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가는 계단 - 제23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동화 부문 대상 수상작 창비아동문고 303
전수경 지음, 소윤경 그림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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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3 전수경

창비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
우주, 물리 등 과학 개념, 이론들로 관계, 일상, 감정 등을 그린다. 어린이 수준에서 문학적으로 그린 과학 개념, 이론은 피상적이다. 나도 문돌이다보니 맞는 곳에 제대로 쓴 건지 의구심만 들 뿐 확인은 어렵다. 슬픔이나 그리움의 정서가 마음을 울리긴 하니까, 뭐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 어때. 싶다가도 또 과학을 소재로 하면, 게다가 배우는 중인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좀 더 엄밀함이 필요할 것도 같다. 어렵다.
701호 할머니와 2001호 지수의 우정은 독특하고 있을 법 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단 6개월 만나 과학에 대한 공감을 나누고 우유를 건네고 이야기가 통하고, 뭐 친해질 수도 있지만 지수의 그리움의 깊이가 과장된 느낌도 든다. 둘이 그렇게나 친했다는 걸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 같다.
지수가 비밀을 알아내는 부분도 김이 빠진다. 암호를 푸는 과정도 그렇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 하고 뿅 튀어나온 문의 정비사도 그렇고. 마무리가 많이 아쉽다. 양자역학, 평행우주, 막 던져 놓고 사실 관련 책을 읽긴 하는데 잘 몰라, 이러고 다 얼버무린다. 그냥 읽는게 좋아, 생년 생일 생몰이 같으니 재밌고 좋아. 너무 감상적이다.
상실, 그리움에 대처하는 독특한 방식은 마음에 든다. 지수를 둘러싼 좋은 이웃, 친구, 사람들도. 동화같지만 이건 동화니까. 그리고 과거 언젠가와 지금 어딘가에도 그런 좋은 사람들이 아픔을 다독이고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공동체들도 있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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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05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는 짧고,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걸 감안하여 상당한 절제가 이루어졌지만 어쩐지 제가 좋아하는 열반인님 스타일의 뼈대는 다 들어있는 것 같아요. 까고, 어르고, 또 까고, 다시 어르고...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19-05-05 13:11   좋아요 1 | URL
깔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깝니다- 뭐 이런 가사의 동요가 있었던 듯...ㅋㅋ(다시 찾아보니 딸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갑니다-였네요..)
 
Becoming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
미셸 오바마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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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3 미셸 오바마
Stevie Wonder - You And I (We Can Conquer the World)
https://youtu.be/zOW2UfvWWAE
미셸과 버락의 결혼식 축가

Beyonce -At Last
https://youtu.be/Q8FHwsATN0E
취임 축하 파티에서 라이브로 들었던 비욘세의 노래

흥터지는 미셸
https://youtu.be/ln3wAdRAim4
책에 나온 제임스코든쇼를 유튜브에서 찾아보았다. 카풀 가라오케코너에 미셸과 미시엘리엇이 나와서 흥파티를 벌렸다. 매력터진다.

전기니 회고록이니 잘 안 보는데 대출 현황에 3/4 되어 있는 것 보고 충동적으로 빌렸다. 버락도 미셸도 임기 동안 관심도 아는 바도 없었는데 백악관을 떠난 뒤, 퍼스트레이디 관점에서 풀어놓은 뒷이야기들이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흑인이지만, 부유하지 않지만, 시카고 변두리 출신이지만, 여성이지만, 가족에게 사랑받고, 끊임 없이 노력하고, 거기에 운까지 따라줘서 아이비리그에서 학사, 석사를 취득하고, 변호사가 되고,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와 병원 등에서 일하고, 엄마가 되고,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데 일조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 미셸이 자신의 성장 과정과 했던 일을 말할 때 자부심이 느껴진다.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것, 자신을 믿는 일, 낙관할 수 있는 힘,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의지, 남편과 자녀에 대한 넘치는 애정, 그런 것들을 자신있게 말하는 것까지 부럽고 대단해 보인다. 내가 갖추지 못한 많은 모습들.

