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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조류학자의 어쿠스틱 여행기 - 멸종 오리 찾아서 지구 세 바퀴 반 ㅣ 지식여행자 시리즈 3
글렌 칠튼 지음, 위문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어느 하나에 꽂혀서 그 일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만이 지구를 변하게 한다. 내 지론이다. 아직 그런 몰입을 경험하지 못해서
어느 한 분야에서 이렇게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언제나 존경스럽고 부러울 뿐이다. 멸종된 오리를 찾아서 지구를 세바퀴
반도는 정도의 거리를 다닌 저자 역시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다가 어찌나 글을 재미있게 쓰는지 읽으며 낄낄거리기 일쑤였다. 글을 잘
쓰는 재능까지 겸비한 저자는 바로 글렌 칠튼. 캐나다 매리 대학교와 호주 제임스 쿡 대학교의 교수이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조류학자이자 행동생태학자로 멸종된 까치오리에 관해서 만큼은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한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쓴 책인데도 어이없게도
너무나 겸손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한 정말 유머러스함도 최고인 저자인 것 같다.
어릴때
불안하고 집요한 아이였다고 고백하는 그는 1970년에 '위기에 처한 북미 야생 생물'이라는 차와 커피를 팔던 브룩본드 식품에서
끼워팔던 수집용 카드에 필이 꽂혀서 새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멸종위기의 새 중에서도 갈색 눈동자에
노란색 부리의 잘생긴 흑백 수컷 까치 오리인 래브라도 까치오리에 대한 그의 집요함은 그때부터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었다. 이후
성인이 되고 조류학자가 되면서 까치오리에 대한 모든 것들의 자취를 직접 탐사해 보기로 결심을 하고 비행기로 115,901킬로미터,
기차로 8,788킬로미터, 자가용으로 2,518킬로미터, 렌터카로 2,966킬로미터, 택시로 254킬로미터, 여객선으로
69킬로미터, 버스로 1,881킬로미터를 다닌 결과 132,377킬로미터에 이르렀고 그것은 지구를 비행기로 3.3번 돈 셈이란다.
이 일을 시작하려면 하늘이 두 쪽 나도 조류학자가 되어야겠다면 이국적이고 한적한 곳을
선택하라고 그래야 빈털터리가 되더라도 전망을 즐기는 가난한 학자라고 스스로 달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이 유머러스한 학자의 글은
모두 이런 식이다. 그가 까치오리의 박제를 찾아서 혹은 알을 찾아서 달려가는 일에 독자로서 동참하면서도 그가 내뱉는 자조적인
내용의 중얼거림, 여러 에피소드들은 나를 하하 웃게 만드는 재능이 있었다. 이 책은 진지한 멸종된 조류를 탐사하는 책임과 동시에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처럼 너무나 웃긴 책이었던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일요일에 장비를 들고 흰관참새의 노랫소리를 녹음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앞에 집에서 사람이 하나 튀어나오더니 이제라도 왔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에 저자는 어떻게 말했는지 아는가?
죄송합니다. 그래도 서둘러 온 거랍니다. 라니..으하하 너무 웃긴 사람이다. 잠시의 침묵끝에 사실대로 실토했더니 그 집주인은
실망하면서 단파라디오광인데 최근에 휴대전화 수신탑이 설치되는 바람에 단파라디오가 이상해져서 불만을 제기했던 것으로 저자를
공무원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일요일 아침에 정부가 라디오 전파 불만사항을 처리하고자 전문가를 파견했으리라고 믿는
사람이라니...그의 신뢰에 나 역시 감탄했다. 이건 이상한 조류학자의 멸종된 까치오리에 대한 탐사에 동참하는 것인지 그의 입담에
동참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그의 탐사 역시 착착 이루어져서 너무나 흥미로운 사실들을 접할 수 있었다. 제임스 오듀본이라는
화가이며 자연애호가인 그 사람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는 것도 역시 멋있었다. 50여개의 표본이 흩어져 있어 열두나라 혹은 열세나라를
탐사해야 할 운명의 그를 따라가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케임브리지의 수컷 까치오리의 가박제는 세계에서 가장 추한 표본이라고 하면서
뭔가 착잡한 듯 유머러스한 미소를 띤 그의 사진이 다 읽고 난 지금 나를 미소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