는 시인이 뽑은 시를 내가 좋아하게 됐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기까지 하였다. 그 뒤 어느 문예지에서 발견한 '봄밤'이란 시도 나를 매료시켰다. 그 때 결심했다. 이 시인의 첫 시집을 꼭 사야겠다고. 시인은 내 결심에 화답이라도 하듯 몇 년 뒤 중앙지 신춘문예에 재당선 되었고(그 때 제목은 '귀로 듣는 눈'인가 그랬는데 그 시는 개인적으로 별로 와닿지 않았다. 독자로서의 내 마음을 아는지 이번 시집에 그 시가 수록되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늦은 감은 있지만 그녀의 시집이 내 손아귀에 들어온 것 자체가 행복하다. 돈 안 되는 시를 쓰는 시인들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그들의 시집을 사주는 실존적 행위 자체일 것이다. 이렇게 당신의 시를 사서 읽고 있는 독자들이 있으니 힘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두 번째, 세 번째 시인의 시집이 나오면 기꺼이 사서 읽을 용의가 있다고 고백까지 해보는 것이다. 일반 독자인 나 같은 사람말고 진짜 시를 좋아하거나, 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시에 대한 독후감도 많이 올리기를 바라며.
이제 고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 의심은 더욱 식욕을 부풀리고 나는 // 이것을 기꺼이 먹기로 작정한다 // 완강하던 페트병에 드디어 금이 가고 // 텅 빈 속살 들여다본 순간, 나는 // 속았음을 직감한다
어둠 속을 휘적휘적 걸어갈 때 // 앗! 저기 또 푸른 슬리퍼 한 짝이...... // 내 야성의 턱뼈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문성해 - 공터에서 찾다, 부분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