누구나 대단해 질 필요는 없으니 뭐. 나는 내가 잘 하고 있는 것들을 찾고 하나라도 긍정해 봐야겠다.
—-
밑줄긋기
-이제 와서 돌아보면, 어른이 아이에게 뭘 물을 때 “크면 뭐가 되고 싶니?”만큼 쓸데없는 질문이 없는 것 같다. 이 질문은 성장을 유한한 과정으로 여긴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 무언가가 되면 그것으로 끝인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패배감은 실제 결과가 나타나기 한참 전에 엄습한다. 상담사는 바로 그런 기분을 심어주려는 것 같았다. 내가 시도도 해보기 전에, 보나 마나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눈을 낮추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부모님이 평생 내게 당부해온 말과는 정반대의 말이었다.
만약 내가 그녀의 말을 믿었다면, 그 한마디로 내 자신감은 도로 거꾸러졌을 것이다. 나는 부족해, 부족해 하는 자책이 다시 귓전에 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3년 동안 휘트니 영에서 야심만만한 아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덕분에, 나는 내가 그 이상이라는 걸 알았다. 한 사람의 의견이 나에 대한 나 자신의 평가를 무너뜨리도록 놓아두진 않을 터였다. 그 대신 나는 목표는 놓아두고 방법을 바꾸었다. 프린스턴에 지원하고 다른 학교들에도 많이 지원하겠지만, 학내 상담사의 도움은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신 실제로 나를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성공한 후에도 대형 경기장을 메울 수 있을 만큼 수많은 비판자와 회의론자가 따라붙는다. 그들은 그가 사소한 실책을 저지를 때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하고 외친다. 그런 소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그 소음을 견디는 법을, 대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목표를 꿋꿋이 밀고 나가는 법을 터득했다.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찾는 일은 동창생 명부를 훑어보는 것으로 해결될 리 없었다. 더 깊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했다. 자신을 적극 내세우고 적극 배워야 할 터였다.

-사실 버락의 “가는 중이야”는 그의 영원한 낙천성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것은 어서 집에 오고 싶은 그의 마음을 표현한 말일 뿐, 실제 도착 시각과는 무관했다. “거의 다 왔어”라는 말 역시 지리적 위치와 무관했다. 그는 가끔 집으로 오려고 나섰지만 차에 타기 전에 동료의 사무실에 잠깐 들러서 45분 동안 대화를 나눠야 했고, 또 가끔은 집에 거의 다 왔지만 그 전에 먼저 체육관에 들러서 잠시 운동하고 가겠다고 알리는 걸 잊었다.

-고정관념은 이렇듯 실제 올가미로 작용하곤 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성난 흑인 여성’이 이 표현의 순환 논리에 사로잡혔을까? 남들이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자연히 목청을 높이게 되지 않나? 남들이 우리를 성난 사람이나 감정적인 사람으로 치부하여 무시하면, 자연히 없던 화도 나고 울컥하는 감정도 생기지 않나?

-자신감이란 때로 자신의 내면에서 이끌어내야 함을 그 시절에 배웠고, 이후에도 여러 산을 오르면서 자신에게 여러 차례 똑같은 질문을 묻고 똑같은 응답을 했다.

나는 충분히 훌륭할까?
그럼, 물론이지.

-우리는 무언가의 크기와 가치를 제대로 헤아리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 때부터 세상을 재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운이 좋다면, 결국 자신이 그동안 모든 걸 잘못 재왔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어릴 때부터 나는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단호히 맞서야 하지만 그러느라고 나까지 그 아이의 수준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인즉, 우리는 이제 그런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다. 약자를 비하하고 전쟁 포로를 조롱하는 사람, 내뱉는 거의 모든 말이 국가의 품위를 해치는 사람. 나는 미국인들이 말의 중요성을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TV에서 들리는 혐오의 언어가 미국의 진정한 정신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는 그에 반대하여 투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주기를 바랐다. 내가 사람들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품위였다. 품위는 내 가족이 여러 세대 동안 버틸 수 있게 해준 힘이었고, 우리가 나라 전체로도 그 중요한 가치에 의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품위는 늘 우리를 버티게 해주었다. 그것은 선택이고, 늘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지만, 내가 살면서 만난 존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매일매일 몇 번이고 그런 선택을 내렸다. 그 문제에 관해서 버락과 내가 지키려고 애쓰는 모토가 있었는데, 그 말을 나는 그날 밤 무대에서 들려주었다. 상대가 수준 낮게 굴더라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

-내가 자는 동안, 확실한 뉴스가 들어왔다. 미국 유권자들은 버락을 이을 차기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선택했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오래 그 사실을 모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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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1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최종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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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8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독자를 바보 취급해도 기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말을 걸어주니 반갑다. 이건 소설이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 롤리타부터 그랬던 것 같다. 소설의 흔한 기법들을 하나씩 가리키고는 난 이렇게 안 할 거지롱 아니면 이거 틀렸다 이건 좀 아니다 하는 것도 재미있다. 친절한데다 치밀한 장난꾸러기네.

