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ecoming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
미셸 오바마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1월
평점 :
품절
-20190503 미셸 오바마
Stevie Wonder - You And I (We Can Conquer the World)
https://youtu.be/zOW2UfvWWAE
미셸과 버락의 결혼식 축가
Beyonce -At Last
https://youtu.be/Q8FHwsATN0E
취임 축하 파티에서 라이브로 들었던 비욘세의 노래
흥터지는 미셸
https://youtu.be/ln3wAdRAim4
책에 나온 제임스코든쇼를 유튜브에서 찾아보았다. 카풀 가라오케코너에 미셸과 미시엘리엇이 나와서 흥파티를 벌렸다. 매력터진다.
전기니 회고록이니 잘 안 보는데 대출 현황에 3/4 되어 있는 것 보고 충동적으로 빌렸다. 버락도 미셸도 임기 동안 관심도 아는 바도 없었는데 백악관을 떠난 뒤, 퍼스트레이디 관점에서 풀어놓은 뒷이야기들이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흑인이지만, 부유하지 않지만, 시카고 변두리 출신이지만, 여성이지만, 가족에게 사랑받고, 끊임 없이 노력하고, 거기에 운까지 따라줘서 아이비리그에서 학사, 석사를 취득하고, 변호사가 되고,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와 병원 등에서 일하고, 엄마가 되고,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데 일조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 미셸이 자신의 성장 과정과 했던 일을 말할 때 자부심이 느껴진다.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것, 자신을 믿는 일, 낙관할 수 있는 힘,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의지, 남편과 자녀에 대한 넘치는 애정, 그런 것들을 자신있게 말하는 것까지 부럽고 대단해 보인다. 내가 갖추지 못한 많은 모습들.
누구나 대단해 질 필요는 없으니 뭐. 나는 내가 잘 하고 있는 것들을 찾고 하나라도 긍정해 봐야겠다.
—-
밑줄긋기
-이제 와서 돌아보면, 어른이 아이에게 뭘 물을 때 “크면 뭐가 되고 싶니?”만큼 쓸데없는 질문이 없는 것 같다. 이 질문은 성장을 유한한 과정으로 여긴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 무언가가 되면 그것으로 끝인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패배감은 실제 결과가 나타나기 한참 전에 엄습한다. 상담사는 바로 그런 기분을 심어주려는 것 같았다. 내가 시도도 해보기 전에, 보나 마나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눈을 낮추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부모님이 평생 내게 당부해온 말과는 정반대의 말이었다.
만약 내가 그녀의 말을 믿었다면, 그 한마디로 내 자신감은 도로 거꾸러졌을 것이다. 나는 부족해, 부족해 하는 자책이 다시 귓전에 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3년 동안 휘트니 영에서 야심만만한 아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덕분에, 나는 내가 그 이상이라는 걸 알았다. 한 사람의 의견이 나에 대한 나 자신의 평가를 무너뜨리도록 놓아두진 않을 터였다. 그 대신 나는 목표는 놓아두고 방법을 바꾸었다. 프린스턴에 지원하고 다른 학교들에도 많이 지원하겠지만, 학내 상담사의 도움은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신 실제로 나를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성공한 후에도 대형 경기장을 메울 수 있을 만큼 수많은 비판자와 회의론자가 따라붙는다. 그들은 그가 사소한 실책을 저지를 때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하고 외친다. 그런 소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그 소음을 견디는 법을, 대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목표를 꿋꿋이 밀고 나가는 법을 터득했다.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찾는 일은 동창생 명부를 훑어보는 것으로 해결될 리 없었다. 더 깊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했다. 자신을 적극 내세우고 적극 배워야 할 터였다.
-사실 버락의 “가는 중이야”는 그의 영원한 낙천성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것은 어서 집에 오고 싶은 그의 마음을 표현한 말일 뿐, 실제 도착 시각과는 무관했다. “거의 다 왔어”라는 말 역시 지리적 위치와 무관했다. 그는 가끔 집으로 오려고 나섰지만 차에 타기 전에 동료의 사무실에 잠깐 들러서 45분 동안 대화를 나눠야 했고, 또 가끔은 집에 거의 다 왔지만 그 전에 먼저 체육관에 들러서 잠시 운동하고 가겠다고 알리는 걸 잊었다.
-고정관념은 이렇듯 실제 올가미로 작용하곤 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성난 흑인 여성’이 이 표현의 순환 논리에 사로잡혔을까? 남들이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자연히 목청을 높이게 되지 않나? 남들이 우리를 성난 사람이나 감정적인 사람으로 치부하여 무시하면, 자연히 없던 화도 나고 울컥하는 감정도 생기지 않나?
-자신감이란 때로 자신의 내면에서 이끌어내야 함을 그 시절에 배웠고, 이후에도 여러 산을 오르면서 자신에게 여러 차례 똑같은 질문을 묻고 똑같은 응답을 했다.
나는 충분히 훌륭할까?
그럼, 물론이지.
-우리는 무언가의 크기와 가치를 제대로 헤아리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 때부터 세상을 재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운이 좋다면, 결국 자신이 그동안 모든 걸 잘못 재왔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어릴 때부터 나는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단호히 맞서야 하지만 그러느라고 나까지 그 아이의 수준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인즉, 우리는 이제 그런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다. 약자를 비하하고 전쟁 포로를 조롱하는 사람, 내뱉는 거의 모든 말이 국가의 품위를 해치는 사람. 나는 미국인들이 말의 중요성을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TV에서 들리는 혐오의 언어가 미국의 진정한 정신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는 그에 반대하여 투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주기를 바랐다. 내가 사람들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품위였다. 품위는 내 가족이 여러 세대 동안 버틸 수 있게 해준 힘이었고, 우리가 나라 전체로도 그 중요한 가치에 의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품위는 늘 우리를 버티게 해주었다. 그것은 선택이고, 늘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지만, 내가 살면서 만난 존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매일매일 몇 번이고 그런 선택을 내렸다. 그 문제에 관해서 버락과 내가 지키려고 애쓰는 모토가 있었는데, 그 말을 나는 그날 밤 무대에서 들려주었다. 상대가 수준 낮게 굴더라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
-내가 자는 동안, 확실한 뉴스가 들어왔다. 미국 유권자들은 버락을 이을 차기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선택했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오래 그 사실을 모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