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근처의 조그만 식물원에 다녀온데 이어 오늘은 김제 금산사에 다녀왔다. 모처럼 멀리 나서는 나들이길을 화창한 봄볕과 상쾌한 바람이 맞아주었다.
어제 나무와 새들을 보고온 감격이 남아있는지 아들녀석은 또 나무와 새를 보러간다는 말에 마냥 즐겁기만 하다. 금산사로 오르는 길에 계곡의 깨끗한 물을 보며 발걸음을 멈추는 아들녀석을 보면, 인간은 천성으로 자연에 친근감과 경외감을 느끼나보다.
후백제의 마지막 왕이라 할 수 있는 견훤에 대한 이야기와 곳곳에 놓여진 오래된 건물들은 금산사라는 절 자체가 주는 거대함과 더불어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거대한 미륵전과 긴 세월을 서있었을 고목들의 모습은 불자가 아닌 나에게도 시간에 대한 무기력함을 일깨워주는 법어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인간의 허욕은 쉽게 발견된다. 웅장한 미륵전을 끼고 돌다가 미륵전의 옆과 뒷벽에 새겨진 낙서들을 보았다. 그곳을 다녀갔다는 그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그곳에 깊은 상처로 자신의 이름을 남겨 놓았을까? 그들이 만든 상처가 그것으로 끝나기를 바랄뿐이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니 그 곳에서 시원한 약수 한잔 마시지 못하고 내려온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속세에서 삶을 사는 나에게 오래간만에 마음 속 때를 쓸어낼 기회였는데.