죽은 사람이 쓴 것만 읽을까 생각도 해 봤다. 내가 읽고 뭐라해도 화내지 못할 사람. 비겁하다.
그런데 죽고 나서도 읽히는 사람들은 도무지 뭐라 할 것 없이 재미있게 잘 썼다. 역시 죽은 사람 것만 읽어야 겠다. 0000년 사망. 이게 무슨 품질보증마크 같군.

나의 분신이 나 몰래 나를 죽이고 내 보험금을 받고 나인척 살았으면 좋겠다. 불가능하다. 나의 분신부터 문제다. 그런 게 있을리 없다. 나 몰래도 어렵다. 이걸 바라는 순간 벌써 죽일 걸 알았잖아. 나를 죽이는 건 뭐 그럴 가치가 있어야지. 보험금은 분신이 아닌 법정 상속인한테 가겠지? 게다가 나인척 산다는 건 뭐야. 나도 모르겠다.
이 문장은 전부 틀렸다. 그러니 이상한 바람은 잊고 소설이나 읽자.

소비에트 연방에서 게르만의 소설이 어떨게 읽힐지 갖다 붙이는 게 완전 웃기다. 응용해서 미국이랑 프랑스까지 간다. 사세요 두 번 사세요 좋아요 구독하기 눌러주세요. 시대를 초월한 마케팅이다.

게르만의 소설을 잠깐 보여주는 부분도 웃기다. 엉터리로 써놓고 으쓱으쓱. 게르만이 쓴 소설과 나보코프의 소설을 의도적으로 혼동되게 한다. 아마도 그 소설이 게르만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완전범죄에 실패한 것을 인정받지 못한 예술(소설)인 양 투덜대며 그려놓았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때까지만 해도 치밀한 범죄자였을 게르만은 범행이 탄로난 후에는 (결과론적으로) 허술한 바보이거나 정신병자일 수 밖에 없다. 쓰는 순간에는 아무리 위대한 실험 정신으로 도취되어 있었더라도 작가의 의도대로 읽히지 않은 데다가 혹평을 받은 창작물은 실패한 것이다. 실패한 것인가? 어쨌든 게르만은 ㅈ됐다.

예전 상사가 떠나가면서 남겨준 말이 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이걸 기억해.” 이걸 잊은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추가되었다. 나도 자주 잊는다. 그것이 늘 비극의 시작.

불쌍한 부랑자 펠릭스. 제일 먼저 ㅈ됐다. 몇 푼 탐낸 죄 치고는 가혹하다. 원래 작은 죄의 대가가 제일 크다.

허영에 가득한 주정뱅이 화가 아르달리온. 나름의 역할이 있다.

리다. 남편 잘못 만나 겪을 인생역정이 눈에 보인다. 게르만의 묘사가 부당할 것이라는 의심을 아르달리온의 편지 이전까지는 내내 해보지 못했다. 부끄럽다.

페이지가 넉넉히 남은 것에 방심하고 보다 딱 끝나 버리니 너무 아쉬웠다.

부록으로 딸린 영문판 저자 서문에서 궁금한 것이 조금 풀렸다. 거기에 더해 새로운 것도 알았다.
1.이 소설은 영어 아닌 러시아어로 쓰였다. 당시엔 러시아에서 (저자 말대로 게르만의 바람과 달리)출판 못했다.
2.이 소설의 영문판은 저자가 직접 번역했다. 자기가 쓴 소설을 자기가 다른 언어로 직접 번역한 점이 흥미롭다. 게다가 두 번이나 번역했다. 30년 후의 번역은 약간 개작도 했다. 셀프 번역의 장점이다.
3.내가 읽은 문학동네 한국어판은 영문판을 참고해 러시아어판을 번역했다고 한다. (둘의 결말이 약간 다른데 일장 연설 안 하고 갑자기 끝나는 게 더 깔끔한 선택같다. )

