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문화찾기 10살부터 읽는 어린이 교양 역사
배유안 지음,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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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아이들 옆에 끼어 앉아 단숨에 읽었다. 마음에 뭔가 아련하고 벅찬 무엇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감동이 있다. 가장 암울하고 힘들었던 시기의 우리나라 사람들을 거의 7~80년이 지나 살고 있는 내가 바로 앞에서 얼굴 맞대고 있는 느낌이었다.

외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통해 접하는 그들은, 마치 내가 외국 사람이 되어 그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리만큼, 객관적이면서도 사실적이다.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이 간다. 파란 눈의 외국인 앞에 서서 긴장하고 있는 순박한 그들의 모습, 그 시절 풍경들이 그림 이전에 더 많은 것들을 말하고 있달까.

그림에 간간이 달려있는 그녀의 오래된 설명을 읽으며, 왠지모를 기쁨과 반가움이 가득하다.

<아기업은 여인 1934, 채색목판화>
결핵퇴치 모금 운동의 일환으로 1934년 크리스마스 실에 사용된 그림이다. 한국 이름인 기덕(기적을 불러 오는 덕)을 사용하며 그 시절 사람들을 지금 우리 앞에 데려다 준 엘리자베스 키스.

"이 청년은 원산에서 만난 농부다. 내가 그림을 그리자고 했더니 그 날은 말쑥하게 차려입고 왔다. 평상시 농부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는데 참으로 유감이었다."

"함흥 여자들은 서울 여자보다 키도 크고 자세도 꼿꼿하다. 젖은 빨래를 이고 있었는데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이 동네에서 어느 한 연인이 살아있는 새끼 돼지를 머리에 이고 가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젖은 빨래를 한아름 이고 있는 이 함흥 여인의 그림에 붙어있는 엘리자베스 키스의 사족이다. 지금은 가볼 수 없는 곳. 우리 아이들에게 분단이 되기 전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니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념과 정치적 입장을 떠나, 그곳도 우리와 같은 피를 가진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 살고 있다는 것. 시대와 시간을 초월하여 이어지는 어떤 느낌들이 있다.

"지게는 거의 단점이 없는 기구다. 지게는 일단 등에 지면 짐의 무게가 등 전체에 골고루 나눠지기 때문에 지게꾼이 두 발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어떤 짐도 나를 수 있다. 한국에는 지게가 없는 곳이 없으며, 지게로 나르지 못하는게 거의 없다. 살아있는 돼지도 지고 갈 수 있고, 집채만 한 농짝도 실어 나를 수 있으며 부서지기 쉬운 옹기들도 얹어서 옮길 수 있다." <필동이,수채화>

가난한 촌부, 그의 얼굴에서 고단하고 피곤한 삶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모델이 되어 주느라 낯선 이 앞에서 긴장한 모습까지도..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그녀의 그림을 따라 가다보면, 이 그림을 설명한 책의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 저 언덕배기로 함께 가 있는 듯하다.

"서울은 연날리기에 최고로 좋은 도시다. 서울의 언덕은 경사가 완만하여 아이들이 쉽게 올라가서 연을 날릴 수 있다. 연 날리는 철이 돌아오면 하늘이 온통 형형색색의 연으로 뒤덮인다. 조선 어린이들의 연 날리는 기술은 대단하다. 미국에서 온 남자 선교사는 조선의 연날리기 시합은 미국의 야구 시합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고 했다."

살아있는 역사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암울했던 시절이지만 연을 날리며 해맑게 즐거워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래도 희망을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연을 따라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요즘 조선 상점들은 별 재미가 없다. 거의 모든 상점들을 일본 사람들이 차지하고 대부분 도시 중심가에 현대식으로 꾸며 놓았기 때문이다. 다만 세 가지 상점은 한국식 그대로 남아 있는데, 모자 가게와 돗자리 가게, 놋그릇 가게다."

