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근처의 조그만 식물원에 다녀온데 이어 오늘은 김제 금산사에 다녀왔다. 모처럼 멀리 나서는 나들이길을  화창한 봄볕과 상쾌한 바람이 맞아주었다.

어제 나무와 새들을 보고온 감격이 남아있는지 아들녀석은 또 나무와 새를 보러간다는 말에 마냥 즐겁기만 하다. 금산사로 오르는 길에 계곡의 깨끗한 물을 보며 발걸음을 멈추는 아들녀석을 보면, 인간은 천성으로 자연에 친근감과 경외감을 느끼나보다.

후백제의 마지막 왕이라 할 수 있는 견훤에 대한 이야기와 곳곳에 놓여진 오래된 건물들은 금산사라는 절 자체가 주는 거대함과 더불어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거대한 미륵전과 긴 세월을 서있었을 고목들의 모습은 불자가 아닌 나에게도 시간에 대한 무기력함을 일깨워주는 법어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인간의 허욕은 쉽게 발견된다. 웅장한 미륵전을 끼고 돌다가  미륵전의 옆과 뒷벽에 새겨진 낙서들을 보았다. 그곳을 다녀갔다는 그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그곳에 깊은 상처로 자신의 이름을 남겨 놓았을까?  그들이 만든 상처가 그것으로 끝나기를 바랄뿐이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니 그 곳에서 시원한 약수 한잔 마시지 못하고 내려온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속세에서 삶을 사는 나에게 오래간만에 마음 속 때를 쓸어낼 기회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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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박완서의 소설 '그 여자네 집'에 보면 신춘문예철(10-11월)만 되면 가슴이 울렁거린다는 구절이 나온다. 소설 속에서 이 구절을 보는 순간에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언제부턴가 너무나 애절하게 느껴지는 신춘문예.

글을 쓰는데 굳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어야만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야구를 하는데 꼭 경기장에서 해야하냐는 질문과 비슷하다. 물론 조그만 공터에서 약식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 내면에는 언젠가는 유니폼을 입고 정식 심판아래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하고픈 욕망이 숨어있을 것이다.물론 신춘문예가 아니어도 글을 쓰는 일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글이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욕망도 가지게 된다. 그러한 욕망이 더욱더 좋은 글을 쓰도록 채찍질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신춘문예 등단시들을 잘 읽지 않았다. (물론 희곡을 쓰는 나의 입장에서 당선 희곡집은 꼭 읽었다.) 시는 독자의 주관적 판단이 우선해야한다는 나의 생각때문에, 다른 사람의 평가가 나에게 시에대한 선입견을 갖게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들어 신춘문예에 낙선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당선작들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희곡을 쓰는 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해서였다. 당선 시들을 읽으면서 시의 아름다움보다도 그 시인들이 지새운 밤과 찢어버린 원고들의 가치가 먼저 떠올랐다. 그들의 노력과 성과에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낙선한 사람들에게는 이 시들을 읽으며 자신의 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나역시 그런 의미에서 나의 글쓰기를 돌아보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토우'라는 시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기차를 자주 타는 나에게 평택역의 풍경이 금새 머리속에 그려졌다. 쉽게 지나치는 그곳이 갑자기 쓸쓸하고 황량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삶의 의미는 정말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평범한 경험을 한번 더 하게된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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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수수께끼 - 역사 속으로 떠나는 우리말 여행
시정곤 외 지음 / 김영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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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그 사회의 문화를 대변한다. 우리가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문화 전반에 대하여 알아간다는 것이다. 문화는 언어를 통해 생성, 발전되고 전파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언어는 그 자체가 문화의 한 종류이면서 동시에 문화의 주요 수단이된다. 그러므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은 우리의 언어인 한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한글은 우리 문화의 핵심이다. 세계를 통틀어 창제한 사람과 창제방법이 제시되어있는 유일한 글자로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랑거리이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숨을 쉬면서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살듯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우리의 말과 글인 한글에 대하여도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외계어나 어린 학생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상스럽고 저속한 표현을 대할때면 더욱 그런 생각이든다. 우리 문화가 상스럽고 저속해지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은 한글에 대한 지적 호기심에서 읽게 되었다. 지은이들의 의도 또한 그러한 것임에 틀림없다. 친구의 모르던 과거사를 들으며 그 친구의 삶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 책을 읽어가면서 한글이라는 언어가 더욱 친숙하게 느껴졌다. 이것만으로도 나의 책읽기는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지적 호기심의 충족. 최만리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최세진이라는 한글에 대한 새로운 공로자의 발견, 현재의 맞춤법과 표준어가 정해지기까지의 수많은 논쟁들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물론 배경지식이 부족하여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도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내가 아는 만큼만 이해했다. 그러나 이 책은 나의 아는 것을 그 만큼 확대시켜놓았으니 한글에 대한 다른 책을 읽는다던가,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때는 더 많은 것이 보일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성과이며 조금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말하고픈 이 책에 대한 옹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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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여행길에 바람나다 - Never Ending Travel 2, 풍경의 덫에 걸린 외톨박이 시인의 연애편지 33장
박성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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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
자신의 주어진 삶에 시계추처럼 얽매여 있다고 느끼는 순간, 지금 이곳을 벗어나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에 빠져든다. 그 충동의 강렬함에 때론 밤기차에 오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차례 마음을 쓸고 가는 바람처럼 충동을 날려보내는 일이 대부분이다. 여행을 떠난다는 일 자체가 일상적인 삶에서 부담스러운 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에는 여행에 대한 오해가 담겨있다. 여행이란 먼 곳으로 며칠동안의 계획을 가지고 가야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렇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일정을 세우고, 주변 사람들에게 당분간의 부재를 알리고, 부러움의 시선을 받으며 멋지게 출발한다. 그리고 돌아와 지친 몸을 추스린다며 여행의 피곤함에 대해 이야기 하곤한다. 그러나, 진정한 여행은 돌아와서 지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으로 즐거움과 행복감에 젖어들때 성공하는 것이 아닐까.