휴대폰이 없던 시절 편지와 신문이 사건의 매개가 되고 정보를 나누고 사람의 거취에 영향을 주었다. 우리 시대에도 그렇게 쓸 수 있을까? 쇼코와 소유는 편지를 주고 받지만. 과거에 주고 받았다 이상으로 쓸 수 있을까. 즉물적이고 즉각적인 것들이 시간의 지연마저 걷어가 버렸다. 메신저가 있고 인터넷 뉴스 속보 알림이 있다. 정보가 너무 많다. 쉽사리 말을 걸 수 있다. 긴장감을 어떻게 유지할까. 빈 칸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휴대전화를 변기에 빠뜨리고 두고 나오고 잃어버리고 액정이 깨지고 요금을 못내서 정지되고...그 이상의 진부하지 않은 장치가 있을까? 그걸 해낸다면 승자가 되겠지. 아니면 아예 가상의 이야기나 다른 세계 다른 시대를 찾아야 한다. 소설에 나온 AI는 휴대전화 가진 놈이 없더라. 외계인도. 할머니조차 있는데. 어떤 할머니는 인스타도 하는데.

오랜만에 신나게 읽었다. 롤리타도 다시 읽고 싶다. 십오 년 전에 읽은 건 안 읽은 것이나 다름 없다.

——
밑줄 잘 안 긋는 내가 밑줄을 너무 많이 그었다.

-ㅋㅋㅋ(1)
“새 중에서 참새는 거지예요. 거지 중의 상거지죠, 상거지.” 그가 되풀이했다.

-가끔 설득당한 나도 실은 악당이 아닐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내 존재의 독재자가 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논리도, 그 어떤 황홀경도 어처구니없이 어리석은 내 처지에 대한 생각을 거두게 하지 못한다. 신의 노예라는 처지 말이다. 이건 심지어 노예의 처지도 아니고, 호기심 많은 아이가 쓸데없이 그었다 끄는 성냥개비의 처지다. 아이의 장난감이 느끼는 공포. 그러나 아무 걱정 없다. 신은 없다. 불멸도 없다. 신이라는 괴물처럼 이 불멸이라는 녀석 또한 쉽게 처치할 수 있다. 정말로 한번 상상해보시라. 당신이 죽어 천국에서 눈을 떴다. 당신이 소중히 여겼던 고인들이 당신을 미소로 맞이한다. 자, 그럼 말씀해보시라. 그들이 진짜 고인들이라는 사실을, 그자가 당신 엄마의 탈을 쓰고 아주 완벽한 기교로 자연스럽게 그녀를 연기해서 당신을 미혹하는 어떤 잡귀가 아니라 정말로 고인이 된 당신 엄마라는 사실을 당신은 어떻게 보증하겠는가? 바로 이게 문제다. 바로 이게 끔찍한 거다. 연기는 실로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저세상에서 당신의 영혼은 자신을 둘러싼 다정다감한 영혼들이 탈을 쓴 악마들이 아님을 결코, 결코, 결코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영혼은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의심 속에 머물고, 자기 앞에 고개 숙인 사랑스러운 얼굴에 나타날 끔찍한 변화를, 악마의 조소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실크해트를 쓴 건장한 사형집행인이든, 영원한 부재의 조가비 소리든, 뭐든 전부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불멸이라는 고문만은, 이 차가운 하얀 강아지들만은 거절하겠다. 날 가게 놔두라. 조금의 애정 표시도 참지 않을 것임을 너희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가증스러운 요술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저승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며 익숙한 손을 뻗을 때에도, 나는 공포에 질려 소리칠 것이다. 천국의 잔디 위에 털썩 쓰러져 몸부림칠 것이다. 아, 나는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이방인에게는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을 닫아라.

-ㅋㅋㅋ(2)
그는 분별없는 소설가들이 작품 속에서 쓰는 소리를 냈다. “흠.”

-니들은 이렇게 못 쓰지?
긴 끈을 삼키는 마술사처럼 차가 길을 덥석덥석 집어삼켰다. 

-서늘했다. 
“다 됐지, 다 된 거지?”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어디 제대로 좀 보자…… 그래, 다 된 거 같은데…… 이제 돌아서. 뒤태가 어떤지 보고 싶어……”

  그가 돌아섰다. 그리고 나는 그의 등에 총을 쏘았다.

