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안나 카레니나 1 펭귄클래식 12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새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2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2021040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이아립-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
https://youtu.be/N2anJRDSen8

안나 카레니나를 처음 알게 된 건 밀란 쿤데라 할아버지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을 때였다. 가련한 테레자는 조그만 마을에 찾아든 토마시가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 혼자서만 책을 읽고 있다는 이유로 호감을 가지고 다가선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짐가방을 들고 프라하로 찾아가서는 손에 쥔 ‘안나 카레니나’가 그의 세계로 가는 유일한, 보잘것 없고 비참한 입장권이라 생각하며 조바심 내기도 한다.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그녀는 토마시의 사랑을 얻지만 동시에 그의 방만한 육체 관계 때문에 오래도록 고통 받는다.
사랑은 그렇게 한 사람에게 행복과 기쁨과 번민과 고통을 동시에 혹은 번갈아가며 줄 수 있고, 인생의 방향을 이리저리 틀어버릴 만큼 강력한 감정이고 경험인데. 그 중요한 사랑을 시작하는 방법은 커녕 유지하는 법, 끝맺는 법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책과 영화와 드라마 같은 서사가 사랑의 일대기, 흥망성쇄,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사랑을, 연애를 글로 배웠습니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종이장의 사랑 두 글자를 핥거나 모니터 위 빛나는 입술을 핥듯 그저 남의 사랑 놀음을 구경하는 수준일 뿐 실제로 거기서 뭔가를 배우지는 못했다. 직접 부닥치고 선택하고 망하고를 다시 반복하는 수 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누구보다 사랑 받길 열망했지만 그 방법을 몰랐고 내가 나라는 이유 만으로 사랑 받을 수 있다고는 꿈에서도 믿지 않았다. 열망하는 상대방이 배부르고 안락하고 기쁨을 누리도록 맛있는 걸 잔뜩 먹이고 이것저것 사다주고 안아주고 그리워하며 혼자서 우는 것 말고는 할 줄 몰랐다. 그런 방식은 대개 망해서 배만 부른 채 떠나게 만들 뿐 마음을 얻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막상 약하고 부족한 나라도 내내 다정하게 대하는 이를 드디어 만났을 때, 그런 마음과 관계가 어떻게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또한 몰랐다. 그냥 아이를 낳고 싶어서 낳고 길렀다. 같이 있을 수 있도록 돈을 벌고 생활을 유지했다. 같이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 사이사이를 음악이든 게임이든 책이든 글쓰기든 소일거리들로 채웠다. 안온하고 여유있고 자리잡힌 채로 늙을 일만 남았구나, 하고 생각하면 약간 서글프면서도 이것이 내가, 우리가 바라는 삶이 아니었나, 다 이루었다 하면서 스스로를 달랬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열망과 바람과 다른 삶의 가능성과 잔잔함을 휘젓는 새로운 경험이 어느 구석에나 도사리고 있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저 수많은 이야기들이 보여주었다. 결국 망할 걸 알면서도, 파국 속에 허우적거릴 걸(계란 풀고 파 송송한 속에 둥둥 떠다니는 건 왜냐...그 파국 아니다…) 알면서도 뭔가를 저지르고 잠시 행복하다가 깊은 어둠에 잠기거나 간단하게 죽어버리는 인물들은 픽션에도 논픽션에도 너무도 많았다. 솔직히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보다는 남이 망하고 괴로워하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본디 인간이 그런 존재인지 내가 사악해서인지는 모르겠다. 고대 그리스 비극부터 셰익스피어의 비극, 근현대의 소설들, 이대로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하는 하이킥의 카페베네 결말까지, 새드 엔딩이 득세하는 걸 보면 나만 사악한 건 아닌 거 같아서 위안이 된다. 그래도 내 이야기는 배드엔딩이 아니면 좋겠다.