과도기 시절 그때의 거리 풍경도 만날 수 있다. 한국적 풍경과 모습들을 어떻게든 없애버리려고 했던 일본의 만행이 원망스럽고 슬프다. 정감있고 아름다왔던 조선의 거리들이 부자연스럽게 철거되고 변질되어가는 모습이 그려져 마음 한켠이 묵직하다.

"스케치를 시작하니 두 노인 학자들은 곧 얘기를 나누면서 내가 있다는 걸 금세 잊어버렸다. 훗날 한국을 다시 찾아왔을 때, 그때도 이런 멋진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이 사람은 연주도 잘하지만 행동도 점잖아서 좋은 가정에서 자란 것 같았다. 한국 사람들은 손이 잘생겼으며 대금을 부는 사람의 섬세한 손놀림이 정말 보기 좋았다."

그 시절 대금의 명인인 김계선(1891~1944)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 속 사람의 숭고한 모습이 내 귓가에 대금소리를 선사하는 것 같다.

"일본 여자들은 두 다리를 붙이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 한국 여자들은 가부좌로 앉았다가 피로하면 서슴지 않고 다리를 자주 고쳐 앉는다. 다리를 고쳐 앉을 때마다 치마가 불쑥 들렸다가 내려가는 게 재미있다."

여성을 남성보다 못하게 여기는 남존여비 사상은 임진왜란 뒤에 생겼다는 말을 들으며, 원래 우리나라 여성들은 훨씬 더 당차고 재주많지 않았을까 싶다. 눈매며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 시대를 살아갔을까 궁금해진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달빛아래 흥인지문' 작품이다. 목판화로는 표현하기 힘든 돌담 결을 세세하게 표현한 아주 아름다운 작품이다. 캄캄한 밤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동대문. 여전히 서울에 서 있는 그 동대문은 오랜 시간 우리 민족곁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어떤 감상을 품고 있을까...

"원산 어느 언덕에 올라서서, 멀리 초가집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노라면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한 외국인 화가가 이름도 없던 조선의 땅 어느 마을에서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고 기록해 놓은 그 정서가 2010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도 전달이 되는 듯하다. 외적으론 가장 힘겨운 시간을 걷고 있던 조선의 땅이지만, 정감있는 자연과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조선의 사람들과 함께 낯선 이방인에게 완전한 평화를 선사하고 있는 그 넉넉함.

이 책이 주는 감동은 이방인의 눈으로 그려진 우리 땅, 우리네 사람들이지만 그런 정감과 넉넉함을 그대로 전달하는 진솔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느낌 그대로를 우리 아이들도 받을 수 있을까. 오래전 연을 날리며 그 시대를 살았던 아이들을 보며 우리 아이들은 또 어떤 감동을 받게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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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10-2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멋지긴 한데 약간은 서구적인 느낌이 있군요.
역시 다르긴 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0-10-27 12:41   좋아요 0 | URL
그렇죠? 특히 마지막 두 그림은 더 그런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 당시 서양의 미술 사조를 많이 따랐을테고,
이 사람은 당시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하니,
일본풍도 약간 섞인 느낌이예요..

꿈꾸는섬 2010-10-30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이런 책 소개 너무 좋아요.^^ 흥미롭네요. 이방인이 그려낸 우리나라 전통의 모습,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0-10-30 09:07   좋아요 0 | URL
이 책 사려고 했었는데 도서관에서 먼저 보게 되었어요.
전 개인적으로 참 좋았어요.^^

아이리시스 2010-10-30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것도 안 읽고 그림만 보다가 분명 한국적인데 한국이 아닌데, 라고 생각한 게
정말 그런거였군요. 사진 좋고 재밌었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0-10-30 12:31   좋아요 0 | URL
맞아요..한국적인데 시선은 영국적인 것..^^
카메라도 미국 제품이면 미국풍으로 찍히고, 일본 제품이면 일본풍으로 찍히는게 있음 좋겠네요..그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