  나는 여러 가지 것들을 기억한다. 허공에 걸려 있다가 투명한 주름을 펼치며 흩어지던 한 줄기 연기. 펠릭스가 쓰러지던 모습. 그는 곧장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먼저 삶과 관계되어 있는 움직임을 끝냈다. 그건 바로 한 바퀴 가까이 빙글 도는 것이었다. 거울 앞에서처럼 내 앞에서 재미 삼아 몸을 빙글 돌려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제 관성에 따라 이 보잘것없는 장난을 끝내며, 그는 이미 구멍이 뚫린 몸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서서히 팔을 벌렸다. 묻는 듯했다. “이게 뭐죠?” 그리고 답을 얻지 못한 채,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그래, 이 모든 것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또 기억한다. 새 옷이 불편하다는 듯이, 눈 위에서 뻣뻣해지기 시작하는 몸을 홱홱 움직여 내던 바스락 소리. 그는 곧 잠잠해졌다. 그때 나는 지구의 자전을 느꼈다. 모자만이 조용히 그의 정수리에서 분리되어 뒤로 떨어져 입을 벌리고 있었다. 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듯했다. 그게 아니면 진부한 문구를 떠올리게 하려는 듯했다. “참석한 이들은 모두 모자를 벗었도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단 하나 기억나지 않는 것이 있다. 총소리. 대신 내 귀에는 끈질긴 소리가 남았다. 그 소리가 나를 에워쌌고, 입술 위에서 떨렸다. 나는 그 소리의 장막을 뚫고 시체로 다가가서 탐욕에 찬 눈길을 보냈다.

-이거 근데 진심이죠. 자주 하는 짓이라 죄송해요.
그게 내 시체가 아니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단단히 박고서(즉, 마음에 들지 않는 작가가 쓴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별로라고 판단한 이후로는 그 독단적인 의견에서 출발하는 문학비평가 같은 태도로), 그 점을 확신하고서, 그들은 펠릭스와 나의 닮음에 직면하여, 아름다운 책에서 오기(誤記)나 오식이 눈에 띄지 않듯이, 더 깊이 있고 지각 있는 태도로 내 작품을 대한다면 그냥 지나칠, 전혀 중요치 않은 작은 흠집들에 탐욕스레 달려들었다. 

-그게 너의 가장 큰 문제야. 
아무 근거 없이 내 구상 자체가 틀렸다는 결론을 내리고서는, 나 자신이 매우 잘 알고 있는, 성공적인 창작에 비춰볼 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차이를 냉큼 잡아내며, 실수를, 꾸며낸 실수를 소급해서 내게 떠안겼다. 모든 게 더할 나위 없이 치밀하게 계획되고 실행되었음을, 모든 일이 완벽하게 마무리된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필연이었음을, 어쩌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창조적 직관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음을 나는 주장하는 바이다. 

-지팡이. 절망. 
이봐요, 이봐! 심지어 그의 시체가 내 시체라고 진짜 믿었다 해도 마찬가지로 지팡이는 발견되었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그를 체포하는 줄로 생각하며 날 체포했을 거요. 바로 그 점이 가장 수치스럽단 말이오! 실로 모든 게 바로 실수가 있을 수 없음에 기반을 두고 있었소. 그런데 지금 보니 실수가 있었소. 게다가 그게 어떤 실수요? 아주 하찮고 우스꽝스럽고 조악한 실수가 지금 드러난 거요. 들어봐요, 들어봐! 나는 경이로운 내 작품의 잔해를 지켜보며 서 있었소. 그러자 날 인정하지 않은 군중이 옳았는지도 모른다고 역겨운 목소리가 내 귀에 대고 소릴 질러댔소…… 그래요, 난 전부 의심하게 되었소. 핵심을 의심하게 된 거요. 그리고 길지 않은 여생을 온전히 단 하나, 이 의심과의 헛된 싸움에만 쏟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소. 나는 사형수의 미소를 지었소. 그리고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러대는 뭉툭한 연필로 첫 페이지에 재빨리 그리고 단호하게 ‘절망’이라는 단어를 썼소. 이보다 나은 제목은 찾을 수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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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러운 책에 대해 리뷰를 솔직히 쓰는 편이다. 같은 책에 대해서도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이번에도 별로였던 책 리뷰를 쓰고 다른 사람 평을 보니 좋은 평만 엄청 많았다. 낮은 별점평을 찾아 읽으며 음 나 같은 소수?의견도 있군 하는데 특이하게 낮은 별점평에 댓글이 많이 달려있었다. 궁금해서 그분들 서재에 들어가 보았다. 
한 유저가 해당 리뷰가 인신공격임을 반복해서 도배하고 마지막은 고소했다, 선처 없다, 하는 댓글로 마무리된 게 일관되었다. 
출판사인가, 설마 저자, 에이 그럴리가. 
그랬다. 저자였다. 구글이 알려주었다. 