몇 년 전에 안나카레니나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기억에 남은 게 거의 없다. 무도회에서 끝나지 않을 듯한 춤을 추는 두 사람과, 마지막 기차역에서 서늘한 분위기로 죽음에 몸을 맡길 준비를 하는 안나의 모습 정도만 어렴풋이 떠오른다. 망할 결말을 알면서도 만남을 이어가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게 독서에 한해서는 재미있었다. 톨스토이가 자기 분신인 양 그려놓은 레빈도 멋있는 척 소박한 척 하는 게 오히려 웃기고, 뭐만 하면 툭 튀어나오는 오블론스키도 재미있는 캐릭터였다. 다만 비슷한 상황에 놓이고도 여동생 안나는 번민에 근심에 환멸에 시달리는데 오빠 오블론스키는 전혀 흔들림 없고 내내 유쾌한 게 대조적이었다. 달린 자식이 줄줄인데도 오블론스키는 죄책감 자괴감은 커녕 마냥 해맑아서 오히려 얄밉더라. ‘귀부인’이라는, 그나마 고상한 자격이나 지위가 본인에게 속하지 않고, 남편의 ‘백작’이니 ‘공작’이니 하는 신분과 사회적 명망에 따라 ‘백작 부인’, ‘공작 부인’하고 주어지던, 그런 정체성에만 기댈 수 있던 시대라 그랬을까. 그렇다면 백사십 년 쯤 지난 지금의 이야기였다면 끝이 달랐을까? 안나는 죽지 않고 다른 가능성을 찾아 나설 수 있었을까? 시대가 변해도 결혼제도가 존재하고 남 이야기 좋아하는 인간의 특성은 그대로라서 어떤 식으로든 평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잔잔하면 그건 이야기 거리가 되지도 않는다…)
아직 두 권이나 남았으니 다 타버릴 때까지 두 사람이 열심히 불 지피는 모습이나 한참 구경해야겠다. 밀란 쿤데라 소설 읽은 지가 20년이나 되었는데 안나 카레니나를 이제야 읽다니...이제라도 읽다니 다행이고 생각보다 더 재미있다. 아 심지어 멍멍이 카레닌 이름이 카레니나의 남편에게서 따온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미안해 카레닌 예전에 밀란쿠 할아버지가 그린 네 모습 ㄱㅊ같다고 심통부려서 미안해...

영화 ’안나카레니나’ 무도회 장면
https://youtu.be/RqyuLxJDZ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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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04 1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나카레니나는 결말을 알고 읽는것도 좋을것 같네요. 저는 결론을 모르고 읽어서 놀랐던 기억이. (그 누구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습니다 ㅎㅎ)
버스정류장 OST 노래 보니까 반갑네요. 완독을 응원합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1-04-04 11:35   좋아요 2 | URL
새로 이웃되신 새파랑님 반갑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늦더라도 완독할게요 ㅎㅎ 버스정류장 영화는 안 봤는데 루시드폴이랑 이아립은 어려서 좋아했네요.

새파랑 2021-04-04 11:42   좋아요 2 | URL
저도 영화는 안봤으나 루시드폴 때문에 CD 만 있는ㅎㅎ 감사합니다~!

청아 2021-04-04 11: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파국ㅋㅋㅋㅋ그리고 ㄱㅊ가 뭐예요??!🙄 카레닌이 이 카레닌이라는거 열반인님덕에 알게됨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4-04 11:34   좋아요 3 | URL
곤충이요!!!!!ㅋㅋㅋㅋㅋ

하나 2021-05-09 21:05   좋아요 1 | URL
그게 왜 곤충이지?? 내가 이상한 사람이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5-09 21:25   좋아요 1 | URL
저 곤충 가지고 알라딘엠디한테 블럭 먹었었어요 ㅋㅋㅋㅋㅋ

하나 2021-05-09 21:26   좋아요 1 | URL
아 젤 먼저 달아준 댓글이 이거라는 게.... 헤어나올 수 없는 지점 ㅋㅋㅋㅋㅋ 사랑해요

반유행열반인 2021-04-04 11: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할아버지 책 참을 수 없는 존재감 이라고 오타냄 ㅋㅋㅋㅋㅋ아 웃기다...

link123q34 2021-04-10 11:01   좋아요 2 | URL
전혀 몰랐어서 신나서 다시 확인하러 올라갔는데 늦게와서 수정된 뒤잖아요 ㅋㅋㅋㅋㅋ 아 억울해라...

