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곳에 다니게 되었을 때부터, 취미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던 그 어린 시절부터 나의 취미는 독서였다. 나는 누군가와 어울리는 활동적인 시간보다 혼자서 무언가를 알아가는 시간이 더 좋았고, 독서는 이런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점점 더 가져가기 시작했다. 나는 독서에 몰입했다.
독서를 통해 언어능력이 향상되고 지식이 쌓이면서,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학교의 공부를 상당히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은 대부분 언어능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좋을수록 더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평소에 꾸준하게 읽어왔다면, 단지 읽었던 내용을 잘 기억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생각은 어떻게 배워야 했을까. 학교에서는 나에게 읽고 쓰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지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는 못했다. 나는 관심분야에 대한 지식을 줄줄이 쏟아낼 수 있었지만, 정작 내 생각은 한마디도 말할 수 없었다. 내 생각인 것처럼 쏟아내는 말들은 모두 어딘가에서 읽은 말이었고, 나의 독창적인 생각과 나의 주관적인 견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단지 내가 읽은 책이었고, 나는 나 자신이 아니었다.
생각을 할 줄 모른다는 나의 문제는 대학원에서 심각하게 드러났다. 어떤 글이든지 읽고 요약하고 설명하는 것은 자신있게 할 수 있었지만, 정작 내 논문을 만들어내는 것은 나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지식의 생산이라는 영역에서 나는 무능했고, 나는 내 논문을 작성할 수 없었다.
그래도 결국에 학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늘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기다려주었고, 나의 어려움에 공감해주었으며, 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도와주었다. 기존의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지키기만 하던 나의 고집은 깨어지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의 배려 가운데 나는 주체적으로 느끼고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언제나 설명만 할 줄 알던 사람이 이제서야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글쓰기의 과정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대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논문은 다른 연구자들과의 대화이고,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나는 주체적으로 생각하며 다른 이들과의 대화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의 이러한 대화가 우리의 사회를 만들어간다. 그렇다면, 내가 대화를 조금 더 잘 해나간다면, 내가 속한 사회도 조금은 더 나은 곳으로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