아, 난 ㅈ된 것이다. 
최초로 저자가 직접 내 리뷰에 댓글을 달아주는 영광과 함께 ㅈ되는 것이다. 
검찰 전화 받고 재판도 받는 것인가 이상하게 기대가 되었다. 

아, ㅈ될 뻔 한 것이다.아직 댓글이 안 달렸으니 희망이 보였다. 
 쫄려서 글을 삭제하려다 친구공개로 돌려 놓았다. 나는 언론 출판의 자유를 옹호한다. 그런 책을 내서 돈 버는 것도 응원합니다. 그러니 제 의견도 존중받고 싶습니다. 
이런 책은 절대 읽지도 사지도 말아야겠다. 목 놓아 부르짖고 싶은데 그러면 고소를 당할테니 쫄보인 나는 그저 친구공개로 소심하게 글을 쓴다. 
그러나 서재친구 중에 일름보인 저자의 친구나 추종자가 있다면 아마 나를 일러서 나는 송사에 휘말리고 가산을 탕진해서 더 이상 책 따윈 사 읽을 수도 리뷰를 남길 수도 없을 것이다. 
독서 강국을 꿈꾸는 뜻이 독서를 금지하는 곳으로 흐를 수도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다. 

그러니 어느 날부터 제 리뷰가 올라오지 않으면 범인은 ...불쌍한 저는 책도 못 읽고 인터넷 뉴스나 읽고 있는 걸로 아시고...명복을 빌어주세요. 이것은 미리 쓰는 다잉 메시지. 

——-
비공개 전환하였다. 가족에게 말하자 내가 잃게 될 것들을 조목조목 일러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일기는 일기장에 쓰는 시절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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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9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9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08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10-08 15:10   좋아요 1 | URL
아 ㅋㅋㅋ쓰레기 같은 책을 마구 써내고 독서법 책출간법 등을 다단계처럼 가르치고 있는 김ㅂ완 이라는 저자 책이었습니다. ㅋㅋㅋㅋ친구추가 얼마든지요 ㅋㅋㅋ저는 하루에 이렇게 많은 좋아요 처음이네요. 배불러 ㅋㅋㅋㅋㅋ감사합니다.

2020-10-08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08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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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완 지음 / 청림출판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190428 김병완
리뷰 쓰는 시간 조차 아까운데. 그냥 이런 책도 있구나 직접 확인하려고 굳이 읽는 거 아니면 이거 읽을 시간에 자기가 사랑할 만한 책들을 즐기시길 권합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하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구나. 

한 달에 백 권 일 년에 천 권 보는 분들이 이런 류의 독서법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속독법 ‘소개’책이다. 
독서를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국가의 미래, 너의 자녀와 후손을 위한 것이라 할 때 덮었어야 했다. 
제목에 부합하는 퀀텀 독서법 소개는 책 앞부분 60퍼센트 건너뛰고 6,7장부터 나온다. 방법은 아주 개략적으로 소개한다. (자세한 건 저자의 비싼 직강을 수강해 주세요.)
뭐 뇌훈련 안구훈련 명상 자기계발 다른 방식으로 읽기 할 사람은 해 볼 법도 하겠지만 군대식 훈련 체력 단련도 아니고 우습다. 
설득하지 못한 채 당위만 주장하고 믿어라, 행해라, 이거면 반드시 된다,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배운 점은 있다. 1.펼친 책은 일단 다 읽자, 는 내 룰을 이제는 깰 때가 온 것 같다. 2.제목이 솔깃한 책은 믿고 거르자. 실용서고 에세이고 팔할은 슬픈 예감이 적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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