반유행열반인 2021-04-10 13:41   좋아요 2 | URL
ㅋㅋㅋ부끄러워서 얼른 고쳤어요 ㅋㅋㅋ그래놓고 댓글에 셀프 박제ㅋㅋㅋ

라로 2021-04-04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열샘 좀 친절하게 링크 그냥 클릭 하면 새창 열리게 해주심 안 되나여?? 유튭 그냥 클릭해서 보게 해주는 건 안 바라도??^^;;; 두번이나 링크 복사하고 찾아보기 시간 걸리고 불편하고 (불평불평;;; 오늘 아마도 제 심기가 안 좋죠??ㅋㅋ 그러면서 나도 앞으로 글 올릴때 반열샘처럼 안 떠먹여 줄까?라는 생각 해봄;;;)
어쨌든 언제나 반열샘 글 좋아하지만, 오늘은 무척 시크합니다요. 멋져!!
아무튼 저는 구세대라 그런지 키이라 나이틀리가 출연한 것보다는 소피 마르소의 안나카레리나가 좋아요. 키이라는 오히려 책과는 좀 먼 인물 설정이라고 느낌. 아무튼 1, 저처럼 소설 진짜 안 읽는 인간이 알라딘 친구들 덕분에 푹푹 찌는 한국의 여름날 땀 뻘뻘 흘리며 안나 카레리나를 완독 했다는 것이 여전히 뿌듯합니다요. (그정도로 소설을 안 읽는 일인;;;) 아무튼 2, 소설은 잘 쓰고 계십니꽈??? 아무튼 3, ˝그래도 내 이야기는 배드엔딩이 아니면 좋겠다.˝에서 bad ending을 bed ending으로도 해석하면서 반열샘 언제 쓰신 글 생각하며 혼자 낄낄댔다는(하나마나 한 소리)요. 뭐 그랬다구요. 암튼 이 글 너무 좋아요. 문장 하나하나 넘 마음에 듦.(맞춤법 맞죵?? 듦..ㅎㅎㅎㅎㅎㅎㅎㅎ)

라로 2021-04-04 11:56   좋아요 1 | URL
아참참참, 이아립 노래 첨 들어보는 일인,,, 아주 맘에 드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04-04 12:02   좋아요 2 | URL
이게 북플에선 터치 한 번에 유튜브 열어주는데 피시버전 블로그에선 안 되더라구요 ㅋㅋ제가 컴퓨터 대신 모바일 기기로 글을 올리다보니 블로그에서 쓸 수 있는 동영상 첨부 기능은 다 막혀 있어요. 그러니까 동영상은 볼램 보고 말램 마요 내 글이나 봐줘요 하는 성의 없음.... ㅋㅋㅋㅋ
새로 쓴 건 하나도 없고 예전에 쓴 거 고치다 망했네 하고 공모전 대충 내고 새 달부터 새로 쓰려니 보름 후 쯤에 이사를 하네요 ㅋㅋㅋ열흘 정도 집수리도 하고 바쁜 열반이네요. 먼저 완독하신 라로님 리스펙트! 소피마르소 나오는 영화는 아직 안 봤고 키이라는 뭔가 쩌들다가 삶의 막판에 불사르는 느낌으로 생겨서(?) 그런데 사실 영화는 진짜 하나도 기억 안 나네요 ㅋㅋㅋㅋ 이아립 노래 별로 못하는데 묘하게 매력 있어요. ㅎㅎㅎ 스웨터라는 그룹 하면서 부른 멍든 새라는 노래도 좋아요 ㅎㅎ(https://youtu.be/wxglSSDL2Cc 또 불친절한 링크 투척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4-04 12:03   좋아요 1 | URL
불친절한 링크도 일일이 열어보고 들어주신 라로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ㅋㅋㅋㅋ