'남자, 여행길에 바람나다'에는 시인의 주변에서 여행이 시작된다.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마을의 정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 이름모를 풀들이 무성한 오솔길, 먼저 고인이 되신 가족의 무덤, 어릴적 추억이 남아있는 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 교정. 멀리 있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에 가장 적당한 곳들이 진정한 여행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반추한 후에 비로소 타인들의 삶이 머무르는 곳으로 여행지를 옮긴다. 자신의 삶을 반추한 후에야 비로소 타인의 삶이 지닌 아름다움과 땀의 의미를 더욱 깊게 끌어안을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특히 책의 주된 여행지가 있는 전라북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면 가까우면서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만한 곳이 많이 소개되어있어 더욱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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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에서 왕으로 - 국가, 그리고 야만의 탄생 - 카이에 소바주 2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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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에 소바주 시리즈 1권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선물을 받아 읽었다. 평소 신화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 곧바로 읽기 시작했고 금방 신화의 세계에 동화되었다. 특히나 인디언들의 신화가 품고있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에대한 성찰이 깊게 와닿았다. 그리고, 2권을 애타게 기다렸다.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 2권 '곰에서 왕으로 - 국가, 그리고 야만의 탄생'
전편이 신화에 담겨진 인류 근원의 사고에 대한 이야기라면, 2권은 자연과 대칭을 이루던 신화의 세계가 인간의 이기(칼=무기=문명)에의해 대칭성을 잃고, 문명이라는 가면을 쓴 야만의 세계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문명이 야만이라고? 놀라지 마라. 사실이 그렇다. 현대는 문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오만의 극치를 보여주는 야만의 세계이다.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임을 자처하며 인간만을 위한 문명(과학)으로 아무런 죄의식도 갖지않은채 자연에게 야만스러운 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인간에게도 치명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광우병이다. 인간은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족인 소를 먹였다. 그 결과가 광우병이라는 무서운 독으로 인간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새로운 사료는 인위적으로 소들을 살찌워서 더 많은 고기를 얻고자 한 문명의 이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은 소라는 자연의 특성을 위배한 것으로 대칭성을 깨는 행위였다. 그 결과 우리는 소를 먹기가 무서워졌다. 인간이 자연과의 대칭성을 파괴하면 자연은 더이상 우리에게 선물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류 문명의 발전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지배와 종속의 관계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인류가 살아가야할 환경의 파괴와 자연과의 괴리라는 심각한 문제의 발생이다. 인류와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맺음에 대하여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신화는 옛날에 비문명인들이 부족한 과학지식을 매우기위한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비유와 상징으로 감추어진 삶의 철학이며,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할 현대를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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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2004-04-22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권 나왔나보네여.. 저두 1권 무척 재밌게 봤는데.. 엉렁 사서 읽어바야쥐..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