라로 2021-04-04 12:29   좋아요 1 | URL
불친절한 투척도 넘죽 받아서 듣는 저는,,,멈미꽈??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나쁘진 않지만, 먼저 것이 제 취향과 좀 더 가깝(아마도 제 취향은 대중적??;;; 이 음악은 좀 아마추어 느낌이 나서 그런 듯? 암튼 아니면 노래 별로 못하는 티가 더 많이 나서 그런가??^^;;)

반유행열반인 2021-04-04 12:32   좋아요 1 | URL
이 노래가 나름 데뷔 이후이고 그 전 더 언더 시절의 더 못 부르는(이거보다 더 못하다니!!!) 못들어줄 버전도 들어봐서 저는 이 정도면 용 됐네 ㅋㅋ했는데 루시드폴이랑 솔로로 부른 건 진짜 용용용 됐네 싶더라구요. 천재들도 많지만 뭐든 꾸준하고 끈질기게 존버 하면 뭐라도 되는구나...하는 가르침을 주는 창작자들이 더 위안이 되네요 ㅋㅋㅋㅋ

라로 2021-04-04 12:45   좋아요 2 | URL
그건 그래요!! 저는 그녀(맞죠? 이아립??)의 더 언더 시절은 아예 모르고 오늘 첨 두 가지 버전으로 들어보니 그렇다는 건데,,말씀처럼 존버하는 일반인 창작자들이 더 위로가 되는 건 사실이에요. 나도 너처럼 될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희망이 더 가깝게 느껴지니까요. 저에게도 그런 것이 필요한 요즘입니다요.^^;; 덕분에 위로를 받았어요. (뜬금포;;;)

바람돌이 2021-04-04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읽었을거라고 남들이 생각할 듯하지만 안읽은 1인입니다. 아 전 도대체 읽은 책이 뭘까요? 주섬 주섬 보관함에 넣으면서 그래 이것도 읽어야지 뒷통수를 긁적긁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하고요. 무도회장면 유튜브도 즐겁게 봤습니다. 근데 저도 소피 마르소에 1표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4-04 12:06   좋아요 1 | URL
굳이 남들이 필독! 해서 읽는 것보다 아 이젠 진짜 봐야지, 하는 때가 (이십 년 만에라도 ㅎㅎ) 오더라구요. 그때 읽으면 슝- 달리는 거지요. 소피마르소라니, 저는 젊은이라서 옛 버전 영화 옛 배우는 모르겠네요!!젊은 척ㅋㅋㅋㅋㅋ농담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Yeagene 2021-04-04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쿤테라 할아버지 책 읽으면서 꼭 안나 까레니나 읽어야지 했는데 ㅎㅎ책은 도끼다 에서도 하도 재미있게 강조하길래 꼭꼭 읽어야지 했는데!ㅠㅠㅠ
세 권이나 되어서인지 엄두가 안나네요..ㅠㅠㅠ

반유행열반인 2021-04-05 07:04   좋아요 1 | URL
읽고 싶은 마음이 드실 때 슬슬 읽으셔도 괜찮아요 ㅋㅋㅋ 저는 책은 도끼다 를 안 봤네요 ㅋㅋㅋㅋ

syo 2021-04-05 1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빨라!

반유행열반인 2021-04-05 13:23   좋아요 0 | URL
어여 따라오세요 ㅎㅎㅎ

초딩 2021-05-08 18: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앙 안나 카레니나로 당선 !!! 진심 축하드려요 ^^
안나 카레니나 겨울에 넘넘 인상 깊게 읽었었습니다 ^^ ㅎㅎㅎ
좋은 주말 되세요~

반유행열반인 2021-05-08 20:5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초딩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